나의 마음공부 18

25-05-18 원정 115


제가 공을 알차라린지 약 3년 9개월 정도 지난 것 같아요.

도반들을 위하여 제 공부를 한 번 정리해 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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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머리 부분은 각성 되어 있다.

박하사탕을 입에 넣었을 때처럼 머리에 시원한 느낌도 들고, 기운에 취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일종의 에너지장을 느끼는 것도 같다.

그런데 이런 각성은 누구에게나 있는 현상인 것 같다.

마음이 가라앉으면 누구나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예전에는 이런 각성이 앎과 뒤섞여 있었던 것 같다.

이제는 이런 각성은 본질이 아니고 이러한 각성을 알아차리는 앎이 본질임을 느낀다.

텅빈 충만도, 각성도, 지복도, 성성함도.... 모두 대상(물론 사물들도 모두 대상)이다.

이런 것들은 모두 부수적인 것들이다.

그것들을 알아차리고 있는 앎이 더 알맹이다.

물론 그런 것들도 모두 본질에서 나왔다.

각성을 알아차릴 때 동시에 앎이 드러난다.

사물이 보일 때 눈의 존재가 드러나는 것과 같다.

밤에 돌멩이를 던졌는데 풍덩하는 소리에 물의 존재가 드러나는 것과 같다.

앎은 느낌도, 색깔도, 모양도, 소리도 없다.

그래서 앎을 空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묘하게 있다(眞空妙有).

즉, 봄으로써, 느낌으로써, 들음으로써 앎은 드러난다.

보이는 것은 영원하지 않고, 오히려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하다.  


분별하지 아니하면 이미 전체로 존재하는 것이다.

전체로 존재하려고 시도하면 그것은 이미 부분으로(둘로 나뉘어) 존재하는 것이다.  

전체를 경험하는 방법은 경험한 것이 없어야 한다.

즉, 아무것도 잡지 않아야 한다.

어떤 것도 의식하지 아니하면(어떤 대상에도 마음을 주지 않으면) 전체를 경험하는 것이다.

正法眼藏(정법안장)이란 말이 있다.

정법은 눈 안에 있다는 말이다.

두 눈동자에 마음을 두면 멍을 때리는 것과 유사하다.

아무것도 잡지 않게 된다.

그때 空이 드러난다.

깨어서 전체를 경험하는 것과 잠들어서 아무것도 경험하지 않는 것은 같은 것이다.

이게 오매일여이다.  


내 몸은 체험의 주체가 아니라 체험의 대상이다.

내 몸도 책상 위의 컵도 동시에 드러나 있다.

내 몸은 전체의 일부로서만 경험된다.

진정한 나는 전체(空)이다.  


내가 깨닫는 일은 없다.

깨달으려고 하는 나는 없구나 하는 것을 깨달을 뿐....  


순리대로 자연스럽게 사는 일만 남은 것 같다.     

  • 25-09-29 원정
    경계에 즉해서 깨닫는다.
  • 25-09-29 원정
    동정일여, 몽중일여, 오매일여는 ....
    이미 그렇게 되어 있다.
    이것을 확인하는 것일뿐....

    잠을 잘 때도 화두가 성성한 것이 오매일여가 아니다.
    그것은 무엇인가를 잡고 있는 것이다.
  • 25-12-13 원정
    잠들었을 때나 깨어있을 때나 자각은 변함이 없다.
    이게 오매일여이다.
    자각은 변함이 없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원래 그러한 것이다.
    분별의 근원은 원래 한결같다는 의미이다.
    새로운 상태를 얻는 것이 아니다.
    오매일여는 되는 것이 아니라 본래 오매일여임을 깨치는 것이다.
    원호스님은 대해스님에게 허다한 망상이 멈추면 오매가 항상 일여임을 알 것이다 라고 말했음.
    수행해서 경계를 얻는 것은 눈이 먼 것이다. 진리를 못본 것이다.
  • 25-12-13 원정
    나는 아는 자이지 알려지는 것이 아니다.
  • 25-12-13 원정
    자아는 세계를 경험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다.
    원래 자아는 없었다.
    경험이 쌓여야
    오온이 쌓여야
    자아가 출현한다.
    자아가 출현해야 세계가 출현한다.

    깨달았다고 자아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자아를 나로 보지 않을 뿐.....
  • 25-12-13 원정
    지각되고 인식되는 것에 관심을 가지면 분리된 것이다.
    그래서 영원히 '오직 모를 뿐' 하는 것이다.
  • 25-12-13 원정
    모양없는 순수한 마음 즉, 하나를 깨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갖쳐있는 이원성의 구조를 무너뜨리는 것이 공부이다.

    색과 공은 마지못해 방편으로 세워둔 것이다.
    자꾸만 색에 의지하니까
    색을 떠나게 하기 위하여 공을 세운 것이다.
    공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이해 안되는 것도 분별이다.
    지혜나 '깨끗하다'나 '없다'도 분별이다.

    수행자들은 공이라는 상태에 집착을 한다.
  • 25-12-29 모모
    저도 몇년간 공부하며 알아진건..
    알려고 하는 제 마음이 문제를 만들었다는것.
    그냥 늘 이것뿐인데..
    지식으로 정리를 하려고 노력하면 할수록 멀어진다는것.
    .그리고 저는. 의외로 지식을 정리하는 습관이 있고..그럴때마다 늘 이것으로부터 멀어졌다는걸 느꼈어요.

    이미지 이전에 이미 이것인데..
    자꾸 흙덩이를 쫒아가는 강아지처럼..
    그렇게 말의 이미지를 쫒아가니..더 멀어질수 밖에요.
    바다와 파도가 분리된게 아닌데..
    말의 이미지를 쫒아가서
    스스로 분리시키고 있는 나를 봤네요.

    나무위에서 재잘거리며 날아다니는 새들을 보며 그것과 하나가 된 느낌 으로 즐기던것이
    아. 이거였구나. 언어.생각없이 그냥..보니까. 그대로 전체였구나
    명상을 통해 전체와. 하나된 느낌을 받는것이
    그래서였구나.
    그냥 생각없이 보면 다 그대로 하나로구나.
    흙덩이를 무시하고 그걸 던진 주인을 그즉시 물어버리는 사자가 바로 이것이구나..
    그런게 알아졌네요.

    2026년은 좀더 사자로 살아봐야겠다..생각했습니다.
    텅비어. 아무것도 없는데도..
    늘 여기에서 생각. 오감. 생명의 활동 들이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노자의 풍로 같이요.^^
    이것이 그대로 둘이 아닌 하나로 사는 것이다 싶네요.
    그런삶을 늘 꿈꾸었는데..ㅋ ㅋ
    파랑새 란 책 주인공 같은 느낌이네요.
    언제나 이러했는데..
    바다를 떠난적이 단 한번도 없었는데 말예요.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