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슈나무르티 아는 것으로부터의 자유/몽지4

24-03-06 원정 53

아래는 크리슈나무르티 아는 것으로부터의 자유 중 ‘있는 그대로 본다는 것’과 관련한 몽지님의 강의이다.  


관찰자가 관찰대상이다.(참고- 지금 내 상태는 의식이 의식을 스스로 의식하고 있다)  


무엇에 대하여 생각하는 것이 실수다.

세속적인 입장에서는 그걸 잘 하는 사람을 똑똑하다고 말하지만, 마음공부에서는 전혀 생각을 쓸 필요가 없다.

그것을 스스로 자각하고 느끼고 깨우쳐야 한다.

이건 생각을 통해서 아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즉해있다’고 말한다.

안되면, 처음에는 이치로라도 사무쳐야 한다.  


둘이 아니라는 것,

홀로 있다는 것,

나머지가 없다는 것

이건 모두 같은 말이다.(참고-천상천하유아독존, 여기서의 '아'는 에고로서의 나가 아니라 오히려 '전체'이다)

이걸 느낌으로 파악하는 것이다.

그러나 느낌으로 파악한다고 해서 느끼려고 하면 이미 틀린 것이다.

느끼는 것이 아니다. 그걸 느낀다고 하는 것이다.(참고- 나로서는 느껴진다. 수동형)

머리를 굴리면(생각을 하면) 벌써 틀렸다.

그걸 이거(공, 순수의식, 불성)라고 하는 것이다.  


그래서 생각이 남아있으면 어렵다.

생각이 많이 줄어들면,

생각이 아닌 순간이 진실로 다가오면,

둘이 아니고, 홀로 있고, 나머지가 없고,

그 때는 관찰자와 관찰대상이 벌어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인 상태를(참고- 관찰자가 관찰대상인 상태) 난생 처음으로 경험해 보는 것이다.

이제까지는 분열된 의식이었다가 한 번 온전한 의식상태를 경험하는 것이다.

그러면 납득이 된다.

확하고 그동안 막혔던 것들이 해소가 된다.

거기서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그게 안 되면 여전히 생각으로 더듬는 것이다.  


이건 의식으로 가득찬 상태이다.

이건 안도 밖도 없다. 한계가 없으니까.

이건 우리가 일반적으로(표면적으로) 경험하는 의식상태가 아니다.(참고-그래서 순수의식이라고도 말한다)

이건 오히려 알게 없어서 어려워 보인다.

의식은 깨어있는데, 의식의 내용물이 없다.     

  • 24-03-06 원정
    위 내용은 공에 계합되면 모두 이해가 되는 내용들이다.
  • 24-03-06 여원남주
    몽지님 왈,
    “천상천하유아독존, 여기서의 '아'는 에고로서의 나가 아니라 오히려 '전체'이다.”

    천상천하 유아독존 삼계개고 아당안지(天上天下唯我獨尊 三界皆苦 我當安之)에서 ‘我’의 정확한 뜻은 구체적으로 석가모니 부처님이다.
    태어나자마자 눈도 못 뜨고, 걷지 못하는 영아가 무슨 도리로, 동서남북 사방으로 일곱 발자국 걸어가서 오른손은 하늘을 왼손은 땅을 가리키며, "천상천하 유아독존 삼계개고 아당안지(天上天下唯我獨尊 三界皆苦 我當安之)" 라고 외칠 수 있겠는가. 이것은 후대에 과장된 표현이라고 한다.

    실제의 의미는,
    석가모니 부처님을 말한다.
    덧붙인다면,
    연기법을 깨달은 붓다와 연기법(법신)이 실상을 알려주는 가장 수승한 법이라는 것이다.
    우리들은 붓다가 깨달은 연기법을 따라가며 배운다.
    하지만 붓다는 아무런 도움 없이 최초로 홀로 연기법을 깨달으신 것이다.
    그 사실이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며 삼계개고 아당인지(하늘 위 하늘 아래 오직 붓다와 붓다가 깨달은 연기법 홀로 존귀하도다. 삼계가 괴로움에 빠져 있으니 붓다가 깨달은 연기법이 마땅히 이를 편안케 하리라)’라는 말이다.

    천상천하무여불(天上天下無如佛)
    시방세계역무비(十方世界亦無比)
    세간소유아진견(世間所有我盡見)
    일체무유여불자(一切無有如佛者)
    빛나올사 거룩하신 석가모니불
    시방세계 무엇으로 견주어보리
    이 세간 모든 것을 다 보았지만
    부처님만한 어른 다시없어라.
  • 24-03-06 여원남주
    의식을 강조하는 것은, 바깥에 보이는 것이 실제가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그런데 도리어 의식만 남겨버리면 이상하게 돌아가 버린다.
    이런 병폐는 연기법을 모르니까, 자꾸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버리는 것이라고 본다.

    바깥에 보이는 것이 실제가 아니라는 것에서 출발한 의식의 등장, 그 낙처는 연기법이다.
    "함께 일어나요!!!"
  • 24-03-07 원정
    여원님
    여원님이 알고 있는 불교는 전체불교의 10%도 안 된다고 저는 생각해요.
    의식이 각성이 되면 전혀 다른 차원의 마음공부를 하게 돼요.
    의식이 의식을 스스로 의식하는 상태가 되어야 해요.
    생각의 층이 얇아지도록 만들고 기다리면,
    인연이 될 때 그러한 상태로 접어드는 거에요.
    그럼 차원이 전혀 다른 마음공부를 하게 됩니다.
    여원님의 마음공부는 일정부분 덕이 있겠지만, 불교의 정수는 전혀 맛을 보지 못했어요.

    한가지 조언을 드린다면 이 마음공부는 정말로 자기 자신에게 솔직해야 해요.
    내 생각이 틀릴 수 있다고 마음을 열어 놓아야 해요.
    그리고 내가 모르는 것이 있으면 쉽게 비판하면 안돼요.
    여원님은 선불교의 본질을 전혀 몰라요.
    어떻게 공부가 되는지 그 매커니즘을 전혀 몰라요.
    공을 전혀 체험하지 못했어요. 그런데도 여원님은 공성을 말해요.
    모르는 것이 있으면, 적어도 알아보고 비판해야 해요.
    그래야 마음공부에 진전이 있어요.

    솔직히 여원님이 상생에서 보인 행동들은
    지하철에서 '예수천국 불신지옥'을 말하는 기독교 신자들이나
    꼴통보수들의 행동과 다름이 없었어요.
    내가 A라고 말하면 A'라고 마음대로 이해한 후 A'를 비판하곤 하였어요.
    그래서 제가 답글을 달지 않은 것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