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 불안한가?
불안감이 찾아오면 억지로 당당하고자 하는 마음을 구하지 말고 그저 불안 속에 존재하라.
그대, 짜증스러운가?
짜증이 밀려오면 억지로 이해해주고자 하는 마음을 구하지 말고 그저 짜증 속에 있으라.
그대 분노하는가?
분노가 일면 억지로 용서하고자 하는 마음을 구하지 말고 그냥 분노하라.
불안감, 짜증, 분노를 정죄하거나 그것들로부터 벗어나려고 노력하지 말고 그냥 그들을 받아들여라.
내 안에서 끊임없이 흐르는 감정들을 비교나 분별을 통하여 취하거나 버리지 말고 흐르는 물처럼 그대로 내버려 두어라.
식욕, 성욕, 수면욕, 재물욕 등 온갖 욕망들이 일어나는 것이 잘못된 것이 아니요,
그 욕망들을 추구하는 행동이 잘못된 것도 아니다.
온갖 망상이 죽 끓듯 하는 것이 잘못된 것도 아니요,
희노애락애요욕 등 온갖 감정들이 시시각각 변화하는 것이 잘못된 것도 아니다.
오히려 이러한 욕구나 감정들을 떨쳐버리거나 극복해야 할 번뇌라고 ‘판단’하거나 ‘규정’해 버리는 분별심(分別心)이 잘못된 것이다.
가만히 살펴보면 사랑과 미움이 모두 한 뿌리에서 나온 것들인데, 차이가 있다면 얼마나 있다고 그 둘을 칼로 두부 자르듯이 분별하는 것인가?
온갖 욕망과 감정들의 변화, 그 모두가 너무나 자연스런 생명현상이지 않은가?
그 욕망 하나하나가 그 감정 하나하나가 그대로 진리가 아니면 무엇이란 말인가?
그러하니 내면의 그 어떤 감정도 거부하거나 배척하지 말라.
또한 그러한 감정들을 왜곡하거나 미화(美化)하지도 말라.
다만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라.
우리는 완전해 보이는 삶을 위하여 ‘현재(現在)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통제하고 조절하려 하곤 한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완전한 나’를 따로 상정해 두고는 끊임없이 그것과 비교・분별하여 선택하면서 ‘지금 이 순간의 있는 그대로의 나’를 ‘불완전한 나’라고 판단한 후 스스로를 심판하곤 한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의 불완전한 나’가 바로 이미 ‘완전한 나’임을 알라. 우리가 상정해 둔 ‘완전한 나’는 우리의 생각과 관념 속에만 있고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지금 여기 있는 그대로의 자기 자신’이 아닌 ‘완전한 나’가 되려는 욕망과 모든 노력을 포기하라.
우리의 생각과 관념 속에만 있고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미래의 '완전함'이나 ‘깨달음’을 이루려는 그 마음을 내려놓아라.
그리하여 옳고 그름, 완전함 불완전함을 분별하지 말고 오직 매 순간순간의 '현재'에 살라.
바로 지금 이 순간에 존재하라.
[마태복음 5:3] "심령(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