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느끼는 공(참나, 순수의식, 불성.....)9

23-12-30 원정 132

제가 느끼는 공(참나, 순수의식, 불성.....)은 위치가 없습니다.

오히려 전체로 존재하는 느낌입니다.

대상으로는 절대로 볼 수 없습니다.

그래서 공(空)입니다.  


그러나 그 자리에서는 삼라만상 모든 존재(육체를 포함)를 대상으로 알아차립니다.

물건이 보이고, 소리가 들리고, 느낌을 알아차립니다.

생각도(이미지 포함), 감정도 알아차립니다.

그 자리에서는 안다는 것도 알아차리고, 모른다는 것도 알아차립니다.

밖이 밝았다가 어두워질 때, 밖이 어두워진다고 하여 어둠을 바라보는 공도 어두워지는 것은 아닙니다(밝을 때나 어두을 때나 늘 한결같다).

깨어 있는 것도 알아차리고 잠을 잤다는 것도 알아차립니다.

그래서 무(無)는 아닙니다.  


저는 공을 보는 것이 아니고, 공에 계합된 느낌입니다.

문제들을 공에 맡긴다고 말을 하곤 하지만 사실은 맡길 것도 없습니다.

모든 일은 (개체인 나 또는 나의 행동을 포함하여) 시절 인연 따라서 저절로 한통속으로 다 잘 돌아가고 있으므로, 손댈 것이 없습니다.

사실 우리가 문제 삼을 일이 없습니다.  

문제라고 인식하는 것은 생각일 뿐이고(현실에 대하여 필요한만큼 대응하면 됨), 맡긴다는 것도 생각입니다.

따라서 생각은 (필요할 때만 분별하고) 평소에는 그저 쉬면 됩니다.

그러나 때로는 문자나 언어 구조상 ‘문제들을 공에 맡긴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일반적인 사람들은 저절로(무의식적으로) 생각이 돌아갑니다.

그런데, 공에 머물면, 생각이 잘 보이고(알아차려지고), 그러면 생각에 집착하지 않게 됩니다.

그래서 저는 오직 공에 머물 뿐입니다.

처음에는 노력이 필요하지만, 일정한 분기점이 지나면 저절로 공에 머물러지게 됩니다.  


제가 한때 ‘주시자’라는 말을 사용하였는데, 그 주시자는 지나다가님을 통하여 대상(생각)임을 알게 되었고, 그 주시자를 알아차리는 존재(앎)가 ‘공’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요즘에는 ‘주시자’라는 말을 자제하고 있습니다.     

  • 23-12-30 원정
    우리는 보고 듣고 느낀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공(마음)이 보고 듣고 느낀다. 꿈을 봐라. 꿈속에서 우리는 보고 듣고 느끼고, 향기를 맡는다. 꿈속에서 눈이 보는 것이 아니요, 귀가 듣는 것이 아니요, 몸이 느끼는 것이 아니요, 코로 향기를 맡는 것이 아니다. 생시도 마찬가지다. 눈이 본다면 갓 사망한 자의 눈도 볼 수 있어야 한다. 그 무언가가(공) 눈을 통하여 보는 것이다. 그렇다고 그 무언가 하고 신체가 둘이 아니다.

    꿈의 신체는 재료가 꿈이었다면, 생시의 신체는 재료가 공(마음)이다. 진짜 나는(공) 대상이 아니다. 그래서 알 수 없다. 오직 모를 뿐이다. 공은 아무 속성이 없다. 실체로서는 없다. 그러나 존재는 한다.

    마음(공)은 대상들(사물들)로 나타나고 있다. 공이 삼라만상에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삼라만상에 공이 내재하고 있다. 그래서 삼라만상이 마음(공)이라는 말이 있다. 일체유심조가 이말이다. 그렇다고 일체와 마음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꿈속에서 꿈이 사물로(대상으로) 나타나지 않지만, 꿈속에서 나타나는 모든 것이 꿈이다. 마음(공)도 그렇다. 생시에서 나타나는 모든 것이 마음(공)이다. 마음(공)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전부가 마음입니다.
    기독교식으로 표현하여, 하나님이 천지창조를 하였다면, 그 창조주는 피조물 속에 있다고 보아야 한다. 창조주가 곧 피조물이요, 피조물이 곧 창조주인 것이다. 색즉시공, 공즉시색. 그래서 공을 대상으로 볼 수 없듯이 신(하나님)을 대상으로 볼 수 없다.
  • 24-01-04 원정
    분별이 나타난 곳(색)에서 분별없음(공)이 동시에 드러난다.
    분별 있는 마음과 분별없는 마음은 한 개의 마음이다.
    분별하는 가운데 분별이 없어야 중도이다.
    분별하는 것과 분별없는 것은 둘이 아니다(불이법).
    분별을 없애는 것, 분별을 물리치고 눈감고 가만히 앉아있는 것은 외도이다.
    분별 속에 분별없다(색즉시공).
  • 24-01-08 원정
    언어와 문자는 모두 생각 덩어리다.
    책(생각덩어리)을 통하여 습득한 지식을 짜깁기 한 것으로는 반야심경도 금강경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생각 속에서의 이해만 있을 뿐이다. 이 것은 생땍쥐뻬리의 어린왕자를 초등학생 정도의 수준에서 이해하였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반야심경은 계속하여 공(낙처)을 가리키고 있는데, 짜깁기한 지식으로는 반야심경을 읽는다 해도 생각속에만(손가락에만) 머무를 것이다.
    마음공부는 생각에서 벗어나는, 생각의 영향을 받지 않는 공부이다.
    그래서 생각의 고통에서 벗어나는 공부이다.
    이런 이유로 반드시 생각에서 벗어나는 체험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서 공을(생각에서 벗어난) 체험한 사람의 입장에서는 분별(생멸문)과 분별없음(진여문)이 한 마음의 다른 측면임은 쉽게 보여진다(느껴진다). 그런데 공을 체험하지 못한 사람이 이런 표현을 책에서도 보지 못하였다면 위와 같은 표현을 이해하기는 힘들다. 말장난처럼 느껴질 것이다.

    내가 위 말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위 표현이 잘못된 것이 아니다.
    이 때 진실해야 한다.
    (공을 생각으로 그려낸 것 말고) 내가 공을 진심으로 체험한 사실이 있는가?
    자문해야 한다.
    자기 자신을 속여서는 안된다.
    그것은 자기를 포함한 모든 사람들에게 죄를 짓는 일이다.
    마음공부는 진실해야 진도가 나가는 공부이다.
    그렇지 않으면 가다가 그 자리에서 멈춘다.
    오히려 그동안의 공부가 다른 사람들에게 해악을 끼칠 수도 있다.
    모르면서도 아는체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은 없다.
    그것은 자신의 인생과 주변 사람들의 인생을 망가뜨릴 뿐이다.
    그 에고로 인하여 자신과 주변사람들을 계속하여 고통으로 몰아넣을 뿐이다.
  • 24-01-11 원정
    '공'에 계합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공에 계합되면 '생각'이나 '감정'이 저절로 잘 알아차려진다.
    알아차리는 능동형이 아니라 알아차려지는 수동형임을 명심하세요.

    '생각'이나 '감정'이 알아차려지면 사실 그게 다에요.
    그러면 모든 것은 스스로 해결돼요.
    공에 계합되면 제 말을 스스로 알게 돼요.
    다만, 완전히 계합되기 전까지 공과 에고를 오고갈 것이고, 나중에는 공에 더 익숙해 질 것이다.
    이게 점수의 과정이지요. 사실은 이때부터가 진짜 공부에요.

    생각으로 공을 그리는 사람은 지식으로는 뭔가 얻은 것 같지만 실제로는 마음공부에는 큰 도움이 되지 않아요. 가면 갈수록 공허함을 느낄거에요.
    공에 계합되는 것이 중요해요.
    생각으로 공을 그리는 사람이 자신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떠오르는 '생각'이나 '감정'이 알아차려질까요? 쉽지 않겠지요.
    공에 계합되면 저절로 알아차려져요.
    그러면 인연따라 생멸하는 생각이나 감정에 더 이상 끌려가지 않게 돼요. 그래서 고통(생각과 감정의 무한반복, 생각과 감정의 윤회)에서 벗어나게 돼요.
    그냥 공의 자리에서 쉬면 그뿐이에요.
    아니, 저절로 쉬어지게 되지요. 이 또한 수동형이에요.
    설령 몸은 일을 하고 있어도 마음은 쉬어지게 되어 있어요.


  • 24-01-23 원정
    바닷물은 원래 고요합니다.
    바람이 불지만 않으면 파도가 치지 않습니다.
    바람이 멈추면 파도는 다시 원래대로 돌아갑니다.
    다른 한편, 다시 보니 파도도 그대로 바다입니다.
    그러면 파도가 치든지 말든지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갓난아기는 원래 공입니다.
    언어를 배운 이후로 생각이 꼬리를 물어 에고가 강화되고 있습니다.
    생각이 멈추면 공이 드러납니다.
    다른 한편, 다시 보니 생각도 공에서 나왔습니다. 생각도 공합니다.
    그러면 생각이라는 파도가 치든지 말든지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 24-01-23 모모
    말씀 잘들었습니다.^^
  • 24-02-01 원정
    공 = 현존 = 내버려둠 = 그저 있음
    현존은 호흡을 지켜보는 등 행위(doing)가 아니다.
    being이다
  • 24-02-01 현영

    "있음" 에 공감합니다.
    요즈음 원정님의 글을 자주 보게 됨에 감사합니다.
  • 24-02-06 원정
    의식이 의식을 스스로 의식하면 '공'입니다.
    그 자리가 분별이 없는 '무분별지'입니다.
    '주의'를 '주의'로 돌려보세요. 대상 말고요.
    이게 회광반조입니다.
    그러면 더 이상 생각에서 끌려다니지 않게 됩니다.
    결국에는 생각으로 인한 고통에서 해방됩니다.

    불가의 이론은
    몸 중심의 생각(분별의 생각)에서 벗어나도록 하는 방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