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을 체험하는 방법 총 정리(수정)8

23-12-15 원정 116

마음공부와 관련하여 지금 제 상태는 공(참나, 생명, 불성, 앎 ..., 이하 ‘공’이라고만 합니다)에 대하여 약간의 체험을 한 상태라고 생각합니다.  제 글을 참고만 하세요.  

저는 의심이 많은 사람입니다. 제 곁에는 오프라인으로 마음공부에서 저보다 앞서간 분들(스승들)이 네 분 정도 있고, 그동안 그분들이 제 공부를 점검해 주셨기 때문에 저는 저의 공부가 잘못된 길로 가지는 않는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저는 제가 알아차리고 있는 공이 다른 깨달은(?) 분들의 그것과 같은 자리인지 좀 더 많은 사례를 통하여 확인해 보고 싶었습니다. 마음공부라는 것이 주관적 착각에 빠지기 쉬운 분야라서요. 그래서 저는 제가 보기에 깨달아 보이는 분들의 법문 유튜브를 많은 시간을 들여서 보았습니다. 제 공부에도 많이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 많은 분들이 모두 제 스승들입니다.  

관악산의 정상에 올라보면, ① 서울대에서 올라오는 길, ② 과천에서 올라오는 길, ③ 사당에서 올라오는 길, ④ 안양에서 올라오는 길이 보입니다. 어느 쪽 루트로 관악산 정상을 등산하였던지 여부를 불문하고, 일단 관악산 정상에 올라가 보면, 정상에서는 굽이굽이 올라오는 루트들이 보입니다. 공에 대하여서도 일단 한 번 체험하게 되면(그와 같은 상태에서 다른 깨달은 분들의 법문을 듣다보면), 그와 같은 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 즉, 공을 체험할 수 있는 다양한 루트들이(방편들이) 보입니다. 그리고 마음공부는 우선 바늘구멍만큼이라도 공을 체험하고, 계속하여 그 자리에 머무는 것이 중요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제가 공을 체험한 방법은 화두(바라보기와 궁금함)였습니다. 저는 평소에 단전을 주시하는 명상을 하곤 하였는데, 어느 날 단전을 바라보는 주시자가 보였고, 지나다가님이 주시자를 화두 삼아 궁금해하라고 알려주셨습니다. 이와 관련하여서는 원정낙서 2022. 5. 17.자  ‘저의 마음공부 중간 점검(수정)’을 참조해 주세요. 그런데 지금 와서 돌이켜보니 위 방법은 공을 체험하기에 쉬운 방법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다양한 스승들의 법문을 들으면서 공을 체험할 수 있는 다른 방편을 찾아보려고 노력하였습니다.  

첫째로, 깨달은 분들(무심선원장, 법상스님, 몽지님 추천)의 법문을 듣는 것은 매우 중요한 것 같습니다. 법문을 들을 때는 머리가 없다고 생각하고 듣는 것이 좋습니다. 판단하지 말고(이해하려고 하지 말고) 그냥 듣는 것이 좋습니다. 깨달은 분들은 그 자리를(공을) 계속하여 직지 해 주십니다. 법문을 듣다 보면 자연스레 화두에 들리는 것 같습니다. 공에 대한 궁금증에 답답해지고 생각은 쉬어지는 것 같습니다. 그러다가 공을 체험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조사선의 원리 같습니다.  

둘째로, 제가 다양한 스승들의 법문을 듣다 보니 공을 체험할 수 있는 다양한 방편들이 보였습니다. 그 방편들을 소개해 보고자 합니다.  

① 우선 편안하게 의자에 앉습니다. 누워도 됩니다. 두 눈을 가볍게 뜨고 두 눈으로 두 눈알 부분을 알아차려 봅니다. 그러면 바라보는 대상이 없는(목표가 없는, 눈동자의 초점이 없는) 바라봄 상태가 됩니다. 눈 앞의 사물 전체가 통으로 보입니다. 눈 주변 자리에(눈 앞에) 텅빈 공간이 보입니다. 그 공간이 순수의식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 순수의식이 투명하게 자각이 됩니다. 그 상태는 멍을 때린 상태와도 비슷합니다. 그와 같은 상태가 되면 공을 체험하기 좋은 상태에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머리로(생각으로) 이해하면 안 되고 실제로 확인해(체험해) 보아야 합니다.  

② 방에서 어느 한 곳에 집중해서 바라보지 말고 방 전체를 동시에 바라보는 방법도 좋은 방법 같습니다. 그렇게 하면 방의 공간이 보입니다. 그 공간이 순수의식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 순수의식이 투명하게 자각이 됩니다. 그러면 역시 대상 없는 바라봄 상태가 됩니다. 즉, 공을 체험하기 좋은 상태에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①번과 ②번은 사실상 같은 방법입니다.

③ 눈앞에서 서울타워를 떠올려 봅니다. 어디에서 생각이 떠오르는지 알아차립니다. 생각이 떠오르는 자리가 공의 자리입니다.  

④ 공은 멍을 때린 상태와 비슷하므로, 멍을 때리면 공에 대한 감을 잡을 수 있습니다. 다만, 멍때림과 순수의식(공)은 약간 다르지만 멍때림은 공에 대한 감을 잡기에 좋습니다.   

위와 같은 방법으로 공을 체험하여 공에 대한 감각이 생기면 그 자리에 가능하면 많은 시간을 머물러야 합니다. 석가모니도 돌아가시기 전에 “자등명 법등명(自燈明法燈明) 자귀의 법귀의(自歸依法歸依)”라고 말씀하셨지요. 참고로 자등명의 '자'나 법등명의 '법'은 '참나', '공', 순수의식(앎)'을 말합니다. 석가모니 말씀대로 공부해야 공 또는 그 자리(?)에 힘이 생깁니다. 그러다 보면 스스로 느끼게 됩니다. 공에 어느 정도 힘이 생기면 저절로 공에 존재하게 됩니다. 원래 공은 의식의 자연스러운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그 자리에 일정하게 머무르면, 앎(순수의식)을 스스로 알아차리는 상황으로 접어들게 됩니다. 아마도 초보자들은 그 자리가 얼마나 보배스러운 자리인지 모를 것입니다.  이 글을 읽고 어떤 체험이 오신 분이 있으시면, 그리고 궁금한 점이 있으시면 댓글로 남기세요. 그러면 제 의견을 드리겠습니다

공은 생각과 무관한 자리입니다.

우리들은 어느 시점부터 생각(분별)의 노예로 살아왔습니다. 생각에서 쉬어본 적이 거의 없습니다. 그래서 보통 사람들은 생각에 휘둘려 살게 됩니다. 좋은 생각은 잡고 싫은 생각은 밀쳐내려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고통을 받게 됩니다. 그런데 공에 머물면 생각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공에 머물러도 생각들은 자연스럽게 떠오르고 사라지지만, 그 떠오른 생각들을 잡거나 밀쳐내려고 하지 않게 됩니다. 그것이 무심입니다. 공의 자리에 머물면서 필요하면 분별(생각)을 마음대로 사용하게 됩니다. 공(앎)에 존재하면, 생각의 집착(무의식적인 자동화, 윤회)에서 쉽게 풀려나올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집중해야 공에 간신히 머무를 수 있지만, 익숙해지면(훈습이 되면) 어떤 상황에서도 공에 머무르게 됩니다. 그 공의 자리는 의식의 자연스러운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생각으로(분별로) 공을 이해한 사람은 에고가 감당할 수 없는 큰 도전이 오면 그 이해가 거의 쓸모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마음공부는 자신을 속여서는 아니됩니다. 죽음 앞에 서면 스스로 알게 됩니다.  공을 체험하지 못하면, 연기법도, 중도도 관념으로 이해할 수 있을 뿐입니다.

더 좋은 방법을 알고 계신 분이 있으시면 댓글로 달아주세요.

  • 23-12-17 원정
    이것(공)은 자기를 대상으로 비추지 않고, 모든 대상을 비춤으로써 그 존재가 드러난다.
    즉, 이것은 경험이 안되는 방식으로 경험되고 있다.
  • 24-01-02 원정
    세상일이 내 에고 뜻대로 된다고 하기보다는 내 에고를 포함하여 시절 인연대로 돌아가는 것인데, 안 되는 것을 내 에고 뜻대로 조작하려고 하니 괴로운 것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선택은 (할 수 있는 일은 하면서) ‘인연 따라 되겠지’라면서 믿고 맡기는 것뿐이다.

    단순해지는 것이 선이다.
    구하지 마라. 분별에 떨어져서 구하면 불만족밖에 없다.
    자기를 관찰하려고 하지 말고 그냥 쉬어라.
    멈추고, 그리고 있는 그대로 느끼면 된다.
    조건적인 만족이 아니라 존재 그 자체로 만족이다.

    시편 46장 10절
    He says, "Be still, and know that I am God"고요하라. 그러면 내가 신이란 걸 알리라.
  • 24-01-02 원정
    사실 위 방법들은 모두 (에고, 생각을) 푹 쉬어지게 하는 방법들이다.
    그런데 에고가 쉬게 할 수는 없다.

    대상이 없는 체험....
  • 24-01-03 원정
    이것은 의지를 써서 잡으려고 하면 오히려 더 멀어지고 잡히지 않음.
    노력하는 힘이 덜어져야(어떤 것도 잡지 않아야) 본성이 저절로 드러난다.
  • 24-01-07 원정
    누구나 깨달아 있다.
    깨달음은 본래 완성되어 있다.
    이 자리가 자명해지는 것은 노력해서 자명해지는 것이 아니다.
    쉬어야 자명해진다.
    이건 스스로 밝은데, 망상이(우리가 생각하는 습관이) 그걸 가리고 있다.
  • 24-02-16 원정
    그냥 푸우욱 쉬면 된다.
    그러나 보통 사람들은 그렇게 쉴 수 없다.
    이미 생각의 노예가 되었기 때문이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생각은 끝없이 윤회한다.

    생각과 무관한 자리에 계합하는 방법을 말한다면....
    멍때린 상태에서 '서울타워', '에펠탑', '어머니 얼굴', '고향 대문' 등을 떠올려보는 것이다.
    그 이미지들이 어디에서 떠오르는지 살펴보는 것이다.
    눈 앞에서 떠오를 것이다.
    그 이미지들이나 생각이 떠오르는 자리가 '무분별지'이다.
    '공적 영지'이다.
  • 24-02-21 원정
    모든 사람들의 시야가 순수의식(또는 의식)이다.

    스승이 손가락을 세운다.
    이것(마음, 참나, 공, 순수의식)이라면서....
    낙처는 손가락이 아니라 ‘시야’이다.
    마징가Z의 눈에서 빔이 나가는 것을 생각해 보라.
    그 빔이 시야이다.
    랜턴에서 빛이 나가는 것을 생각해 보라
    그 시야로 존재해 보라.
    랜턴의 빛으로 존재해 보라.
    멍 때린 상태에서 시야로 존재해 보라.
    그 시야가 의식의 장이다.
    온통 허공이 시야이자 의식의 장이다.
    시야를 느껴야(시야로 존재해야) 달을 보는 것이다.
    못 느끼면 손가락만 보는 것이다.
    의식의 장에서 생각도 떠오른다.
    생각이 떠오르는 곳 그곳이 의식의 장이다.
    의식의 장으로 존재해 보라.
    의식의 장으로 존재할 때, 보는 나도 없고, 보이는 대상도 없다.

    몸이 나로 살다가 의식이 나네 하고 느끼는 것이 깨달음이다.
    보는 자기 의식을 느끼는 것이 깨달음이다.
    나의 의식이 현상을 보고 있다. 이거를 알아차리는 것이 견성이다.

    '내 의식에 대한 감을 잡았다'도 의식이 알아차리는 것이고,
    '내 의식에 대한 감을 잡지 못했다'도 의식이 알아차리는 것이다.
    알든 모르든 의식이(몸이 아니라) 살고 있다.
    우리는 깨달을 수 없다.
    이미 깨달아 있어서.
  • 24-02-24 원정
    무심하게...
    자기 몸이 안 느껴지고 자기 생각 감정도 안 느껴지는 상태가 가장 무심(공)한 상태이다.
    시야가 완전히 열려있는 상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