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를 죽인 원정-여원님께 사죄합니다.3

22-05-13 원정 75

여원님께 사죄의 말씀을 드립니다.

 

아래는 엊그제 댓글로 논쟁을 한 후 여원님이 카톡으로 제게 보낸 내용입니다. 저는 사실 그 카톡이 왔을 때 읽어보지도 않고 시간낭비하고 싶지 않다고 답변 글을 보냈어요. 그런데 오늘 비로소 읽어보고 깜짝 놀랐어요. 지금의 제 상태에서 말하면 여원님은 최소한 저 이상만큼은 본성을 이해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아래 여원님의 카톡 내용은 해오로서는 말할 수 없고, 공을 증득한 사람만이 말할 수 있는 내용이라고 저는 생각하거든요. 그리고 여원님이 저의 상태에 대해서도 정확하게 보고 있다고 생각해요.

 

여원님의 카톡 내용은 아래와 같습니다.

 

“원정님은 깨달은 자를 잠시 잊으세요.

그럼 다 된 거예요. 근데 합일되기를 거부하는 모르는 자라고 자부하는 그 자가 너무 쎄네요.“

“분별 안하면 본성이라는 개체를 분별 안하는 개체가 볼 수 있다? 봐서 뭐할 건데요? 허상이 허상을 봐서 뭐할 건데요? 아무 소득 없어요.”

“분별을 안 하는게 본성이 아니에요. 본성은 아무 것도 몰라요. 저 돌맹이처럼. 마음의 본성과 마음의 허상을 구별해야지요.”

“본성은 아무 것도 몰라요. 느낌도 없고 멍만 때려요. 완전 바보예요. 그래서 모양도 색깔도 뭣도 없다고 하는 거에요. 그건 곳 개체가 아니라는 말이기도 해요.”

“분별 안 하는게 본성이 아니라 분별이 뭔지 분별을 안 하는 것이 뭔지 모르는 바보가 본성이예요.”

“분별을 안 하면 본성이 되는 줄 알아요? 본성은 분별이 있고 없고에 의하여 출입문이 열지지 않아요. 내가 개체의식을 버리고 그와 손잡을 때 만나요. 그게 연기와 하나 되는 거예요. 그게 순수의식예요.”

“사람이 멍 때리는 것이 아니예요. 멍 때리는 것은 연기 즉 본성이에요.”

 

위 여원님의 카톡 내용은 저보다 더 간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내용이예요. 저는 그걸 알아차릴 정도는 되거든요. 그런데 왜 제가 여원님을 오해하였을까요?

 

대부분은 깨달음을 찾아 나서는데, 여원님은 깨달음이 스스로 찾아온 케이스였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이를 십우도를 통하여 설명하면 아래와 같은데, 십우도의 설명은 인터넷에서 참조하였습니다.

 

십우도 설명 내용

 

깨달음의 대의를 소를 통해 시각화한 것이 십우도이다. 심우도(尋牛圖) 또는 목우도(牧牛圖)라는 이름은 마음을 소에 비유한 뜻을 보다 구체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목우도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보편적인 것은 12세기 송대 곽암(廓庵)선사가 게송으로 정리한 십우도이다. 제1은 심우(尋牛)이다. 우거진 수풀을 헤치고 소의 자취를 찾는다. 제2는 견적(見跡)이다. 소를 찾을 실마리가 되는 발자국을 본 것이다. 제3은 견우(見牛)이다. 자취를 따라 찾아 들어가 드디어 소를 보게 되었다. 하지만 아직 소의 성질은 알지 못한다. 제4는 득우(得牛)이다. 정신을 집중하여 소를 잡았으나 날뛰는 소를 뜻대로 다루지는 못하고 산 속으로 구름 속으로 헤매며 채찍을 가한다. 제5는 목우(牧牛)이다. 이제 뜻대로 길들여져 채찍과 고삐가 아니더라도 스스로 사람을 잘 따르기에 이르렀다. 제6은 기우귀가(騎牛歸家)이다. 몸을 소등에 올려놓고 하늘을 쳐다보며 피리 불며 집으로 돌아온다. 제7은 망우존인(忘牛存人)이다. 소를 타고 집에 돌아오니 소는 사라지고 사람만 한가롭다. 달은 구름을 벗어나고 한줄기 서늘한 빛이 영겁의 밖을 비춘다. 제8은 인우구망(人牛俱忘)이다. 소도 소를 몰던 채찍도 소용없고 사람마저 텅 비었다. 백 가지 새가 꽃을 물어오니 한바탕 웃음이로다. 이제야 조사가 하나 되는 경지에 선다. 제9는 반본환원(返本還源)이다. 본래 청정하여 한 티끌의 미혹함도 없으니 어찌 닦음을 더하랴. 암자에 앉아 암자 이전이 무엇인가 보지 않아도 물 절로 잔잔하고 꽃 절로 붉다. 제10은 입전수수(入纏垂手)이다. 표주박 차고 거리에 들어 집집마다 다니며 더불어 사는 속에 성불하도록 한다.

 

제가 볼 때 지금의 저는 ‘득우’ 상태입니다. ① 심우 → ② 견적 → ③ 견우를 넘어 ④ ‘득우’ 상태에 이른 것입니다. 보통 사람들은 저와 같은 경로를 거쳐서 본성을 이해하게 되지요. 그리고 ④ ‘득우’에서 ⑧ 망우존인(忘牛存人) 이상을 가려면 보통 10년 이상은 걸린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여원님은 ① 내지 ③ 단계를 뛰어 넘어 갑자기 ④ 이상의 상태가 스스로 찾아온 것입니다.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여원님은 최소한 ⑥ 기우귀가(騎牛歸家) 이상에 도달하였을 가능성이 있어요. 에크하르트 톨레나 바이런 케이티처럼 스스로 ④의 상태가 찾아오니 여원님은 ① 내지 ③ 단계를 전혀 이해하지 못해요. 그래서 여원님이 하시는 말씀을 들어보면 깨달은 자들이 말하는 결론만을 도돌이표처럼 말하는 것처럼 느껴져요. 그래서 여원님의 말은 해오를 한 사람들이 흔히 하는 말처럼 느껴져요. 그리고 여원님은 ① 내지 ③ 단계를 거쳐 ④ ‘득우’ 상태를 깨닫게 하기 위하여 각종 방편으로 인도하는 스승들을 폄해하기도 했어요. 예를 들어서 제가 볼 때 무심선원 김태원 원장님은 ⑦ 최소한 망우존인(忘牛存人)은 간 분이신데, 그런 분들을 폄해해요. 이 점이 제가 여원님을 오해하게 된 이유 중 하나예요.

 

둘째로, 언어의 한계로 인한 오해예요. 제 상태에서 설명하면 ‘거기’에만 존재하면 되지 굳이 따로 공부가 필요하지 않아요. 유의적인 노력이 불필요해요. ‘거기’도 지금은 제가 존재하려고 하지 않아도 스스로 머물게 돼요. 이렇게 마음공부는 무위법인데, 반대로 여원님의 글에서 유의적인 수행을 해야 한다는 느낌이 드는 문구들이 있었어요. 예를 들어서 여원님은 "다만 끌려가지 않고 흐르게 하며 통하게 하는 것이다."라고 표현하신 적이 있었는데, 제가 "이런 것이 아니에요. 흐르게 할 것도 없고 통하게 할 것도 없어요. 저절로 흐르고 저절로 통하게 돼요."라고 반박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오해를 하게 된 것 같아요.

 

셋째로, 엊그제 논쟁 중에 여원님이 제 질문에 담백하게 직설적으로 답하지 않으시고 빙빙 주변을 맴도는 답변을 하신 적이 있었습니다. 에고가 그렇게 하거든요. 그래서 저는 여원님의 에고가 깨달았다고 착각하고 있구나 하고 생각하였어요.

 

제가 여원님을 인터넛(네띠앙)에서 만난 시기가 2000년 경 이었을 것입니다.

그 때는 여원님이 마음이 약해 보이셨는데, 매우 진실한 분으로 느껴졌어요.

그 이후로 문자로 전화로 간헐적으로 연락을 하였고, 한 번은 제 가족과 동생 가족이 김해를 갔을 때 실제로 뵙기도 했어요.

그 때 단 한 번 뵈었지만, 여원님은 22년 정도를 제게 진심으로 대했다고 생각해요. 여원님은 제게 이런 저런 정보도 주셨고, 책도 선물해 주셨어요.

저도 지금껏 여원님을 진정한 도반으로 생각하고 있었어요. 연락을 취하지 않아도 항상 여원님이 생각났고, 도움을 드리고 싶었어요.

제게 마지막으로 보낸 위 카톡 내용을 보면 여원님은 저를 깨우쳐 주시려고 온몸으로 최선을 다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어요. 눈물이 나도록 죄송하고 감사한 일이에요. 근데 정말로 웃기는 일은 저 또한 여원님을 깨닫게 해드리려고 온갖 노력을 다하였다는 사실입니다. 제가 공을 처음으로 느끼고 어떻게 하면 여원님께 도움을 드릴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한 적이 있었습니다. 얼마 전에는 여원님이 깨어난 분이라고 생각하였고(이 때 저는 너무나 기뻤습니다), 그러다가 여원님이 깨어난 것은 착각이고 단지 해오를 한 것이라고 다시 생각하였으며, 이제 다시 위 카톡 내용을 보니 여원님은 저보다 더 본성에 대한 이해가 깊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여원님은 저를 업그레이드 시키려고 최선을 다하였는데, 제가 여원님을 오해하였을 때 여원님은 얼마나 가슴이 아팠을까요.

 

다만, 여원님이 ① 내지 ③ 단계를 이해하지 못하시면 저와 같이 논쟁을 했듯이 다른 사람들과 그러한 논쟁이 잦아질 수 있습니다. 실제로 이미 깨어난 자들에게는 여원님이 특별히 도움을 주실 일도 적고, 아직 잠자고 있는 자들을 돕기 위해서는 ① 내지 ③ 단계를 반드시 이해하셔야 합니다.

 

여원님!!

진정으로 사죄하고 감사합니다.

여원님, 그리고 저는 좀 시간이 필요할 뿐입니다. 잘 가고 있습니다.

지금 이 시점에서는 몸을 포함하여 허공이 나로 인식되기 시작하였고 그렇게 전체로 사는 시간이 많다보면 개체로서의 나는 사라질 것도 같습니다.

  • 22-05-13 hanaloum
    모든일 잘 되었습니다.
    저는 언제든 여원님을 뵙고 말씀을 듣고 싶군요..
  • 22-05-16 원정
    ‘무심선원 마음공부 108법문=107. 십우도는 무엇인가?’라는 동영상이 있네요.
    주요내용은 아래와 같아요.

    ① 발심하고, ② 깨달음을 체험하고, ③ 깨달은 자리에 익숙해지고, ④ 다시 깨달음도 없어져서 공과 색이 둘이 아닌 불이중도에 딱 들어맞게 되고(분별 자체가 공이구나), ⑤ 확고부동하게 되면 세계 실상이 드러나 있다. 여기는 나도 없고, 남도 없고, 중생도 없고, 부처도 없고, 삶도 없고, 해탈도 없다. 세상에 온갖 일이 있지만 여기는 아무 일도 없다.

    견적과 관련하여 본래면목은 발자국을 남기지 않으므로, 소 발자국을 보았다는 것은 쓸데 없는 사족이다.
    보는 것이 얻는 것이므로(견성), 소를 보는 경우나 소를 얻은 득우는 다르지 않다.
    목우는 익숙해 지는 것이다.
    귀우귀가라지만 얻었으면 되었지 어디 돌아갈 집이 있는가?
    망우존인이라지만 깨달음이 있으면 깨달은 사람도 있고, 깨달음이 없으면 깨달은 사람도 없다. 김태원 원장은 오히려 ‘나는 먼저 없어지고, 공만 남아 있었다.’라고 말했다.
    인우구망 맞고, 반본환원 말이 된다.
    입전수수는 인연이 되면 이야기해줄 뿐 입전수수할 것이 없다.
  • 22-05-16 원정
    김태원 원장 견해에 대한 제 생각
    김태원 원장은 법문을 통해 깨닫는 과정을 생각하면서 설명하는데, 깨닫는 과정은 일정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화두나 법문을 통해 궁금해 했던 사람들은 꽉 막혔던 그게 풀리면서 공이 드러날 것이고, 바라보기를 통해 깨어난 사람은 그 것이 없이 심심하게 공이 드러날 것입니다. 저로서는 제게 주시자가 나타난 것은 주지시가 본래면목은 아니었지만 ‘견적’으로 볼만 하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김태원 원장은 이미 모든 단계를 다 거친 분으로 보입니다.
    에고가 해체되어 깨달음이 갑자기 스스로 온 사람들은(예를 들어 바리런 케이티) 곧바로 인우구망으로 갈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저는 목우(공에 익숙해 지는 과정) 즈음으로 보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