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대한 나의 의견10

21-06-08 원정 332
마음에 대한 나의 의견

1. 전체(현존, 깨달음, 부처, 참나, 신, .....)로 산다는 것

나는 어느 시점에서 개체가 완전한 전체로 사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어떤 개체가 완전한 전체로 살게 되면 그 개체는 구심점을 잃고 흩어질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그 구심점이 인간에게는 에고일수 있다. 성철스님은 생전에 돈오돈수를 말했지만 나는 성철스님으로부터 에고를 느꼈고, 나는 법정스님을 가장 좋아하지만 그 분의 글에서도 에고를 느꼈다. 깨달았다거나 견성을 했다는 모든 사람들로부터 에고를 느꼈다. 그러나 나는 물이나 바위 등 무생물에서는 에고를 느끼지 못했다. 나는 내가 죽으면 내 에고도 사라질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렇다면 수행이나 명상을 통하여 우리는 무엇을 얻는 것일까? 인간은 진화를 하면서 생각(전두엽)과 감정(정보를 취사선택하여 저장하는데 도움이 된다는 글을 읽은 것 같다)도 생존에 유리하도록 진화를 한 것 같다. 세상 모든 것에는 장점만 있는 것도 아니고 단점만 있는 것도 아니다. 생각과 감정은 한편으로는 인간의 생존에 도움을 주었겠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과거에 대한 집착과 미래에 대한 걱정으로 스트레스를 주는 요인이 되었다. 그런데 그 생각과 감정을 제3자적 관점에서 가만히 지켜봄으로써(명상) 그 생각과 감정에 휘둘리지 아니하고 순간순간 가장 적합한 판단을 할 수 있어 보인다. 명상은 지금 이 순간에 살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것 같다. 또한 생각과 감정으로 인한 에너지 소모는 매우 큰 것으로 보이는데, 명상하는 과정에서 생각과 감정이 끊어지면 내 몸 안에는 에너지가 충만해지는 것 같다. 명상을 할 때 알파파가 나오는데 잠을 잘 때도 알파파가 나온다. 동물들은 왜 잠을 자는지 알 것도 같다. 우리는 명상의 삶을 살면서(전체로 살려고 노력하면서) 더 이상 집착에서 나오는 생각이나 감정에 끌려다니지 않아도 된다. 다만, 생각이나 감정에는 죄가 없다.
전체로 산다는 것은 우리를 지혜롭게 살 수 있도록 하는(에고에서 벗어나는 삶을 살 수 있도록 하는) 방편으로 보인다.

2. 일체유심조

마음이 삼라만상의 모든 것을 창조하였다고 볼 수는 없다고 하여도, 적어도 어떤 마음(관점)으로 사물을 바라보느냐에 따라서 우주의 모든 것들의 모습은 다르게 보이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또한, 원하는 것에 마음을 집중하면 그 일은 이루어질 가능성이 높은 것도 사실인 것 같다. 얼마나 갈망하느냐의 문제인 것도 같다. 끌어당김의 법칙, 기복신앙도 이와 관련이 있어 보인다. 플라시보효과나 머피의 법칙이 뜻하는 의미도 생각하는 대로 결과가 나온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종교가 지금까지 살아있을 수 있었던 것도 기도를 하면 그 기도의 결과가 이루어졌던 것에 기인하는 것 같다. 인디언 기우제처럼 비가 올 때까지 기도를 하면 그 결과는 올 가능성이 높아진다.

나는 인간의 의지론(비결정론)을 좋아했는데, 살면서 결정론에 관심을 많이 가지게 되었다. 자라나면서 잠재의식(아뢰아식)에 자연스레 축적된 정보나 습관 등은 살면서 자연스레 풀려나오게 되어 있다. 내 잠재의식에 어떤 것들이 숨어있는지 자세히 살펴보지 아니하면 나는 내 잠재의식대로 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 경우에는 내 삶은 결정론에 가까운 삶을 살게 되리라 생각된다. 그러나 내 잠재의식에 무엇이 존재하는지 살펴볼 수 있다면(잠재의식에서 풀려나오는 내 생각이나 습관이나 감정을 순간순간 바라볼 수 있다면) 나는 그 잠재의식에 숨어있는 생각과 감정에 영향을 덜 받을 수 있어 보인다. 잠재의식에 있는 내 생각과 감정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즉 잠에서 깨어나는 것이다. 이 것이 부활이다. 그리고 진정으로 원하는 삶이나 습관을, 진정으로 원하는 생각이나 감정을 잠재의식에 자연스레 입력하는 것이다. 그러면 그렇게 살게 될 것이다.

나는 양자역학을 공부하면서 새로운 영감을 얻는다. 이 우주는 에너지 장인 것 같다. 모든 물질은 서로 영향을 주고 받는 것 같다. 그 중량에 따라서 주고 받는 힘의 크기는 다르겠지만... 내 마음도 에너지이다. 그러니 내 마음은 우주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3. 결론

명상을 하면 상황을 객관적으로 판단하고 지혜롭게 살 수 있어 보인다. 그리고 에너지가 충만된 삶을 살수도 있다.
또한, 원하는 바를 자연스럽게 마음에 새기면(잠재의식에 입력하면) 그 결과는 이루어질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2021. 6. 8.
  • 21-06-11 지나다가
    깨달음이란 것도 효과적으로 삶을 살기 위한 진화의 과정에서 형성된 것이 아닐까요? 

    의식하는 존재는 에고가 있기 때문에 정체성을 가질 수 있다는 생각도 드네요. 기억이 쌓여있는 한 그런 기억들과 정체성, 에고는 하나로 엉켜있지 않을까요?

    효과적인 삶을 살려고 주변을 살피기 위해 형성된 의식이 스스로를 보게되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의문하게 되고 그 의문을 해결하는 방향으로 진전되다보니 전체성을 설정하게 된 것은 아닐런지..

    결국 에고를 만족시키기 위한 과정이되네요ㅎ
  • 21-06-11 원정
    저는 지금으로서는 그렇게 추정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시간의 문제이지 대부분의 사람들이 명상적 삶을 사는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을까(진화화지 않을까) 저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명상의 삶이 좀 더 생존에 유리한 것은 분명해 보이니까요.
    출가한 것이 아닌 일상생활 속에서의 명상....
    종교단체에 속한 사람들이 서서히 명상의 본질에 대하여 이해할 날이 오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참고로 저는 깨달음을 추구하는 것이나 돈이나 명성을 추구하는 것이나 모두 에고의 작용으로 봅니다. 차원은 다르지만.....
  • 21-06-11 원정
    일체유심조와 관련하여 추가....
    우리는 보고 싶은 것만 보는 것 같다. 그렇게 진화된 것 같다. 내가 책을 읽고 있는데 책 이외의 주변 정보들이 계속하여 네게 들어온다면 그 것은 매우 비효율적일 것이다. 가시광선 이외의 것(자외선, 적외선)은 보이지도 않는다. 소리도 일정한 범위 내의 소리만 들을 수 있다. 따라서 우리가  우주의 실상을 본다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하다. 우리는 생존에 유리하도록 진화하였고, 우리 곁에 있는 사물의 모습도 필요한 만큼만 필요한 방식으로 보이는 것 같다. 그런 면에서는 우리의 마음이 우주를 창조하였다고 볼 수도 있는 면이 있다.
  • 21-06-11 지나다가
    에고냐, 에고를 벗어난 전체냐..

    이런 경우를 표현하는 논조가 있더군요.

    "에고이기도 하고, 에고가 아니기도 하다."

    경계에 있다는 얘기도 합니다. 내가 울타리 안에 있을 때는 울타리 밖을 볼 수 없지만 울타리 경계에 있게되면 안과 밖을 모두 볼 수 있다. 경계는 중(中)이다. 중도는 가운데라는 의미가 아니라 양쪽을 모두 포섭할 수 있는 경계에 있다는 뜻이다.

    어쨋든 어느 경계에 있던지 간에 에고가 사라지면 중이고 경계고 말할 건덕지도 없어지네요^^
  • 21-06-11 지나다가
    유심론 유물론 유심유물론으로 분류되는 것 같던데 저는 유심유물론 쪽이 마음이 쏠려요~

    유물론은 물질의 진화 과정 중에 정신이 나타났다고 하지만 정신의 씨앗이 배태돼있지 않다면 물질의 배합만으로 정신이 나올 수 없을 것 같고,

    유심론에서 모는 게 마음이 만들어 냈다지만 몸이 없이 마음만 스스로 존재할 수 없을 것 같으며,

    두 존재를 동시에 출발선 상에 놓아야 해결이 될 것 같거든요.

    베르그송이 정신과 물질을 출발부터 동일선상에 놓은 철학자로 알고 있습니다. 물질은 하강운동, 정신은 상승운동을 하는데 인간 정신을 최정점에 놓았죠.

    물질은 엔트로피의 법칙으로 시간이 지나며 무너지지만 정신은 점점 더 고양된다는 것인데 인간의 정신이 출현하기 위하여 모든 물질과 식물, 동물들의 의식이 밑에 바탕이 되어 최고의 정점에 인간 의식이 출현했다는 것이죠.

    암튼 저는 인간 정신이 최고의 의식이라는 것에 동의가 됩니다. 
  • 21-06-12 원정
    마음공부를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교수님 말씀에 동의할 것입니다.
    저 또한 기본적으로 같은 생각이구요.
    특히 마음의 작용면에서 보면 제 생각과 교수님 생각이 차이가 없을 것 같아요.

    한편, 유물론과 유심론으로 나누는 것이 맞는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유물론과 유심론에 대하여 그  단어를 사용하는 사람마다 폭과 깊이도 조금씩 다른 것도 같구요.
    또한 빅뱅을 인정한다면(저는 빅뱅이  한 번이 아니라 반복적으로 일어나고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인간의 마음의 씨앗도 그 최초의 한 점에 녹아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마음이 움직이는 방식  또는 속성과 물질이 움직이는 방식 또는 속성이 다르지 않은 것 같아요.
    모두 에너지의 이동이라고나 할까요.

    저도 인간이다 보니 인간 정신을 최고의 의식에 놓고 싶습니다.^^
  • 21-06-12 모모
    핑크돌고래 이영헌님의 
    '내인생의 날개를 펼쳐라"
    라는 책을 보면.. 에고에 대해 정말 잘 나와 있지요.^^

    땅위에서 하늘을 바라보면..구름층이 있고  해가 보입니다.
    바라보는 나를 현재의식.
    구름층을 심층의식. 
    구름위에  아무것도 없는 깨끗한 순수한 의식을  잠재의식.
    그리고 그위에 빛나는 태양을 우주의식이라 불러보죠.

    구름아래 땅위에선  아무리 해를 잘본다 해도  구름은 언제나 함께 한다고 볼수있어요.

  • 21-06-12 모모
    현재의식인 나가 구름층인 심층의식과 만나면..그걸 '에고'라  부르고.
    현재의식인 내가 구름위의 순수한 나인 잠재의식과 만나면  그걸 '참나' 라고 부르죠.
    참나는 태양과 바로 이어져 있기 때문에   구름의 영향이 아예없어요.

    그래서 우린 수행이라 하는 여러가지 방식들로  심층의 구름을 정화해서 녹여버리고.. 잠재의식에게로 가까이 가서 참나로 이어지게 하려는 노력을 합니다.
    우주의식과 이어지기 위해서죠.

    구름층 아래에서 내 수행이 진행중이라면 
    원정님이 말씀하시는 에고와 관련된  내용이 적용되는거죠.

    시간이 지나고 또 지나면서 점점 에고는 녹아들테고.. 구름층이 녹아드니..
    현재의식인 나는.. 점점 더 잠재의식과 더 많이 만나질 거고..
    그러면서 참나로 사는 날이 많아지고 많아지면  어느날..비상이 이뤄질테고..
    그러면..어느순간 하늘위..구름층 위에 존재하는... 나비가 되어 있겠지요.

    나비가 그렇다면서요.
    땅위에 벌레로 살때는 풀을 뜯어 먹고 땅을 기지만..
    나비가 되어 비상을 하게 되면..
    식성까지 바껴 꽃속의 꿀을 먹이로 삼게된다구요.
    완전 다른존재로 탈바꿈..
    그래서 깨달음에 나비를 주로 비교해 사용하죠.
  • 21-06-12 모모
    현재의식인 나는 순간순간 선택하는 나라고 하네요.
    가장 중요하대요.
    내가 심층에 붙으면  에고가 되고.
    내가 잠재의식에 붙으면 참나가 되고.
    그렇다네요.
    모든 선택의 결정권은 매순간마다 현재의식인 내가 갖고 있다고 합니다.
    아주 중요하죠.

    저도 땅위의 인간이라 하루하루 에고와 더불어..즐겁게.. 되도록이면 평화롭게 살아가는 방식으로.. 수행중이지만..ㅎ
  • 21-06-13 원정
    핑크돌고래님 설명 정리해 주어 감사해요.

    마음에 대하여 제가 이 시점에서 한 번 정리해 보고 싶었어요.
    제 생각이 지금 껏 변화해 왔는데, 앞으로는 또 어떻게 변할지 궁금하기도 해요.

    저는 일단 마음에 좀 더 관심을 가지는 삶을 살려고 해요.
    다른 사람의 말을 통해서가 아니라 제 스스로 느껴보고 싶어요.
    삶을 재미있게 살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