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가의 자손, 친일세력의 자손0

12-08-17 원정 854


독립운동가 및 그의 자손, 일본군이자 남로당 당원 및 그의 자손








한 사람이 있었다.


그는 1918. 8. 27. 평안북도 의주에서 목사 아버지의 4남 1녀 중 장남으로 출생하였다.


그는 신안소학교에서 약 3년 동안 교편을 잡았고, 이후 일본신학교에 입학하여 공부하다가 학병으로 중국에 끌려가 탈출한 후 독립군에 가담하게 되었으며, 이후 일제에 맞서 독립운동을 하였다.


그가 바로 독립운동가 장준하다.





또 한 사람이 있었다.


그는 1917. 11. 14. 경상북도 구미에서 농사꾼 아버지의 6남 2녀 중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그도 문경 공립 보통학교에서 약 3년간 교편을 잡았고, 이후 만주군관학교와 일본 육사를 거쳐 일본 군인이 되었으며, 항일유격대 등을 포함한 항일세력의 토벌작전에 참가하였다.


그가 바로 박정희다.





장준하는 1945. 11. 귀국하여 김구 주석의 비서실장, 비상국민회의 서기 및 민주위원 비서 등을 역임하면서 건국과업에 참여하였고, 이후 언론인 및 자유․민주․반독재 투쟁의 정치인으로 성장한다.





박정희는 1946. 6. 귀국하여 육군사관학교 2년 졸업반에 편입한 후, 3개월 장교 훈련 과정을 마치고 대위에 임관한다. 국군장교로 변신한 박정희는 남로당에 입당한 후 1948. 10. 여순반란사건에 연루되어 주모자 혐의로 군사재판에 회부되어 무기징역을 선고받았으나 감형되어 군에 복직한다. 그리고 1961년 5. 16. 쿠데타를 일으켜 8개월전에 국민적 합의로 출범한 민주당 정권을 전복하고 권력을 장악했다. 장준하는 이때 민주당 정권의 국토건설본부장직을 맡고 있었다.





5. 16. 구데타 이후 장준하는 <사상계>를 통해 군은 최단 시일 내에 그 본연의 임무로 복귀할 것을 촉구하고 나섰고, 그 이후에도 유신독재에 대한 반대투쟁을 하였으며, 그 과정에서 장준하는 1960년대부터 1975년까지 무려 37번의 체포와 9번의 투옥을 무릅쓰며 '정치적인 라이벌'인 박정희 전 대통령과 싸웠다. 그러 던 중 1975. 8. 17. 오후 1시20분 경기 포천군 이동면 도평3리 약사봉 등산도중 벼랑에서 의문의 추락으로 사망하는 사고가 일어났다. 그 때 박정희 정권은 장준하의 사망을 추락사로 규정했으나, 최근 장준하의 유골 이장 과정에서 타살 의혹을 뒷받침할 결정적 단서가 발견되었다.





박정희 정권의 탄압으로 장준하의 가족들은 취직도 할 수 없었고, 가족들이 뿔뿔히 흩어졌으며, 장준하의 장남 장호권(63)은 현재 월세 20만원 셋집에서 살고 있다.


박정희의 장녀 박근혜의 2012년 공식적인 재산은 현재 21억 8천만원이고, 박근혜는 박정희가 부일장학회를 강탈하여 설립된 정수장학회, 육영재단, 부산일보, 영남대, MBC의 사실상 보좌를 받고 있으며, 대한민국 제18대대통령에 도전하고 있다.


 


우리의 질곡된 역사....


이와 같은 역사가 계속된다면,


앞으로 우리의 미래에 위난이 발생하였을 때 누가 이 나라를 지키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