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전 대통령을 추모하며(그의 어록)2

09-08-19 원정 935


1. 일생을 살면서 두 가지 지표를 지키고자 노력했다. 하나는 `행동하는 양심'이고, 다른 하나는 `실사구시'다. 행동하는 양심이란 서생의 희생정신이라 할 수 있고, 실사구시는 상인의 현실감각을 의미한다.



2.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고, 자유가 들꽃처럼 만발하고, 통일에의 희망이 무지개 같이 떠오르는 나라를 만들 것이다.



3. 정치는 심산유곡에 핀 한 떨기의 순결한 백합화가 아니라 흙탕물 속에 피어나는 연꽃이다. 연꽃을 피게 하고 정치를 예술화하는 것은 국민의 예지와 책임감과 결단에 있다고 할 것이다.



4. 민주주의의 핵심은 `by the people(국민에 의해)'이다. 국민의 충분히 자유로운 참여 없이는 아무리 국민의 이익을 도모한다 하더라도 민주주의는 아니다.



5. 민주주의는 절대 공짜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며, 어느 역사를 보나 민주화를 위해서는 희생과 땀이 필요하다.



6. 자유는 지키는 자만의 재산이다. 그러므로 자유는 권리가 아니라 의무이다. 자유는 방종도 아니고 모든 원리에 대한 거부도 아니다. 자유는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가고 전인적 완성을 이룩하는 데 필요한 제약과 조건을 자발적으로 받아들이는 행위이다.



7. 국민이 잘 나야 한다. 국민이 현명해야 한다. 국민이 무서워야 한다. 그래야만 우리는 민족 정통성, 민주 정통성, 정의사회, 양심사회를 구현할 수 있다.



8. 국민이 항상 옳다고 말할 수 없다. 잘못 판단하기도 하고 흑색선전에 현혹되기도 한다. 엉뚱한 오해를 하기도 하고, 집단 심리에 이끌려 이상적이 않은 행동을 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국민 이외의 믿을 대상이 없다. 하늘이 바로 국민인 것이다.



9. 애국의 실체는 백성이다. 백성이 애국하고, 백성을 위해 애국해야 한다. 소수자가 애국을 농단하거나 소수자를 위한 애국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백성이 똑똑하고 강해져야 한다.



10. 정치의 중요한 요체는 국민이 같이 가야한다. 국민의 손을 잡고 반 발 앞으로 가야한다. 국민과 같이 나란히 서도 발전이 안되고, 손 놓고 한발 두발 나가도 국민과 유리돼서 안된다.



11. 진정한 정치가 할 일은 억압받는 자와 가난한 자의 권리와 생활을 보장하고 그들을 정치의 주체로 참여케 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억압하던 자와 빼앗던 자들도 죄로부터 해방시켜서 대열에 참여케 해야한다. 그 점에서 정치는 예술이 된다.



12. 대화가 단절된 사회는 마치 벨트가 끊긴 기계처럼 의사전달의 벨트가 끊겨져 버리고, 결국은 화해와 협력의 길이 막혀 버린다. 민주주의는 일방통행이 아니라 쌍방통행이다. 주고 받고 오고 가는 것이다.



13, 보수와 개혁은 전진을 위한 두 개의 수레바퀴와 같다. 내게 이 두개의 수레바퀴는 생이 있는 그 날까지 쉬지 않고 돌아갈 것이다.



14. 민족주의는 민주적이어야 한다. 그래야만 대외적으로는 독립과 공존을 양립시킬 수 있고, 대내적으로는 통합과 다양성을 병행시킬 수 있다. 민주주의 없는 민족주의는 쇼비니즘과 국민 억압의 도구가 되기 쉽다.



15. 나는 `경제성장을 위해서는 민주주의를 희생할 수 있다'는 `아시아의 도그마'를 일관되게 인정하지 않았다. 한국의 위기 뿐만 아니라 아시아 각국이 지금 겪고 있는 경제적 어려움은 나의 주장이 옳았음을 입증해 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16. 우리의 국익이 무엇인지 생각해야 한다. 외교에 있어 중요한 것은 국익 뿐이다. 이익이 맞으면 협력하고, 안 맞으면 따지고 대립하는 것이다. 친미니 반미니, 친일이니 반일이니 이야기할 필요가 없다.



17. 공산주의 국가에 대해 억압과 고립화, 이런 것으로써 성공한 일이 없다. 그러나 개방으로 유도하고 대화를 하고 이렇게 해서 성공 안 한 적이 없다. 햇볕정책은 계속 이어나가야 한다.



18. 안보는 철통같이 하되, 그러나 전쟁을 막기위한 안보, 결국은 남북이 화해 협력하기위한 안보, 이런 방향으로 나갈 때는 나는 우리 조상들이 도와서 하늘이 도와서 우리 민족의 미래가 열릴 것이라고 굳게 믿는다.



19. 이제 가면 언제 올까 기약없는 길이지만 반드시 돌아오리. 새벽처럼 돌아오리. 돌아와 종을 치리. 자유종을 치리라. (1982년 미국 망명길을 앞두고)



20. 지역감정을 조장하는 것은 망국의 길이고, 우리 민족에 대해 씻을 수 없는 죄악을 저지르는 것이다.



21. 21세기는 인류 역사상 최대의 혁명기다. 세계가 하나로 되는 시대이며, 무한경쟁의 시대다. 이러한 시대에 살아 남으려면 국민적 단결과 협력이 필요하다.



22. 가난이 두려운 것이 아니다. 가장 두려운 것은 가난한 자들이 자신의 가난을 억울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한 사회는 아무리 물질적 성장이 있더라고 건강한 사회라 할 수 없다.



23. 내가 기독교 신자를 포기한다면 몰라도 정치보복이란 있을 수 없다. 정치 보복은 김대중 대로서 끝내겠다. 보다 밝은 미래 사회를 창조하기 위해 어떠한 정치 보복이나 협량을 절대 배격하겠다.



24. 나는 사명감과 신념을 가지고 절망을 모르는 시지프스의 신같이 최후의 승리의 날까지 싸워나갈 것이다. 싸우다 쓰러진 무명의 투사는 될망정 이익을 위해 사술만 농하는 마키아벨리는 되지 않겠다.



25. 우리는 아무리 강해도 약합니다. 두렵다고, 겁이 난다고 주저앉아만 있으면 아무것도 변화시킬 수 없습니다. 두렵지 않기 때문에 나서는 것이 아닙니다. 두렵지만, 나서야 하기 때문에 나서는 것입니다. 그것이 참된 용기입니다.



26. 남이 알지 못한다 해도 하느님 앞에서 우린 모두 죄인이다. 난 누구도 원망하지 않는다. 난 모두를 용서했다. 나를 죽이려는 자들도, 나를 음해한 자들도...



27. 역사는 우리에게 진실만을 말하진 않는다. 그러나 역사는 시간 앞에 무릎을 꿇는다. 시간이 지나면 역사의 진실을 알게 될 것이다.



28. 인류 역사 이래 사람이 있는 곳에 인권이 있었다. 그러나 권력이 있는 곳에 반드시 인권의 침해가 있었다. 인권의 침해가 있는 곳에는 인권을 지키고자 하는 투사들이 있었다. 그들은 우리의 영웅이다.



29. 오늘의 영광은 지난 40년동안 민주주의와 인권, 그리고 남북간의 평화와 화해협력을 일관되게 지지해 준 국민들의 성원의 덕분이다. 이 영광을 우리 국민 모두에게 돌리고자 한다. (노벨평화상 소감문에서)



30. 해방 이후 가장 큰 문제로 등장한 것이 친일파 문제다. 통일문제나 민주주의 문제의 잘못된 출발의 근본에는 친일파가 있었다. 친일파에 대한 숙청의 실패가 모든 일을 망쳐 놓았다.



31. 우리는 매일 새로이 나고 매일 새로이 전진해야 한다. 우리의 정복의 상대는 자기이다. 안주하려는 자기, 도피하려는 자기, 교만해지려는 자기, 하나의 성취에 도취하려는 자기와 싸워서 이를 정복해야 한다. (`옥중서신' 중에서)



32. 인간은 어떤 의미에서 누구나 위선자이다. 우리가 선을 행한 것은 그것이 나의 습관이 되었거나 감정이 즐거워해서 행하는 경우는 적다. 이를 무릅쓰고 우리는 이성과 의지로써 선을 행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이기적인 동기에서가 아니라 반대로 이타적인 동기에서이기 때문에 이런 위선은 권장할 만한 것이다. (`옥중서신' 중에서)



33. 인생은 도전과 응전이다. 어떠한 어려운 도전에도 반드시 응전의 길이 있으며, 어떠한 불행의 배후에도 반드시 행운으로 돌릴 일면이 있다. 이 진리를 깨닫고 실천한 사람은 반드시 인생의 성공을 얻을 것이다. (`옥중서신' 중에서)



34. 이해하면 용서하게 되고, 용서하면 화해하게 되며, 화해하면 사랑과 자비의 마음을 갖게 됩니다. 사랑은 오래 참는다고 했습니다. 오래 참는 마음, 그것이 사랑과 화합으로 가는 출발점입니다. 용서하게 되면 인생의 전투에서는 지더라도 전쟁에서는 이깁니다. 용서하지 않으면 전투에서는 이기더라도 전쟁에서는 집니다. (`옥중서신' 중에서)



35. 대화의 요체는 수사학에 있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말을 잘 경청하는 심리학에 있습니다. 남의 말에 귀를 기울일 줄 모르는 사람은 대화의 실격자요, 인생의 실격자입니다. (1969년 7월 19일, `3선개헌반대' 시국강연회에서)



36. 최고의 대화는 경청이다. (`옥중서신' 중에서)



37. 논리의 검증을 거치지 않은 경험은 잡담이며, 경험의 검증을 거치지 않은 논리는 공론이다. 대화가 단절된 사회는 마치 벨트가 끊긴 기계처럼 의사전달의 벨트가 끊겨져 버리고, 결국은 화해와 협력의 길이 막혀 버립니다. 민주주의는 일방통행이 아니라 쌍방통행입니다. 주고 받고 오고 가는 것입니다. (`다시 새로운 시장을 위하여' 중에서)



38. 경쟁에는 형제적 경쟁과 적대적 경쟁이 있다. 전자는 경쟁자와 협력하며 남을 살리면서 또는 남을 살리기 위해서 경쟁한다. 후자는 고립해서 투쟁하며 남을 파멸시키면서 또는 남을 파멸시키기 위해서 경쟁한다. 전자는 자기와 남을 다 같이 성장시키고, 후자는 자기와 남을 다 같이 좌절시킨다. (`옥중서신' 중에서)



39. 용기는 바른 일을 위하여 결속적으로 노력하고 투쟁하는 힘이다. 용기는 모든 도덕중 최고의 덕이다. 용기만이 공포와 유혹과 나태를 물리칠 수 있다. (`옥중서신' 중에서)
  • 09-08-19 나나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김대중 대통령님은 한국의 넬슨 만델라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위 글에서, 대통령님은 '내가 기독교 신자를 포기한다면 몰라도 정치보복이란 있을 수 없다. 정치 보복은 김대중 대로서 끝내겠다. 보다 밝은 미래 사회를 창조하기 위해 어떠한 정치 보복이나 협량을 절대 배격하겠다.'라고 말씀하였습니다.

    그리고 김대중 대통령님이 실제로 대통령이 된 후 정적이었던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을 사면했습니다. 이로서 민주주의와 평화통일에 대한 반작용(반대파에 의한 반대정치)을 극복하려고 했습니다.

    깊은 존경을 느낍니다.
  • 09-08-21 원정
    2009년 1월 1일 새해를 축하하는 세배객이 많았다. 수백 명. 10시간 동안 세배 받았다. 몹시 피곤했다. 새해에는 무엇보다 건강관리에 주력해야겠다. ‘찬미예수 건강백세’를 빌겠다.

    2009년 1월 6일 오늘은 나의 85회 생일이다. 돌아보면 파란만장의 일생이었다. 그러나 민주주의를 위해 목숨을 바치고 투쟁한 일생이었고, 경제를 살리고 남북 화해의 길을 여는 혼신의 노력을 기울인 일생이었다. 내가 살아온 길에 미흡한 점은 있으나 후회는 없다.

    2009년 1월 7일 인생은 생각할수록 아름답고 역사는 앞으로 발전한다.

    2009년 1월 11일 오늘은 날씨가 몹시 춥다. 그러나 일기는 화창하다. 점심 먹고 아내와 같이 한강변을 드라이브했다. 요즘 아내와의 사이는 우리 결혼 이래 최상이다. 나는 아내를 사랑하고 존경한다. 아내 없이는 지금 내가 있기 어려웠지만 현재도 살기 힘들 것 같다. 둘이 건강하게 오래 살도록 매일 매일 하느님께 같이 기도한다.

    2009년 1월 14일 인생은 얼마만큼 오래 살았느냐가 문제가 아니다. 얼마만큼 의미 있고 가치 있게 살았느냐가 문제다. 그것은 얼마만큼 이웃을 위해서 그것도 고통 받고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위해 살았느냐가 문제다.

    2009년 1월 15일 긴 인생이었다. 나는 일생을 예수님의 눌린 자들을 위해 헌신하라는 교훈을 받들고 살아왔다. 납치, 사형 언도, 투옥, 감시, 도청 등 수없는 박해 속에서도 역사와 국민을 믿고 살아왔다. 앞으로도 생이 있는 한 길을 갈 것이다.

    2009년 1월 16일 역사상 모든 독재자들은 자기만은 잘 대비해서 전철을 밟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결국 전철을 밟거나 역사의 가혹한 심판을 받는다.

    2009년 1월 17일 그저께 외신기자 클럽의 연설과 질의응답은 신문, 방송에서도 잘 보도되고 네티즌들의 반응도 크다. 여러 네티즌들의‘다시 한 번 대통령 해달라’‘상식이 통하는 세상을 다시 보고 싶다, 답답하다, 슬프다’는 댓글을 볼 때 국민이 불쌍해서 눈물이 난다. 몸은 늙고 병들었지만 힘닿는 데까지 헌신, 노력하겠다.

    2009년 1월 20일 용산구의 건물 철거 과정에서 단속 경찰의 난폭진압으로 5인이 죽고 10여 인이 부상 입원했다. 참으로 야만적인 처사다. 이 추운 겨울에 쫓겨나는 빈민들의 처지가 너무 눈물겹다.

    2009년 1월 26일 오늘은 설날이다. 수백만의 시민들이 귀성길을 오고가고 있다. 날씨가 매우 추워 고생이 크고 사고도 자주 일어날 것 같다. 가난한 사람들, 임금을 못 받은 사람들, 주지 못한 사람들, 그들에게는 설날이 큰 고통이다.

    2009년 2월 4일 비서관회의 주재. 박지원 실장 보고에 의하면 나에 대해서 허위사실을 공표한 한나라당 의원에 대해서(100억 CD) 대검에서 조사한 결과 나는 아무런 관계 없다고 발표. 너무도 긴 세월동안‘용공’이니‘비자금 은닉’이니 한 것, 이번은 법적 심판 받을 것. 그 의원은 아내가 6조 원을 은행에 가지고 있다고도 발표, 이것도 법의 심판 받을 것.

    2009년 2월 7일 하루 종일 아내와 같이 집에서 지냈다. 둘이 있는 것이 기쁘다.

    2009년 2월 17일 명동성당에 안치된 김수환 추기경의 시신 앞에서 감사를 드리고 천국영생을 빌었다. 평소 얼굴 모습보다 더 맑은 얼굴 모습이었다. 역시 위대한 성직자의 사후 모습이구나 하는 감동을 받았다.

    2009년 2월 20일 방한 중인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으로부터 출국 중 전용기 안에서 전화가 왔다. 그는 전화로 1. 클린턴 대통령의 안부 2. 과거 자기 내 외와 같이 있을 때의 좋았던 기억 3. 나의 재임시의 외 환위기 수습과 북한 방문시 보여준 리더십 4. 다음 왔 을 때는 꼭 직접 만나고 싶다 5. 남편 클린턴 대통령도 나를 만나기를 바라고 있다고 했다. 힐러리 여사가 뜻밖에 전화한 것은 나의 햇볕정책에 대한 지지 표명으로 한국 정부와 북한 당국에 대한 메 시지의 의미가 담겨 있는 것 같다. 아무튼 클린턴 내외분의 배려와 우정에는 감사할 뿐 이다.

    2009년 3월 10일 미국의 북한 핵문제 특사인 보스워스 씨가 방한했다가 떠나기 직전 인천공항에서 전화를 했다. 개인적 친분도 있지만 한국 정부에 내가 추진하던 햇볕정책에의 관심의 메시지를 보낸 거라고 외신들은 전한다.

    2009년 3월 18일 투석치료. 혈액검사, X레이검사 결과 모두 양호. 신장을 안전하게 치료하는 발명이 나왔으면 좋겠다. 다리 힘이 약해져 조금 먼 거리도 걷기 힘들다. 인류의 역사는 맑스의 이론 같이 경제형태가 주도하 는 것이 아니라 지식인이 헤게모니를 쥔 역사 같다. 1. 봉건시대는 농민은 무식하고 소수의 왕과 귀족 그 리고 관료만이 지식을 가지고 국가 운영을 담당했다. 2. 자본주의 시대는 지식과 돈을 겸해서 가진 부르주 아지가 패권을 장악하고 절대 다수의 노동자 농민은 피지배층이었다. 3. 산업사회의 성장과 더불어 노동자도 교육을 받고 또한 교육을 받은 지식인이 노동자와 합류해서 정권 을 장악하게 되었다. 4. 21세기 들어 전 국민이 지식을 갖게 되자 직접적으 로 국정에 참가하기 시작하고 있다. 2008년의 촛불시위가 그 조짐을 말해주고 있다.

    2009년 4월 14일 북한이 예상대로 유엔 안보리의 의장성명에 반발해 6자회담 불참, 핵개발 재추진 등 발표. 예상했던 일이다. 6자회담 복구하되 그 사이에 미국과 1 대 1 결판으로 실질적인 합의를 보지 않겠는가 싶다.

    2009년 4월 18일 노무현 전 대통령 일가와 인척, 측근들이 줄지어 검찰 수사를 받고 있다. 노 대통령도 사법처리 될 모양. 큰 불행이다. 노 대통령 개인을 위해서도, 야당을 위해서도, 같은 진보진영 대통령이었던 나를 위해서도, 불행이다. 노 대통령이 잘 대응하기를 바란다.

    2009년 4월 24일 14년 만에 고향 방문. 선산에 가서 배례. 하의대리 덕봉서원 방문. 하의 초등학교 방문, 내가 3년간 배우던 곳이다. 어린이들의 활달하고 기쁨에 찬 태도에 감동했다. 여기저기 도는 동안 부슬비가 와서 매우 걱정했으나 무사히 마쳤다. 하의도민의 환영의 열기가 너무도 대단하였다. 행복한 고향방문이었다.

    2009년 4월 27일 투석치료. 4시간 누워 있기가 힘들다. 그러나 치료 덕으로 활동할 수 있는 것 크게 감사. 나는 많은 고생도 했지만 여러 가지 남다른 성공도 했다. 나이도 85세. 이 세상 바랄 것이 무엇 있는가. 끝까지 건강 유지하여 지금의 3대 위기 ─ 민주주의 위기, 중소서민 경제위기, 남북문제 위기 해결을 위해 필요한 조언과 노력을 하겠다. ‘찬미예수 백세건강’

    2009년 5월 1일 이제 아름다운 꽃의 계절이자 훈풍의 계절이 왔다. 꽃을 많이 봤으면 좋겠다. 마당의 진달래와 연대 뒷동산의 진달래가 이미 졌다. 지금 우리 마당에는 영산홍과 철쭉꽃이 보기 좋게 피어 있다.

    2009년 5월 2일 종일 집에서 독서, TV, 아내와의 대화로 소일. 조용하고 기분 좋은 5월의 초여름이다. 살아있다는 것이 행복이고 아내와 좋은 사이라는 것이 행복이고 건강도 괜찮은 편인 것이 행복이다. 생활에 특별한 고통이 없는 것이 옛날 청장년 때의 빈궁시대에 비하면 행복하다. 불행을 세자면 한이 없고, 행복을 세어도 한이 없다. 인생은 이러한 행복과 불행의 도전과 응전 관계다. 어느쪽을 택하느냐가 인생의 성공과 실패를 좌우할 것이다.

    2009년 5월 18일 미국의 클린턴 전 대통령이 내한한 길에 나를 초청하여 만찬을 같이 했다. 언제나 다정한 친구다. 대북정책 등에 대해서 논의하고 나의 메모를 주었다. 힐러리 국무장관에 보낼 문서도 포함했다. 우리의 대화는 진지하고 유쾌했다.

    2009년 5월 20일 걷기가 다시 힘들다. 집안에서조차 휠체어를 탈 때가 있다. 그러나 나는 행복하다. 좋은 아내가 건강하게 옆에 있다. 나를 도와주는 비서들이 성심성의 애쓰고 있다. 85세의 나이지만 세계가 잊지 않고 초청하고 찾아온다. 감사하고 보람 있는 생애다.

    2009년 5월 22일 버마 혁명민주지도자 등 수 명이 내방. 민주화에 대해서, 나는“버마는 외국의 지지는 충분히 얻고 있으니 이 를 활용해서 안에서 국민이 자력으로 쟁취하도록 노 력하시오”라고 격려했다.

    2009년 5월 23일 자고 나니 청천벽력 같은 소식 ─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자살했다는 보도. 슬프고 충격적이다. 그간 검찰이 너무도 가혹하게 수사를 했다. 노 대통령, 부인, 아들, 딸, 형, 조카사위 등 마치 소탕작전을 하듯 공격했다. 그리고 매일같이 수사기밀 발표가 금지된 법을 어기며 언론플레이를 했다. 그리고 노 대통령의 신병을 구속하느니 마느니 등 심리적 압박을 계속했다. 결국 노 대통령의 자살은 강요된 거나 마찬가지다.

    2009년 5월 24일 노 대통령 장례식을 정부와 측근들은 국민장을 주장 하는데 가족은 가족장을 주장해 결말을 못 보았다. 박지원 의원 시켜서‘노 대통령은 국민을 위해 살았고 국민은 그를 사랑해 대통령까지 시켰다. 그러니 국민 이 바라는 대로 국민장으로 하는 것이 좋겠다’고 전했 는데 측근들이 이 논리로 가족을 설득했다 한다.

    2009년 5월 25일 북의 2차 핵실험은 참으로 개탄스럽다. 절대 용납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오바마 대통령의 태도도 아쉽다. 북의 기대와 달리 대북정책 발표를 질질 끌었다.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에 주력하고 이란, 시리아, 러시아, 쿠바까지 관계개선 의사를 표시하면서 북한만 제외시켰다. 이러한 미숙함이 북한으로 하여금 미국의 관심을 끌게 하기 위해서 핵실험을 강행하게 한 것 같다.

    2009년 5월 29일 고 노 대통령 영결식에 아내와 같이 참석했다. 이번처럼 거국적인 애도는 일찍이 그 예가 없을 것이다. 국민의 현실에 대한 실망, 분노, 슬픔이 노 대통령의 그것과 겹친 것 같다. 앞으로도 정부가 강압일변도로 나갔다가는 큰 변을 면치 못할 것이다.

    2009년 5월 30일 손자 종대에게 나의 일생에 대해서 이야기해주고 이웃사랑이 믿음과 인생살이의 핵심인 것을 강조했다.

    2009년 6월 2일 71년 국회의원 선거시 박 정권의 살해음모로 트럭에 치어 다친 허벅지 관절이 매우 불편해져서 김성윤 박사에게 치료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