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는 자 바라보기

원형이정(10) 형 12

07-02-02 지나다가 1,405
 

원형이정(10) 형 1




 초등학교 들어가 첫 소풍 가던 날, 형이 날 불러 돈을 준다. 꽤 많은 돈이다.




 “너 이 돈 가져 가. 아버지는 용돈 많이 안주신다. 내가 돈 없이 소풍가 봐서 그 심정 잘 안다. 먹고 싶은 것 사먹고 그래. 알았지?”



 셋째 형, 나보다 다섯 살 위다. 아마 아르바이트로 신문을 배달했을 것이다. 아버지는 소풍갈 때 도시락 싸고 껌 사먹을 돈 있으면 된다며 정말 더도 덜도 아니고 정확히 껌 값만 주셨는데, 하나도 섭섭하지가 않았다. 내 주머니엔 이미 돈이 두둑했다.



 어느 날인가, 막내인 내가 엄마에게 칭얼거렸던지, 아니면 무얼 잘못했던지, 이 형이 날 데리고 뒷산으로 올라가더니 어금니를 꽉 깨물라고 한다. 몇 번인가 주먹이 날아왔다. 그리곤 시장 여기저기를 데리고 다니면서 이것저것을 사 먹인다.



 “형, 나 배불러.”

 “그래도 이거 더 먹어.” 



 아주 어릴 적에 가끔(서너 번이었던 것 같다)두들겨주던 형태로 보여주었던 형의 애정은 그 뒤로 내게 늘 충분한 용돈을 주면서 무던히도 오래도록 지속되었다. 내가 S음대 국악과를 들어간 후 1학년을 마칠 때 쯤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휴학하고 군대에 입대하겠다는 걸, ‘너 군대 갔다 오면 학교 못 다닌다.’며 졸업할 때까지 등록금을 대준 형이다. 가끔 불러서 묻는다.



 “너 시계 어딨어? 어디다 잡혔구나? 그 동안 빚진 게 전부 얼마냐?”



 형은 나의 용돈은 물론, 마지막 등록금을 대주던 그 해 겨울에 결혼했다. 나는 이것이 무얼 의미하는지 당시에는 철이 없어 몰랐다. 먼 훗날에야 형이 내가 졸업할 때까지 결혼을 미루었다는 걸 짐작할 수 있었다. 형은 몇 년을 사귀어오던 여자와 결혼했고, 단칸방에 신혼살림을 차렸다.



 대학을 졸업하고 군대를 제대한 후 M여고에서 음악교사로 근무하면서 3년여를 보냈을 때, 같이 근무한 여선생은 천만원을 저축했네 하는데 난 거꾸로 기백만원의 빚이 있었다. 술자리하면 늘 개근이어서 봉급날이 되면 내가 총무가 되어 같이 먹었던 선생들의 술값을 걷으려 다녔고, 그 날은 술값을 갚으러 가서 또 한잔을 하는 날이었다. 당시는 봉급이 현금으로 봉투에 담겨 지급되었고, 카드라는 게 없던 때라 현금으로 외상값을 갚았다.



 겸직을 하게 되어 오전에는 시립 악단에서 연주자로 근무했고 오후에는 2부였던 M여고에서 근무하여 봉급이 남들이 부러워할 정도였지만, 나는 결국 형수님이 제안한 빚 갚기 비상대책에 따라 한 푼이라도 아끼기 위해 하숙집을 나와 형의 집으로 들어갔다. 얼마 후, 내가 형의 집에 들어온 것이 빚 갚기 위한 것이었다는 것을 안 형은 나를 아파트 으슥한 곳으로 불렀다. 형의 손에는 몽둥이가 들려있었다. 형은 그 몽둥이를 엄포용으로만 사용했지 차마 다 큰 성인이 된 동생에게 휘두르지는 않았다. 



 후에 그 형의 장녀가 삼촌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내가 다녔던 중학교를 들어가고 싶다고 하여, 성심껏 대학에 들어갈 때까지 뒤를 봐주게 되었다. 내 아내가 보기에 지극정성으로 보였던지 자기 딸은 뒷전이고 조카딸만 챙긴다고 핀잔을 하였지만, 나로서는 대학등록금 한 번 대준 적 없는 것이 못내 마음에 걸린다.



 형은 공군을 제대했는데 군대에서 맞은 후유증으로 앞니 하나가 귀퉁이가 깨져나갔다. 그것을 볼 때마다 맞을 때 얼마나 아팠을까 마음이 시렸다. 그런 형을 닮기라도 바랬던 것일까. 나는 술이 떡이 되어 남의 자전거를 타고가다 교통사고를 내 형의 깨져나간 바로 그 부위가 비슷하게 깨져나갔는데, 서열을 지키려 그랬는지 내 앞니는 깨져나간 부위가 형보다 훨씬 작다. 



‘형, 건강하게 오래오래 살아!’



2006. 8.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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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07-02-02 원정
    참 멋진 형님이시군요.
    저는 장남인데 동생들에게 그렇게 멋진 형노릇을 하지 못하였습니다.
    오히려 늦은 나이까지 공부를 하여 많은 시간 동안 동생들의 신세까지 지는 못난 형으로 존재하였습니다.
  • 07-02-03 지나다가
    원정님 댓글을 보니 늦게까지 많은 시간 동안 형님들의 신세를 진 못난 동생이었단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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