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는 자 바라보기

원형이정(9) 센 놈1

07-01-30 지나다가 1,420




원형이정(9) 센 놈




세상의 돌아가는 모습이 어찌 보면 동물세계의 본능적 생리인 약육강식의 확대판인양 느껴질 때가 있다. 동물세계는 힘이 있어야 살아남고 힘이 없으면 곧 죽음과 연결될 수도 있다. 인간세상도 가만히 들여다보면 힘을 얻기 위해 안간힘이다.





한창 뛰놀 철부지 아이들을 학원가로 이리저리 뺑뺑이 돌린다거나, 부모로부터 타고난 신체를 별 이상도 없는데 여기저기 뜯어고친다거나, 남성성을 위해 근육을 단련하는 것이나, 여성성을 위해 몇 시간씩 거울 앞에 앉아 얼굴을 매만지는 것이나 모두 그 이면의 공통점은 힘을 키우는 것이다.





그리고 기왕에 키워진 힘은 자연스럽게 그 힘을 구사하는 데 쓰인다. 초등학교 아이들의 이지매가 그렇고, 중등학교 학생들의 패거리 조직이 그렇고, 성인이 되어서는 조직 폭력배가 그러하며, 국가적으론 강대국이 약소국을 두드리고 심지어 종교적으로도 전쟁이 끊임없다.





초등학교 2, 3학년쯤인 것 같다. 센 놈이 옆에 하나 있었다. 내 연필도 가져가 쓰고 지우개도 저 맘대로 꺼내 쓰고 하다가 나중엔 자기 것처럼 가져가면 돌려주지도 않는다. 좀 세 보여서 양보하다보니 센 놈이 자신이 생겼나 보다. 내 쪽은 사실 자신을 점점 잃어가고 있었고. 급기야 몰리다 못해 너무 억울해서 결투를 신청해 철봉대 밑에서 한 판 붙게 되었다. 힘에 부쳐 내가 졌노라고 항복했다. 그런데 이게 다음부터 꼴이 우습게 되어버렸다. 자기 가방을 들어다 달라는 것이다. 센 놈의 집은 산 중턱쯤이고 내 집은 더 올라가야 한다. 하교 후에 나는 내 가방도 무거워 힘겨운데 센 놈의 가방도 함께 들고 똘만이가 되어 뒤따라 다녀야하는 가엾은 신세가 되었다.





며칠을 가방을 들어주던 어느 날 센 놈이 집으로 들어간 뒤 몇 걸음 떼다보니 바닥에, 조금 과장하면, 내 얼굴만 한 돌덩이 하나가 덩그러니 눈에 보인다. 순간 그 돌덩이를 집어 들고는 아까 담 너머로 보아두었던 센 놈의 집 장독대를 향하여 휙 집어던졌다. ‘쩡그렁’하는 소리가 들렸다. 두근대는 가슴을 끌어안고 무거운 걸음을 몇 발짝 옮기자, ‘얘-’하고 목청 높게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센 놈의 어머니다. 돌덩이는 고추장독 뚜껑을 깨고 신기하게도 자로 잰 듯이 정확히 고추장 한가운데에 퍽 박혀있었다. 센 놈은 안보였다. 나는 자초지종을 설명했고, 센 놈의 어머니는 나를 그다지 혼내지 않고 타일러 보냈다.





고스톱 판에서 그저 생각 없이 내 던진 화투짝이 설사를 하고, 한 바퀴 돌고나서 다시 내가 집어와 상대들로부터 피 뺏어오고, 그것으로 상대방이 모두 피박이 되었는데 마침 그 판을 흔들었던지라 우연찮게 크게 나버린 경우처럼, 그저 생각 없이 벌인 행동이 남들이 보기에 기묘하달 정도로 히트를 친 경우가 내 인생에 몇 번 있었는데, 이것이 바로 그 효시가 아닌가 싶다.





이런 경우 대개는 일이 꼬여 엉망으로 되기 십상인데, 대충 장독대로 겨냥은 하였지만 잘 못 떨어져 사람이라도 맞았다면 어찌 되었을지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또 하나, 마침 센 놈의 어머니가 현장에 계셨기에 망정이지 아무도 몰랐다면, 아마도 난 그 센 놈의 그늘에서 부지하세월을 보냈어야 하리라.








추신: 이상하게 센 놈에 대한 기억은 이것 뿐 더 이상 아무것도 없다. 센 놈이 그립다. 이거 보고 혹 그 센 놈이면 연락 줘. 보구 시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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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07-01-30 원정
    하하하~~

    이 세상의 모든 이치는 힘의 논리로 흘러가는 것이 맞는 것도 같습니다.
    정치든 문화든 종교든 스포츠든 ....
    그게 좋다 나쁘다 할 성질은 아니지만...
    힘은 참으로 다양한 모습을 취합니다.

    자연과 마찬가지로 인간세상도 그냥 그러한 것 같습니다.

    저는 크게 보면 인간세상도 자연의 일부분이라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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