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는 자 바라보기

원형이정(5) 똥1

07-01-27 지나다가 1,501

원형이정(5) 똥




사람은 자신의 과거를 어느 정도까지 거슬러 회고할 수 있을까? 최면상태에서 과거를 거슬러 올라가면 갓난아이 시절을 거쳐 태어난 순간, 그리고 더 나아가 자신이 태어나기 전의 상황을 설명한다는 사례가 있기도 하다. 마이클 뉴턴의 『영혼들의 여행』은 사람들이 죽은 후 다시 태어나기 전에 어떤 상태로 존재하는지에 대한 사레들을 모은 책이다. 물론 최면상태에서 끌어 낸 것이라 하니 사실여부야 확인할 수 없지만. 




80년대 초, 오래 동안 베스트셀러였던 김정빈의 『단(丹)』에서, 주인공인 우학도인(본명:  권태훈)은 선도수련을 통해 얻은 방법으로 자신의 전생을 볼 수 있었고, 실제로 자신이 전생에 살았던 곳을 찾아가 자신이 본 전생이 사실이었다는 것을 확인한 바 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런 특수한 사례가 아닌 경우, 사람은 언제까지 과거를 더듬을 수 있을지 사람마다 개인차가 있겠지만, 내 경우 가장 오랜 과거의 기억은 ‘똥’과 연결되어 있다.



아래는 입은 것이 없었고, 위에만 무얼 하나 걸친 것 같았다. 방에 있었는데 갑자기 똥이 나오려는 것이었다. 바깥으로 나가서 어딘가 똥을 눌 곳을 찾아야 할 것 같았다. 그러나 방문을 나서기도 전에 급하게 똥이 비집고 나오는 것이었다. 조금 흘린 후 이거 아니다 싶어 자리를 옮겼는데 또 조금 나오는 것이었다. 또 이게 아니다 싶어 자리를 옮기고, 또 나오고. 이러길 반복하다 보니 방안 여기저기에 돌아가며 똥을 뿌리고 다니게 되었다.



어머니가 곧 방에 들어와서 이 광경을 보았으니 기막힐 일이 아닌가!



똥을 치우는 동시 뭐라고 중얼대시며 내 궁둥이도 반주삼아 한번씩 두드리시는데, 요컨대 똥도 못 가린다는 의미로 생각되었다. 그러나 내 입에서는 말이 되어 나오질 않았다. 어머니의 뜻을 알아듣긴 하겠는데, 일부러 그런 게 아니라고, 어쩔 수 없었다고, 표현이 되질 않는 것이었다. 그 때 아버지가 한 말씀 하시는 게 들렸다.

 

"어디가 아픈 모양이네.“



대충 이와 같은 의미였다. 나는 속으로 탄복을 하고 말았다.



‘아! 아버지는 내가 왜 그랬는지 아시는 구나!’



어머니와 아버지에 대한 최초의 기억이기도 하다. 그런 고로 아버진 내게 엄청 나를 잘 아시는 분으로 처음 인상지어졌지만, 어쩐 일인지 그 뒤론 계속 하향곡선을 그으셨다. 어쨌거나 똥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당시에 요즘처럼 뒷간이 방에 들어와 있을 수도 있다고 하면 믿을 사람 아무도 없었을 것이다. 그 무슨 해괴한 일이냐고. 집집마다 변소는 방 바깥에, 그것도 가장 먼 곳에 있었다. 우리 집은 대지가 25평 이었는데 직사각형이었다. 눕혀 논 직사각형의 맨 오른편 아래 구석이 변소였다. 바로 오르내리는 골목길과 접해 있었다.



처음에는 큰 항아리를 묻고 그 위에 판자를 얹어 발 디딜 곳을 만든 다음, 주위는 막대를 어설프게 세우고 사방을 가마니로 드리웠던 것 같다. 천장은 물론 없었다. 드나들 때는 가마니를 들치고 드나들었고. 세월이 흘러가매 그 가마니는 널빤지로, 그리고 탱자나무 울타리가 시멘트 울타리로 바뀔 때 변소의 외벽도 같이 구색을 갖추어 블록을 쌓아 시멘트로 바른 벽으로 변하게 되었다.



똥을 퍼다 버리는 것도 큰일이었다. 당시엔 똥지게를 지고 똥을 퍼가는 사람이 있었다. 똥지게는 물지게와 달리 등짝에 메질 않고 한쪽 어깨에 메어 똥통을 앞뒤로 들고 다니게 된다. 그러나 이것도 돈을 주어야하기에 우리 집 똥은, 집 앞에 넓은 공터가 있었는데, 주로 그곳의 한 귀퉁이를 파고 거기에 묻혔다. 그 공터는 우리들의 놀이터여서 가끔 정신없이 놀다가 흙으로 덮어 놓은 위치를 잘못 판단하여 한발이 빠지면 깽깽 발로 씻으러 집으로 들어왔다, 한 여름 장마가 질 때면 골목길에 나있는 도랑으로 똥이 슬그머니 버려지기도 했고.



홍제초등학교의 화장실도 건물 밖에 따로 지어져 소변보는 곳은 지금처럼 일대 일이 아니고 가로로 도랑처럼 파인 형태였다. 오줌 눈 자리가 노랗게 절어 있었다. 대변보는 곳은 바닥이 나무 바닥이었고, 쪼그리고 앉아 저 멀리 떨어지는 똥을 감상할 수 있었다. 휴지는 지금처럼 두루마리가 없었고 신문지나 공책 같은 것들을 오려서 다발로 묶어 걸어놓았고. 한참 후에 잘 사는 큰댁에 가서 지금의 수세식 좌변기에 처음으로 앉아 볼 기회가 있었는데 궁둥이가 쩌억 벌어지는 게 기분이 묘했다. 



당시는 여기저기 산이든 계곡이든 길거리든 똥이 많았다. 사람 똥은 물론이고 개똥까지 합세해서. 한 눈 팔며 걷다간 똥 밟기 십상 이었다. 그러고 보니 심심찮게 똥 밟고 살았던 시절이었다. 



2006. 7.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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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07-01-28 원정
    제가 가장 어렸을 때의 기억은 할아버지 장례식이었습니다.
    상여와 상여 앞부분에 고모부가 올라탔던 기억이 납니다.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아마도 3-4살 때 기억이 아닐까 싶습니다.
    할아버지 장례식이 신기하였던 것 같습니다.

    그 전에 할아버지가 살아계실 때 사랑방에서 다른 분들과 담배를 피우시던 모습도 생각이 날 듯 한데....
    너무 기억이 흐릿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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