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형이정(4) 선생님, 죄송합니다.
언제부터인가 겨울이 겨울답지 않게 싱겁게 끝나버리곤 한다. 그다지 춥지 않은 것이다. 이미 한반도의 바다 밑은 기후가 바뀌어 아열대의 특성을 나타낸다고 한다. 지구온난화 때문으로 점점 우리나라의 기후대가 사계절이 뚜렷한 온대의 성질을 잃어가고 있는 것이다.
초등학교를 다닐 때 겨울은 정말 추웠다. 그야말로 손이 꽁꽁 귀가 꽁꽁 얼어붙었다. 아침에 부엌에서 연탄불에 뜨겁게 덴 물을 세숫대야에 담고 이어 찬물을 한바가지 섞은 다음 춥디추운 바깥으로 나와 팔뚝만 걷고 비누칠해 얼굴을 문대면 훌륭한 세수였다. 세수한 물은 아까워 그냥 버리지 못하고 발까지 닦았다. 미처 팔꿈치까지는 손이 가질 않아 언제나 그 부위는 때가 덕지로 앉아 있었고. 세수를 마치고 하도 추워서 수건으로 얼굴을 찍어대며 얼른 방으로 들어가려고 문고리를 잡으면 문고리에 손이 쩍쩍 달라붙는다.
머리는 며칠에 한 번씩 감았는지 기억에 없지만 개인적으론 큰 행사였다. 추운데 시간이 많이 들고 물이 많이 필요한 고로 큰맘을 먹어야 했으니까. 물지게로 물을 길어다 부엌바닥에 묻은 두멍이라고 부른 커다란 항아리에 부어넣고 그 물을 퍼 썼으니 물이 참으로 귀한 때였다. 공동 수돗물이 산동네까지 올라온 것은 한 참 후였다. 개인 수돗물이 설치된 것은 그보다 더 뒤의 일이었고. 그러니 목욕은? 지금의 홍제초등학교에서 서쪽으로 50미터 쯤 우측에 있었던 대중탕을 이용했는데, 겨우내 한, 두 번이었다. 그것도 무슨 특별한 날, 가령 설날 전이라든가 그랬던 것 같다. 당연히 사람들이 북적북적했고. 그날은 그동안 덮였던 때를 벗겨내느라 서로 등 밀어주고, 팔꿈치 발꿈치 때는 특별히 공들여 벗겨야 했다. 시간도 엄청 걸렸을 것이다. 나올 때는 좀 더 있을까 늘 아쉬웠고.
요즘에는 겨울에 내의를 입지 않고 사는 경우가 흔하나 당시는 겨울내의가 필수였다. 머리에서는 서캐를 캐고 내의에서는 이를 잡았다. DDT라는 하얀 가루를 주로 옷에 뿌렸다. 이는 주로 양 엄지손톱으로 한 마리씩 짓이겨 잡았는데, 내의의 이음새에 특별히 많이 모여 있을 때는, 어머니가 그 부분을 다른 쪽 천으로 덮어 이빨로 물어가면서 잡는 걸 본 적이 있다. ‘딱 딱’ 소리가 나는 것도 한 재미였지! 은근히 그 소리가 ‘따따닥’하고 연쇄적으로 나길 기대했으니까. 그러고 보니 홍제초등학교에서 지금의 유진상가 4거리 쪽으로 난 큰 길(당시는 그 곳이 유일한 큰 길이었다)을 따라 하얀 구름을 내 뿜으며 달아나는 약 치는 차를 쫒아 뛰어다니던 아이들의 광경이 정겹게 떠오른다.
초등학교 1학년 때, 한글을 열심히 읽어댔다. 선생님이 먼저 읽어주시면 전체가 같이 따라서 읽었다. 여선생님이셨는데 이름이나 얼굴은 기억이 나지 않아도 매일 입고 오시는 옷이 달랐기 때문에 제일 인상에 남는다. 양장에, 한복에, 패션이 다양했던 게 참으로 신기했다.
1학년 거의 마무리 무렵. 나는 오른쪽 맨 뒷줄에 앉았는데 책상이 벽과 붙어있었다. 짝꿍이 누구였는지 기억이 희미하다. 어느 날 선생님이 수업 중에 뒤로 오시더니 내 책상위로 올라가시는 것이었다. 아마 벽 쪽에 무언가 하실 일이 있으셨으리라. 그날은 한복을 입으셨다. 흰색 한복 치마가 내 얼굴에 바로 닿아서 온통 시야를 가리는데,
‘일찍이 누가, 인간을 움직이는 원동력은 호기심이라고 명언을 한 사람은 없었던가?’
갑자기 그 치마 속을 들여다보고 싶어졌다. 생각과 동시에 행동이 그토록 빨리 따라간 것은 내 평생에 그 때가 유일하다. 나는 재빨리 선생님의 치마를 들치고 그 속으로 얼굴을 들이밀고 말았다. 별일은 없었다. 선생님은 모르셨던 것 같고, 내 짝은 입을 다물었다. 1초나 될까한 사이에 내 시야에 보인 것은 온통 흰 색 뿐이었고.
‘선생님, 죄송합니다.’
2006. 7.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