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형이정(2) 키다리
4남 3녀의 형제 중 막내인 나는 당연히 늦둥인데 유달리 키가 컸다. 지금 현재의 키는 181센티. 최근에야 나는 이 키를 허용하고 있다. 키를 허용한다니 이상하게 들릴 것이다. 발뒤꿈치를 바짝 붙이지 않고 목을 가능한 어깨 속으로 디밀으면 2센티까지는 줄어드는 모양이다. 한창 때의 내 키는 179센티를 넘어본 적이 없다. 키를 재고 난 후 180이 넘지 않은 것을 보면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키가 큰 것은 내가 오래 동안 가진 몇 가지 큰 콤플렉스 중의 하나였다. 초, 중등학교 시절 나는 언제나 끝번이었다. 홍제초등(국민)학교 5학년 쯤 인가? 시력이 떨어져 그토록 갈망했던 앞 쪽에 앉아 보는 소원을 이루었지만 중학교에 들어가 안경을 끼곤 다시 맨 뒷줄로 밀려나야 했다.
큰 키에 대해서 나는 유쾌한 기억이 별로 없다. 무심코 걷다가 이마를 부딪친 경우가 셀 수 없고, ‘키다리’ 내지는 ‘꺽다리', '꺽쇠', '전봇대’라는 신통치 않은 별명들을 들어야 했으며, 어디서나 표시가 나니 군대에서 연병장에 모여 태권도를 할 때에도 이런 소릴 들어야 했다.
“저~기 뒤에 키 큰 놈, 춤 추냐!”
유일하게 편했던 기억은 한 가지, 중학교에 들어가서 버스를 타고 등교할 때였다. 당시는 버스의 천장이 낮았다. 그리고 콩나물 버스였다. 여자 안내원(차장이라고 그랬다)이 승객이 올라오면 문을 미처 닫지를 못하고 가까스로 위험하게 매달려 있다가 운전기사가 차도 쪽으로 포물선을 그리며 급하게 운전하면 안 쪽으로 짐짝처럼 승객들이 쏠리며 약간의 공간이 생길 때 재빨리 문을 닫는다. 그 지경이었으니 콩나물시루 같은 버스 안에서 키가 작은 사람들은 숨쉬기도 힘들었을 것이다. 나는 여유 있게 고통스러워하는 승객들의 모습을 유유히 내려다 볼 수 있었다.
머리가 천장에 닿는 것이어서 그때도 기분은 좀 별루였지만.
그토록 날 괴롭히던 큰 키가 언제부터인가 오히려 반대의 조건으로 변해버린 걸 확실히 눈치 챈 것은 그리 오래지 않다. 몇 년 전 청주에서 김**의 타악독주회를 감상하는데 서서 장구를 치는 모습이 훤칠한 게 볼만했다. 김**의 키가 크다보니 찬조로 출연한 다른 사람들과 자연히 비교가 되는데,
아! 보기에 큰 키가 단단히 한 몫을 하고 있다는 것이 아닌가!
뒷풀이 모임의 축사에서, '평소에 큰 키가 콤플렉스여서 작은 키가 부러웠는데 지금 보니 큰 키도 괜찮다는 걸 느꼈다'고 했더니, 누군가가 ‘키 큰 거 자랑하시는 군요’라며 웃었지만 난 정말 진심이었다.
나는 큰 게 싫었는데 그 반대의 경우도 있다는 걸 알았다. 얼마 전 ‘작은 남자 콤플렉스’라는 걸 신문에서 읽었다. 읽고 보니 그럴만하다는 느낌이 든다. 큰 사람과 작은 사람은 서로 자신의 입장은 싫어하고 상대의 입장은 부러워하든지, 아님 최소한 괜찮다고 생각하는지 우리 부부는 서로 반대의 경우를 택해 내 아내는 무지 작다. 자기 키를 절대로 말하지 않는다. 내 느낌에 150센티를 넘지 않는다. 나는 태평이었지만 아이들 키에도 신경을 써서 170센티가 이미 넘은 아들에게 키가 자라는데 방해가 될지 모른다고 비쩍 마른 몸에도 헬스는 절대 시키지 않는다.
요즘에는 대체로 키들이 커서 큰 키가 보기에는 좋고, 작은 키는 작은 키대로 사람을 야무지게 만들어 나폴레옹이나 등소평같이 굳이 세계를 움직인 인물들을 거론치 않더라도 주변에 흔한 거물들 중에는 단신이 적지 않다. 어떻게 보면 크던 작던 그것이 문제가 된다면 그것은 자신의 관념이지 사실 자체가 원인인 건 아니다. 그렇다면 스스로 문제라고 관념을 만들어서 괴로움을 사서하고 있다는 말인데 이런 경우는 부지기수로 주변에 많이 보인다.
고통이 사람을 성숙하게 만드는 입에 쓴 약 이긴 하지만, 혹시나 남들은 아무렇지도 않은데 혼자만의 관념에 사로잡혀 스스로 지나치게 고통에 갇혀있는 경우는 없는지 살펴 볼 일이다.
2002. 6.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