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한국 사람들이 가진 독특한 특징에 관해서 조금 생각해 보았다.
한국사람을 자세히 살펴보면 한국인들만이 가진 독특한 특성들이 있다는 알 수 있다.
한국에서는 함께 식사를 하면 주로 연장자가 식사비를 내준다. 이런 풍습은 다른 나라에는 없는 한국만의 고유한 특징이다. 오직 한국 사람들에게서만 이런 것이 자연스럽다.
예전에 한국에 잠시 유학온 미국인 친구가 다시 미국에 돌아간다고 하기에 본인이 대형 할인매장에서 약 2만원어치의 물건을 그에게 선물로 사주었다. 하지만 그 친구는 정말 자신에게 이것을 사주는 것이냐고 나에게 계속 물으면서 감격해했다.
당시 그 친구의 행동이 이해되지 않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미국의 경우 부모에게서만 받았던 정을 외국인인 나에게 느꼈던 것 같다.
또한 EBS의 잉글리시 카페에 출연했던 미국인인 리사(Lisa Kelley)가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미국 남자와 한국 남자들의 특징을 비교한 것이 기억난다. 리사는 한국에서 출생하였으며 한국말을 잘하며 아름다운 외모를 가졌고, 이 때문에 평소 많은 남자들이 리사를 따라다녔다고 한다.
그런데 외향적인 미국 남자들은 내성적인 한국 남자들보다 더 쉽게 리사에게 데이트 신청을 하지만, 일단 리사가 싫다는 말을 하면 더 이상 리사를 귀찮게 따라다니지 않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한국남자들은 리사가 남자에게 직접 싫다고 이야기를 해도 리사를 끈질기게 따라다닌다고말했다. 개인적으로 이 끈질긴 것 속에서 한국적인 모습을 보았다.
이와 같이 한국인들의 끈질기게 집중하는 성향이 과학기술과 학문적 기반이 거의 없었던 60년대 이후 세계에서 가장 빠른 발전을 거듭하게 하는데 기여했을 것이다.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 이런 발전은 한강의 기적으로 보였다.
이런 모습들은 한국인들이 다른 나라의 사람들과 다른 어떤 것을 더 가지고 있음을 추측하게 한다. 그러면 이와 같이 뚜렸하게 구별되는 한국인들의 이런 행동들은 구체적으로 무엇 때문일까?
개인적으로 이것이 한국사회에 있는 깊은 정(情, 사랑)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한국인들은 자주 ‘그놈의 정 때문에’, ‘정이 뭐 길래’라고 말하곤 한다.
그렇다면 한국의 이런 정(사랑) 문화는 어디서 생긴 것일까?
이것이 다분히 유교와 관련이 있다고 생각한다.
유교가 가장 꽃 피웠던 곳은 동아시아의 중국, 일본, 조선 중에서 단연코 조선이다.
그리고 유교사상에서 가장 중심 덕목은 인(仁), 즉 사랑이다. 그래서 인(仁)은 사람을 사랑하는 것, 즉 사랑이 기초가 된 조화된 정감(情感)에 의한 덕이라고 말한다.
맹자(孟子)는 인(仁)을 본래 누구나 가지고 있는 '남의 불행을 좌시하지 못하는 동정심'으로 받아들였고 그것을 정치에 적용하여 왕도론(王道論)을 말하였다.
유교에서 말하는 오상(五常)의 덕은 인(仁)에 더하여 의(義)·예(禮)·지(智)·신(信)을 포함하지만, 인(仁)은 그 이외의 모든 것을 포함하는 최고의 덕으로 삼고 있다.
이런 면에서 보면, 다른 나라와 비교해볼 때 우리나라는 다른 사람과의 서로 공유하고 있는 '감정'의 교집합(공통분모)이 다른 나라의 경우 보다 더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이것은 감정적인 것에 대해서만 적용되고 논리적인 것은 제외된다.
하지만, 산업화 사회를 지난 지금에서 보면 때로 이것은 서로를 간섭하는 단점도 있다.
이와 관련하여, 개인적으로 사랑과 법(공의)’하면 생각나는 것은 성경이다. ‘십자가는 사랑과 공의(법)가 만나는 장소이다.’라는 말이 있다. 먼저 성경에 나타난 공의(법)와 사랑의 드라마를 보겠다.
성경 속의 사랑과 공의(법)는 (1) 하나님이 설정한 법인 선악과(법), (2) 아담이 법을 어긴 후에 하나님이 동물을 죽여서 지어주신 동물의 가죽 옷(사랑), (3) 그것을 바라보는 것만으로 살 수 있는 놋뱀(사랑) 등으로 구체화되고, (4) 이제 사랑을 이루기 위한 십자가의 죽음(법)과, (5) 그리고 사랑과 공의(법)를 함께 완성하기 위한 부활(사랑 +공의의 합일)로 마무리된다.
여기서 보듯이 사랑과 상호보완적 관계에 있는 것은 법(공의)이다. 성경에서는 둘 중에서 어느 것도 소홀히 하지 않고 최후에는 사랑과 공의를 다같이 만족시키기 위해서 죽음을 통한 부활로 마무리한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서로 배타적인 사랑과 법이 서로 상호보완적인 관계라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생각해 볼 것은 이전 글인 ‘세포와 세포막’이다. 즉, 세포막은 개체로서의 독립성 뿐만 아니라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외부와의 교류를 필요로 한다. 그러므로 세포막은 서로 배타적으로 보이는 개체로서의 독립성과 (생명유지를 위한) 상호의존성을 동시에 필요로 한다.
기본적으로 세포막은 상(호)보(완)적 관계인 ‘분리’와 ‘교류’라는 기능으로 이루져있다. 다시 말하자면, 세포막의 ‘분리’는 개체의 영역을 구분한다. 이와 달리 ‘교류’는 개체의 영역을 확장하여 주는 역할을 한다. 이 상보적인 관계인 분리와 교류가 개체인 세포를 규정한다.
세포막이 가진 분리와 교류라는 특징은 각각 사랑과 법의 성격과 상당히 유사한 측면이 있다. 즉, ‘분리’는 ‘법’과 비슷한 특성을 가지고 있고, ‘교류’는 ‘사랑’과 비슷한 특성을 가졌다. 비유적으로 사랑과 법을 건축물에 비교를 하면, 법은 기둥과 벽과 같은 전체 구조를 이루고 사랑은 외부와 통하는 문과 창문으로 비유할 수 있을 것 같다.
세포막 또는 건축물의 비유에서와 같이, 법은 기본적으로 범위를 한정하는 ‘분리’의 개념을 가진다. 이와 달리 사랑은 영역을 확장하는 기능으로서 서로간의 '관계'를 확장하는 특성이 있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법적인 사유가 강했던 유럽에서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라는 전체적인 틀(법)을 제공하였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 또한 동아시아의 한국, 중국, 일본에 없던 민법이 유럽에서 발달했던 것도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산업화 이후 정보화 사회를 지나는 현재 한국사회에서 정(情)을 중요시하는 문화는 과잉된 온정주의를 양산하는 단점도 가지고 있다. 이 때문에 한국사회에서 법이 다소 소홀히 여겨지고, 각종 인맥이 어느정도 법의 역할을 대신하기 때문에 여러가지 사회 문제들을 발생시키기도 한다.
이것이 한국사회에서 자주 나타나는 ‘우리가 남인가?’라는 말에 포함된 집단(동류, 패거리)의식, 즉 과잉 온정주의로 나타난다.
하지만 현재의 사회(또는 국가관계)는 점점 더 복잡해지고 다양화됨에 따라서 범위를 규정하는 법적인 부분이 이전보다 더 중요해지고 있다. 이 때문에 한국사회에서도 현재 이 법적인 부분을 강화하기 위한 일련의 과정들이 꾸준히 진행되고 있다.
개인적으로 한국에서 부족한 법적인 부분이 충족되면 다른 나라들에 비해서 더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랑적인 요소가 이 법적인 요소와 융합하여 다른 나라들보다 더욱 모범이 되는 (리더) 국가가 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긍정적으로 생각해본다.
이원복 교수님의 만화인 ‘먼나라 이웃나라’ 중에서 '우리나라 편'을 보면 중국은 일(一, 하나), 일본은 화(和, 화합), 그리고 우리나라는 충(忠, 충성)을 중요시하는 문화라고 분석하고 있다.
하지만, 중국의 경우 다른 민족들의 침입에 의해서 약 2,3백년 만에 나라가 자주 바뀌었기 때문에 국가에 충성하는 것보다는 자신의 이익을 먼저 생각하는 개인주의와 기회주의가 심하게 발달했다고 한다.
이와 달리, 한국은 개인적으로 합리주의가 아닌 아직도 정통주의가 지배하는 사회로 보인다.
보통사람들이 아는 것 이상으로 조선은 정통성(이단의 배척)을 과도하게 중요시한 사회였고 이단적인 사상들을 극도로 제약했던 사회였다. 특히 이런 성향은 1623년 인조반정 이후 근본주의적 색채를 띄게 된다 이것은 마치 중세 유럽에서 정통성의 과도한 숭상이 마녀사냥으로 나타났듯이, 조선사회에서 이런 정통성의 중시가 사화(士禍)라는 형태로 나타난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이런 특징은 조선시대 후기의 열녀(烈女) 제도에서도 볼 수도 있다.
조선시대의 열녀는 양반층에서는 가문의 영광이였고, 양민층에게는 요역을 면제받는 혜택이었으며, 천민층에게는 신분 상승의 기회였다. 이 때문에 조선 후기에는 수많은 여성들이 가문과 자식의 신분상승을 위해서 자살을 선택했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런 현상은 경국대전(1474)에 관료를 관직에 등용할 때 정절 여성의 자손 여부를 필수적 조건으로 고려한데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본인에게는 이런 열녀제도는 마치 중세 유럽의 마녀사냥과 유사하게 보이는 측면이 있다.
이런 정통성에 대한 숭배는 분단과 독재시대를 거치면서 그 영향력을 지금까지 유지하여 지금도 우리사회를 휘어잡고 있음을 자주 본다.
한국 사회의 이런 정(情)과 정통성의 중시는 또 다른 면으로 자신과 다름에 대한 배타성으로 나타난다. 이런 배타성은 한국보다 못사는 나라 사람들을 대하는 한국인들의 태도에서 잘 나타난다.
따라서 한국사회는 사랑(정)과 정통성이 과잉된 국가로 생각할 수도 있다.
이제, 일본의 우익(右翼)화의 근원을 살펴보자.
일본의 우익화는 더 정확히 말하면 ‘일본이 최고라고 생각하는 시각(일본식 중화주의)’이다.
이는 AD 663년에 그 근원을 두고 있다.
AD 663년 8월에 백제, 당나라, 그리고 신라 사이의 국제적인 전투인 백강(또는 백촌강, 백강구) 전투가 있었다. 이때 일본은 수군 170척, 그리고 2만 7천여 명의 대규모 병력을 백제에 파견하였다. 하지만 당시 백제군과 일본군은 이 전투에서 거의 전멸하였으며, 이때 백제도 멸망하였다.
당시 일본이 백제에 상상을 초월한 숫자의 군대를 보냈던 것은 백제와 일본 지배층들이 서로 혈연적인 관계로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으로 추측한다. 즉, 현재 한국과 일본의 학자들은 일본 천황도 백제혈통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
미즈노 유(水野祐 : 1918~2000) 교수는 오우진(應神) 천황과 그의 아들인 닌도쿠(仁德) 천황(오우진천황의 제4 왕자)이 백제국의 왕가로부터 일본으로 건너와 정복왕조를 이루었다고 주장했다. 또한 이노우에 미쓰사다(井上光貞 : 1917~1983) 교수는 백제 사신으로부터 칠지도를 전해 받은 오우진 천황은 백제왕족이며, 천황 가문 자체가 조선으로부터 건너온 이주자였다고 주장했다.
백강 전투 이전 일본은 국가라는 개념을 거의 가지고 있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백강 전투 이후에 일본에서는 독립된 국가라는 개념이 생겨났다. 이 때문에, AD 670년 일본(日本)이라는 국호를 처음 선포하였으며, 일본식 중화주의가 이때부터 시작되었다. 이후, 일본의 임금 명칭을 710년에 덴노(天皇, 천황)로 바꾸고, 일본국의 기초를 놓기 위해서 720년에 일본서기(니혼쇼키)를 완성하여 일본식 중화주의를 완성하였다. (6)
그 이후 일반 서민과 같은 궁핍한 생활을 하던 덴노(天皇)가 1868년 메이지유신(明治維新) 이후 다시 정권을 잡음으로서 잊혀졌던 일본식 중화주의가 다시 살아나게 된다. 이후 일본은 세계적인 제국주의 흐름에 동참하였고, 현재의 일본인들의 의식 속에 이 천황제적 절대주의가 가득차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백강전투 이후 일본사람들이 심정적으로 한반도를 깔보는 생각, 즉 신라에 대한 반감을 가지는 시발점이 되었다. 사실 이 반감은 일본에서 아스카 문화(592년 ~710년)를 꽃피웠던 일본 속 백제인들의 감정이며, 이 반감이 토박이 일본인들에게 전이된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안타까운 사실은 백강 전투 이후 일본인들의 이런 반한 감정은 이후 일본이 임진왜란을 일으키고, 1910년 한국을 식민지로 만드는 추진동력이 되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사실을 조금 다르게 보면 일본과 한국은 형제국이라고 바꾸어 생각할 수도 있는 측면이 있다.
또한 동아시아의 한국과 중국과 일본 중에서 법 의식이 가장 강한 국가는 칼 문화(이것은 유럽과 미국에서 일대일의 권총대결로 서로의 옳음을 판단하는 문화와 유사함)를 가진 일본이다. 물론 섬나라라서 작은 것에 대한 집착과 고집이 강하지만 이런 법 의식이 현재의 일본을 만드는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이런 면에서 현재 일본의 발전을 이해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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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단 한 가지 선악을 알게 하는 과일만은 먹지 말아라. 그것을 먹으면 네가 반드시 죽을 것이다.’(창세기 2:17)(2)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 아내를 위하여 가죽 옷을 지어 입히시니라.’(창세기 3:21)(3)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불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달라 물린자마다 그것을 보면 살리라. 모세가 놋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다니 뱀에게 물린 자마다 놋뱀을 쳐다본즉 살더라.’ (민수기 21:8~9)(4) ‘예수님은 신 포도주를 받으신 다음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시며 숨을 거두셨다.’ (요한복음 19:30)(5) 사랑과 법(공의)의 합일은 마치 감자와 비슷한 측면이 있다. 즉, 사랑이란 감자를 다시 땅에 심어 새로운 생명(싹)이 나도록 하는 것과 비슷하고, 법이란 감자를 둘로 자르는 것과 유사하다. 즉, 사랑과 법의 합일이란 마치 한 감자를 둘로 잘라서 모두 땅에 심어 두 곳에서 모두 새로운 생명이 나도록 하는 것과 유사한 측면이다.(6) 우리의 삼국사기는 1145년 (고려 인종 23년) 김부식 등에 의해서 완성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