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루살렘 이야기

페트로니우스에게 보내는 서한1

07-01-08 김춘봉 1,059
 

  삼가 카이우스 카이레나와 부관 코르넬리우스 사비누스 두 분의 명복을 빕니다. 아마도 자식을 잘못 가르친 애비의 참담한 심정으로 그리하였을 것입니다.


  서풍이 부는 계절인데다가 칼리굴라 황제의 죽음을 알릴 요량이면, 뱃사람들은 항구에 들릴 때마다 다음 기항지를 향해 서둘러 출발했을 것이고, 항해는 예정보다 빨랐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황제가 살해당한 그 시각에 아빌라우스 플라쿠스 이집트 총독은 예루살렘에 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귀하께서 시리아 내륙 깊숙한 티루스 공방에서 신상을 만들도록 지시를 내린 까닭에 그는 안토니아요새에서 기다리던 중 귀하의 편지를 보여주자 황망히 돌아갔습니다.


  그런데 며칠 전, 유대 광야에서 만신창이가 된 시신을 발견했는데 아빌라우스 플라쿠스 총독이 분명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최초로 시신을 발견한 사람의 보고에 의할 것 같으면, 호위 병사들이 없는 것으로 보아 뿔뿔이 흩어진 가운데 길을 잃고 헤매다가 실신 상태에서 들짐승의 공격을 받은 모양이라고 합니다.

  이 말을 전해 듣는 순간, 저는 총독의 죽음에 대해서 애통함과 동시에 불길한 예감이 들어 귀하께 도움을 청하는 뜻에서 이 서한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귀하께서도 아시는 바와 같이 아빌라우스 플라쿠스 이집트 총독은 알렉산드리아에서 유대인들의 미움을 살만한 짓을 했을 뿐만 아니라 유피테르 신상을 세울 목적으로 예루살렘에 왔다가 돌아가는 중에 변을 당했습니다. 그러니 유대인들이 매복해 있다가 공격했을 것이라고 상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총독이 예루살렘에 오게 된 동기가 알렉산드리아에서 그리스인들이 보복성 공격을 하면서 비롯되었고, 그 보다 앞서 얌니아(야브네)에서는 유대인들이 그리스인들에게 폭행을 가한 사건(AD39)이 있었기 때문에 총독은 단지 두 민족의 싸움에 휘말린 입장이라 하등 그를 죽여야 할 명분이 없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따라서 얌니아에서 무슨 일이 있었고, 또 무슨 일이 진행 중인지 그것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얌니아는 할아버지 헤롯(BC73?~BC4)이 가이샤라와 티베리아를 이방인 주거지역으로 조성할 당시 함께 세워진 신흥도시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학교가 들어서고 힐렐(BC40년경)이나 맛디아스 그리고 샤마이(BC50~AD30?) 문하에 사람들이 모여들면서 바리새인들 본거지로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그 후, 사두개인들의 거점이라고 할 수 있는 예루살렘과 쌍벽을 이루는 가운데 각종 크고 작은 회의가 열리곤 했습니다. 이처럼 바리새인들에게는 특별한 지역이라고도 할 수 있는 얌니아에 유피테르 신상이 세워지고 그리스인들이 제사를 지냈으니 그 광경을 보다 못한 유대인들이 난동을 부리는 바람에 피해가 발생했고, 알렉산드리아 거주 그리스인들이 보복성 공격을 하기에 이른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더구나 그리스어가 널리 통용되면서 히브리어 또는 아람어 책자를 번역하는 과정에서 그리스 문화의 상징이라고도 할 수 있는 신상을 가리켜 우상 운운했을 뿐만 아니라 사악한 존재로 묘사했으니 두 민족의 갈등은 해묵은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신상과 우상 문제뿐만 아니라 인격신 야훼를 믿기 때문에 유대교 내부에서도 호칭 문제로 한바탕 소동이 있었다고 합니다. 여기에 대해서 유례없이 19년 동안이나 대제사장 지위에 있었던 가야바(AD18~37)가 들려준 이야기를 소개하겠습니다. 

  그러니까 열강의 반열에 올랐던 그리스인들은 신을 단지 인간 탐구의 수단으로 삼고 있음에 비추어 볼 때 약소민족의 수난을 고스란히 감당할 수밖에 없었던 히브리인들은 주종관계에 익숙한 터라 야훼를 아도나이(Adhonay)로 부르면서 주인으로 섬겨왔다고 합니다.

  그런데 빌라도 총독(AD26~37)법정에 서게 된 어느 젊은이는 인격신이기 때문에 의당 아버지로 불러야 한다면서 부자의 관계로 격상 시키는 발언을 했다는 것입니다.

어찌 보면, 황당한 이야기 같으나 인식의 단계를 훌쩍 뛰어넘는 논리의 비약이기도 하려니와 인격신을 믿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고루한 생각에 젖어 있는 자들은 참람하다 하여 젊은이를 법정으로까지 몰고 갔습니다.

  이 때, 젊은이를 대제사장 법정에 세우려 했으나 가야바가 죄를 주지 않으려 하자 자칭왕이라 했다면서 빌라도 법정과 안티바 법정을 오가는 참으로 웃기는 촌극이 있었다고 합니다. 더구나 젊은이에게 죄를 주기에 급급한 나머지 고발 자들은 빌라도 총독이 무고한 사람에게 죄를 주면 반로마 성향이 강한 자들에게 빌미를 준다는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고 합니다.

  가야바는 자신의 임기 중에 있었던 일이라 세세한 부분까지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젊은이가 십자가형을 받고 죽은 다음, 자칭 제자 그룹을 반기면서 비호를 해 주기도 했는데 젊은이와 상관없이 허망한 소리나 해대는 바람에 그들 우두머리를 불러 경고를 한 적도 있다고 합니다. 아마도 저들의 언행 속에서 젊은이의 가르침이 녹아 있으리라는 기대를 했던 모양입니다.

  가야바의 증언이 아니더라도 저들의 황당한 이야기는 이미 도를 넘어 경각심을 불러일으킬 지경에 와 있습니다. 그동안 제가 수집한 정보에 따르면, 유피테르 신상 문제로 고심할 때 저들은 신상이 빨리 세워지기를 바라면서 복수하시는 야훼의 임박한 도래를 위해서는 감당할 수 없는 격변의 순간들이 와야 하는데, 지금이 바로 그 때라고 좋아들 하더라는 것이었습니다.

  저들 사이에 은밀히 읽혀지는 글 일부를 여기 옮겨보겠습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멸망케 하는 가증한 것이 서지 못할 곳에 선 것을 보거든 그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 지어다. 지붕위에 있는 자는 집안에 있는 물건을 가지러 내려가지 말며 밭에 있는 자는 겉옷을 가지려 돌이키지 말라 그 날에는 아이 밴 자들과 젖먹이는 자들에게 화가 있으리로다. 너희의 도망하는 일이 겨울이나 안식일 되지 않기를 기도하라, 이 때 큰 환란이 있겠음이니라 창세로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란이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

  참으로 황당하고 어이없는 내용이었습니다. 저들은 예루살렘 성전에 유피테르 신상이 세워지면 곧바로 세상 종말이 닥치는 것처럼 선전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는 야훼의 간섭으로  세상이 한 순간에 바뀌는 줄 알고 있었습니다.

  이제 예루살렘 성전에 유피테르 신상이 세워지지 않았으니, 저들의 거짓은 만천하에 밝혀져야 합니다. 저들이 얼마나 허망한 생각을 하고 있는지 세상 사람들이 알아야 합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저들은 쉬지 않고 또 다른 말로 민심을 흉흉케 하고 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얌니아의 바리새인들이 저들을 나사렛당이라 부르며 소탕 작전에 들어갔다고 합니다. 기도문을 낭송하면서 마지막 한 사람까지 잡아들이기로 작정을 한 모양입니다. 

‘나사렛당들과 그 부류들이 순식간에 망하게 하시고, 저들의 이름을 생명책에서부터 도말하시며, 의인들과 함께 기록이 되지 못하게 하소서’

  그러나 저들을 잡아들인다고 하루아침에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미 유대는 반로마 성향이 강한 자들이 도처에 숨어 있을 뿐만 아니라 메시아 타령을 하는 자들이 은근슬쩍 동조하는 바람에 유대가 언제 파국으로 내몰릴지 아무도 모르는 일입니다.

  이처럼 어렵고 복잡한 시기에 아빌라우스 플라쿠스 총독의 죽음이 알려진다면, 저들에게 힘을 실어주는 꼴이 될 것이고, 로마 병사들이 달려 올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몇몇 사람에게 함구령을 내려 소문이 더 이상 확산되지 않도록 단속을 하고 있습니다.

  요즈음처럼 저 자신의 무능을 한탄해 본 적이 없습니다. 이제 클라우디우스께서 황제의 지위에 오르셨으니, 총독을 다시 보내주시던지 제에게 왕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권세를 주시던지 결단을 내리셔야 할 것입니다.

아울러, 원로원에서 아빌아우스 플라쿠스 총독에 대한 진상 조사에 나서기 전에 실종사건으로 결론이 나도록 손을 써 주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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