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루살렘 이야기

칼리굴라 황제(2)2

06-12-30 김춘봉 1,081
 

  칼리굴라 황제를 회유할 요량으로 거금을 가지고 출발했던 산헤드린 대표단은 가이샤라 항에서 배를 기다리던 중 황제가 살해당했다는 소식을 전하는 뱃사람들을 만나면서 예루살렘으로 되돌아왔다. 


  황제의 죽음을 알린 뱃사람 중에는 페트로니우스가 아그립바에게 보내는 편지를 가지고 온 사람도 있었다. 그 편지를 받아들고 아그립바는 설레는 마음으로 읽어 내려갔다. 




  친애하는 아그립바! 당신과 헤어진 다음 친지의 시선마저 피하면서 로마로 잠입할 당시의 참담한 심정을 어찌 말로 다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저는 로마에 도착하자마자 근위대 대장 카이우스 카이레나를 찾아갔습니다. 호랑이 잡으려면 호랑이 굴에 들어가야 한다는 비장한 각오로 그리 하였습니다. 카이우스 카이레나는 칼리굴라 황제 옹립의 일등 공신이기도 하려니와 아우구스투스가 죽고(A.D 14) 티베리우스가 부당하게 황제의 지위에 오른 직후, 북방에 주둔하고 있던 게르마니아 군단에서는 젊은 참모들이 모반을 도모한 일이 있었습니다. 카이우스 카이레나는 그 중 한 사람이기도 하려니와 아마도 그의 나이 30대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이번에 다시 만나보니 50대 후반의 중후한 느낌마저 풍기는 사람으로 변해 있었습니다.

  그는 어굴한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가운데 칼리굴라 황제의 실정이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면서 통탄을 금치 못했습니다.

  카이우스 카이레나는 이대로 가다가는 어떤 불행한 사태가 발생할지 모른다면서 특단의 조처가 필요하다는 말도 했습니다.

  그는 게르마니쿠스를 사모하는 마음에서 칼리굴라에게 쏟은 애정이 어린 심성을 그르치게 하였다면서 회한의 눈물도 흘렸습니다. 

  때마침 신격 아우구스투스에게 바치는 축제가 팔라티노 언덕의 경기장에서 열리고 있었습니다. 축제 때는 으레 제물을 바치는 의식이 끝나면 며칠 동안 검투사 시합과 연극을 관람하기 마련인데 공짜를 좋아하는 무리들이야 발 디딜 틈 없이 경기장을 가득 메우고 함성을 지르는 것으로 만족하지만, 황제의 곁에서 그 광경을 지켜봐야하는 카이우스 카이레나는 개탄을 금치 못한다고 했습니다.

그럴 만도 한 것이 축제가 끝나면 검투사 노예상인들과 배우들에게 엄청난 돈을 지불해야 하는데 더 이상 사채를 빌려주겠다는 사람도 없어서 황실의 값비싼 물건을 경매에 붙여야 하는 최악의 사태도 발생할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볼거리가 끝나갈 무렵인 닷새째 되는 날이었습니다. 연극을 관람하고 경기장에서 황궁으로 통하는 좁은 지하도를 걸어가고 있을 때 황제의 뒤를 따르던 카이우스 카이레는 갑자기 칼을 빼들고 크게 소리를 질렸습니다.

“게르마니쿠스여! 용서하십시오.”

그리고는 되를 돌아다보는 황제의 목을 향해 내리쳤습니다. 그러자 기다리기나 했던 것처럼 부관 코르넬리우스 사비누스도 황제의 가슴에 칼을 꽂았습니다. 이어 땅에 쓰려진 황제를 향해 카이우스 카이레나의 두 번째 칼이 바람을 갈랐습니다. 그러자 황제의 몸에서는 피가 쏟아져 나왔고 칼리굴라(29세)는 이내 숨을 거두고 말았습니다. 

  이 광경을 지켜 본 황후 카이소니아가 비명을 지르자 카이우스 카이레나는 사정없이 칼을 휘둘러 그녀마저 죽였습니다. 그리고는 유모 품에 안겨 있던 한살 밖이 딸을 빼앗아 땅에 내던지며 다시금 절규했습니다.

“게르마니쿠스여! 용서하십시오.”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일이 한 순간에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더구나 좁은 공간에서 발생한 일이라 황제와 황후가 도망갈 틈이 없었거니와 다른 경호원들이 가까이 할 수 없었기 때문에 황제 살해의 대역죄로 법정에 서게 된 사람은 카이우스 카이레나와 코르넬리우스 사비누스 단 두 사람뿐이었습니다.

  친애하는 아그립바! 저는 그 시간 클라우디우스와 함께 있었습니다. 카이우스 카이레나가 피 묻은 복장으로 달려와 방금 전에 있었던 일을 설명하자 클라우디우스는 공포에 질려 어찌할 바를 몰라 했습니다.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었습니다. 우리는 사전에 모의하지도 않았거니와 저 또한 클라우디우스와 함께 있었으면서도 어떤 언질도 주지 않았으니 모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카이우스 카이레나는 그토록 경황없는 중에서도 할 것은 다 했습니다. 황제가 살해당한 사실이 알려지기 전에 클라우디우스가 대권을 물려받아야 한다면서 그와 저를 근위대 병영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그리고는 병사들로 하여금 ‘임페라토르’라는 환호를 받게 했습니다. 50세의 클라우디우스가 새 황제의 지위에 오르는 순간이었습니다.    

  친애하는 아그립바, 저는 카이우스 카이레나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만 더 하렵니다. 그는 클라우디우스로 하여금 자기를 황제 살해 죄인으로 원로원에 고발케 했습니다. 사건 수습을 통해 클라우디우스가 주도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기득권을 제공한 셈이랍니다. 그리고는 범정에 가서도 코르넬리우스 사비누스에게는 잘못이 없다고 주장하는 바람에 그는 무죄로 풀려났으나, 카이우스 카이레나가 교수형을 당한 직후 그 또한 자결함으로써 동지애를 보여주기까지 했습니다.

  참, 황후 카이소니아와 한 살 밖이 딸을 그토록 무참하게 죽일 필요까지 있었을까 의아해 하는 사람이 있는 모양인데, 황후의 사생활을 누구보다 더 많이 알고 있는 카이우스 카이레나이고 보면, 그럴만한 이유가 충분히 있었을 것입니다.

아마도 오수를 즐기던 황제를 살해하려다 미수에 그친 레피두스 사건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짐작을 할 수 있는 일이거니와 레피두스와 카이소니아 황후는 그렇고 그런 사이가 분명합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게르마니쿠스 가문의 충복이라고 할 수 있는 카이우스 카이레나가 아이까지 무참히 죽일 수 있었겠습니까? 아마도 레피두스와 황후의 불륜의 현장을 목격했거나 레피두스 소생이라고 확신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황제의 죽음이 세상에 알려지자 로마 시민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유피테르 신상을 파괴하기 시작했습니다.

로마뿐만 아니라 도시 곳곳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황제의 시신을 테베레강에 던져야 한다는 분노의 소리가 들리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스럽게 여겨야 할 정도로 험악한 분위기였습니다.

  그 즈음, 벤토테네 섬에서 유배생활을 하던 율리아 아그리피나는 어린 아들 네로(4세)와 함께 돌아왔습니다. 그녀는 당년 26세 여인답게 아주 건강했으며, 유쾌한 표정을 짓기까지 했습니다. 아마도 부친을 존경하는 군사들이 자신의 처지를 보고만 있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를 한 모양이었습니다.

  부언하건데, 이번 칼리굴라 황제 살해사건은 게르마니쿠스와 로마제국에 대한 카이우스 카이레나의 충정에서 비롯된 사건임을 다시금 말씀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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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06-12-31 원정
    요즘에는 단문으로 써주시니 읽기가 훨씬 쉬워 보입니다.^^
    언제나 밤에 글을 쓰시네요.
  • 06-12-31 김춘봉
    원정님을 자주 만나 뵙고 기탄없는 대화를 나눈 결과라 하겠습니다.
    글쓰기에 훨씬 수월해졌습니다.
    저는 야행성 취향의 사람인가 봅니다.
    낮에는 일터에 나가야하기 때문이기도 하려니와
    야심한 밤일수록 작은 불빛도 섬광처럼 느껴지는 법.
    직감에 의존하며 글을 쓰는 경우가 자주 있는지라
    앞으로도 계속 그리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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