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루살렘 이야기

칼리굴라 황제(1)2

06-12-25 김춘봉 1,018
 

 

  입에 발린 소리가 이처럼 화근이 될 줄이야 그 누가 알았겠는가! 이집트인 아피온이란 자가 유대인들은 황제에게 경의를 표하지 않는다고 고자질 하는 바람에, 황제는 ‘이름을 입에 올리는 것조차 금지되어 있는 그 누군가를 위하여 나를 신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냐?’ 트집을 잡기에 이르렀고, 이에 질세라 ‘야훼를 자기 적으로 삼은 것이나 마찬가지니 걱정할 것 없다. 야훼께서 알아 처리할 것이니 두고 보세.’ 하면서 맞받아치기까지 했으니 소일꺼리를 찾지 못해 안달하던 황제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기회를 제공한 셈이 되고 만 것이었다. 


  어느 원로원 의원으로부터 황제가 소일꺼리를 찾지 못해 안달한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을 때, 아그립바는 눈살을 찌푸리기까지 했었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 곰곰이 생각해 보면 터무니없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칼리굴라 황제는 평소에 자신이 살아가고 있는 시대상황에 대해서 푸념을 늘어놓으면서  아우구스투스(BC63~AD13)에 의하여 평화시대가 정착된 이후, 나의 시대는 세상의 번영 덕분에 망각의 위기를 맞겠구나! 탄식하더라는 것이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자신이 얼마나 위대한 존재인가를 알리고 싶어 하는 중에 게르마니아에서의 소요 사건은 황제가 나설 일이 아니건만 원정길에 올랐다가 현지에 도착하기도 전에 소요는 끝이 나고, 할 일없이 귀국 하면서 피톨리노 언덕의 유피테르 신상 앞에서 화려한 개선식을 가졌다고 한다. 아마도 부친 게르마니쿠스(BC15~AD19)가 명성을 쌓은 곳에서 자기도 전과를 올리고 싶은 욕심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그 후에도 군대의 궤멸, 기아, 전염병, 화재, 지진 등 온갖 재앙이 나타났으면 좋겠다는 말을 하는 가운데 자신에게는 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식의 발언을 한다는 것이었다. 이는 아마도 유피테르 신상을 바라보는 중에 자신을 신이라고 착각하면서 나타나는 일종의 정신분열 증세가 아닐 수 없었다.

  더구나 신격 아우구스투스 피를 이어받은 사람이 황제가 되어야 한다고 여기는 사람들 까지도 칼리굴라 황제가 신 행세를 하는 것은 권력의 서열상 일인자로써의 위상일 뿐 참으로 신이라 믿지 않았다.

  사리에 밝다고 정평이 나 있는 세네카(BC4?~AD65)도 자연 그 자체로서의 인간은 신과 일치한 자, 신 그것이라고 주장한 바 있으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스토아 철학의 맥락에서 인간이 인간다운 까닭은 올바른 이성 때문이라는 것, 덕을 목적으로 행동하기 때문에 신으로 대접받아 마땅하다는 뜻에서 그런 말을 한 것이라 했다.

  세네카는 우스갯소리로 ‘누구처럼 신 행세를 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고 했다가 황제로부터 미움을 사 하마터면 죽임을 당할 뻔 한 일도 있었다.

  아그립바는 그간의 이야기를 들려주다가 페트로니우스에게 이런 말도 하고야 말았다.  

“얼마 못가서 물러나게 될 것입니다.”

  알다가도 모를 것이 사람의 마음이다. 칼리굴라 황제가 퇴임하게 될 것이라는 불충한 말을 했으니 참으로 요상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유피테르 신상건립을 유보케 하고,  정작 돌아와서는 자살하라는 내용의 편지를 내밀게 된 처지라서 어떤 식으로든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로마에서의 일을 곰곰이 생각해 보면 터무니없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항간에서는 천수를 누렸다고 할 수밖에 없는 티베리우스(BC42~AD37) 황제의 죽음에 대해서도 구구한 설이 나돌고 있었다. 칼리굴라가 늙은 티베리우스 황제를 죽이려고 독이 든 음식을 먹였을 뿐만 아니라 황제가 고통을 호소하자 누군가를 시켜 베게로 눌러 질식사 시켰다느니 단검을 품고 다니면서 복수의 기회를 노렸다는 이야기 따위가 그것이다.

그러나 당시 아그립바는 감옥에 있었던 관계로 알 수 없는 일이였거니와 후계자로 게멜루스를 내정한 상태이고, 칼리굴라 모친 위프사니아 아그리피나(BC14~AD33)와 두 형을 반역죄로 죽게 한 티베리우스 황제이고 보면 칼리굴라를 곁에 둘 리 만무했다.

  어찌되었거나 칼리굴라 황제는 혈육으로 인한 원한을 가슴에 품고 있었다. 특히 원로원 의원에 대한 불만이 컸다. 그는 황제의 자리에 오르기 무섭게 노골적으로 불만을 드러냈다.

“무엇 하는 자들이야?”

이렇게 투덜대거나 세이아누스가 모친을 반역죄로 고발할 당시(AD30) 찬성한 의원들 명단을 찾아내기 위해 기록 문서를 뒤지기까지 했다. 그리고 칼리굴라를 암살하려다 미수에 그친 사건이 발생한 다음부터 황제와 원로원 의원들 관계는 최악으로 치닫고 있었다.

  칼리굴라 황제를 암살하려다 미수에 그친 사건은 레피두스가 죄를 뒤집어쓰고 처형되었을 뿐만 아니라 혈육이라고는 유일하게 남아있는 누이 율리아 아그리피나(AD15~59)를 살인교사죄로 벤토테네 섬에 유배 보낸 다음이라서 사건은 종결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니까 황제가 호모라는 소문이 파다한 가운데 레피두스와 동성연애를 하는 중에 남편을 여의고 돌아온 율리아 아그리피나가 황실에 들어와 살면서 레피두스와 사랑에 빠지자 그를 독차지할 욕심에 황제를 죽이려 했다는 쪽으로 가닥이 잡히고 말았던 것이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을 수도 있었다.   

  황후 카이소니아가 4번째 여자인데다가 한 살 박이 딸까지 두고 있었기 때문에 황제가 동성애자라고 하기에는 미흡한 점이 너무 많았다. 오히려 여러 여자들과 혼례를 치룬 전력으로 보아 이성의 재미에 푹 빠진 사내라 할 수 있었다. 그런데도 추잡한 치정 사건으로 가닥이 잡힌 것은 레피두스가 20을 갓 넘긴 사내이고 보기 드문 미남이라서 그 따위 소문이 난 것이었다.

  사건 당시의 정황을 보더라도 의심쩍은 데가 한 둘이 아니었다. 벤치에 누워 오수를 즐기는 황제를 죽이려고 레피두스가 접근하는 순간 이를 목격한 황후 카이소니아가 비명을 지르는 바람에 위기를 모면하게 된 것이라 했다.

  잠에서 깨어난 황제가 확인한 바로는 레피두스 손에 칼이나 흉기가 들려있지 않았다고 했다. 그렇다면 레피두스는 범인이 아닐 수도 있었다. 그런데도 그와 같은 결론이 난 것은 황후 카이소니아의 태도가 너무도 당당했기 때문이기도 하려니와 원로원 의원들이 한결같이 황후 편을 들어주었다. 

  여기에 대해서 또 다른 의혹을 부추기는 사람도 있었다. 레피두스를 사이에 두고 황후와 율리아 아그리피가 그렇고 그런 사이였다는 것이다. 변심한 애인과 연적을 동시에 제거할 목적으로 황후가 꾸민 짓이라는 것이었다. 이 또한 남의 이야기 좋아하는 사람들의 입방아에서 비롯된 말일 수 있었다.

  어찌되었거나 칼리굴라 황제는 자신의 경호를 책임지고 있는 사람들마저도 믿지 못하는 가운데 친위대장 칼을 빼앗아 들고, 너희들도 내가 죽기를 바란다면 차라리 목숨을 끊겠다며 진담인지 으름장인지 모를 소리를 해대는 바람에 이를 지켜본 사람들 간담이 서늘해진 적도 있었다는 것이다. 

  더구나 티베리우스 황제가 죽고 어수선한 시기에 게르마니쿠스 휘하 늙은 장교들이 나서서 칼리굴라를 황제의 지위에 오르게 한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면서도 나이 많은 카이우스 카이레아에게 늙다리, 유약한 자, 사내답지 못한 놈이라는 말로 속을 떠보거나, 이쪽 대장에게 저쪽 대장을 험담하면서 정보를 얻어내려 했다. 그러니 칼리굴라 황제의 안위가 위태롭다는 말이 나올 법도 한 일이었다.

  아그립바는 페트로니우스가 자살하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서

“한동안 아르메니아의 파르티아에 가셔서 지내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면서 도피처를 말해볼 요량이 엇으나 페트로니우스는 손까지 내저으며 화를 내는 것이었다.     

“거긴 왜 갑니까?” 

“괜찮으시겠습니까?” 

오히려 아그립바 쪽에서 괴로운 표정을 짓고 말았다.  

“제게도 다 생각이 있습니다.”

페트로니우스는 의외의 말을 들려주는 것이었다.

그는 예전의 페트로니우스가 아니었다.

더 이상 황제의 명령 따위에 겁먹지 않겠다는 의연한 모습을 보이기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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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06-12-26 원정
    새해엔 예루살렘 이야기에도 좋은 소식이 있겠군요.
  • 06-12-26 김춘봉
    기필코 좋은 소식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원정님을 비롯하여
    모든 분들,
    새해에 소원 성취하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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