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나이 30대 무렵부터 ‘예루살렘 이야기’에 관심을 갖게 되었으나 나처럼 절박한 심정에서 그 문제를 다룬 사람을 여태껏 보지 못했기 때문에 그동안 모은 자료들은 단편적인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누군가의 관점에서 재구성할 필요를 느꼈으며, 이 때문에 당대의 최고 권력자에 해당하는 총독 빌라도, 대제사장 가야바, 유대 왕 아그립바가 등장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주인공들에게 포함 시킬 수 없는 내용도 무수히 많기 때문에 별도의 공간을 마련하여 대비토록 하겠다.
서기 30년 유월절 의식이 끝나고 무교절 행사가 진행 중인 시기로 돌아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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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들의 증언)
1 안식일이 다하여 가고 안식 후 첫날이 되려는 미명에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무덤을 보려고 왔더니
2 큰 지진이 나며 주의 천사가 하늘로서 내려와 돌을 굴려 내고 그 위에 앉았는데
3 그 형상이 번개 같고 그 옷은 눈 같이 희거늘
4 수직하던 자들이 저를 무서워하여 떨며 죽은 사람과 같이 되었더라
5 천사가 여자들에게 일러 가로되 너희는 무서워 말라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를 너희가 찾는 줄을 내가 아노라
6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그의 말씀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느니라 와서 그의 누우셨던 곳을 보라
7 또 빨리 가서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고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거기서 너희가 뵈오리라 하라 보라 내가 너희에게 일렀느니라 하거늘
8 그 여자들이 무서움과 큰 기쁨으로 무덤을 빨리 떠나 제자들에게 알게 하려고 달음질할새
9 예수께서 저희를 만나 가라사대 평안하뇨 하시거늘 여자들이 나아가 그 발을 붙잡고 경배하니
10 이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무서워 말라 가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리로 가라 하라 거기서 나를 보리라 하시니라
11 여자들이 갈 제 파수꾼 중 몇이 성에 들어가 모든 된 일을 대제사장들에게 고하니
12 그들이 장로들과 함께 모여 의논하고 군병들에게 돈을 많이 주며
13 가로되 너희는 말하기를 그의 제자들이 밤에 와서 우리가 잘 때에 그를 도적질하여 갔다 하라
14 만일 이 말이 총독에게 들리면 우리가 권하여 너희로 근심되지 않게 하리라 하니
15 군병들이 돈을 받고 가르친 대로 하였으니 이 말이 오늘날까지 유대인 가운데 두루 퍼지니라
16 열 한 제자가 갈릴리에 가서 예수의 명하시던 산에 이르러
17 예수를 뵈옵고 경배하나 오히려 의심하는 자도 있더라.
(마태복음 28장)
(대제사장 가야바)
유월절 의식이 끝난 다음 날, 하늘 높이 둥근 달이 뜬 시각에 뜰에 모인 백성은 누룩을 넣지 않고 만든 마차라는 떡을 나누어 먹으면서 구전 설화집 하가다를 낭송하고 다음과 같은 기도를 했다.
“우리는 파라오 노예였으나, 야훼께서 권능의 손을 펴 우리를 이끌어내셨습니다. 찬양 받으소서. 주님! 우리를 애급으로부터 해방시켜주지 않았더라면 우리와 우리 자녀들은 영영 파라오의 노예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아무리 지혜가 많고, 아무리 전통에 충실 한다 할지라도 이 사건만은 언제 어디서나 기억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처럼 기도를 끝낸 사람들은 노래를 합창했다.
16일 아침, 백성이 다시 성전 뜰에 모였다.
21일까지 무교절 관습에 따라 일을 하기 위해서다.
평일에 하던 자기 자신을 위한 그런 일이 아니라 애급에서 고통 받고 지내던 조상을 기억하기 위한 행사라 돈을 받지 않고, 공동으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 했다. 그래서 무교절 행사가 시작된 것이었다.
성전 본당 건물은 헤롯 당시 완공을 보았다. 그러나 성전 산은 본래 가파르고 정상이 좁기 때문에 본당 건물을 세우고 15계단 아래에 사제와 백성의 뜰이 만들어졌다. 그리고도 좁아서 다시 14계단을 만들어 그 아래에 여인의 뜰이 조성되었다. 또 그 아래로 이방인 뜰을 만들다 보니 산 정상을 깎아 내리고 키드론, 티로퓌온 두 골짜기 낮은 곳에서부터 석축을 올려 그 안에 흙을 채워나갔다.
무교절 6일 동안 이 일을 했다. 이처럼 성전 뜰을 넓히는 작업이 모두 끝나야 성전봉헌식을 올린다고 했으니 봉헌식이 언제 올려질지 아무도 몰랐다.
무교절 마지막 날, 백성은 다시 여인의 뜰에 모여 민수기에 기록된 대로 흠 없는 수송아지 둘, 수양 하나, 일년 된 수양 일곱을 가지고 번제, 소제, 속죄제 3제를 드렸다.
그 6일 동안에 요상한 이야기가 나돌았다.
십자가형틀에 매달려 죽은 죄수의 시신이 감쪽같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십자가형틀에 매달린 죄수는 방치해 두는 게 관례다. 흉악범일 경우 까마귀에게 살점이 뜯겨 뼈가 앙상하게 드러날 때까지 내버려두기도 했다. 그런데 당돌하게도 아리마대 요셉이라는 자가 총독을 찾아가 젊은이 시신을 달라고 청을 넣었고, 빌라도 총독은 기다리기나 했던 것처럼 들어주었으며 그들을 따라 간 로마 병사들은 두 강도의 다리는 꺾어 사망 확인을 하면서도 유독 젊은이에게는 그와 같은 잔인한 검증을 하지 않더라는 것이었다.
더욱 이상한 것은 요셉이란 자가 시신을 가져가면서 무척이나 조심스럽게 다루더라고 했을 때 대제사장 가야바는 하인을 시켜 무덤을 지키게 했던 것이다.
대제사장 가야바는 부활론자들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들과 토론을 하는 경우, 부활에 대한 확실한 근거를 대라고 윽박지르면 ‘주의 죽은 자들이 살아나고 시체들이 일어난다.’는 대목을 인용하지만 그것은 토라(모세의 5경)에도 포함되지 못하는 이사야서에 들어 있는 내용이라 궁색하기 이를 데 없었다.
더구나 대다수 유대인들은 시신을 가매장해 두었다가 1년이 지난 다음 다시 화장하는 탈관식이라는 전통 장례 절차를 따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부 몰지각한 자들은 시신을 동굴무덤에 넣어놓고 이제나 저재나 살아나기를 기다린다고 했으니 참으로 어리석기 짝이 없었다.
만에 하나, 가사상태에 있던 젊은이가 살아나기라도 한다면 ….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가야바는 서둘러 무덤을 지킬 하인들을 보냈던 것이다.
그런데 회당장 랍비 가말리엘이 요셉과 니고데모를 불러 정신없는 짓을 했다고 크게 꾸짖는 바람에 요셉이나 니고데모는 무덤을 기웃거릴 생각을 하지 못하게 되었으며 따라서 무덤을 지키던 하인들도 자리를 비우는 일이 잦았을 것이다. 이런 와중에 시신이 없어진 것이었다.
가야바는 무덤을 지키던 하인들을 꾸짖지 않았다.
시신을 찾아 나서지도 않았다.
무교절 축제기간 중에 생긴 일이라 경황도 없었거니와 부활 운운하던 자들의 기세도 한 풀 꺾였을 것이라 편하게 생각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