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리학에서 바라본 세상

쾌락과 상보성원리2

06-10-11 나나 1,261

요즘, 텔레비전에서 방영되는 것을 보고 있으면, ‘재미가 없으면 필요가 없다.’라는 느낌을 받게 된다.

현재, 한국 사회의 가치 기준은 '재미'인 것 같다. 그 결과, 정형화된 것이 아닌 ‘다름’을 중요하게 여기는 성향, 즉 다양한(그 전에는 보기 힘든 성격의) 사람들을 텔레비전에서 볼 수 있게 되었다. 텔레비전에서 처음 박명수의 ‘호통개그’를 대했을 때 개인적으로 아주 많이 어색했다.

진화론적으로 보면 시간이란 이 ‘다름’을 더욱 증가시키는 방향(다양성의 확대)으로 진행하는 것 같다. 

그 예로 고립된 지역의 물고기를 잡아먹는 한 종류의 새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서 주둥이의 모양과 다리의 길이 등을 변화시켜서 서로 다른 물고기를 잡아먹는 유사한 새로 분화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것은 먹이의 공급으로 인한 경쟁을 완화시켜줌으로서 균형(?)을 유지시켜주는 역할을 하는 것 같다.

이것에 비추어서 생각해보면, 텔레비전에서 나타나는 ‘재미’ 또는 ‘다름’을 중요시하는 현상들을 이해할 수 있다.

이런 ‘재미’라는 것은 다른 말로 즐거움, 행복, 쾌락 등으로 바꾸어 생각할 수 있다.

우연히, 인터넷에서 쾌락주의를 검색해보니 쾌락을 ‘행복 = 성취/욕망’이라는 간단한 수식으로 설명하는 것을 우연히 보았다. 인간(개체)은 각자가 생존하기 위해서는 다른 것들에 상호 의존해야 하기  때문에 성취와 욕망이란 감정을 가질 수 밖에 없다. 이 수식에 의하면, 인간이 더 많은 행복을 얻기 위해서는 더 많은 '성취'를 이루든지 또는 자신의 '욕망'을 줄이는 방법이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 수식을 통해서는 개인이 행복을 얻기 가장 쉬운 방법은 '욕망'을 줄이는 것이라는 결론에 모두 도달할 수밖에 없다. 이유는 욕망은 개인적 문제이므로, 개인이 '성취'보다 이 '욕망'이라는 변수를 더욱 쉽게 제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성취'라는 것은 많은 노력의 대가, 즉 당장의 행복의 보류(保留)를 통해서 얻을 수 있다는 아이러니가 숨어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에피쿠로스 학파는 쾌락에 관심을 가졌었다. 이들은, 감각적이고 순간적 쾌락을 부정하고, 최고의 선으로서의 쾌락은 지속적이고 정신적인 것이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아타락시아(ataraxia)를 강조하고 쾌락을 감정적인 것과 구별하였다. (1)

하지만 이 쾌락주의는 AD 313년 로마에서 기독교가 공인된 이후 기독교 신학자들에 의해서 ‘술 취한 돼지’로 취급되며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그렇지만 19세기에 이 쾌락주의는 그 대상을 개인에서 사회로 확장한 공리주의로 되살아났다. J. 벤담은 이것을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으로 표현하였다. 이 공리주의는 현대 복지경제학의 철학적 기반을 제공했고 대부분의 국가들이 현재 추구하고 있는 '복지국가'의 개념을 탄생케하였다. 그러므로 텔레비전에서 ‘재미’를 추구하는 우리들 대부분은 일종의 쾌락주의자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들은 일상생활 속에서 이 즐거움 또는 쾌락을 얻기 위해서 고통을 수반해야 하는 아이러니를 대면하게 된다. 즉 미래의 쾌락을 얻기 위해서 현재의 쾌락을 미루고, 고통을 선택해야 하는 모순이 발생한다.

따라서, 쾌락과 고통은 서로를 배척하는 개념이지만 현실에서는 서로 연관이 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더 과감하게 말하자면, 이들은 서로 배타적인 관계가 아닌 상(호)보(완)적인 관계, 즉 상보성 관계인 것이다.

물리학에서는 이것을 상보성 원리로 표현한다. 이 상보성 원리는 1927년 보어가 주장한 것으로서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와 입자-파동의 이중성 등의 물리학적 문제들를 철학적 범위까지 확장한 개념이다.

불확정성의 원리란 물체가 점점 작아져서 나노크기(10^(-9) m) 이하로 작아지면 (마이크로 미터, 10^(-6) m, 이상의) 큰 부피에서 전혀 문제가 되지 않던 측정의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이 측정이란 기본적으로 빛, 즉 광자가 우리의 눈과 반응하는 과정이며 따라서 이 빛(광자)과 연결해서 생각해야 한다. 그러나 양자세계의 물체는 크기가 너무 작기 때문에 이 빛(광자)으로 측정을 할 경우, 이 빛이 측정 대상인 물체에 큰 영향을 주게 되어 정확한 측정을 할 수 없게 되는 특이한 문제가 발생한다.

또한, 입자-파동의 이중성이란 전자(electron)에서 그 현상을 볼 수 있다. 전자들 간의 충돌은 분명히 입자적인 에너지와 운동량으로 정확히 설명된다. 하지만, 또한 입자인 전자에서도 파동에서만 나타나는 간섭현상이 똑같이 나타는 것을 처음 발견한 물리학자들은 매우 혼란스러워했다. (2)

고전물리의 개념의 틀에서 보면 입자와 파동은 상호 배타적인 현상이어서 운동은 둘 중에서 하나로만 나타나야 한다. 따라서 특정 조건에서 배타적인 두 현상들이 함께 나타나는 문제는 당시 물리학자들을 매우 괴롭혔다. 하지만 보어의 상보성 원리에 의해서 이 문제는 결국 해결되었다.
 
즉, 상보성의 원리란 서로 모순되는 두 현상이 상호보완적으로 합쳐져야 그 현상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고, 그 중 어느 하나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고전 역학적 생각에 의하면 '서로 모순되는 것은 둘 중에서 하나만 참이고 다른 것은 거짓이다.'라고 주장한다. 

앞에서 말한 쾌락과 고통의 문제도 우리는 상보성 원리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http://kmc.snu.ac.kr/~kssoh/lop/publication/compl.html

****

(1) 에피쿠로스 학파는 데모크리토스의 원자론을 계승하고 있다. 즉 이들은, '죽음은 영혼을 만들고 있는 원자가 단지 흩어지는 것으로 조금도 나쁜 것이 아니다. 신이란 가장 작은 원자이므로 세상의 것과 무관하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신(God)은 이 세상과 무관한 원자라라는 에피쿠로스의 사상은 신을 두려워했던 당시 사람들에게 있어서 큰 위안이 되었다.
(2) 전자의 간섭현상이 발견되기 이전의 간섭현상은 파동에서만 나타나는 고유한 특성으로 알려져 있었다. 대표적인 파동의 간섭현상은 빛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렇지만 현재 물리학에서는 파동인 빛을 입자인 광자 또는 포톤(photon)으로 설명한다.


빛의 간섭현상에 대한 참고: http://100.naver.com/100.nhn?docid=3131
광자(photon)에 대한 참고: http://100.naver.com/100.nhn?docid=18926

  • 06-10-11 원정
    산과 계곡을 볼 때마다 전 이런 질문을 합니다.
    어디서 어디까지가 산이고, 어디서 어디까지가 계곡인가?
    비가 올 때는?
    가뭄이 지속될 때는?
  • 06-10-12 바람
    서로 배타적이기에(합쳐질 수 없기에), 그로 인하여 더욱 상호보완적일 수 있다.
    상극은 절대로 서로 합쳐지기가 않습니다.(물과 불은 항상 서로 배타적으로서 합쳐지기가 않습니다). 그러나 물이 있어야 불을 끌수가 있고, 또한 불이 있어야 물을 승화시킬 수 있듯이, 서로 배타적인 것이 있음으로서(고통) 더욱 상호보완적(기쁨)이 되는 것이니, 고통과 기쁨은 서로 따로 떼어놓고 생각할 문제가 아니라, 동시성으로 보아야 할 문제다라고 봅니다. 그러기에 '번뇌(상호배타성)가 곧 보리다(상호보완적)'라는 말씀이 있게 되는 것이구요.

    그러기에 예수님이 '네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신 말씀도 이와같은 맥락이라고 봅니다.
    나 자신을 괴롭히는 상호 배타성이 있으면 있을수록 그것으로 인하여 더욱 상호보완적일 수 있으니, 그러한 이치를 믿고 사랑하라는 말씀이겠지요.

    사람들은 뭔가가 서로 합쳐지면 그것을 좋아하고, 서로 합쳐지지 아니하면 그것을 싫어하는 경향이 있는데, 세월의 흐름속에서 서로 상생의 때를 만나게 되면 서로 합쳐지지 말라고 하여도 서로 합쳐지게 될 것이이고, 서로 상극의 때를 만나게 되면 서로 합치라 하여도 합치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즉 서로 합치고 싶어 합쳐지는 것도 아니고, 서로 떨어지고 싶어 떨어지는 것도 아니라 할 수 있습니다. 스스로의 인연들이 스스로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다니엘에 큰 우상을 꿈속에서 보게되였는데, 그 발이 얼마간은 서로 섞이어져 있는데, 그러나 그것은 근본적으로 합칠 수 없는 것이 되어, 서로 분화되면서 그 우상이 사라지게 되는 현상이였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저는 그 깊이에 들어가게 되면 될수록 상호보완적인 것일 수록 더욱 상호배타성을 만나게 되어 더욱 분화하게 되고, 그로 인하여 현재 내가 보고 있는 관찰현상이 아님을 알아차리게 된다.

    님의 글 아멘이고요. 글 잘 읽어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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