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토니아 집에서 왕자들과 함께 있을 당시 로마황제는 무관인 반면, 동방의 속주 왕들이 왕관을 쓰는 문제에 대해서 칼리굴라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었다.
“내가 황제의 지위에 오르면, 왕관을 쓰기보다는 신상에 내 얼굴을 새기게 할 것이요.”
동석했던 사람들은 농담 삼아 흘린 말이려니 생각했었다. 티베리우스 황제가 강건하기 이를 데 없었으며, 게멜루스가 후계자로 내정되었다는 소문이 나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칼리굴라는 게르마니쿠스의 아들이라는 것 외에는 특별히 내세울 것이 없었다. 600명이나 되는 원로원 의원 중에서 그를 눈여겨보는 이가 없을 정도였다.
또한 칼리굴라는 인품이 출중하다거나 덕망을 쌓기 위해 노력하는 스타일도 아니었다. 그는 가이오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보다는 귀여운 작은 군화라는 뜻의 애칭 칼리굴라를 더 좋아할 정도로 어린 시절의 추억 속에서 살고 있었다. 아마도 그가 황제의 지위에 오르게 된 사연이 이와 비슷한 향수에 젖어 있던 당시의 군인들과 로마 시민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그는 진영에서 태어나 아버지 군대 안에서 양육되었다네.› 라는 시구가 나돌 정도로 귀여움을 받고 있었으나 이는 어디까지나 게르마니쿠스에 대한 존경의 마음을 쏟아 붙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또한 그의 정신적 연령은 소년기에서 성장을 멈춘 사람 같았다. 그러나 신체적 발달은 계속되는 가운데 눈에 뛸 정도로 키가 크고 이마가 넓으며 머리카락이 적어 일찍부터 대머리 신세를 면하지 못했다.
이와는 달리 게르마니쿠스는 단정한 용모에 뛰어난 웅변술과 탁월한 재능을 겸비한 인물이었다는 것이다. 더구나 전쟁터에서의 담력을 보여줄 때와는 달리 평소에는 온화한 태도와 남에게 베풀기를 좋아하는 성격 탓으로 칭송이 자자했으며, 누가 자신을 비방하더라도 그가 상처받지 않도록 배려하는 성품이었다는 것이다.
아그립바는 그를 만나보지 못해 사람 됨됨이를 상상할 수밖에 없는 노릇이지만 그를 사모하는 사람들에 의하여 과장되지 않았을까 의심해 본적도 있었다. 이는 은둔과 막후정치의 달인이기도 한 티베리우스 황제를 야비한 사람이라고 보는 가운데 상대적으로 게르마니쿠스를 동경하게 되었을 것이라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세상인심이란 희망사항을 어떤 대상에 집중 시키고 대리 만족을 취하는 습성이 있기 마련이니 게르마니쿠스의 장점은 티베리우스 황제를 비난하기 위한 또 다른 표현일 수 있었다. 그러나 황제의 후계자임에도 불구하고 변방에 있었던 관계로 호기를 놓친 게르마니쿠스가 자신을 옹립하기 위하여 보좌관들이 로마로 쳐들어가기를 청할 때 병사들의 노고를 치하하면서 푸짐한 하사금도 주라는 내용의 위조된 황제의 공문을 보여주면서 무마했다는 이야기가 전설처럼 전해지고 있는 현실을 감안할 때 터무니없는 낭설은 아니다 싶었다.
아그립바는 칼리굴라를 황제의 지위에 오르게 하려고 역적모의를 하다가 옥살이까지 하게 되었다는 평판이 나 있었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 곰곰이 생각해 보면, 티베리우스 시대가 빨리 끝나고 자네가 황제의 지위에 오르기를 기도하고 있네. 이렇게 말할 수 있었던 것은 칼리굴라가 진심으로 황제가 되길 바라는 뜻에서 그리 한 것은 아니었다.
수차에 걸쳐 유대 왕으로 보내주길 청했으나 유능하지만 책임감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티베리우스 황제로부터 거절당한 나머지 원망 비슷한 감정에서 불쑥 뛰어나온 말일 뿐이었다.
어찌되었거나 칼리굴라는 황제가 되었고, 자신은 왕 칭호를 받았으니 기뻐할 일이다. 그러나 현실은 냉혹하다 못해 비정하기까지 했다. 칼리굴라 경우를 보더라도 게르마니쿠스에 대한 추억과, 모친 아그리피나와 두 형의 연이은 죽음으로 외톨이가 되어버린 딱한 처지와 무조건적인 칼리굴라에 대한 애정은 그를 황제로 추대하기에 부족함이 없었으나 믿을 만한 소식통에 의할 것 같으면 처음과 달리 지금은 민심을 잃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는 ‘황제의 지위에 오르면 … ’ 하던 말을 실천에 옮겼다. 그리스의 올림피아에 있는 제우스 상을 가져오게 하고, 그 상단을 떼어내 자신의 흉상을 만들어 붙이게 했을 뿐만 아니라 이렇게 만들어진 유피테르 신상을 도시마다 세우게 하고는 숭배토록 지시를 내렸다는 것이었다.
이처럼 칼리굴라가 신 행세를 하려 들자, 숙부 클라우디우스와 함께 집정관 임무를 수행하던 시기에 다리를 쩔뚝거리는 클라우디우스에게는 ‘게르마니쿠스의 동생이시여, 다복하시기를 빕니다!’ 외치면서도 황제에게는 냉담하더라고 했으니 이런 정황을 살펴보건대 로마인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세상 사람들은 게르마니쿠스와 같은 모범적인 사람이 일인자가 되기를 은근히 바라고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따라서 유대 왕이 된 이상 어떻게 처신해야 백성으로부터 존경을 받게 되는지 알 것 같았다. 더구나 가야바는 누차에 걸쳐 이런 당부의 말을 하는 것이었다.
“아그립바, 이번에는 당신 차례입니다. 불행한 사태를 예감하고 바로잡아 보려고 나섰던 젊은이는 십자가상에서 허망하게 죽임을 당했으나 당신은 난세의 구원자가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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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의 보호를 받고 있는 처지에서 국력이 쇠잔해졌다는 표현은 적절치 못했다. 그러나 세상 종말이나 최후의 심판 따위의 예언서가 횡행하는 작금의 세태를 살펴본다면 난세라고 주장하는 가야바의 말에 일리가 있었다. 더구나 힘의 논리로 세상을 어찌해 볼 수 있다는 가상 시나리오에 불과한 메시아에 푹 빠져 있는 유대인들이고 보면, 언제 환란 속에 휘말리게 될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다.
가야바는 인간 구원은 메시아나 학문을 연구하는 데서 성취되는 것이 아니라 자연과 생명의 관계를 조화롭게 이해하는데서 비롯된다는 이야기를 들려 준 적도 있었다.
“빛과 어둠의 경계를 구별할 수 없는 것처럼 생명의 후속으로 주어지는 또 다른 사후세계 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사두개인들은 영혼을 논하는 자체가 현세를 부정하는 행위에 지나지 않는다고 여기는 사람들이고 보니, 이런 말이 쉽게 나왔다. 더구나 풍요로운 삶은 윤리적 행위와 의지의 소산이라고 보기 때문에 생명 특히 사람에게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가야바의 경우 유별하다 못해 신기할 정도로 조목조목 옳은 소리만 들려주는 것이었다.
“꿈은 가수 상태의 두뇌 작용이 분명하고, 환상이나 영감마저도 번개나 우뢰와 같이 두뇌가 분출해 내는 신기의 현상이 확실함에도 불구하고 죽음 저편에서 온 것인 양 선전하는 무리들이 있습니다. 이는 생명에 대한 무지의 소치입니다. 진실 따위에는 관심이 없고, 음지에 숨어 있다가 노략질하려는 세력이지요.”
가야바는 또 다시 갈릴리 출신 젊은이를 상기 시키면서, 그는 생명의 메시지를 전하려 했기 때문에 유대인들 정상에 우뚝 서야 할 인물이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생명의 메시지와 사두개파 사람들이 추구하는 풍요로운 삶은 동일한 어감에서 나온 말이라는 것이었다.
“모두들 구원 타령이나 하고 있으니 ….”
아그립바가 한 수 거든 적도 있었다. 가야바는 기다리기나 했던 것처럼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맞습니다. 바리새인들은 구원의 때가 늦어진 이유를 죄 때문이라면서 죄의 대가가 치러지면 구원의 날이 온다고 합니다. 그런데 광야의 엣세네인들은 이미 구원의 날은 정해졌으며 메시아가 오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는 식의 이야기를 합니다. 여기에 대해서 그리스도를 전한다는 자들은 대속으로 사람이 죽었다가 부활했으니 그 사실을 믿는 것만으로도 구원을 받는다고 합니다.”
“결국 부활을 믿으라는 소리군요.”
“그렇습니다. 우리의 선조는 무엇을 믿으라는 식으로 강요한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갈릴리 출신 젊은이는 생명이 지니고 있는 신비의 힘을 보여주면서 생명력은 누구에게나 주어진 은총이기 때문에 그것을 믿고 쓰라는 뜻에서 믿음을 강조하게 된 모양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언행이 특별한 것이 아니라 누구라도 따라할 수 있다는 뜻에서 그리한 것 같았습니다.”
“이해가 갑니다.”
“그런데 이런 내막을 알 턱이 없는 일부 사람들은 최후의 심판, 세상종말, 부활 따위의 속설과 젊은이의 생명 메시지를 혼동하도록 만들어 버렸습니다.”
“부활의 형편은 어떠하다고 하던가요?”
“먹을 필요도 없고, 마실 필요도 없고, 일도 없으며, 질투도 없고, 경쟁도 없다. 오직 의인들이 머리에 왕관을 쓰고 앉아서 야훼의 모습에서 나타나는 찬란함을 즐기면 된다. 이런 식입니다.”
“어찌 그것을 사람 사는 모습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이처럼 황당한 이야기를 하는 자들과 맞서려면 생명에 대한 위기의식을 불러일으킬 필요가 있습니다.”
가야바는 그동안 젊은이에 대해서 많은 것을 알아 본 모양이었다. 그는 계속해서 다음과 같은 요지의 말을 들려주는 것이었다.
“젊은이는 알곡이나 가라지의 비유를 통해 생명의 무한한 가능성과 어두운 미래를 동시에 예견한 사람입니다. 존재하지도 않는 선과 악의 투쟁사를 만들어 내면서 혼미를 거듭하는 세력에 대항하여 독사의 새끼들이라고 비난한 그 젊은이를 차별화 하는 작업이 시급합니다.”
가야바가 전해주는 말을 요약한다면 대략 이런 내용이었다. 인간은 식물의 배아기능에 해당하는 정신력을 쓰면서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는 존재다. 그런데 지식을 선점한 자들이 죄인 타령이나 하고 있으니, 이는 정신을 흐리게 할뿐만 아니라 생명이 지니고 있는 무한한 가능성을 빼앗아버리는 고도의 술수에 해당한다는 것이었다.
계속해서 그는 어느 바리새인이 써서(AD15) 예언서처럼 읽혀지고 있다는 모세의 승천서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그 책에 따르면 모세는 자기 백성의 운명을 헤롯의 아들들이 지배하는 시대까지 여호수아에게 예언하고, 헤롯의 아들들이 통치한 다음에는 불신앙과 박해의 시대가 올 것이고, 그 때에 레위지파의 탁소라는 자가 일곱 아들들과 함께 율법에 충성을 바치면서 기쁘게 죽을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이런 종류의 책자에 대해서 아그립바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 그러나 가야바의 생각은 달랐다.
“모두들 죽음의 자리로 내모는 형세가 아닙니까?”
가야바의 주장대로라면 참으로 난세라 아니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