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릴리는 갈릴.하.고임이라고 불렸으며 이는 이교도의 땅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예루살렘 쪽에서 본다면 사마리아보다도 못한 지역이다. 사마리아 북쪽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변방 또는 외지로 차별했다. 더구나 가이샤라 항구나 육로의 시돈과 띠로를 거처 외국의 문물이 밀려오다가 사마리아를 통과하지 못하고 소용돌이치는 곳이다.
이처럼 경계의 대상일 수밖에 없었던 갈릴리가 예루살렘의 실세와는 무관한 가운데 유대에 합병된 것은 그리 오래전 일이 아니다. 그러니까 왕자의 난이 발생할 당시 모친과 형 히루카누스에게 불만이 많았던 아리스토불로는 갈릴리의 토착세력 에제키아와 연대하면서 나라를 세우려 했고, 은연중에 왕 행세를 하다가 폼페이우스 장군에 의하여 로마로 잡혀갔던 것이다.
장군은 로마에 돌아가면서 히루카누스를 대제사장에, 이두메 지역의 통치자 안티파테르에게 유대 행정권을 맡겼으며 안티파테르는 자신의 장남 바사엘을 예루살렘에 파견했고, 차남 헤롯을 갈릴리 지역 행정관으로 보냈던 것이다. 그러던 중에 안티파테르가 유대인 말라쿠스에게 독살을 당하자(B.C43) 헤롯이 달려가 원수를 갚는 동안 아리스블로의 사람 안티고누스가 또 다시 갈릴리 토착 세력들과 연대하면서 예루살렘 공략에 나섰던 것이다.
더구나 바사엘에게 불만이 많았던 수구세력들이 성문을 열어주는 바람에 안티고누스와 그의 무리는 쉽사리 예루살렘에 들어갈 수 있었으며, 싸움다운 싸움을 해보지도 못한 채 바사엘이 죽임을 당했고, 헤롯은 이집트 망명길에 올랐던 것이다.
그 후, 헤롯은 클레오파트라 여왕의 주선으로 로마의 실세 마루쿠스 안토니우스와 친교를 맺고는 용병을 이끌고 돌아와서는 갈릴리지역을 평정하고 토착세력 에제키아를 죽였던 것이다. 그리고는 다시 예루살렘 공략에 나서서 안티고누스를 물리치고 유대 전 지역을 차지하게 되었다.
아겔라오(헤롯의 장남)시대에 들어와서도 에제키아의 아들 유다가 도전해왔다(A.D 6). 아겔라오는 시리아 총독 바루스에게 도움을 청했으며, 시리아 주둔 병력이 와서야 유다와 그 일당을 물리칠 수 있었다. 이처럼 일련의 사건이 있었기 때문에 갈릴리는 이단의 지역이기도 하려니와 반역의 땅이라고 불리기까지 했던 것이다.
더구나 아겔라오를 몰아내기 위한 작전에 들어갔을 때 안나스 쪽 사람들은 아우구스투스황제에게 다음과 같은 거짓 탄원서를 올렸다고 한다. ‘아겔라오는 어찌나 포악한지 그들의 숙적 에제키아 씨를 말려버릴 생각에 유아살해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유다의 식솔들은 여전히 갈릴리에 살고 있었으며, 안티바(헤롯의 차남)는 그들에게 어떤 제재도 가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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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제키아 후손에 대해서 안티바와 달리 아그립바(헤롯의 손자)는 강경한 입장을 취하기로 했다. 그래서 은밀히 사람을 풀어 알아본 바로는 유다의 자식으로 야고보와 시므온이라는 자가 있으며 그들 형제는 얼마 전 고향을 떠났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행적을 추적하는 중에 황당한 보고도 받았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스라엘의 왕이시여! 이렇게 외치며 예루살렘에 들어온 무리가 있었다고 합니다.”
아그립바는 당혹을 금치 못했다.
“언제?”
“빌라도 총독 시절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그 자들이!?”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대제사장 지위에 있었던 가야바(A.D18~37)를 찾아가 사실을 확인해 보려 했다. 그러나 가야바는 대제사장 직에서 물러난 다음 원로사제가 맡게 되는 나시(산헤드린 의장)도 사양한 채 칩거생활을 하는 중이었다. 아그립바가 찾아갔을 때도 건강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만나주지 않으려 했다.
어렵사리 만나보니 사람을 대면하지 못할 정도로 건강이 나쁘지 않았다. 아마도 자신의 처남이기도 한 요나단(당시의 실세)과 불편한 관계에 있었기 때문인 것 같았다.
“참으로 그런 일이 있었습니까?”
재차 묻는 말에도 가야바는 입을 열지 않았다.
하기야 성전 경비대 소속 젊은 사제들이 방망이로 무장한 레위인들과 순찰을 돌고, 회당의 랍비들은 수상한 기미를 보이는 자들을 가려내는데 혈안이 되 있을 뿐만 아니라 안토니요새의 로마 병사들은 축제기간이 임박할 즈음에는 시가지 전역을 감시하고 있었으니 그 누구라도 요란을 떨며 들어올 수 없는 노릇이었다.
마침내 가야바가 입을 열었다.
“나귀를 타고 왔다고 하지 않던가요?”
“….”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면서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아그립바는 대답을 하면서도 공연한 질문을 했다고 후해를 했다. 나귀를 타고 오는 자가 어디 한 둘이며, 성전을 보는 순간 덩실덩실 춤을 추거나 노래를 부르는 자가 숫한 가운데 기쁨의 탄성을 지르는 자들도 있었을 것이니, 그것을 가지고 자신들의 입성을 반긴 것처럼 선전한 자들이 있었다면 그들이야말로 거짓말쟁이가 분명하기 때문이었다.
아그립바가 불쾌한 표정을 지으며 돌아가려 하자 그때서야 가야바가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예루살렘에서는 그따위 억측이 심심찮게 나돌고 있습니다.”
“억측이라면?”
“만약 그들이 요란스러운 모습으로 들어왔다고 생각해 보세요. 젊은이는 현행범으로 체포되었을 것이고, 일행 중 누군가가 고발하는 번거로운 일 따위는 없었을 것입니다.”
딴은 맞는 말이었다. 그제야 가야바를 통해 빌라도 총독에 의하여 사형판결을 받은 갈릴리 출신 젊은이 사건에 대해서 새삼 알게 되었다.
가야바는 사건 발단에 대한 견해를 나름대로 요약해 들려주었다.
“사제도 아니고 랍비도 아닌 사람이 긍정적이면서도 사려 깊은 이야기를 했다고 상상해 보세요. 그리고 자신은 어디까지나 유대교 전통에 굳게 발을 딛고 서 있다고 말했을 경우 그의 해박한 지식에 감탄을 금치 못하면서도 이단과 모반의 땅 갈릴리 사람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쪽으로 이야기를 해주지 않아 탐탁지 않게 여기고 있던 중에 예루살렘에 와서도 별다른 대접을 받지 못함을 보자 실망했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왕 어쩌고저쩌고 합니까?”
“에제키아 망령이 농간을 부린 것이겠지요.”
(소설 ‘예루살렘 이야기, 유대 왕 아그립바’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