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강해

주기도문 강해 20

06-05-17 바람 979
주기도문강해 2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들이 매일 하루의 삶속에서 먹고 마시며 살아 가야할 양식은 바로 오늘
지금 이 순간에 있다.

이 세상의 안목으로는 우리들이 먹고 마시며 누릴 양식은 뭔가를 열심히 벌어 이 세상에다가(육신의 눈으로 보여지는 한계치) 저축해둠으로서(과거), 거기로부터 뭔가를 꺼내 먹으면 되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진정한 생명의 양식은 그렇게 오는 것이 아니다.

진정한 생명의 양식은 오늘 바로 지금 이 순간을 통하여 우리들이 도무지 알지도 못하고 상상치도 못할 영의 세계로부터 내려오는 생명의 은혜이다..

내 자신이 뭔가에 곤고하고, 보다 근원적인 이치에 굶주려 있고, 보다 확실한 믿음이 무엇인가 하며, 온통 그 모든 의문에 가득차 있을 때, 나도 알지 못하는 가운데 값없이 위로부터 내려오는 생명의 물줄기이자, 벼락치듯 내려오는 생명의 영감인 것이다.

무릇 생명은 호흡에 있다라고 할 수 있는데, 그 모든 생명체들이 호흡을 할 수 있음은 그 속에 생명의 기운이 가득차 있음이다.

그러므로 그 모든 생명체에는 본디 생명의 기운이 가득차 있다라고 볼 수 있는 것인데,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어떤 사람들은 때로 굶어죽기도 하고, 허기져 쓰러지기도 하게 되는 것인가?.

그것은 호흡이전에, 배고픔이전에, 굶주림 이전에, 가난이전에, 고통이전에 우리들이 도저히 알 수도, 상상할 수도 없는 그 무엇이 그 속에 숨겨져 있는 것인데, 그러한 차원의 상태에 이르기 전에, 그러한 세상적 인연이 끊어져(고갈) 버리기 때문에, 그 생명이 보다 근원의 상태에 연결(연합)되지 못하고, 그만 한시적(세상적)인 상태의 것을 벗어나지 못한 상태에서, 세상의 양식이 차단되어질 경우, 그러한 불행한 일이 발생하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것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때로 육신의 양식도 물론 필요한 것이기는 하나, 그것은 다만 한시적이고 제한된 동안만의 것이라는 것이다.

보다 근본된 영의 양식의 것에 이르기위한 수단으로서, 육신의 양식이 필요할 것일뿐,
육신의 양식이 전부 다는 아닌 것입니다.

수행을 하는 많은 사람들이 한결같이 고백하고 있는 말씀은, 우리들을 결정적으로 살려내는 것은 육신의 양식이 아니라, 영의 양식이라는 것이다. 우리들도 알지 못하는 가운데 속마음에서 솟구쳐 나오는 영의 양식(무에서 유가 솟구쳐 나오는 것)이 진정으로 모든 이들을 살려내는 진정한 양식이라이라는 것이다.

그러면 영의 양식은 무엇인가?

오늘 지금 이 순간으로서 영원으로 통하여지면서, 동시에 그러한 영원한 세월가운데 잠들어 있었던 그 모든 은혜, 그 모든 예비하심을 값없이 받아 도로 돌려 드리는 것이다.

영의 양식은 오직 지금 이 순간을 통하여서 주어진다. 어제 내가 그 무엇을 하였건, 내일 그 무엇을 하려하건, 그 모든 것들은 아무 상관이 없다.

오직 지금 이 순간, 도무지 헤아릴 수도, 측량할 수도, 알 수도, 감지할 수도 없는 가운데,
뭔가가 지극히 미미한 것과도 같은, 뭔가가 마치 아무것도 아닌것과도 같은, 뭔가가 마치 매우 엉터리와도 같은 그러한 것일 때, 돌연 나도 알지 못하는 가운데, 느닷없이(밤의 도적처럼) 만나게 되는 것, 그것이 바로 영의 양식이자, 생명의 은헤인 것이다.

인간의 도리로 다 계산하여 알 수 있고, 먹을 수 있는 양식이라면,
그것이 그 어찌 진정한 영의 양식이 될 수가 있는 것인가?

인간의 도리로서는 도무지 만나볼 수도, 만져볼 수도 없는, 감히 근접할 수 없는
그러한 것일 때, 그런데 그것이 나는 아무것도 아닌데, 오직 은혜로서 다가오게 될 때에, 그것이 바로 그 모든 것들을 진정으로 살려내게 하는 진정한 양식이 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이 순간으로서 이러한 영의 세계로 통하는 길은 처음에는 무지하게 좁고 좁게 보여, 무지하게 협착하고 협착하게 느껴져 아무라도 이것을 원하는 이가 없게 되는 것인데, 일단 뚫리고 나면, 이보다 더 좋은 생명의 만나는 없게 되는 것이다.

저는 어떠한 일로 인하여 뭔가 답답하고, 뭔가가 심히 압박하는 듯 하고 하면,
저도 모르는 가운데, 저의 마음속에서 어떤 영파가 쏟아져 나와 저 자신을 금방 시원하게 하고, 평안케하여 주는 그러한 경험을 수 도 없이 하고는 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영파로 인하여 얻어지는 기쁨은 그 어떤 기쁨하고도 비교할 수 없는 것입니다.

오직 아는 자들만이 알 수 있는 생명의 지복인 것입니다.

우리들이 살아가면서 육신의 양식도 물론 필요하기는 합니다. 그러니 허락하는한 육신의 양식을 잘 먹어두는 것도 필요한 일이라 여겨질 수는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때가 되면 육신의 양식은 언젠가 다 떨어져 반드시 없어져 버리는 때가 분명코 찾아오게 되는 것이니, 그러한 때를 만나기 이전에, 그 이전의 그 세계를 뚫어내어, 거기로부터 내려오는 생명의 양식을 받아 마실줄도 아는 그러한 지혜가 있어짐이 보다 바른 삶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영의 양식은 때를 따라 그 모든 것들을 도로 다 살려냅니다.
그러나 육신의 양식은 때가 되면 사라져 없어져 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들의 육신적 눈으로는 당장 육신의 양식은 매일 필요한 것처럼 보이고,
영의 양식은 별로 필요치 않은 것으로 보여지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영의 양식은 매일 필요하고,
육신의 양식은 필요할 때도 있고, 필요치 않을 때도 있는 것입니다.

살려내는 것은 늘 필요할 수 있지만,
언젠가 버러야 힐 것은, 오히려 지금 이 순간 필요하지 않은 것일 수도 있음을
깨달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동안 많은 정치가, 권세자, 권력자, 왕들이 나타나서, 백성들을 행복하게, 배부르게 하여 줌으로서 이 세상을 그들 나름대로 구원(해방)시키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돌아보면, 결국 그들이 한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남은 것이 없습니다.
사람들의 생각속에 기록의 잔재물로 남아 있을 뿐, 아무것도 아닌것외에 아무것도 아닌 것입니다.

오직 영의 세계로 돌아가, 그 세계의 것과 연합을 이루게 될 때에, 진정 그 모든 것들이 다시 살아나, 진정한 행복과 진정한 만족이 거기로부터 꽃피워 난다고 하는 것을 진작에 그들이 깨달아야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들이 그렇게 애쓰고, 수고한 모든 것들이 과연 헛되기만 한 것일까요?

저는 그렇다고만 보지는 않습니다.

언젠가는 그러한 그 모든 과정과 수고들이 깨달음의 재료로 자기자신에게 어떻게 돌아올지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하기에, 짧은 안목(시간의 한계)으로는 때로 우리들의 그 모든 수고가 다 헛된것처럼 보여지기도 하지만, 보다 긴 안목(무한대의 세계)에서 보면 오히려 헛된 것이 단 하나라도 있을 수 없다.(영의 세계에는 단 하나도 버리거나 폐할 것이 없음) 이렇게 볼 수도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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