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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강해
우리의 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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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3-06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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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형상
그 모든 것들은 다 우리로서 이미 하나이다
나와 너가 결코 따로 있지 않다. 우리로서 이미 하나이다.
똑같이 공부를 열심히 하였는데, 어떤 사람은 1등을 어떤 사람은 꼴찌를 하였다.
그런데 그게 이미 우리로서 하나이다. 누가 따로 1등을 한것도 아니요, 누가 따로 꼴찌를 한 것도 아니다. 우리의 모습가운데서 어떤 것은 그러한 형태로, 어떤 것은 이러한 형태로 잠시 나타난 듯 또한 그 즉시 공한 것이다.
지구상에 사는 그 모든 인류에게는 각각 자기자신안에 우리의 형상으로서 그 모든 입자와 파동들이 녹아져 있다. 나 따로, 너 따로 각각 다른 모습으로 그렇게 존재하는 것이 결코 아닌 것이다.
그 모든 인류들은 지구위에서 수십억년이라고 하는 세월동안 때로는 이것이 되기고 하고, 때로는 저것이 되기도 하면서, 즉 우리의 형상으로서 그동안 그렇게 지나왔다.
그러니 나는 때로 물이 였을 때도 있고, 공기 였을 때도 있고, 먼지였을 때도 있고, 세균이였을 때도 있고, 벌레였을 때도 있고, 식물이였을 때도 있고, 나비였을 때도 있고, 물고기 였을 때도 있고, 파충류였을 때도 있고, 양서류였을 때도 있고, 조류였을 때도 있고, 포유류였을 때도 있고, 유인원이였을 때도 있고, 어떤 남자였을 때도 있고, 어떤 여자였을 때도 있고, 어떤 왕이였을 때도 있고, 어떤 비천한 사람이였을 때도 있고, 등등...
이러한 과정으로서 그동안 수십억년의 세월을 지나온 것이다. 그러니 그동안 수십억년의 세월을 여러형상의 과정을 통하여 지나온 것처럼, 앞으로도 그러한 과정으로서 지나가게 될 것이다.
때로는 남자이기도 하고, 때로는 여자이기도 하고, 때로는 왕이기도 하고, 때로는 종이기도 하고, 때로는 대통령이기도 하고, 때로는 거지이기도 하고, 때로는 어른이기도, 때로는 갖난아이이기도 하면서 그렇게 우리의 형상으로서 지나가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이 세상에 일어나고 있는 그 모든 일들이, 다 나의 지나온 과정으로서 온전히 믿어지기 때문에(나의 전생으로서 들어오는 것임) 누가 따로 뭔가를 하고 안한 것이 있다라고 하는 분리가 일어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누가 지금 나에게 칭찬을 하였습니다. 조금 후에 어떤 누가 나에게 좀 언짢은 소리를 하였습니다. 그러면 특정한 어떤 누가 나에게 칭찬 혹은 언짢은 소리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 우리의 형상으로서 이미 들어와 있는 것이 그렇게 순간적으로 연기현상을 하고 있는 것외에 다름이 아닌 것입니다.
내 안에 무한히 녹아져 있는 입자와 파동들이 그 순간 스스로 그러한 상황에 일치되어지도록 잠시 그렇게 그러한 모양으로서 수 놓아 진 듯 하고는, 그 상황이 아니면 다시 무형의 형상으로서 아무런 함이 없이 지나가는 나그네와도 같은 것입니다.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요3:3)
예수님은 니고데모에게 이러한 말씀을 하면서, 이미 자기자신에게는 예수라고 하는 형상이 따로 있지 않음을 알았습니다. 예수도 아니고 니고데모도 아닌 우리의 형상으로 이미 온전히 함께 하고 있음이 그대로 들어왔습니다. 물과 성령(에너지)안에서 녹아져 있던 것들이 그 순간 예수의 형상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니고데모의 형상이기도 한(입자와 파동이 잠시 그러한 모습으로 결합되어 보여지는 듯한 현상)모습으로 지나가는 과정인 것인데, 니고데모로서는 니고데모라고 하는 형상과 예수라고 하는 형상이 그 순간 따로 분리되어 있다라고만 보여지니,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다고 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전혀 깨닫지를 못하게 된 것입니다.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우리 아는 것을 말하고 본 것을 증거하노라 그러나 너희가 우리 증거를 받지 아니하는 도다”(요3:11)
예수님은 그러한 이치를 말하고 있는 그 순간, 자기자신이 이미 그 모든 우리의 형상외에 다름이 아님을 친히 알고 본 것을 증거하는 것인 반면, 니고데모로서는 그것을 그렇게 말하는 에수와 그것을 그렇게 듣고 있는 자기가 따로 있다라고만 보여지니, 그러한 증거를 받을 수도 믿을 수도 없는 것입니다.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겟다 하는 말을 기이히 여기지 말라.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은 다 이러하니라”(요3:6-8)
바람이 임의로 불매 그 소리를 들어도 그 소리가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듯이, 물따라, 바람따라, 구름따라 때로 이것이 되기도 하고, 때로 저것이 되기도 하면서 그렇게 정처없이 지나가는 나그네 인생인 것입니다.
그러니 지금 이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은, 동시성으로서 함께 더불어 우리의 형상으로서 공존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 따로, 너 따로 있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지금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미스코리아를 보고 있다면, 지금 이 세상에서 가장 못생긴 추남을 보고 있다면, 그것이 곧 나 자신인 것입니다. 본래 아무런 형상없이 그렇게 정처없이 흘러가다가, 때의 인연을 만나 잠시 그러한 형상을 입어 보기도 하고, 다시 물처럼 바람처럼 구름처럼 그렇게 또 지나가는 것입니다. .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창1:26)
우리는 우리의 형상으로서 지금 이 순간 동시성으로 존재합니다. 동시성으로서 나 따로 너 따로 떨어져 있음은 절대 불가능합니다. 동시성으로 언제나 우리로서 일치이지, 동시성으로서 나 따로 너 따로가 결코 아닌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유혹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대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내가(?) 오늘 밥을 먹으면 우리적 동시성으로서 이미 같이 밥을 먹고 잇는 것이고, 내가(?) 용서해 주면 우리적 동시성으로서 이미 같이 용서해 주는 것이지, 내가 밥을 먹고 상대는 밥을 안먹고, 나는 상대를 용서해 주고, 상대는 나를 용서 안해주고 하는 것이, 결코 따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동시성으로서 일체적 우리로서 같이 일어나는 현상이지, 결코 따로 떨어져서 발생하는 것이 아님을 명심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선지자들의 무덤을 쌓고 의인들의 비석을 꾸미며 가로되 만일 우리가 조상 때에 있었더면 우리는 저희가 선지자의 피를 흘리는 데 참예하지 아니 하였으리라 하니 그러면 너희가 선지자를 죽인 자의 자손됨을 스스로 증거함이로다 ”(마23:29-31)
그 모든 것들은 지금 이 순간 우리의 형상으로서 동시성으로 일어나고 있는 것인데,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자기들은 그러한 일을 안 했고, 다른 이들은 그러한 일을 한 것처럼 여기는, 그 미혹을 스스로 ‘그렇다’라고 하는 무지 그 자체인 것입니다.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요5:39)
과거 지구상에서 벌어진 일들, 지금 이 세상에서 진행되어지고 있는 그 모든 일들, 장차 이 세상에서 있을 그 모든 일들은 다 나에 대한 애기인 것입니다. 나로서 그 모든 우리의 형상들이 그렇게 스스로 되뇌어져 나오는 입자이자 파동인 것입니다.
양지역학에서 나오는 불확정성의 윈리, 그 모든 물질을 관찰하게 되면 어떤 때는 입자로(위치에너지) 어떤 때는 파동(운동에너지)로서 나오는데, 그렇게 관찰하게 되어지는 것으로서 오히려 더욱 알 수 없게 되더라고 하는 유명한 애기인 것입니다.
즉, 관찰자(나와 너라고 하는 상이 있는 상태)가 있는 상태에서 그 모든 것을 보게 될 때는 그 순간 불가피하게 반드시 어느 한쪽 면만을 볼 수 밖에는 다른 도리가 없기 때문에,(입자가 보일 때에는 파동이 안보이고, 파동이 보일 때에는 입자가 안보임) 관찰자가 있는 상태에서는 뭘 보거나 뭘 안다라고 말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하기 때문에, '나다. 너다' 하는 것로서는, 생각과 느낌으로서는 뭘 '안다'하거나 '본다'라고 하거나 할 만한 것이 단 하나라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 관찰(판단)로서 보여지는 그 모든 것들이 오히려 스스로 부인이 되어질때, 단 하나도 아는 것이 없음이 스스로 깨쳐지는 것, 이것을 이름하여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음을 오히려 스스로 '안다'라고 할 수 있는, 오리무중의 세계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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