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강해

믿음에 온전히 거하라1

06-03-02 바람 1,045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사는 동안(?) 제일로 많이 실수 하는 것 가운데 하나는 매 순간 순간 마다 그 모든 것들이 완전히 믿어지는 그 상태의 지속에 거하는 것이 아니라,

뭔가 일하면 일하는데 정신을 팔아먹고, 아무것도 일하는 것이 없이 쉬면 그냥 쉬는데 정신을 팔아먹고, 누구하고 애기를 하면 누구하고 애기를 하는데 정신을 팔아먹고, 홀로 있으면 그냥 그렇게 홀로 있는데 정신을 팔아먹고, 생각하면 생각을 하는데 정신을 팔아먹고, 판단하면 판단하는데 정신을 팔아먹고, 걸어가면 걸어가는데 정신을 팔아먹고, 테레비(신문)를 보면 테레비(신문)를 보는데 정신을 팔아먹고, 인터넷 서핑(게임)을 하면 인터넷 서핑(게임)을 하는데 정신을 팔아먹고, 물건을 사고 팔면 물건을 사고 파는데 정신을 팔아먹고, 밥먹으면 밥먹는데 정신을 팔아먹고, 육체운동을 하면 육체운동을 하는데 정신을 팔아먹고, 여태껏 살아온 스타일대로 그냥 지나가고, 등등...

이렇게 시간만을 보내는 것이다. 각자에게는 자유가 있으니 이렇게 산다고 할지라도 그것도 그 나름대로의 자유이기는 하다. 그러니 그렇게 살고 싶다면 때로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삶은 나중에 가서(?) 남는 것이 결코 단 하나도 없게 된다는 것을 명심하여야 한다.

오직 남겨지게 되는 것은 영원만이 남는다. 영원외에 남겨지는 단 하나라도 없다. 오직 절대로 영원만이 남는다. 이것은 언제 어디서나 항상 절대이다.

그런데 이 세상에는 영원한 것이 단 하나라도 없다. 찰라로서 나타나는 듯 사라지는 것이다. 그것이 세상의 실상이자 허상이다.

매 순간으로서 그 모든 것들이 이미 영원안에 들어와 있음이 털끝도 의심이 안되어짐으로 완전히 믿어지는 그 자체적 상태에 온전히 거하는 것, 그것만이 오직 영원으로서만 남는다. 영원한 능력으로서 믿어지는 것만이 남지, 다른 것(?)들은 시간과 더불어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것이다.

영원이외의 것은 시간안에 있을 때에만 존재하는 듯 보이는 허상일뿐, 때가 되면 결국 아무것도 아닌것외에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사라지고 마는 것이다.

그런데 영원으로서 통하는 길은 지금 이 순간이외에는 절대로 다른 길이 있을 수 없다.
오직 지금 이 순간만을 통하여 열려지게 되어져 있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것은, 그러한 지금 이 순간이 매 순간으로서 늘 지속이 되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이 매 순간으로서 날마다 오직 지금 이 순간일 수 있도록 그것이 늘 지속이 되어져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말(생각)로는 이것을 시인하면서도, 그 능력으로서는(구체적 삶으로서는) 이것을 시인하지 않으면서, 여전히 뭔가에 정신이 팔려 산다면, 그것은 수행을 하는 삶의 바른자세가 결코 아니다. 말(생각)로는 수행을 한다고 하면서도, 실제적 삶으로서는 세상적 삶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달란트 비유(마25장)
다섯달란트 - 다섯의 재능을 장사하며 즉시 다섯의 재능으로서 남김
선천적으로 물려받은 훌륭한 재능으로서 나름대로의 일을 하는 것임
둘 달란트 - 둘의 재능을 장사하여 즉시 둘의 재능으로서 남김
후천적 계발로서 얻어진 재능으로서 나름대로의 일을 하는 것임
한 달란트 - 한 재능을 무한한 재능으로 즉시 남기지 못함
자기자신안에 무한한 재능이 잠들어 있는 것인데, 그것을 늘 깨여있음으로서
발견하지 못하니, 결코 그 능력으로서 믿어질 수가 없는 것이요, 그러니 그 것을 그 즉시 영원의 것으로 결코 남기지 못하는 우를 범하게 되는 것인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거의 여기에 다 걸려 있는 것이다.

그런데 한 달란트는 현실속에서 막상 그것과 마주치게 될 때에는 가장 자기자신이 원하지 않는 것이요, 가장 어리석은 것이요, 가장 미련한 것이요, 가장 거리끼는 것이요, 가장 부끄러운 것이요, 가장 하고 싶지 않은 것이요, 가장 쓸데없는 것이요, 가장 하찮은 것이요, 가장 무가치하게 보이는 것이요, 가장 어처구니 없는 것이요, 가장 두렵게 하는 것이요, 가장 날 속이는 것이요, 가장 날 욕되게 하는 것이요, 오히려 가장 거짓되게(헛되게) 보이기 때문에, 아무도 이것을 남겨야 하는 것으로는 꿈에도 상상치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믿음은 이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음을 진심으로 고백하는 그 상태에서 오게 되는 것이지, 뭘 많이 배운 사람에게서 얻어지는 것이 결코 아닌 것입니다. 가장 어리석고 어리석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그 상태에서 뭔가가 번쩍하고 깨달아지면서 믿음이 오게 되는 것입니다.(사람으로서는 완전히 쓸데없게 될 때에 자연으로서는 완전히 공함으로서 돌아가게 되는 것임)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하나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사람으로서는 완전히 쓸데없이 버려지게 될 때에, 아버지(자연)로서는 그 모든 것들이 완전히 남기어져 돌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요즈음도 아내는 걸레로 그릇을 닦을 때, 여전히 하나.둘.셋 하며 숫자를 셉니다. 그러한 습관은 이미 오래되어 이제와서는 거의 못 고칩니다. 그런데 이러한 아내의 행위는 사람으로서는 다 쓸데없는 행위입니다. 단 하나라도 쓸데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이것은 본인이나 내가 원해서 하는 것도 아닙니다. 사람으로서는 아무짝에도 쓸데없는 행위인데, 그냥 그렇게 습관을 따라서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때인가부터 그러한 행위에 대하여 쓸데없는 행위라고 하는 판단이 일어나지를 않습니다. 왜인가? 나는 그 행위를 사람이 하는 행위라고 보지를 않기 때문입니다.
자연의 일부로서 그 순간 그냥 그렇게 들어옵니다. 그러면 그 순간 그것이 그냥 그렇게 완전히 믿어지는 것입니다. 쓸데있는 행위다, 쓸데없는 행위다라고 하는 분별이 일어나지를 않습니다. 그냥 그 모습 그대로가 완전히 믿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순간 아내가 그 무엇을 하고 있는 것도 아니요, 내가 무엇을 보고(판단)있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영원한 능력, 수십억년의 세월속에 녹아져 있는 찰라의 한 나툼이 스스로 그렇게 연기되어지는 것임이, 있는 그대로 믿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순간으로서 곧 영원속에 이미 들어와 있음이 그대로 믿어지니, 그러한 기억그대로가 영원의 것으로 그대로 저장되어, 반드시 영원의 것으로 남겨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 순간의 판단으로서(제한된 시간) 남기어지는 것(기억)이 아니라, 이미 무한한 영원의 것으로 그 순간이 남기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쓸데있는 행위를 하면 그것은 그럴만 하니까 받아들이고, 사람들이 뭔가 쓸데없는 행위를 하면 그것은 이상하니까 안 받아들이고 하는... 이러한 것들이 사람들의 생각으로서는 현명한 듯 합니다. 그런데 웃기지 마십시오.

쓸데있는 행위와 쓸데없는 행위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리 이상해도 그 능력으로서 믿어지면 다 완전한 것이고, 아무리 온전해도 그 능력으로서 믿어지지 아니하면 다 쓸데없는 것입니다.

어떤 한 여인이 예수님앞에 나와 향유옥합을 부으며 그것을 땅에 다 쏟았습니다.
귀하고 비싼 것인데 그것을 한 순간에 아무런 쓸모없이 다 허비하는 듯 하니, 사람들의 생각으로는 ‘그렇게 하지 말고 차라리 가난한 사람에게나 나누어주지’하였습니다.

쓸데있는 행위와 쓸데없는 행위가 따로 있는 것처럼 판단한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눈에는 그것이 절대로 그렇게 보이지를 않았습니다. 오직 유일한 절대의 한 순간이(자기자신의 장사를 위한 것은 오직 유일한 그 순간외에는 다른 때가 절대로 있을 수 없음) 영원으로서 그렇게 예비돠어져 있다가 한 여인을 통하여 그렇게 예물이 되어저 나오는 것임이 온전히 믿어진 것입니다. 즉 사람들의 생각으로는 그것이 그냥 지나가는 판단으로만 남은 것이라면, 예수님에게 있어서는 그 즉시 영원의 것으로 남기어진 것입니다.

사람들의 생각으로는 향유옥합이 쓸데없이 버려지는 것으로서, 예수님의 그 믿어지는 능력으로서는 영원의 것으로 남기어진 것입니다. 즉 똑같은 행위를 보고서도, 그렇게 믿어지는 능력의 차이에 따라, 상상키도 어려운 이러한 차이가 발생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몇일전 드라마 신돈에서 정세창이 억울한 반역누명을 당해 죽는 장면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그대로 믿어집니다. 억울한 반역누명을 쓰고 죽는 것이 아닙니다.

무한한 영겁의 세월속에 녹아져 있는 한 나툼이 그렇게 스스로 연기되어 참나의 한 부분으로서 잠시 사라진 것인데, 그 무한의 세월로서는 우리의 형상으로서 이미 영원히 부활해 있는 것임이 그렇게 온전히 믿어지는 것입니다.

상대가 아무까닭도 없이 느닷없이 나의 오른 뺨을 쳤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이 순간 완전히 믿어집니다. 털끝하나 틀리지 않고 그대로 완전히 믿어집니다. 그러면 왼뺨도 충분히 돌려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사람이 그러한 행위를 하였다라고 인정한다면 결코 왼뺨을 돌려댈 수가 없겠지만, 무한한 자연의 이치가 때가 되어 스스로 그러한 법으로서 되뇌어져 나온 것임이 온전히 믿어지면, 그것은 그대로 영원인 것입니다. 시간상에서 누가 그러한 행위를 하였다고 하는 판단이 절대로 일어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시간상에서 누가 그러한 행위를 하엿다고 하는 판단이 일어난다면, 그것은 똑같은 범죄자가 되어지는 것입니다.(시간상의 알리바이가 성립을 하는 것임)

저는 지금으로부터 6여년전 보증셨다가 1000만원을 날린적이 있습니다. 1000만원을 갚으면서 상당히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러나 바로 몇일 후 그 모든 것을 깨달았습니다.

내가 보증을 선것도 아니요, 그 상대가 1000만원을 떼어 먹고 도망을 간것도 아니요, 하늘나라에 너무나도 엄청난 보화가 가득한 것인데, 수천조에 달하는 능력이 무한히 가득한 것인데, 다만 그 순간 찰라의 나툼(티끌)을 내어 써준 것에 불과한 것임을, 온몸으로 체휼하면서 절실히 깨달은 것입니다.

내 자신이 너무도 심히 큰 부자임을 알고, 그 순간 찰라의 티끌을 그가 잠시 빌어간 현상외에 아무것도 아님을 하늘이 다 떠나갈 듯이 깨달은 것입니다.

그 모든 것들은 밑도 끝도 없이 심히 광대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그 모든 것들이 심히 광대한 것인데, 그 순간 그러한 인연을 만나 우주만물이 그렇게 심히 광대한 것임을, 새삼스럽게 깨닫게 된 것이니, 그 은혜가 한량이 없는 것입니다.

E = MC
능력 = 생각(티끌) × 10000000
즉 지금 이 순간의 능력속에 무수한 티끌이 이미 무한의 속도에 제곱으로서 결합하여져 녹아져 있음이 그대로 완전히 믿어지는 것입니다. 즉 지금 이 순간으로서 그 즉시 영원의 능력이 다가와 그만한 능력으로서 완전히 믿어지는 것입니다.
色卽是空 = 무수한 티끌이 그 즉시 무한한 능력으로서 다가와 믿어진다.

사람은 자연(하느님)의 일부입니다. 그런데 스스로 그러한 자연은 매 순간 지극히 당연한 현상만이 일어납니다. 자연현상 가운데 매 순간 지극히 당연한 현상이 아닌 것은 단 하나라도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그것을 알지 못하고 매 순간 일어나는 그 모든 현상들이 지극히 당연한 것임을 믿지 못하게 된다면, 그것은 그 순간 자기의 생각,판단,행위들이 아직 공(空)과 온전히 연합되지 못한 상태에서, 그것을 자기 나름대로는 ‘그렇다’ 혹은 ‘옳다’라고 여기는 ‘어리석음’ ‘무지’ 그 자체인 것입니다.

공과 온전히 연합되어지고 나면 그러한 생각자체가 허구이외에 아무것도 아닌 것이라고 깨닫게 되지만, 공과 연합되기 전에는 그러한 생각이 오히려 너무도 ‘맞다’라고만 인식이 되어지는 착각놀음외에 다름이 아닌 것입니다.


  • 06-04-24 마음
    오늘 이 말씀을 보았는데 제게 주신 말씀이네요. 스스로 그러함에게 감사
  • 06-05-19 바람 주기도문 강해 50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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