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강해

부활에 대하여0

05-06-22 바람 965

고난을 참고 견디는 것은 어느 정도 인간들의 노력이나 정신력으로 가능할 수 있다. 그러나 새롭게 부활하는 것, 전혀 내가 알지 못하는 새로운 모습으로 거듭남은 인간들의 노력이나 정신력으로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부활은 인간들의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기에 감추어져 있다.
부활은 인간들의 지식으로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기에 철저히 알 수 없는 것이다.
부활은 인간들의 노력이나 행위로서 어떻게 찾아지는 것이 아니다. 그러기에 오직 그 나라와 그의 의로서만 가능한 것이다.
부활은 갑자기 홀연히 찾아온다. 그러기에 나의 계획이나 예측으로서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부활은 내 육체의 연약함이나 고난을 통하여 그것을 보다 승화시키는 것으로 찾아온다. 그러기에 내 육신의 건강이나 영혼의 강건함으로서 체험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기에 십자가의 도가 미련한 것이라면, 부활의 도는 전혀 알 수도 없고 전혀 예측할 수도 없고, 인간의 도리로서는 다 불가능한 것이라고 밖에는 애기 할 수 없는 것이다.

사람들은 애기한다.
건강하고, 지혜롭고, 긍정적인 사고로서, 자신감있게 인생을 살아가라고 애기한다.

그러나 나는 애기한다.
건강도 아니고, 지혜도 아니고, 긍정적인 사고도 아니고, 자신감있게 인생을 살아가는 것도 전부 다 아니다.

오직 그의 나라와 그의 의로서 가능한 생명적 환희인 것인데, 이것은 절대로 나로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불능의 상태에 도달되어짐으로서 스스로 가능성이 열리어 지게 되는 것이다.

부활은 나로서 본래 아무것도 아닌 상태에 도달되어지게 될 때에, 거기로부터 전혀 알 수 없는 새로운 것들이 그 나라와 그의 완전한 것으로서 새롭게 구성되고 짜여짐으로서 거듭난 상태(태여나기 이전의 상태)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지금의 종교나 철학, 각종 사상들이 문제점은 너무 상식적이고 보편적인 것, 논리적으로 그럴듯한 것, 이러한 것들을 전하는데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들이 분명히 알아야 하는 것은, 우리들이 흔히 말하는 이런 상식적이고 보편적인 논리들은 우리들이 일상생활을 살아가는데 있어서는 아무런 문제가 안되지만, 보다 근원적이고, 보다 다른 차원의 것앞에는 그 모든 것들이 다 무용지물로 돌아간다고 하는 대 원칙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애기들을 하게 되면 상식적이고 보편적인 논리로서만 살아가는 보통사람들은 무슨 애기인지를 알아 듣지를 못하게 되니, 서로 애기가 안 통하게 되는 것이고, 그러니 애기를 전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들이나 서로 상식적이고 보편적인 것들만을 애기하게 되니, 사람들을 전부 다 상식적인 수준에 머물게 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제가 쓴 글을 보고나서, 제 글을 이해하기가 좀 어렵다고 애기하더군요.
그래서 저도 보통 사람들이 다 알아 들을 수 있도록, 가급적 글을 좀 쉽게 써볼까하는 것도 좀 생각해 보기도 하였는데, 그런데 저로서는 그러한 상식적이고 보편적인 애기들이 전부 다 아닌 것 이외에는 오직 불가능하기에, 오직 전부 다 부인이 되어짐으로서 올올이 체험이 되어진 것이기에, 오직 그 나라와 그의 의로서 덧입혀진 것이기에, 오직 그것만을 애기할 수 밖에는 없게 되는 것입니다.

부활은 상식적이고, 보편적이고, 논리적이고, 합리적이고, 이성적이고 등등... 이러한 보편적인 가치기준에 나오는 것이 절대로 아닌 것입니다.
이러한 그 모든 것들이 완전히 무용지물이 되어 전혀 딴 사람이 되기도 한 것 같은 어떤 묘한 상태에 도달되어지게 될 때에, 오직 하늘의 섭리와 그 은혜로서 스스로 가능케 되는 것, 이것이 그 모든 것들을 새롭게 하고, 모든 것들을 거듭나게 하는 생명의 부활인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의 사람들이 이러한 도를 알지 못하며, 또한 그렇게 까지 되어지는 그 과정을 싫어하기 때문에, 결국은 그러한 부활의 복에 연합을 하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도와 부활의 도는 이성적으로서 가장 비이성적이 되며, 인간으로서 가장 비 인간적이 되는 것인데, 이것을 과연 사람들이 어떻게 할 수 있다는 것인지요.
오직 무지불능인 상태로서만이 스스로 가능케 되는 하늘의 신비이자, 하늘의 영겁인 것입니다.

나는 오래 전 본래 인간이 아니였습니다. 그러니 나는 태고적 본래 인간이 아닌 모습으로 돌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길이 무엇이겠습니까?

날마다 날마다 인간인 나를 부인하며, 가장 비인간화되게 하는 그 모든 것들을 아무것도 함이 없음으로서 받아들이고, 또한 그 모든 것으로 돌려드리면 되는 것입니다.

내가 본래 사람이 아님임을 알았으니, 그런줄 알고 가장 사람이 되도록 하지 못하게 하는 그 법을 오직 기쁨으로서 받아들여, 오직 그의 나라와 그의 완전함으로 귀의시키면 되는 것입니다.

사람과 동침을 하면 부활을 낳는 것이 아니라, 애를 낳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동침을 하면 애를 낳는 것이 아니라, 부활로서 그 나라를 물려 받게 됩니다.

그런데 이렇게 사람과 동침하는 것은 사람들의 도리로서 충분히 가능한 것이지만, 하나님과 동침하는 것은 사람들의 도리가 전부 다 거짓외에 다름이 아니어야 그 일말의 가능성이 열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의 모든 종교계, 철학계, 사상계, 교육계에서 하는 말들을 들어보게 되면 전부 다 사람들이 지키고 행하여야 할 도리들만을 애기 하고 있기 때문에, 제가 보기에는 전부 다 아닌 것입니다.

가장 그럴듯하고, 논리적인 애기들만을 하고 있기에, 저로서는 전부 다 아닌 것입니다.

05-08-15 원정 "바이칼 소수민족 '아리랑.쓰리랑' 사용"01,443
05-08-09 바람 나의 궁창 나의 하늘0981
05-08-03 바람 어두움과 어두움의 그 사이01,046
05-08-02 바람 태초에(한 처음에)11,079
05-08-01 바람 창세기 강해0914
05-07-25 바람 영감에 대하여21,045
05-07-18 바람 위함에 대하여1968
05-07-13 바람 떠남에 대하여41,096
05-07-11 바람 인욕에 대하여1976
05-07-09 바람 믿음에 대하여0962
05-07-04 바람 기름부음에 대하여3989
05-06-29 바람 남김에 대하여1943
05-06-22 바람 부활에 대하여0966
05-06-16 바람 자유에 대하여1946
05-06-08 바람 돌아옴에 대하여08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