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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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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만물은 각각 저 나름대로의 독특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사람이면 사람, 동물이면 동물, 식물이면 식물, 광물이면 광물인대로 각각의 고유성, 독특성을 지니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독특성은 각자 자기자신만의 것으로 유일 무이한 것이기 때문에, 이것은 없어져서도 안되고, 훼손되어서도 안되는 절대적인 것, 다시 말해서 완전무결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독특성은 오직 자가자신만의 것이기 때문에, 다른 것이 될 수도 없으며, 또한 다른 것하고 타협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오직 본인 자신으로서의 삶만이 가능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독특성은 오직 각자 자기자신 홀로 지니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다른 것들의 입장에서 보게 될 때는 전부 다 각각의 차이로서 존재할 수 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모든 존재들은 영원무궁히 각각의 그 독특성으로 존재하게 되는 것이므로, 같은 시간(공간)대에서 서로 만나게 될 때에는 각각의 그 다른 차이만큼으로서 느껴질 수 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시간(공간)을 지나서, 상대의 독특성들이 사라진 상태에서 다시 한번 살펴보게 되면, 그것이 곧 나의 독특성으로서, 상대방의 그 독특성을 다름에 대한 차이만큼으로서 느꼈을 뿐임을 알아차리게 되면, 상대방과 내가 하나도 다르지 않고 이미 하나임을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내가 밥을 먹습니다. 그런데 내가 밥을 먹는 순간 나와 밥이 완전히 똑같은 것이라면 밥을 먹을 수가 없습니다. 각각의 독특성으로서 각각의 그 차이적 상태로서 존재하기에 내가 밥을 먹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내가 밥을 먹고 나서 다 소화시키게 되면, 밥의 독특성은 다 사라지고 오직 나의 독특성만이 존재를 하기에, 그 밥의 독특성이 다름으로서 다가와 내 안에서 온전히 소화됨으로서 오히려 나의 독특성을 유지케 하여 준 것임을 알게 되면, 그 밥을 제공하여 주신 하나님께 온전한 감사를 돌려드릴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모든 사람들이 유의 상태, 물질의 상태에서 그 모든 것들을 대할 때는 전부 다 그 차이적 상태만큼 다름으로서 느껴 질 수 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지나고 나서 무의 상태, 영의 상태에서 그 모든 것들을 대할 때는 그 차이가 없어지게 되니, 자동적으로 하나가 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모든 것들은 다 정도의 문제이기 때문에 그 다름의 차이가 작게 되면 작게 느껴지고, 그 다름의 차이가 크게 되면 크게 느껴지게 마련인 것입니다. 그래서 그렇게 다름의 차이가 작으면 작은 대로, 크면 큰 대로 그럭저럭 내 자신으로서 감당할만 하면 그런대로 살아가게 되지만, 갑자기 큰 차이가 다가와 도저히 감당할 수 없게 되면 어려움을 겪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유의 다름이 차이가 작으면 작을수록 갈등이 작아지고 마음이 그 만큼 평온함을 유지할 수 있고, 유의 다름이 차이가 크면 클수록 갈등이 커지면서 마음이 그 만큼 평온함을 유지하지 못하기에, 사람들은 마음의 평화를 위하여 본능적으로 유의 차이가 적어짐속에 있어 질려고 하게 되는 것입니다.
무더운 여름이 되어 갑자기 기온이 37도 정도 상승되였다고 할 경우, 선풍기나 에어콘을 틀게 됩니다. 유의 차이가 적어짐 속에서 마음의 평화를 얻을려고 하는 사람들의 본능인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삶은 유의 차이가 적음속에 안주하는 평화로서, 진정한 평화가 아닌 것입니다. 갑자기 유의 다름이 크게 다가온다고 할지라도, 그것을 무로 돌이켜 나 자신과 더불어 하나도 다르지 않음을 즉시 소화시켜 낼 수 있는 사람, 이것이 진정한 평화를 누리며 살아가고 있는 사람인 것입니다.
"가까이 오사 성을 보시고 우시며 가라사대 너도 오늘날 평화에 관한 일을 알았다면 좋을 뻔하였거니와 지금 네 눈속에 숨기었도다 날이 이를지라 네 원수들이 토성을 쌓고 너를 둘러 사면으로 가두고 또 너와 및 그 가운데 있는 네 자식들을 땅에 메어치며 돌 하나도 돌 위에 남가지 아니하리니 이는 권고받는 날을 네가 알지 못함을 인함이니라 하시니라"(눅19:41-44)
예수님은 성을 보시면서 우셨습니다. 왜 우실 수 밖에는 없었던 것일까요?
현재 자기네들이 좋아하는 모습으로서 각각의 상태에 안주하는 그 평화에 속고 사는 인생들의 모습이 너무도 불쌍하였던 것입니다. 지금 자기네들이 살고 있는 집이 괜찮으니, 지금 자기네 사는 형편이 그럭저럭 살만하니, 그런대로 평화를 누리며 살고 있는 것처럼 착각하는 그들의 삶이 너무도 안타까웠던 것입니다.
그러한 일시적인 평화가 도저히 감당치 못할 형국의 것으로 언제 어떻게 바뀔지 알 수가 없는 것인데, 마냥 태평치고 사는 그들의 모습들이 예수님으로서 전부 다 '아님'일 수 밖에는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한 유의 큰 차이, 다름으로서 다가와 도저히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태가 이르기 그 이전에, 나 자신을 무로 돌이켜 하나됨을 체득하여야 하는 것인데, 그들은 그러한 권고의 말은 귓등으로도 듣지 않고, 그냥 흘려버렸던 것입니다.
사람들은 문제가 없을 때는 그냥 삽니다. 그러다 문제가 발생하면 돈,인간관계,세상법 등을 통하여 해결합니다. 그래서 그렇게 해결되면 또 금방 잊고 그렇게 삽니다.
유의 차이가 없을 때는 그냥 살고, 유의 차이가 있게 되면 그것 또한 유의 차이로서 해결하려고 하는, 유위법에 머무르는 삶을 자꾸만 반복하고 있는 것입니다.
노자가 말한 '무위자연' 아무리 큰 유의 다름이 온다고 할지라도 그것을 즉시 '아무런 위함이 없이 본래 스스로 그러한 것'으로 돌이키는 것이라야 하는데, 사람들이 말과 생각으로는 '무위자연'을 알고 있으나, 그것을 정작 날마다 체득되어지는 삶으로 돌이키지를 않으니, 아무리 많이 공부해도 결국은 헛수고로 돌아가는 인생들의 어리석음이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선악법은 본래 있지 않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인생을 살아가다가 유의 다름, 유의 차이들을 만나게 될 때에 사람으로서 극복이 잘 안되다 보니까, 사람들이 선악법이 따로 있다고 본 것이요, 그러니 그러한 법을 만든 것입니다.
그러니 나는 선도 아니요, 악도 아닌 것입니다. 다만 그 차이적 상태를 '그렇다' '아니다'함으로서 통합해 내거나, 지나가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러한 차이적 상태가 통합 되면서 에너지화 될 때는 그것을 이름하여 '빛'이라고 하고, 그러한 차이적 상태가 지나감으로서 멀어지면 그것을 이름하여 '그림자'라고 하게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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