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좋은 기억과 나쁜 기억을 지니고 있다고 흔히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나쁜 기억과 좋은 기억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름하여 다 좋은 기억이외에 다름이 아닌데, 그러한 기억들을 내 자신이 은혜로 변화시키지 못하다 보니 어떤 것은 좋은 기억, 어떤 기억은 나쁜 기억으로 비추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나쁜 것은 '나쁘다'라고 하는 상을 갖게 되는데, 그러나 그렇게 나쁜 것이 지나고 나면 반드시 그렇게 나쁜 것에 비해서는 반드시 더 좋음이 오게 됩니다.
그러므로 '나쁘다;라고 하는 것은 따로 홀로 존재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전후의 '좋음'에 인연해서 잠시 나쁜 것으로 비추어진 것 외에 다름이 아닌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렇게 잠시 '나쁜 것'으로 비추어지는 것은 그것이 '좋은 것'과 홀로 떨어져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인연하고 의지해서 발생한 것이므로, '나쁜 것'도 '나쁜 것'이 아니요, '좋은 것'도 '좋은 것'이 아니라 서로 하나로 만나지는 현상외에 다름이 아님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좋고 나쁨'이 상호 의지속에서 오히려 하나됨을 온전히 이루어지게 하는 과정이라는 것을 이해하게 되면, 좋은 것을 '좋다'라고 하지 않게 되며, 또한 나쁜 것을 '나쁘다'라고 하지 않게 되어 서로 간에 갈등이 일어나지를 않게 되고, 온전한 연합이 가능케 되어지는 것입니다.

저는 요사이 몇일 동안 제가 살아온 지나온 생애를 돌아보면서, 떠오르는 그 모든 하나하나의 기억들을 더듬어 보았습니다. 옛날에 잠깐 하다가 만적이 있는데, 이번에는 제가 태여나서 지금까지 만나 제 기억속에 남아 있는 그 모든 인연들을 남김이 없이 하나하나 떠올리며, 그들을 위해 기도해 주었습니다.

떠오르면 떠오르는 대로 즉각 즉각 그들을 위해서 잠시나마 기도를 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그러한 기억들의 하나 하나가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아닌 다 은혜로 다가왔습니다. 나를 조금 좋게 대해준 사람이나, 나를 조금 안 좋게 대해준 사람이나 온통 다 은혜요 감사가 되어졌습니다.

왜 그런가 하고 보니, 그러한 인연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제가 이렇게 존재할 수 있고, 또한 제 기억속에서 그 인연들이 아직 지워지지 않아, 그들을 위해 기도할 수 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감사하고 고마웠습니다.

그러한 인연들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저는 지금 여기에 이르기까지 존재 할 수 없었고, 또한
그러한 인연들이 제 기억속에서 지워졌더라면 그들을 위해 기도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제 기억이 살아있어, 그들을 통하여 새삼 그 고마움을 알 수 있게 되었고, 또한 기도로 그 은혜에 조금이나마 보답하는 길을 찾게 되었습니다.

저는 앞으로 살아가면서, 제가 용서해야 될 인연은 없을 것 같습니다. 오직 은혜를 갚아야 할 인연밖에는 없을 것 같습니다. 아무리 갚고 또 갚아도 그 은혜를 갚을 길이 참으로 막막하지만, 그래도 살아 있을 동안 은혜 갚아야지 죽어서 어떻게 그 은혜를 갚겠습니까?

저는 여지껏 살면서 남의 도움만 받고 살았습니다. 남의 은혜만 받고 살았습니다.
이제 그 은혜 갚을 길은 제 기억속에서 인연들이 떠오를 때 마다, 그들을 위해 기도로 빌어주고, 눈물로서 그 은혜에 감격하는 것 뿐입니다.

제가 한 평생 살면서 언제 다시 이러한 생애를 살 수가 있겠습니까?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인생인 것입니다. 그러니 그러한 기억들이 은혜로서 살아 있는 한 저는 영원할 것이고, 그러한 기억들이 다 지워져 버린다면, 저도 또한 사라져 영원한 우주의 미아가 되어 그렇게 하늘을 노래하고 또 노래하게 될 것입니다.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 빚도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롬1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