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강해

죄에 대하여0

05-05-14 바람 916

죄에 대한 의미를 히브리원어로 살펴보면 '(화살이) 표적을 빗나가다'라고 되어져 있습니다.
그러므로 죄라고 하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어떤 문제가 발생하였을 때, 그 문제를 자기자신에게로 돌리지 아니하고, 바깥으로 보이는 사람들이나 사물들에게 전가시키려고 할 때에 발생하게 되는 것임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 모든 문제들의 방향이 오직 자기자신에게로만 향하여 저야 하는데, 그만 그 방향이 눈에 보이고 느껴지는 상대방으로 향하여 졌을 때, 그것이 바로 죄의 발생과 직결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서 한 평생동안 살아가면서 단 한번도 죄를 짖지 않으려면, 이 세상에서 발생한 그 모든 문제들을 보면서, 그러한 모든 문제들을 다 자기자신으로 돌릴 때, 그리고 그러한 모든 문제들을 녹여내어, 거기로부터 스스로 자유로울 때 비로서 죄를 짖지 않거나, 혹 죄를 지어도 금방 해소가 될 가능성이 열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오해하는게 한 가지 있습니다. 한 평생 살면서 나 혼자 죄짖지 않으면 그것이 죄짖지 않은 것 인줄 압니다. 그런데 그것은 만만의 콩떡인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이 잘못을 저질렀을 경우, 그것을 내 생각으로 그의 잘못이라고 판단한다면, 나의 생각으로서 그의 잘못에 참여한 것이 되니, 똑같이 잘못을 범한 것외에 다름이 아닌 것입니다. 어떤 흉악범이 사람을 엄청나게 많이 죽였다는 것이 매스컴을 통하여 보도가 되였습니다. 그러자 제가 '에이! 이 나쁜 놈'하면서 그를 욕하거나 정죄하였다면 나의 판단하는 생각으로 그의 행위에 동참한 것이 되니, 나도 그 사람과 마찬가지로 똑같이 살인죄를 범한 죄인(罪認)외에 다름이 아닌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든 사람들은 이 세상에 태여난 죄로, 어떤 한 사람이 죄를 범하였다고 한다면, 나도 결단코 거기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는 것입니다.

의(완전함)로 여긴다 함도 서로를 의존해서 발생한 것이요, 죄(부족함)로 여긴다 함도 서로를 의존해서 발생한 것이므로, 죄혹은 의라고 하는 것이 어디 별도로 나와 떨어져서 발생하는 것이 결코 아닌 것입니다.

미국의 군사들이 이라크 백성들을 죽였으면 그것도 내가 죽인 것이요,
이라크 백성들이 미국의 군사들에게 죽임을 당했으면 그것도 내가 죽임을 당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모습들을 보면서 안타깝게 여기는 사람도 내 자신이 안타깝게 여기는 것이요, 그러한 모습들을 보면서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는 사람도 내 자신이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그 모든 것들은 단 하나라도 나와 상관없는 것들이 없는 것이니, 어떠한 현상이나, 사건들을 보면서 그러한 모든 것들을 마치 다 내가 저지르기도 한 것처럼 다가온다면 그 심정이 어떠하겠습니다.

보는 것, 들리는 것, 느껴지는 것, 생각되는 것의 그 모든 하나하나가 온통 다 나의 죄에 다름이 아닌 것으로 다가오게 되는 것이니, 그 중압감은 말도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죄' 이 말씀 그대로, 말도 못하게 온갖 것들에게 죄이는 느낌이 들게 되는 것입니다.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가로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요1:29)

若見他人罪(약견타인죄) 만약 타인의 잘못을 본다면,
自罪却是左(자죄각시좌) 스스로의 잘못이 도리어 그 증거이다.
他罪我不罪(타죄아불죄) 타인은 잘못하고 나는 잘못하지 않았다고 한다면,
我非自有過(아비자유과) 나에게 스스로 허물이 있음을 나무라는 것이다.

但自却非心(단자각비심) 다만 돌이켜 스스로를 비난하는 마음이 되면,
打除煩惱破(타제번뇌파) 번뇌를 제거하게 될 것이다.
憎愛不關心(증애불관심) 싫어하고 좋아함에 마음을 두지 않으면,
長伸兩脚臥(장신양각와) 두 다리 쭉 뻗고 누울 수 있다.

欲擬化他人(욕의화타인) 타인을 교화하고자 한다면,
自須有方便(자수유방편) 스스로 방편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육조단경)

그러니 이 말씀처럼 세월이 흘러가는 과정속에서 그 하나하나를 다 나 자신의 잘못으로 돌이켜, 다 녹여낸 다음,, 내 자신이 이 세상에 단 한번도 태여난 적이 없음을, 그들이 나하고는 아무 상관도 없는 것임을, 원래 그대로의 나 이전의 모습임을 발견하게 되면, 그 모든 죄들 하고는 아무 것도 연관되어지는 것이 없게 되니, 자연적으로 진정한 해방을 맞이하게 되는 것입니다.

죄는 본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이것을 모르는게 있습니다. 내가 이 세상에 발을 딛고 사는 존재가 아님을 모르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렇게 땅에 정착하여 여기서 이렇게 사는 것처럼 여기게 되니, 세상의 빛(어두움)에 오염되어 자기도 모르는 가운데 죄에 묶여 있다고 하는 사실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러한 죄(부족함)의 오염에 물들지 않는 길은 무엇입니까?
오직 내 자신안에 있는 완전함의 빛으로 그 모든 것들이 보여지게 되면, 그러한 모든 것들이 보여지는 그 즉시 '그렇다' '아니다'함으로서 녹아지게(에너지화)되는 것이니, 그러한 허상들이 끼여들 여지가 없게 되는 것이고, 오직 내 자신의 본래 빛으로 화하는 그러한 변화적 상태만을 경험하게 되는 것, 이것이 바로 죄와 더불어 항상 같이 있으면서도, 항상 그것하고는 한번도 만나지 않는, 그 길인 것입니다.
빛이 비추면 그림자가 나타나지만, 빛이 비추어 지는 동안 그림자는 같이 있는 것이지만,
이 둘은 결코 일치됨(똑같은 시간에 똑같은 공간으로)으로 만날 수 없는 이치와 같은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비록 그림자일 망정, 그것에 한번 빛이 비추이게 되면, 이미 인연은 시작된 것이니, 언젠가는 그 그림자가 그 빛을 따라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전에 말하기를 내 뒤에 오는 사람이 있는데 나 보다 앞선 것은 그가 나보다 앞선 것은 그가 나보다 먼저 계심이라 한 것이 이 사람을 가리킴이러라"(요1:30)
지금 이 순간 나의 자아는 내 내면의 빛이 투명되어져 나오는 과정속에서 그렇게 임시적으로 있는 것처럼 보여지는 그림자(바깥 부분)입니다. 그러니 그 빛으로 나 자신을 비추어 보게 되면, 나는 항상 나중이요, 그 빛은(참나의 빛) 항상 앞서 있는 것인 것입니다.

무지개를 보면 잡힐 것 같아 막상 쫓아가지만 쫓아가면 갈수록 오히려 더 멀어지는 것 같은, 이 세상 우주만물의 그 모든 이치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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