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 오신 날과 아버지에 관한 추억
법현
2005-05-11 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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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교이야기 ]
어려서 여우 나오는 산골에 살았다.
마을 앞뒤와 양옆이 모두 산으로 둘러싸이고
그 사이에 자그마한 시내와 몇 마지기씩 지어먹는 논이 있었다.
그 논에 물을 대기 위한 저수지가 있어서
여름에는 수영장으로, 겨울에는 얼음을 지치는 썰매장으로 매우 쓰임새가 좋았다.
저수지 위에는 소나무 밭이 넓게 펼쳐져 있었는데
네 살 무렵인가 할아버지 등에 업혀가서
시원하게 물위로 불어오는 바람과 함께
물질하는 왕잠자리를 보았던 추억이 아스라이 남아있다.
이런 시골에서 자라난 내가 청운의 꿈을 안고
아버지, 어머니를 따라서 서울 근교인 평택으로 올라와 학교를 다니게 되었다.
아버지는 약주가 들어가서 거나해지면
나를 불러놓고 벗을 잘 사귀어야 한다며
‘돼지를 잡아 지게에 싣고 다니며 살인한 것을
해결해 달라는 부탁을 들어주는 벗’이 진짜 벗이라는 이야기나,
형제끼리 우애가 있어야 한다며
‘싸리나무를 하나 꺾는 것은 쉬워도 세 개 이상은 어렵다’는
이야기 등을 재미나고도 간곡하게 해 주셨다.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도 나중에 커서
저런 좋은 이야기들을 재미나게 해 주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중학교,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한 시간여를 걸어서 다녔는데
돈도 시간도 아끼기 위해서는 산길을 걸어서 다녀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버스를 타거나 상여집을 지나야 했으므로
호젓하지만 산길을 사랑했는데
어느 날인가 지나는 길목에 ‘불교학생법회’안내가 붙어 있는 것을 보고
명법사라는 작은 절에 가서 처음으로 스님의 법문을 듣게 되었다.
이상하게도 전혀 처음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고,
내가 이미 잘 알고 있었던 이야기를 듣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그 날 이후 부처님에 대한 나의 믿음은 날로 늘어나고
청년회 회장, 어린이 법회 교사, 학생회 지도법사 등을 역임하며
신앙의 길을 걸어가게 되었다..
그런데 그런 나의 모습을 바라보는
아버지의 안색은 썩 좋아 보이지 않았다.
그것은 ‘세상에 태어나서 누구에게 기댈 것이 있느냐?’는
당신의 소신에 따라
‘부처에게 기대고 무엇을 달라고 비는 것이 아닌가?’하는
뜨악한 생각에서 그런 것이었다.
그래서 가끔 절에 한 번 오시라는 권유에도
빙그레 웃으면서 “아드님이나 잘 다니셔...‘하셨던
당신께 어느 부처님 오신 날 절에 오시라고 말씀드렸다.
당시에는 우리나라 민요에도 나오듯이
‘화전놀이’에 이어서 ‘관등놀이’를 하던 시절이어서
연세 드신 분들에게는 정말로
좋은 ‘휴가’로서의 의미를 갖는 날이 ‘초파일’이어서
하루 종일 산에서 친우들과 약주도 드시고
노래도 부르고 노시다가 해질 무렵에서야
아들 생각이 나셨던지 절에 찾아오셨다.
취흥이 도도한 모습으로 찾아오신 아버지를 부축해서
도량 곳곳과 법당을 소개하고 스님들께 소개를 시켜드렸는데
참으로 기뻐하셨고 나도 속으로 정말이지 기뻤다.
어떻게 생각하면 부처님 오신 날 약주에 취해서
비틀비틀 오셨던 것이 어색하게 느껴질 수도 있었겠지만
그 취기에도 아들의 당부를 기억하고 찾아오셨다는 것이
더욱 크게 느껴졌던 것이다.
이제 그렇게 비틀거리면서 찾아오실 아버지는
저 세상으로 가시고 나는 출가해서 수행자가 되었지만
부처님오신 날 도량에 등을 걸면서
가끔씩은 비틀거리면서 산문 안으로 들어오시는
아버지를 만나는
꿈같은 상상을 해 본다.
*제가 서울 갈현동 역촌중앙시장 2층에 둥지를 틉니다.
열린선원이라고...5월14일 오후 4시에 부처님 오신날 기념법회를 보고
6월5일 오후 2시에 개원법회를 봅니다.
여러분 오셔서 같이 하셔도 좋습니다.
지하철 6호선 구산역 4번 출구에서 3분 거리
02-386-4755,4720 입니다.
여러모로 축하드립니다.
아제 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사바하.
01052450370 제 번호입니다. 법현합장
참으로 가슴이 따뜻한 분이셨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