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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강해
부증 불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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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5-10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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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오스이론에 의하면 중국대륙에서의 한 나비의 날개짓이 태풍의 원인이 될 수 있다고 합니다. 그것을 다른 말로 말하면 처음에는 지극히 미세한 움직임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세월이 지나가면서 이러한 것들이 무수히 쌓이고 쌓이면 거대한 태풍이 될 수도 있다는 애기일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들이 알아야 할 것은, 한 나비의 날개짓이라 하여 그것이 지극히 작은 것이며,
큰 태풍이라 하여 그것을 지극히 큰 것이라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물론 사람들의 눈에는 하나는 지극히 작고, 하나는 지극히 크다라고 보여지겠지만, 이것은 사람들이 육안으로, 피부로 그렇게 느껴지는 현상일뿐, 실상은 지극히 작고, 지극히 큰 것도 아닌 본래의 그 모습 그대로일 뿐인 것입니다.
각각의 그 세계대로 원래의 모습일 뿐이니, 이것을 이름하여 부증불감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더 커지는 것도 없고, 더 작아지는 것도 없이 항상 그 상태 그대로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수행을 한다고 하는 것은 뭔가가 더 작아지고, 뭔가가 더 커지고 하는 현상들에 미혹당함이 없이, 본래의 그 모습 그대로를 통찰해내는 능력이라고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흔히 하는 말로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보통사람들은 크고 센 스침은 혹 인연이 될는지 몰라도, 작고 미세한 스침은 인연이 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전자의 것은 감지를 하지만, 후자의 것은 감지를 못하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오관의 감각과 느낌을 의존하여 알기 때문에, 오관의 것을 벗어나있는 능력의 것은 전혀 감지를 할 수가 없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런데 부처님은 그러하지 않습니다.
부처님앞에서는 한 나비의 날개짓이나, 태풍의 위력이나 다 같음으로 와 닿아지는 현상외에 다름이 아닙니다. 부처님은 오관의 감각이 이미 공합니다. 그러니 미세한 움직임이나 큰 움직임이나 차이가 없습니다. 그러니 부처님은 미세한 움직임이 태풍과 같은 위력으로 다가옴에 다름이 아니고, 태풍과 같은 위력이 미세한 움직임외에 다름이 아님을 영감으로서 바로 바로 알아차리게 되는 것입니다.
아주 지극히 미세한 움직인 인데, 그것이 오히려 아주 큰 움직임과 그만한 위력으로
아주 큰 움직임인데, 그것이 오히려 지극히 미세한 움직임과 그만한 위력외에 다름이 아님을 진정으로 알아 차릴 수 있다면, 그는 오관이 공함을 몸소 체득한 사람이다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만약에 나비가 태풍의 위력을 미세한 바람외에 다름이 아님으로서,
큰 코끼리가 미세한 바람을 태풍의 위력외에 다름이 아님으로서 다가와 질 수 있다면,
나비는 더 이상 그 나비가 아니며, 코끼리도 더 이상 그 코끼리가 아닌 것입니다.
이름하여 자연계의 본래 그 모습 그대로인 것입니다.
제가 공무원시절 때 온갖 고민으로 인하여 상당히 피곤하고 탈진해 있는 그러한 상황에서 하루는 세금고지서를 돌리느라고 어떤 골목길을 걷고 있었는데, 어떤 작은 어린아이가 나를 보더니 '아저씨! 안녕하세요'하면서 반갑게 인사를 하는데 얼마나 위로가 되든지 금방 기쁨이 회복되는 것을 경험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내가 만약 그 상황속에서 평소의 모습이였다고 한다면 전혀 위로가 되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오관의 감각이 녹초가 되어 영혼이 피곤해지자, 영감이 자연적으로 민감해 진 것이고, 그러자 그렇게 작고 미세한 말 한마다가 상당히 큰 능력으로 다가왔던 것입니다.
그리고 또한 한가지 생각해 보아야 할 점은, 만약에 그렇게 반갑게 인사를 하였던 사람이 큰 어른이였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좀 좋기는 했겠지만, 그렇게 큰 위로를 받지는 못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면 왜 그러한 것일까요?
나의 육체가 온통 피곤함과 녹초로 지쳐있게 되자, 나는 본래 아무것도 아닌 그 모습 그대로가 되었습니다. 더 이상 어떻게 할 수 없이 육체가 피곤해진 결과 나 자신도 모르는 가운데 영혼이 부증불감의 그 상태에 놓여지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상태에서 아주 작고 보잘것이 없다고 여겨지는 대상으로부터 위로의 말을 듣게되자, 상당한 감동을 얻게 된 것입니다. 즉 내 자신이 아주 작고 보잘것이 없는 수준에 다다라지자 그러한 상태에서 부증불감의 원리로서 그러한 수준의 것을 만나 한없는 위로를 받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 어떤 큰 어른이 그러한 말을 하였다면, 그때 그 당시의 저로서는 도저히 그러한 수준에는 미치지 못하는 것이니, 그 말이 진정 위로의 말로서 와 닿아질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어떠한 사람이라도 각각이 그러한 상태의 것이 되어야 스스로 그러한 부증불감의 원리가 알아차려지는 것이지, 생각과 느낌으로서 알 수 있는 것이 결코 아닌 것입니다.
부처의 세계에서는 그 모든 중생들이 부처와 다름이 아님으로서 즉즉 와 닿아지지만, 중생의 세계에서는 부처(큰 것) 따로, 중생(작은 것) 따로의 모습으로 밖에는 보이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부처의 세계에서는 북경에서 부는 작은 미풍이나, 태평양에서 부는 큰 태풍이나 시공을 초월한 이미 하나인 것이나, 중생의 세계에서는 그것이 각각 따로 존재하는 것으로 밖에는 보이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텅 빔에 이르기를 지극히 하고, 고요함을 지키기를 돈독히 하면
만물이 무성하게 일어나지만 나는 그 돌아감을 보노라.
대저 만물은 많고도 성(盛)하지만, 제 각각 그 근원으로 돌아간다.
근원으로 돌아감을 가로되 고요함[靜]이라 하고
이를 일컬어 본성(本性)을 회복한다고 한다.
본성을 회복함을 '상(常)' ― 참된 것, 영원한 것, 변치않는 것 ― 이라 하고
이 '상(常)'을 아는 것을 밝다[明] 한다.
상(常)을 알지 못하면 망령되이 흉사(凶事)를 짓게 되나니,
상(常)을 알면 포용하게 되고,
포용하게 되면 공평하게 되며,
공평하게 되면 자기 자신과 삶의 진정한 주인[王]이 된다.
이렇게 '주인됨'에 이르러 짐이 곧 하늘이며,
스스로 그러한 하늘에 이르러 짐이 곧 도(道)요,
스스로 그러한 도(道)에 이르러 짐이 영원하나니,
몸이 다하도록 위태롭지 않다.
(도덕경 16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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