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루살렘 이야기

다섯 번째의 법정5

04-12-15 김춘봉 1,133




  소란스러워 밖을 내다보니 사람들이 떼를 지어 몰려왔다. 가야바는 간밤에 안나스 집에서 벌어진 일을 하인을 통해 알고 있는 터라 느긋한 기분으로 무리 앞에 섰다.  


  죄인에 대한 심문은 이미 그곳에서 끝이 났을 것이고, 자신은 요식행위에 불과한 수순을 밟아주면 된다. 그쪽에서 보내오는 사건에 대해서 가야바는 가타부타 말할 계제가 아니다. 안나스가 정한 죄질에 따라 형량을 구형하면 된다. 이러한 관행에 대해서 편하게 생각하면서도 기분 나쁠 때도 있었다. 오늘이 바로 그런 날이었다. 고발당한 사람은 어제 성전 뜰에서 본 바로 그 젊은이였기 때문이었다. 


“세상에 이럴 수가!” 


  탄식이 저절로 나왔다. 젊은이가 랍비들로부터 미움을 받고 있었으리라 짐작했지만, 안나스 법정을 거처 이런 식으로 나타나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고발자 중에 구슬이 치렁치렁 달린 검은 외투 차림의 랍비는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젊은이를 법정에 세울 명분을 찾지 못했음이 분명했다. 명분을 찾았다고 하더라도 논쟁을 벌여 이길 자신이 없으니 차라리 뒷전에 숨어 무리를 조종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했던가? 고발 자들은 말도 되지 않는 소리를 해댔다. 

“이 자가 성전을 비방했습니다.” 

젊은이가 광야의 패거리라는 소리였다. 

  또 다른 고발 자는 젊은이가 거룩하신 분의 이름을 모독하더라고 했다. 야훼를 함부로 입에 담으면 죄가 된다는 사실을 모르는 백성이 있을까? 그래서 죄를 피할 요량으로 야훼를 아도나이(나의 주)라 불렀다. 젊은이가 그것도 구별하지 못할 사람으로 여겨지지 않았다.

그런데 우연히 밖을 내다보게 된 부인 자우레가 호들갑을 떨면서 갈릴리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그래서 젊은이는 회당소속 랍비나 광야의 엣세네인들 그리고 시카리당원들과 다른 이야기를 하고 다녔다는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젊은이는 간절히 소망하는 사람들에 의하여 변화하는 세상, 생명의 텃밭에서 일하는 사람이 대접받는 시대가 올 것이라 이야기했다니, 그것은 풍요로운 세상을 추구하는 사두개인들의 이념과 일치하는 내용이었다.

  사두개인들은 사람이 죽어서 간다는 내세 따위를 믿지 않았다. 부활 같은 것은 더더욱 믿지 않았다. 그들은 오직 현세가 중요하다고 여길 뿐이다. 민족, 집단, 공동체를 위해 기여하는 나를 생각하는 것은 유대교의 전통이며 핵심과제다. 따라서 개인주의에서 비롯된 영혼이나 부활 같은 것은 이교도적 발상에 지나지 않는다고 여기고 있었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가야바랍비들이 젊은이를 미워하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젊은이가 주장하는 생명의 메시지와 사두개인들이 추구하는 풍요로운 세상은 동일한 어감에서 나온 말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랍비들은 사두개인들이 젊은이를 받아들이기 전에 제거할 필요가 있다고 보았을 것이다.

  사안이 사안인 만큼 신중에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었다. 가야바는 무리를 남겨두고 안나스 집으로 달려갔다. 젊은이가 무슨 말을 하고 다녔는지 알게 된다면 그 또한 반기리라 여겼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가야바를 대면한 자리에서 안나스는 늙은이답지 않게 화부터 내는 것이었다. 

“사마리아인들도 우리의 형제요 이렇게 말한 자야.” 

  여기에 대해서 반론을 제기하지 못했다. 젊은이 입에서 충분히 나올 수 있는 말이기 때문이었다.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고민하는 가야바를 향해 안나스가 일격을 가했다. 

“이 사람아! 온 세상이 멸망하는 것보다는 한 사람이 대신해서 죽는다 생각하게.”

  이 말은 전직 대제사장의 당연한 발상이기도 하려니와 가축을 죽여 제사를 드리기 좋아하는 백성의 정서에도 맞아떨어지는 소리다. 가야바는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안나스를 설득하려다 오히려 설득을 당한 꼴이 된 가야바가 돌아와 보니 고발 자들과 젊은이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하인들의 보고에 의하면 무리 중 누군가가 이렇게 소리치더라는 것이었다. 

“총독에게 갑시다.”

그렇게 해서 그들은 떠나갔고, 가야바는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 * -



  총독은 그 때의 일을 술회하면서, 자신의 심정을 이렇게 털어놓았다. 

“민란이라도 일어날 것 같은 분위기였다니까요.”

  총독은 역적모의를 하던 아그리피나가 폰티아 섬에, 그녀의 두 아들이 감옥에 들어가 있다는 이야기를 전해들은 바 있으며, 집정관 세이아누스로부터 히스파니아 총독 루키우스 아렌티우스를 직권 남용과 부정행위로 원로원에 고발했다는 내용의 공문을 받은 터라 아무쪼록 말썽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는 중에 발생한 사건이라서 마음에도 없는 판결을 내리게 되었다는 말을 하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고발 자들이 더럽힘을 받지 아니하고 유월절 음식을 먹으려고 이방인 처소에 들어가지 않으려 하기 때문에 하는 수 없이 총독이 집무실 밖으로 나와 안토니요새 뜰에서 심문을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처음 찾아 왔을 때는 심문 과정에서 젊은이가 많은 것으로 고소를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한 마디도 대답을 하지 않기 때문에 유대교 특유의 파별 싸움이려니 생각하고 구실을 찾던 중 갈릴리 출신이라는 사실을 알고 자기 구역이 아니라는 핑계로 물리치는 데 성공을 하였지만, 안티바가 찾아와서 자기가 당한 일을 전하고 간 다음 두 번째, 그러니까 젊은이 입장에서 볼 때 다섯 번째의 법정에서는 총독이 타협을 시도했다고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안티바는 고발 자들이 유대 왕을 사칭한 자를 잡아왔다고 했을 때 공허하게 웃으면서,

‘허허허 … 그것 참. 지금도 유대 땅에 왕이 존재하는가? 존재하지도 않는 왕을 사칭했으니 그것은 티베리우스 황제를 능멸하는 것일세. 로마에 가서 알아보게.’ 이렇게 말해 주자 아무 소리도 못하고 물러가더라는 것이었다.

  하기야, 대를 이어 왕권에 도전하던 에제키아 후손에 대해서 안티바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에제키아의 아들 유다가 갈릴리에서 반역을 도모할 때(서기6년) 곤혹을 치른 헤롯 일가이고 보면, 유다의 아들들 -야고보와 시몬 형제, 그들의 사촌들이 갈릴리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을 것이고, 엉뚱한 사람을 붙잡아 와서 왕을 사칭한 자라고 했으니 웃음이 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헤롯가문의 숙적이기도 한 에제키아 후손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들은 아겔라오를 몰아내기 위해 유아살해 운운하면서 황제에게 탄원서를 올렸던 안나스 계열 사람들이고 보면, 안티바는 더 이상 그들을 적으로 여기고 있지 않았음이 분명했다.    

  총독은 축제기간을 앞두고 무슨 대단한 일이나 되는 것처럼 사람들이 떼를 지어 몰려다니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여긴 나머지 어떤 식으로라도 마무리를 지어야겠다고 생각하면서 일단 젊은이에게 주어진 혐의를 인정 하는 척 하다가 축제 기간 중에 사면하는 관례를 통해 방면하면 된다고 편하게 생각했다는 것이다. 이 때 부인 프로크라의 조언이 있었고, 그녀를 안심시키려는 뜻에서 사면 소리가 나왔으며, 내친 김에 그 말을 하고 말았다는 것이다.

“사면을 반대합디다. 그래서 화가 나기에 바라바를 들먹이며 엄포를 놓았습니다. 그러니까 마음대로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참으로 난감하더군요.” 

  그 말은 맞는 말이었다. 바라바는 사면 즉시 어디론가 숨어 버렸다. 이처럼 총독이 사건을 마무리 지으려고 마음먹을 때, 승기를 잡았다고 판단한 어느 고발 자가 소리치더라는 것이다. 

“죄인을 십자가형에 처하시오” 

그 후로는 군중심리가 발동하면서 사건은 걷잡을 수 없는 단계로까지 치닫게 되고, 예상치 못한 결과에 놀란 총독은 본의 아니게 죽음의 자리로 내주게 된 것이란다.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결과가 아닐 수 없었다. 아무리 경황이 없었다고 하더라도 총독이 살인 집단의 괴수를 놓아줄 수 없는 노릇이었다. 게다가 무고한 젊은이를 십자가상에서 죽게 했으니 백성의 안위를 책임져야 할 총독으로써는 적절치 못한 행동이 분명했다.

만에 하나, 이 사실이 황제에게 알려지기라도 한다면 총독은 문책을 면할 방도가 없을 것이다.

  이처럼 젊은이 사건은 미묘한 감정 대립이 작용한 사건이며, 가야바는 전 과정을 통해 그 개연성을 증명해 보일 수 있었다.  

  젊은이 사건에 대해서 이토록 무기력했던 총독은 지성인으로서 부끄러움을 느낀다면서 잠시 회상에 잠기더니만 별명 비슷한 말을 늘어놓았다.

“하인이 가지고 온 물에 손을 씻으면서 이 사람 피에 대해서 나는 무관하니 너희가 당하라 말하기 무섭게 우리와 우리 자손이 책임질 것이요 합디다.”            

의미심장한 말이 오고간 셈이다. 말썽의 소지가 있기 때문에 여운을 남겨두려는 총독의 계산된 의도가 깔려 있는 대목이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젊은이가 애처로운 나머지 자신의 외투를 벗어 어깨에 걸쳐 주면서 ‘너는 이 시간부터 유대 왕이다. 당당한 모습으로 저들에게 가거라.’ 속삭여주었다는 것이다.

그리고도 분이 풀리지 않아 나사렛 사람 유대인의 왕이라고 히브리, 아람, 로마 세 나라 글로 쓰게 한 뒤 그 팻말을 십자가 형틀 위에 매달게 했다면서 야릇한 미소를 지어보이기까지 했다. 그것은 분명 자학이었다. 

“강도 둘을 함께 죽인 이유가 무엇입니까?”

총독은 손까지 흔들면서

“아! 특별한 이유는 없었습니다. 사람을 죽이지 못해 안달하는 것 같아 풍성한 자리를 마련해주었을 뿐입니다.” 

  이 말을 듣는 순간, 가야바는 모든 상황이 랍비들 쪽으로 유리하게 전개된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랍비들은 젊은이 생전에 수모를 받았을 것이고, 이제 강도들과 함께 죽임을 당했으니 한통속의 범죄자로 비하해도 무방하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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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04-12-16 원정
    계속 힘내십시오.
    김춘봉 선생님의 글을 통하여 많은 사람들이 자기 중심적인 사고에서 벗어나기를 기원해 봅니다.
    저는 그저 감사히 읽겠습니다.
  • 04-12-22 김춘봉
    적절한 시기에 용기를 주시는 원정님,
    부족한 제가 감당하기에 벅찬 일을 벌려놓고
    고심 중에 있었습니다.
    고맙습니다.
  • 05-01-30 김춘봉
    저에게 용기를 주시는 말씀이라 여기 옮겨 놓습니다.

    원정(2005-01-15 10:29:57)
    김춘봉님의 글을 통하여 제 인생이 깊어질 수 있어서 감사하고 또 감사합니다.
    예루살렘 이야기를 개신교 사람들이 많이 읽어서 새로운 눈으로 이 세상을 바라 볼 수 있기를 고대해 봅니다.

    김춘봉(2005-01-16 04:32:27)
    생각은 풍성하나, 글로 표현하기가 이토록 어려운줄 예전에 미처 몰랐습니다.
    몇 자 끼적이다가 실망하며 돌아앉기 예사입니다.
    그래서 어설픈 글 사이트에 올려놓고 쫓기는 심정으로 다듬고 있습니다.
    조금 전에도 글을 수정하고 얼마나 부끄러워했는지 모릅니다.
    부족한 제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원정님을 비롯해서 격려해 주시는 분들이 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앞으로도 더욱 정진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05-01-30 원정
    전 이렇게 생각합니다.
    예루살렘 이야기는 책으로 출간이 되는 날까지 여러 번 퇴고가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그 책이 출간이 되면 사고의 유연성이 없는 일부 개신교들에게 새로운 시간과 공간에서 사물을 바라보게 만들것입니다.
    김춘봉님의 노력은 이 세상을 좀 더 아름답게 만들고 김춘봉님 스스로를 천국으로 이끌 것입니다.
    책이 출간이 되기도 전에 이미 책을 구입하고 싶은 사람이 여기 있으니 힘내십시오.

  • 05-01-30 김춘봉
    원정님께서는 혜안을 지니고 계심이 분명합니다.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계란 장사는 알이기를 고집하겠지요.
    그러나 언제까지나 무정란을 생산하는 처지에서
    오늘을 살아야 합니까?
    아무리 싸질러도 그것은 생명이 아니기에
    저는 수탉이기를 고집합니다.
    젊은이들 사고가 부화의 과정을 거쳐
    진정한 생명을 다시 품는 그날까지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시작에 불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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