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루살렘 이야기

총독 빌라도 부인, 프로크라0

04-07-30 김춘봉 1,287


 


  본디오 빌라도는 나이 40을 넘기면서 보람 있는 일을 해보려던 참이었다. 부인 프로크라가 나서는 바람에 속주 총독 직을 제수 받게 되었다. 아우구스투스(B.C.27~A.D.14) 황제의 손녀딸이기도 한 프로크라의 청을 티베리우스(A.D.14~37) 황제가 들어준 것이다.


그런데 정작 기뻐해야 할 본디오 빌라도 표정이 밝지 않았다.


“하필이면 유대야!”


이렇게 투정하는 그를 향해 

“피라투스(빌라도)는 창으로 무장한 자라면서요? 황제께서는 당신 이름이 마음에 든다면서 유대는 정무보다 군무에 밝은 사람이 가야 한다는 말까지 하시더군요.”

  빌라도는 처가 덕만 본 것이 아니라 이름 덕도 본 셈이다. 그런데 자신의 이름에 대해서 자랑스럽게 여긴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개명을 생각해 보기까지 했으니 말이다.



                                -  *  -



  사해에 도착하기까지 빌라도와 프로크라 두 사람은 별 다른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 프로크라는 나름대로의 기억 속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총독이 마차에 남아 있으라는 눈짓의 의미를 알고 있었다. 심각한 병적 증세, 여자와 아이들을 기피하는 수도원 사람들에게 그녀의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는 총독의 배려가 있기 이전부터 프로크라는 수도원 사람들을 경멸했다.

‘순진한 자들을 넘어지게 만드는 모든 여인들로부터 지켜주소서, 율법을 모르는 여인의 아름다움 때문에 속지 않게 해주시고 …’ 대제사장 부인 자우레가 그들을 흉내 내면서부터였다.

  갈릴리 지방은 이곳과 너무도 대조적이었다. 잔잔한 호수에서 고기를 잡는 어선의 풍경이 좋았고, 나무들은 푸르렀고, 꽃은 아름다웠다. 참으로 살기 좋은 곳이 구나 탄성이 절로 났다. 더구나 빌립의 아내가 외출하자고 꼬드겼을 때의 일은 소중한 기억들이었다.

  혼례가 끝나고 신랑신부가 여행을 떠난 뒤였다. 헤로디아와 자우레 그리고 프로크라가 담소를 나누는 자리에서 빌립의 아내가 말했다.

“구경 가시지 않겠어요?”

빌립의 아내는 익살스러웠다. 그녀는 여자의 내면 깊숙이 숨겨 둔 끼를 자극했다.
“젊고 잘 생긴 남자가 있어요.”
헤로디아가 호들갑을 떨면서

“어머머, 큰일 내시겠네!”

그녀는 호기심이 동하면서도 내숭을 떨고 있었다.

“염려하지 마세요. 그 사람 말이 하도 신통하고 예사롭지 않아 해 본 소립니다.”

자우레가 맥 풀린 소리로 물었다.

“랍빈가요?” 

빌립의 아내는 고개를 흔들기까지 하면서,

“가 보시면, 알게 됩니다.”
마침내 여인들은 작당을 했다. 남편 모르게 다녀오기로.

“검소한 차림에 화장을 지우는 것이 좋겠어요.”
빌립의 아내 말에 자우레가
"좋아요. 나는 농부의 아내처럼 차릴게요." 했다.

헤로디아는 배를 앞으로 쑥 내밀면서

“어때요? 임산부 같지 않아요?” 해서 한 바탕 웃었다.

  시가지를 뒤로하고 능선에 사람들이 모였다. 호수가 내려다보이는 지점이다. 여자와 아이들, 그리고 노인이 대부분이다. 네 여인은 면사포로 얼굴을 가렸지만 귀부인 티를 감추지 못했다.

  무리 속에 앉아 있던 사람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빌립의 아내가 눈짓을 했다. 세 여인은 그 사람을 주목했다. 잘났다거나 체격이 크다거나 하지 않았다. 그저 평범한 젊은이였다.

대중 앞에서 이야기를 할라치면 헛기침을 하기 마련인데 젊은이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는 반응을 살피거나, 음성의 톤을 바꾸는 그런 유형의 사람도 아니었다.
  저 멀리, 밭에서 일하는 농부의 모습이 보였다. 젊은이는 그림 그리는 사람이 사물을 들여다보듯 그쪽을 바라보면서,

“예언자의 시대는 끝났습니다. 이제는 간절히 소망하는 사람들에 의하여 변화되는 세상을 보게 됩니다. 생명의 텃밭에서 일하는 사람이 대접받는 시대가 열리고 있습니다. 돌에 새겨진 계명의 단계를 뛰어넘어 생명, 그 비밀스러움을 펼쳐 보이는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젊은이는 잠시 말을 중단하고 깊은 상념에 젖는 듯 했다.

다시 무리를 둘러보면서,

“생명은 모세가 미처 발견하지 못한 또 다른 언약입니다. 주위를 둘러보십시오. 하늘과 땅과 호수와 그리고 여러분이 있습니다. 생명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젊은이는 가까이 있는 들꽃을 가리키면서

“저기 꽃에 벌이 찾아들고 있군요. 분명 꽃 속에 무엇인가 있습니다. 사람에게도 여기에 상응하는 보물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것을 우리는 사랑, 진실, 지혜, 성실함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이와 같은 보물을 가지고 세상에 태어납니다. 세상은 이런 보물에 의해서 풍요로워지는 것이랍니다.”
  프로크라는 한 순간, 젊은이에게 압도당하는 기분이었다. 찡하고 가슴에 와 닿는 그 무엇인가 가 있었다. 노래를 부르고 싶을 때 선창하는 사람이 있으면 기쁨이 배가되는 법이다. 프로크라는 그런 기분에 빠져들고 있었다.

“자기 분량의 달란트를 쏟아 놓고, 풍성해진 자리가 천국입니다." 

보물 대신에 이번에는 달란트였다. 천국에 대해서 헤로디아에게 물은 적이 있었다. 그녀는 알아듣게 설명하지 못했는데 젊은이는 수월하게 풀어나갔다. 

 "농부는 겨자씨 한 알이 어떻게 우람한 나무를 키워내는지 알지 못합니다. 그러면서도 씨를 뿌리고 가꿉니다. 사람이 어떻게 천국 문을 열고 풍성함을 가져올까 궁금합니다. 그러나 사람이 아니고서는 그 일을 감당할 존재가 없습니다.”

  너무나도 당연한 이야기가 아닌가? 모두가 알고 있고, 또 그렇게 살고 있으면서도 생소하게 들리는 이유가 무엇일까?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간다고 누가 말했는가? 젊은이는 그렇게 말하는 자들을 향해 모르는 소리 하지 말라고 나무라는 중이었다.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 프로크라는 괜히 화가 났다. 지금은 저토록 조용히 말하는 젊은이도 한 때는 분노에 치를 떨었을 것이다.

‘어리석고, 미련하고, 소경 된 인도자들이여! 너희의 무식함으로 말미암아 고귀한 생명이 하찮게 여겨지는구나.’ 이렇게 탄식했을 것 같았다.

  젊은이는 계속해서 실물교훈을 말해주고 있었다.

"정성이 어디에 있습니까? 알을 품고 있는 어미 새 품속에 있습니다. 용맹함이 어디에 있습니까? 맹수의 날렵함에 있습니다. 사랑과 자비가 어디에 있습니까? 보살피는 손에 있습니다. 생명은 스스로 나아갈 줄 알고, 감쌀 줄 알고, 풍요롭게 합니다.”

  젊은이에게는 유대인, 사마리아인, 이방인, 남자, 여자의 구별이 없는 것 같았다. 하늘에는 구름 한 점 없이 푸르기만 했다. 돌아오는 길에 여인들은 들떠 있었다.

“젊은이에게 젖을 먹여 키운 여자여! 복 있을 지어다.”

  헤로디아가 또 다시 배를 쑥 내밀며 익살을 떨었다. 모두가 허리를 휘어잡고 한바탕 웃었다. 자유를 쟁취한 자의 기쁨이 여기에 더하랴 싶었다. 자우레가 무척이나 좋아했다.
  유대 여자는 월경 중이거나 사내아이 출산 이후 40일, 여자아이는 80일 동안 이방인 뜰에도 들어가지 못한다고 했다. 생명이 태어나는 순간을 그들은 불결하다는 말로 자신들의 무식을 드러냈다. 이 무식은 도가 지나쳐 딸에게 토라를 가르치지 않았으며, 여자는 모든 면에서 남자보다 열등하다는 편견에 빠지게 했다. 여자를 노예처럼 취급하거나 계명을 지킬 의무마저 없다고 무시했다.

  광야의 수도원 사람들은 여자와 결혼하지 않았으며, 의의교사란 자는 부모와 형제자매를 미워하지 않으면 자신의 제자가 될 수 없다는 말까지 한다는 것이었다. 랍비들조차 말을 많이 하면서도 유독 여자 앞에서 함구 했다. 자우레가 슬그머니 이런 말을 했다.

“귀족 가문에서는 딸에게 그리스어를 가르친답니다.”

그 말은 맞는 말이었다. 그녀는 예절이 바르고 교양이 있었다. 극히 일부이긴 하지만 여자에 대한 인식을 조금씩 달리 하는 모양이었다.

  마차가 멈추었다. 프로크라는 한동안 눈을 감고 있었다. 갈릴리 생각을 하다 보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마차에서 내린 그녀는 훤하게 펼쳐진 사해를 보면서 슬픈 생각마저 들었다.

소금기가 너무 많아 포말이 수면에 널려 있었다. 그것이 보기 싫었다. 발에 밟히는 진흙의 감촉도 수상쩍었다. 물속에 살아 움직이는 물체라고는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요단강을 거슬려 올라가면 갈릴리 호수가 있지 않습니까?”

프로크라가 물었다.

“그래서요?”
총독은 당연한 말을 하는 그녀를 향해 건성으로 대답했다.

“모든 생물은 환경의 지배를 받기 마련입니다. 사람도 예외일 수 없습니다.”

총독은 영문을 몰라 멍하니 바라보기만 했다.

그녀가 다시 물었다.

“예루살렘 주변에는 광야와 사해가 있습니다. 이처럼 열악한 환경에서 살다보면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요?”

“새 하늘과 새 땅이요.”

프로크라는 사해를 향해 고함을 질렀다.

“요단강을 탯줄처럼 달고 있으면서 물고기를 거절하다니!”

이번에는 수도원을 향해 소리 지르는 것이었다.
“모태를 외면하는 망가진 군상들이여!”



                                -  *  -

 

  프로크라는 축제기간이 임박해질 때쯤이면 안토니요새의 깊숙한 내실에 들어 앉아 있곤 했다. 젊은이 사건 때도 마찬가지였다. 스르피티우스가 찾아와서, 이번 송사는 아무래도 이상하다는 말을 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변함이 없었다.

  과묵하기로 소문난 스르피티우스가 이상하다는 말을 할 지경이니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그래서 재판과정을 지켜보게 되었으며, 그 자리에서 생명의 메시지를 들려주던 젊은이를 발견하게 된 것이다.

  그러니까 두 번째로 고발 자들이 총독을 찾아 왔을 때였다. 고발 자들이 젊은이를 앞세우고 이리저리 몰려다니는 꼴이 보기 싫어 총독이 유죄를 인정한 직후였다. 따라서 모두들 사건은 종결된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여기고 있을 때 프로크라가 한 마디 했다.

 “당신은 상관하지 마세요. 지난밤 꿈에 저 사람으로 인해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그녀는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젊은이를 구제하려는 뜻에서라기보다는 남편이 오판의 사례를 남기면 어쩌나 하는 근심에서 비롯된 말이었다.

  여기에 대해서 총독의 반응은 극히 사무적이었다.    

유월절 특사로 사면될 것이오.”

아마도 부인을 안심시키려고 한 말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밖에 나가서도 같은 말을 되풀이 하는 바람에 사달이 나고 말았다.  

“안됩니다. 십자가형에 처하시오.” 

고발자 중 누군가가 크게 소리 질렀다. 그 후, 사태는 걷잡을 수 없는 방향으로 치닫게 된 것이다.

  다시 말하면, 그녀의 조언이 있고난 다음 총독의 입에서 사면소리가 나오게 되었으며, 그녀의 조언이 없었더라면 젊은이는 감옥에서 축제기간을 보냈을 것이고 총독은 시간을 두고 신중하게 사건 처리를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프로크라의 일방적인 생각이다. 그러나 사건전말을 소상히 알고 있는 그녀인지라 어쩔 수 없는 결론이었다. 따라서 이미 다 끝난 사건이었다고 하더라도 젊은이에 대한 미안한 감정을 버릴 수 없었다.

  그녀를 슬프게 하는 일이 또 있었다. 자칭 제자라는 자들은 젊은이가 자신의 몸을 제물로 드리기 위해 스스로 십자가 형틀에 올랐다고 하지만 젊은이는 그 따위, 말도 되지 않는 소리를 하면서 고귀한 생명을 버릴 사람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갈릴리에서 젊은이가 생명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프로크라는 누구보다 기뻐했었다. 그러나 독창적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당시 로마에서는 만물의 본성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느냐 하는 문제가 사회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었다. 신은 두려운 존재인가? 하는 질문에 대해서, 그렇다고 대답하는 쪽과 왜 그래야 하는가, 반문하는 무리로 나누어지고 있었다.

  성직자들은 신에 대한 두려움을 조성하기 위하여 혈안이 되 있었으나 이들에 대항하여 에피쿠로스(B.C.342-270)의 학설을 들고 나온 세력도 있었다.

또한, 세네카(B.C.4~A,D.65)와 같은 사람은 삶이란 기술이며 연습이다. 현자의 지혜란 자연에 적응하며 사는 것을 아는 지혜라고 주장했다. 그는 자연법칙에 준한 새로운 국가론을 제시하면서 이성을 가진 사람은 누구나 시민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특정 국가의 속박을 배제하는 범세계 시민주의를 선전했던 것이다.

  세네카의 주장은 세계를 속주 화하려는 로마정책과 맞아떨어졌기 때문에 제국정책의 중심 철학으로까지 받아들여지고 있었다. 그러나 세네카의 범 국가론은 종교적 성격을 띠고 있었기 때문에 비대해진 국가와 종교의 울타리에서 벗어나려는 신흥세력과 충돌할 수밖에 없었으며, 그래서 에피쿠로스 학설이 새롭게 등장하게 된 것이다. 

  에피쿠로스는 자연의 이치를 기하학적 논리적 설명을 통해 모든 존재는 아토마(원자)의 결합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그의 학설에 따르면, 유형의 모든 물체는 원자의 생성과 소멸의 과정에서 나타나는 현상이기 때문에 인간이라고 해서 예외일 수 없다는 것이다. 그는 육체를 이탈한 영혼 따위를 믿지 않았다. 따라서 영혼이 감당할 또 다른 불안과 공포는 없다고 본 것이다. 

  여기에 편승해서 소포클레스(B.C.496~406)의 희곡 안티고네가 성황리에 공연되고 있었다. ‘경이로운 것이 허다하지만 인간보다 경이로운 것이 없구나. 강한 남풍에 밀리며, 삼켜버릴 듯 사나운 물결을 헤치고 흰 빛 바다를 건너가는 그 힘. 해마다 쟁기를 이리저리 돌리며 말을 부려 땅을 파헤치니 최고의 신 불멸의 지칠 줄 모르는 대지의 신조차 인간에게 지쳐 버린다. 경쾌한 조류, 사나운 야수, 심해의 어류조차 인간은 손수 짠 그물로 잡아 노획물로 끌고 간다. 인간 지혜의 탁월함이여!’ 

  이처럼 다양한 이념 대결이 벌어지고 있는 가운데 학문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어떤 형태로든 영향을 받기 마련이고, 이를 통해 나름대로의 발상이 가능했던 것이다.  

  따라서 프로크라는 자연 그 자체로서의 인간은 신과 일치한 자, 바로 신 그것이라고 주장한 세네카와 인간 지혜에 소망을 거는 소포클레스의 대사와 불안과 공포의 대상에서 구제자로 등장하게 된 에피쿠로스의 생각이 갈릴리 출신 젊은이 가슴에 뿌리내리면서 생명의 메시지로 다시 나타나게 된 것이라고 보았던 것이다.

  이처럼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그녀는 예루살렘이 싫어지기 시작했다. 광야의 수도원과 사해를 살펴보고 돌아 온 직후부터 증세가 더욱 심해졌다. 

  그녀는 번제단에서 들려오는 가축의 비명소리가 듣기 싫어 귀를 막거나 사방에서 진동하는 피 냄새 때문에 구역질을 해댔다. 안토니 요새의 깊숙한 내실마저도 그녀의 피난처가 되지 못했다. 그녀는 더 이상 예루살렘에 버티고 있을 힘이 없었다. 그녀의 인내심에도 한계가 있었던 것이다.

“이 도시 사람들은 얼마나 많은 피를 흘려야 만족할까?”

이처럼 탄식하는 그녀를 위해 빌라도 총독은 가이샤라 별장으로 거처를 옮기게 된 것이다.



(소설 ‘예루살렘 이야기, 총독 빌라도’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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