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강해

큰 구렁이 끼어 있어1

글수정
04-01-26 바람 1,135

"아브라함이 가로되 애 너는 살았을 때에 네 좋은 것을 받았고 나사로는 고난을 받았으니 이것을 기억하라 이제 저는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고민을 받느니라 이뿐 아니라 너희와 우리사이에 큰 구렁이 끼어 있어 여기서 너희에게 건너가고자 하되 할 수 없고 거기서 우리에게 건너올 수도 없게 하였느니라"(눅16:25-26)

한 부자가 이 세상을 살아갈 때에 호의호식하며 나름대로 잘 살았는데, 나중에 죽어서 보니 그만 음부의 불꽃에 떨어지고 말았다. 그러나 반면 일생동안 고난을 받은 나사로는 낙원의 품에 들어가 위로를 받게 되었다.

그러자 부자는 음부의 불꽃중에서 몹시 고민하며 이러한 곳에서 벗어나 나사로가 있는 그러한 낙원의 품에 안기기를 원하였다. 속히 이러한 불꽃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그러나 그러험에도 불구하고 자기자신은 그곳으로 갈 수가 없고, 여전히 음부의 뿔꽃가운데서 심히 고민하지 않을 수 밖에는 없엇는데, 그것은 그 가운데서 서로 오고가게 할 수 없는 큰 구렁이가 끼어 있어서라는 것이다.

부자가 낙원의 품속으로 건너가고자 하되 도무지 안되고
나사로가 음부의 불꽃으로 건너오고자 하되 또한 도무지 되어지지가 않음인 것이다.

그 이유중의 한가지는 그 둘 사이에 큰 구렁이 끼여 있음, 다시 말하여 엄청난 거리(공간)간격이 있어서라는 것이다.

엄청난 거리간격으로 말미암아 서로 오고가고자 하되 도저히 그게 현실로서는 불가능하였다는 것이다.

한쪽은 오직 행복하고,
한쪽은 오직 불행할 수 밖에는 없는 절대절명의 공간속에 처하여 지게 된 것이다.

그러면 어찌하여 이 둘 사이에 이처럼 엄청난 거리간격이 벌어질 수 밖에는 없었던 것일까? 그리고 또한 이러한 거리간격이 있다고 해서 오고갈수 없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 모든 것은 마음의 법이니 내가 마음으로서 원하여 그냥 그곳으로 건너가면 되는 것이 아닌가? 그러면 아무리 거리간격이 있다고 할지라도 즉시 이러한 불행에서 벗어나 나사로처럼 행복하게 살 수가 있을 것이 아닌가? 그러면 그렇게 미련스럽게 서리 음부의 불꿏종에서 더 이상 고만을 안 해도 되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부자로서는 그렇게 되길 원하는 마음일뿐, 자기자신은 거기서 한 발자국도 빠져나갈 수가 없었다. 그곳을 빠져나가려고 하면 할수록 오히려 더욱 심한 고초를 겪게 될 뿐인 것이다.

왜 인가? 운명이라서 그러한 것인가? 팔자소관이 그러해서 그러한 것인가? 업(죄)의 대가를 치루어야만 하기 때문인가? 아니면 행복추구뒤에 오는 불행의 결과라서 그러한 것인가?

아니다. 아니다. 그 모든 게 다 아니다. 절대적으로 그 모든 게 온통 다 아니다.

부자는 음부의 불꽃중에 있는게 아니며,
나사로 또한 낙원의 품에 안겨 있는게 아닌 것이다.

.그것은 그렇다고 보여지는 꿈이요 환상일 뿐, 사실이 아닌 것이다.

사실은 바로 지금 이 순간, 이 자리인 것이다.
그것만이 언제 어디서나 유일한 사실인 것이다.

지금 이 순간 대단히 행복하다.
지금 이 순간 대단히 불행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다시 한번 보자, 그렇다고 느껴지는 이것이 지금 바로 이 자리인 것인가? 영원토록 오직 이 자리일 수 있는 것인가?

그리고 지금 이 순간의 이 자리가 오직 유일한 나의 영역일 수가 있는 것인가?
그 어느곳 과도 비교되지 않는 오직 유일한 나의 창조적 영역일 수가 있는 것인가?

그렇다면, 정말 그럴수 있다면, 정말로 그것이 사실이라면...
나는 그 어느곳에 처하든지 오직 본래, 그 자리일 뿐인 것이다.
행복도 불행도 아닌, 원래의 그 모습, 그 자리일 뿐인 것이다.

부자가 음부에 떨어졌다고 해서 그것이 과연 불행한 것이며,
나사로가 낙원의 품에 안겼다고 해서 그것이 과연 행복한 것인가?

그것을 그렇다고 하는 근거가 과연 무엇인가?
그러하다고 보는 근거는 실상 어디에도 없는 것이며, 오직 자기자신이 그렇게 볼 뿐인 것이다.

부자는 나사로와 자기자신을 언제나 분리해서 보았다.
부자가 세상에서 행복하게 살 때에 자기자신은 이처럼 행복하게 살고 있고, 매일 거지신세로 사는 나사로는 불행하게 사는 것이라고 보았다.
그러나 지금은 그것이 거꾸로 되자 자기자신은 불행하게 살고 있고, 반면 나사로는 행복하게 살고 있는 것이라고 보고 있는 것이다.

즉 부자는 자기자신이 남보다 행복하게 살면 그것이 행복하게 사는 것이고, 남보다 불행하면 그것이 곧 불행한 것인 줄로 알고 사는 사람인 것이다.

즉 부자는 비교우월로서 언제나 자기자신의 행복과 불행을 보려고 하였던 그 상대성의 눈에 스스로의 마음을 도둑질당한 사람의 모습인 것이다.

인생의 행복은 남보다 행복해지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행복과 불행이 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음을 보는 눈인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행복하든, 불행하든 그러한 모든 것들이 완전히 전혀 아무런 상관이 없어지는 그 순간, 돌연 나는 오직 내가 되는 것이다.

기적처럼, 돌연 나로 돌아오게 되는 것이다.
밖으로 향하였던 눈이, 비로서 내 안의 나로 돌아와 나의 고유한 영역을 새롭게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거기에는 더 이상 너와 내가 없는 것이다. 나는 나로서 없고, 너는 너로서 없이 서로 유무상통되어 일치되는 하나의 마음을 이루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거기에는 더 이상 큰 구렁이라는 거리간격이 사라지고 오직 하나된 그러한 마음으로서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인생의 행복과 불행은 어디 다른데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지금 이 순간, 이 자리...
그리고 내 안의 나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날마다 새롭게 발견하고, 새롭게 창출해 내는 것입니다.
오직 그러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것이 불꽃이 되건, 아침 이슬이 되건
고뇌의 쓴잔이 되건, 위로의 눈물이 되건

다 나와 너를 일맥상통시켜주는 방편임을 알게 되는 것이고,
그로 인하여 오히려 너와 내가 더욱 기쁨으로서 승화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 04-01-26 마음
    마음님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여기에 있습니다.
    여기가 어디 입니까?
    여기는 어디가 아닌 여기 입니다.
    언제 여기에 왔습니까?
    여기에 한시간 전에 아내의 모습으로 한달전 형의 모습으로 10년전에도.....
    .....처음부터 여기에 있었습니다.

    라는 화두와도 일맥상통하는것 같습니다.(영성수련원 수련내용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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