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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교과서에서 배우는 그런 - 뻔한 전쟁 역사, 다들 익숙하시죠?
누가, 언제, 어디를 점령했고, 어떤 장군이 무슨 작전을 폈다. 이런 거대한 이야기들이요. -
맞아요. 그런데 오늘 저희가 깊이 파헤쳐 볼 곳은 그런 거시적인 역사가 아닙니다.
청취자 여러분, 폭격이 막 쏟아질지도 모르는 그 전쟁 통에, 그것도 적군의 중앙은행 지폐를 소달구지 3대에 가득 싣고 나타나서 마비된 도시 전체를 구한 - 남자가 있다. 그런 남자가 있다면, 여러분 믿으시겠습니까?
진짜 영화 시나리오 같지만 이거, 아주 생생한 실제 기록이거든요. 그렇습니다.
오늘, 저희는 1950년 6.25 전쟁 발발 당시, 그 해 가을의 ‘평양’으로 한번 돌아가 볼 텐데요.
최근에 기밀 해제된 - 미 행정부 문서들 하고, 아주 디테일한 개인의 회고록을 저희가 교차 검증을 해봤습니다.
그래서 78년 전, 평양 한복판에서 벌어진 이 믿기 힘든 이야기를 오늘 심층 탐구해 보려고 합니다.
그야말로 역사의 '블록 코미디'이자, 절박한 생존의 드라마라고 할 수 있죠. 진짜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그런데 본격적으로 이 흥미진진한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기 전에, 저희가 청취자 여러분께 한 가지 확실하게 짚고 넘어갈 부분이 있죠. 아주 중요한 부분입니다. 오늘, 저희가 다루는 기록에는 당시, 이승만 전 대통령의 행보나, 미군정의 정책, 또 북한 지도부의 결정 같이 - 약간 정치적으로 민감하게 해석될 수 있는 내용들이 꽤 등장을 하거든요.
맞아요. 그래서 저희는 오늘 다루는 자료에 등장하는 어떠한 인물이나 정부의 정치적 입장도 전혀, 지지하거나 대변하지 않는다는 점을 명확히 말씀드립니다. 오직 제공된 기밀문서 원문과 역사적 기록에 담긴 팩트, 그리고 그 안에서 도출되는 아이디어만을 객관적으로 전달해드립니다. 철저하게 중립적인 입장에서 자료를 분석하는 거니까요. 오해 없으시길 바랍니다. -
좋습니다. 저희의 밋션은 오직 하나입니다. 이 파편화 된 기록들 사이에서 여러분의 지적 호기심을 막 자극할 진짜 흥미로운 인사이트를 건져 올리는 거니까요.
자, 그럼 1950년 10월 그 폭풍 전야의 긴장감이 맴도는 평양의 심장부로 함께 들어가 보시죠.
시계를 1950년 가을로 한번 싹 되돌려 보겠습니다.
상황을 좀 머릿속에 그려보자면, 9월에 ‘맥아더’ 장군의 인천 상륙 작전이 성공을 하잖아요. - 네. 전세가 완전히 뒤집힌 시점이죠. 그렇죠. 국군과 유엔군은 무서운 기세로 북진을 시작했고, 10월 초에는 이미 38선을 넘어서 파죽지세로 - 밀고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평양의 함락은 그야말로 시간 문제였던 상황인 거죠. 바로 그 시점에 평양 내부에서는 우리가 흔히 상상하는 막 총알이 빗발치는 전쟁터와는 전혀 다른, 아주 기묘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오늘, 저희가 들여다볼 기록의 화자 <나의 가족 이야기>로 시작을 해볼게요.
10월 12일야심한 밤이었죠. 맞아요. 10월 12일 밤에 화자의 고모부랑 고모가 트럭을 타고 급히 집으로 찾아옵니다. 이 고모부가 당시, 북한의 외무상이었고, 고모는 여성동맹 문예부 책임자였어요. 와, 완전 최고위층 핵심 간부들이네요. 그니까요. 이 엄청난 권력자들이 중국 단동으로 도망가기 직전에 ‘영화 촬영소’ 건설 책임자였던 화자의 부친한테 온 겁니다.
와서, "날래, 탓이라요" 하면서 같이 피난을 가자고 권유를 해요.그런데 부친의 대답이 정말 의외죠. 진짜 놀랬어요.
"내래 안 가갔어" 이러고 딱 거절을 해버립니다. 핵심 권력층인 친척들이 막 야반도주를 하는 마당에 평양에 그대로 남겠다는 결정을 내린 거잖아요.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정말, 매력적인 역사적 디테일이 하나 나옵니다.
어떤 거죠? 바로 당시 평양 시내의 전반적인 분위기입니다. 김일성이 평양 사수 명령을 내리지 않았거든요. 오히려 10월 14일에 덕천으로 아주 조용히 빠져나갔습니다. 아 ~ 지도부가 아예 저항을 포기하고, 떠나버렸구나!
맞습니다. 지도부가 일찌감치 떠나버리니까 역설적으로 도시에는 그 흔한 시가전도 없었고, 대규모 폭격도 없었습니다.
유엔군이 평양에 입성하기 전까지 약 7일 동안, 일반 시민들은 폭풍의 눈 한가운데 있는 것처럼 아주 기묘할 정도로 평온한 일상을 보냈다는 거죠. 그거 진짜 무슨 스릴러 영화 한 장면 같지 않나요?
세상이 막 무너지고 있는데, 동네는 너무나 조용한 거예요.아무튼 고모는 떠나면서 - "안 가갔으면, 우리 집에 가 주시라요" 하고, 빈집을 부탁합니다. 그래서 화자의 가족이 거처를 옮기게 되죠. -
'형제산 구역'에서 평양시청 인근에 있는 고모의 집으로 이사를 가는데요, 이 고모 집이 위치한 곳이 당시, 본평양이라고 불리는 곳이었습니다. 본평양이면 과거 일제강점기 시절에 조선총독부 주요 시설이 밀집해 있던 곳이잖아요. 북조선의 심장부이자 최고급 주택가였죠. - 맞아요.기록에 묘사된, 그 집의 디테일을 보면 와 ~ 당시 북한 고위층이 어떻게 살았는지 아주 생생하게 엿볼 수 있습니다.
일본 고위관리가 살던 2층짜리 서양식 양옥에다가 잘 가꾸어진 정원수, 작은 연못도 있고요. 무엇보다 당시로선 엄청난 특권이었던 상수도 시설이 있었죠. 네. 최고급 상수도 시설, 그러니까 수돗물이 콸콸 나오는 완벽한 인프라를 갖춘 집이었던 거예요.밖에서는 끔찍한 전쟁이 벌어지고 있지만 그 집 안 만큼은 전쟁의 참혹함이랑은 완전히 동떨어진 아주 안락한 성곽 같았겠죠.
그런데 여러분, 전쟁이라는 게 그렇게 계속 우아하게 흘러갈 리가 없잖아요? 그 기묘한 평화는 10월19일 오전 11시경에 산산조각이 납니다. 드디어 올 것이 왔군요. 국군 1사단과 유엔군이 대동교 근처까지 딱 들이닥치니까, 그때까지 숨어있던 인민군 폭파 부대가 도주하면서 평양의 주요 다리들을 모조리 폭파해버립니다.
인도교, 철교, 그리고 여기서 우리가 가장 주목해야 할 다리인 '능라교'가 처참하게 끊어지죠. 저희가 오늘 심층 탐구를 준비하면서 확보한 시각 자료 중에 그 파괴된 ‘능라교’ 사진이 있거든요. 청취자 여러분도 한번 머릿속으로 그려보세요.
그 튼튼해 보이던 거대한 철골 트러스 구조물이 맥없이 툭툭하고 강물 속으로 V자 형태로 꺾여서 처박혀 있죠. 네, 맞아요.강변의 평화로운 풍경 한 가운데 아주 흉물스럽게 박혀있는 파괴의 흔적입니다. 그런데 이 사진을 그냥 - '아 ~ 다리가 부서졌구나!' 이렇게 단순한 교통로 파괴로만 보시면 안 됩니다.
이것을 좀 더 큰 그림 즉, 도시 인프라의 관점에서 연결해보면, 진짜 심각한 위기가 숨어 있거든요. 아, 그게 단순한 다리가 아니었나요? 끊어진 능라교는 대동강에 물을 끌어와서 본평양으로 공급하는 수도교 역할을 하고 있었습니다.
영어로는 ‘아쿠아덕트’라고 하죠. 헉! 물길이었군요. 네, 이 다리가 폭발하면서 수도관이 통째로 날아간 겁니다. 화려했던 본평양 일대의 시민들은 하루아침에 물 한 방울 구할 수 없는 극심한 식수난에 처하게 된 거죠.
현대 도시에서 물이 끊긴다는 건. 곧 전염병 창궐, 폭동, 그리고 도시기능이 완전한 마비로 의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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