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루살렘 이야기

『제퍼슨 Bible』 절반의 성공1

24-06-11 김춘봉 48

‘플러스알파’는 플러스와 알파, 두 단어를 조합한 신조어입니다.

‘플러스’는 얼마를 더하거나 더한 값을 말할 때 쓰는 단어이고, ‘알파’는 그리스 문자의 첫째 자모입니다.

수학에서는 어떤 미지수를 나타내는 기호를 알파라고 합니다. 따라서 ‘플러스알파’는 기본 이상의 것을 알게 되거나, 이미 알고 있는 것 외에 무언가 더 있다는 의미를 강조할 때 쓰는 단어 조합입니다.

<제퍼슨 성경 플러스알파>도 동일한 의미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미국 제3대 대통령을 역임했고, 미국 건국 주역의 한 분, 초대 국무부 장관, 이신론 주창자, 건축가, 교육자 등 화려한 이력을 지닌 토머스 제퍼슨이 미처 알지 못했던 새로운 사실을 추가하려고 플러스알파라는 용어를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제퍼슨은 영어 성경 2권, 프랑스어 성경 2권, 라틴어와 그리스어 합본 성경 2권 모두 6권을 가지고 나사렛 예수의 참된 가르침을 찾으려고 했습니다.

제퍼슨은 무식한 제자들에 의해서 성경이 왜곡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칼과 가위질을 하면서 예수의 신성과 관련된 대목을 오려냈습니다. 동정녀 탄생, 승천, 부활, 물 위를 걸은 기적, 다섯 빵과 두 마리 물고기 기적, 나사로를 살린 기적, 마태와 누가복음의 예수 족보도 빼버렸습니다.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마라. 평화가 아니라 검을 주러 왔다. 아들이 아버지와 맞서고, 딸이 어머니와,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서로 맞서게 하려고 왔다는 부분도 제거했습니다. 그렇게 되니까 예수의 죽음과 무덤에 장사 되는 것이 끝이고, 부활 기사도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남은 것만 가지고 <사랑과 평화의 사도 예수>, 그리고 『나사렛 예수의 삶과 도덕』 두 원고를 77세에 완성했지만 기독교 반발이 두려워서 출간하지 못하고 1826년 83세에 사망했습니다.

미국 건국 당시, 영국은 기독교 성공회를 국교로 정하고 있었습니다. 13개 주로 이뤄진 미국 연방에서도 기독교가 중추적 역할을 하고 있었습니다. 메릴랜드는 가톨릭, 펜실베이니아는 퀘이커, 버지니아와 뉴욕 그리고 조지아 정부는 성공회를 공식 종교로 인정하고 있었습니다.

이와 같은 다종교(?) 상황에서 제퍼슨이 말했습니다.

“진리는 위대해서 홀로 내버려둬도 승리한다. 우리는 성공회도, 가톨릭도 침례회도 아니다. 모두 크리스천이다.”

그는 공화주의자들과 함께 국교제 폐지를 주장했고, 마침내 신생 미국에 정교분리 원칙을 관철시켰습니다. 제퍼슨이 사망하고 69년이 지난 해였던 1895년, 미합중국 스미스소니언 연구소가 제퍼슨의 증손녀 캐롤라이나 랜돌프가 소장하고 있던 원고, '나사렛 예수의 삶과 도덕' 그리고 '나사렛 예수의 철학'를 400달러(현재 약 1만2000달러)에 구매하고 출판했습니다. 증손녀가 받은 저작권료가 엄청난 금액이기도 하려니와 <제퍼슨 성경>의 특별한 의미를 인정한 사례가 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의 신성과 관련된 대목을 삭제하려고 성경에 가위질 한 시도는 좋았지만 반쪽 성공이었습니다.

예수가 생명과 도덕을 가르친 교사였다는 결론과 성경이 무식한 제자들에 의해서 쓰였다는 이야기는 역사적 사실이 아닙니다.

예수 십자가 사건은 미래 지향적 문명 차원에서 논의 되어야 합니다. 인류 문명사를 되돌아보면 도약의 기회가 있었고 선각자들도 있었습니다. 지중해 절대 강국으로 부상하게 된 로마는도시문명을 일으키면서 문명시대 여명기에 접어들었습니다. 로마는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지 못하면 역사적 퇴행으로 빠져들게 되는 위태로운 정점에 있었습니다. 이것은 시대가 요구하는 과제였습니다. 무언의 압박이었습니다.

인류 공존과 번영은 그냥 주어지는 게 아닙니다. 시대적 요구가 충족되지 못하면 없었던 일이 돼 버리고 도약의 발판은 벼랑 끝이 되면서 날개가 없는 물체는 추락합니다. 바로 그때 혜성처럼 나타난 사람이 카이사르였습니다.

카이사르는 경쟁과 갈등, 양육강식의 논리를 종식시키려고 했습니다. 오늘날의 UN처럼 – 인류 공존과 번영을 모색하면서 관용과 포용 정신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러나 시대 흐름을 감지하지 못했던 한심한 원로원 의원들과 키케로가 작당을 하고 카이사르 암살에만 혈안이 돼 있었습니다.

이처럼 시대적 요구가 충족되지 못하면서 카이사르 암살은 개인의 생사 문제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문명시대 여명기 먹구름이었고 재발의 여지가 있는 악성 종양이었습니다. 반문명적 반인륜적 범죄가 급증한다는 불행의 전조했습니다.

카이사르 암살 이후, 역사적 퇴행 여파가 유대 속죄에까지 미치면서 서기30년 예수 사건으로 비화되었습니다.

카이사르와 마찬가지로 나사렛 예수도 실물교훈과 <시대의 표적>을 말한 문명의 선각자였습니다. 예수의 <산상수훈>은 자아 발견과 정신력 무한 신뢰였습니다. 시대적 요구에 적합한 발상 전환으로 문명시대 꽃을 활짝 피우자는 계몽주의 메시지였습니다. 그러나 이집트, 바빌로니아, 페르시아, 시리아, 로마와 같은 강대국 속주로 명맥을 이어온 유대인들은 약소민족의 저항심리가 구세주 메시아, 종말론과 같은 허망지설로 변질되면서 <악의 축>으로 작용했습니다.

그에 따라서 빌라도 총독 예수 십자가 사건은 – 유대인들 저항 심리가 표출 된 막장드라마였습니다. 랍비들은 문명에 대해서 말한 예수를 볼 때마다 선험적 열등의식에 빠지곤 했습니다. 억지혐의 적용으로 예수에게 십자가 처형을 지시한 빌라도 총독이 자괴감에 시달리고 있을 때, 니고데모와 아리마대 요셉이 예수 시신을 매장할 것처럼 총독을 속이고 예수 시신을 동굴 무덤에 넣었다가 곧바로 어딘 가에 숨겨 놓았습니다.

그런 다음 - 마태복음에 보면 형상이 번개 같고 흰 옷 입은 천사 - 마가복음에 보면 흰 옷 입은 청년 - 누가복음에 보면 찬란한 옷을 입은 두 사람 - 요한복음에 보면 동산지기 같은 사람이 기다리고 있다가 어리석은 여인들이 나타나니까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가 살아났느니라. 그의 누웠던 자리를 보라" 이따위 거짓말에 속은 여인들이 달려가서 제자들에게 알렸지만 제자들은 갈릴리로 돌아갔습니다. 여기까지는 부정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입니다. 그러나 다음부터는 종말론적 관점을 지닌 신원 미상의 작가들 거짓말입니다. 사복음서 작가들은 사실과 허구의 경계를 무너뜨린 텍스트를 만들었습니다.

존재하지 않았던 하나의 생각과 믿음을 창작해 낼 때, 궁여지책으로 거짓말을 하게 됩니다. 4복음서 거짓말 물꼬를 튼 사람은 바울이었습니다.

바울은 예수와 일면식도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자기가 다락방에 있을 때 예수가 <최후의 만찬>을 주제하는 광경을 목격한 것처럼 고린도 사람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거짓말을 했습니다.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에 떡을 축사 하시고 이르시되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식후에 또한 그와 같이 잔을 가지시고 이르시되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세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하셨으니 너희가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그가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

이와 같은 허위 사실을 서기55년경 유포하니까 거짓말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면서 서기65에서 70년 나온 것으로 추정되는 마가복음에서는 예수신화에 역사적, 지리적 배경을 추가했고 - 그 다음에 나온 마태와 누가복음에서는 예수 탄생과 부활에 대한 세부 내용을 윤문했으며, 요한복음에서 기독교 신학이 견고해졌기 때문에 – 랍비 니고데모와 아리마대 요셉의 예수 시신 동굴 무덤 방치와 바울의 거짓말 <최후의 만찬>은 나사렛 예수와 아무런 관련이 없는 딴 세상 이야기였습니다.

헤롯 왕 유아 살해도 새빨간 거짓말입니다. 마태복음 2장에 보면, 헤롯이 베들레헴과 그 일대에 사는 2살 이하의 사내아이를 모조리 죽였다는 글이 있습니다.헤롯은 지중해 해상무역으로 자수성가한 진소위 영웅이었습니다. 집정관 마르쿠스 안토니우스와 아우구스투스 로마 황제로부터 절대적 신임을 받았던 역사적 인물입니다.헤롯이 거느린 3천의 용병은 전투 부대가 아니었습니다. 팔레스타인 지역의 도시문명을 건설한 건설부대였습니다. 헤롯은 무역선단을 운영하면서 수익금을 예루살렘 성전산 석축공사를 비롯하여 – 가이사랴 신항만 건설에 투자한 사업가였습니다.

기원전4년, 헤롯이 노환으로 76세에 사망하니까 시리아 총독 구레뇨가 한 걸음에 달려와서 장례를 치르게 하고, 19세였던 아길라오에게는 예루살렘과 이두메 그리고 사마리아 지역을 - 16세였던 안티바에게는 베레아와 갈릴리 지역을 - 빌립에게는 드라고닉과 갈릴리 북동쪽 지역을 주었습니다. 이것은 토지 상속이었습니다. 어느 누구에게도 분봉왕 따위 특권은 주지 않았습니다. 세 사람은 인도세를 받는 세금 청부업자였기 때문에 인구조사를 했습니다.

구례뇨는 유대를 직접 통치하다가 서기6년, 그 당시 29세였던 아겔라오에게 아우구스투스 황제로부터 유대 왕 칭호를 받아 오라고 로마로 보냈습니다.

유대인들은 사마리아 여인 말타케 소생 아길라오가 왕이 되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에 대표단을 먼저 보내 - 거짓 탄원서로 모함을 했습니다.

"아길라오는 다윗 왕 후손을 자처하던 유다의 자식들을 없애버릴 요량으로 무뢰배들을 갈릴리로 보내 갓 태어난 사내아이들을 죽이라고 했습니다. 그 바람에 아이를 빼앗긴 여인들이 머리와 가슴을 풀어헤치고 거리를 뛰어다니면서 대성통곡을 했습니다. 아겔라오는 황제께서 그와 같은 지시를 내린 것처럼 둘러대면서 원성이 높습니다. 이처럼 만행을 저지른 자가 지금 로마에 와 있습니다. 그 자에게 중벌을 내려 주십시오. 아울러 이 탄원서는 확실하고 참된 것이기에 각계각층의 대표들이 합심하여 작성한 것입니다."

아우구스투스 황제는 사실 확인도 하지 않고 게르마니아 원정에 나선 사령관 바루스에게 아겔라오를 데리고 가라고 했습니다. 그 후, 유대는 왕국에서 속주로 바뀌었습니다. 이처럼 서기6년에 써먹은 거짓 탄원서를 – 기원전4년 사망한 헤롯이 한 것처럼 복음서 작가들이 거짓말을 했습니다.

마태복음24장에 보면, 서기40년에 있었던 거짓선지자 감람산 종말론을 서기30년 예수가 말한 것처럼 왜곡한 기록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선지자 다니엘의 말한바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거든 그 때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지어다. 지붕 위에 있는 자는 집안에 있는 물건을 가지러 내려가지 말며 밭에 있는 자는 겉옷을 가지러 뒤로 돌이키지 말지어다. 그 날에는 아이 밴 자들과 젖먹이는 자들에게 화가 있으리로다. 너희의 도망하는 일이 겨울에나 안식일에 되지 않도록 기도하라. 이는 그때 큰 환난이 있겠음이라. 창세로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난이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

그러니까 서기40년 10월 중순, 칼리굴라 황제가 시리아 총독 페트로니우스에게 -

"유대인들이 자발적으로 예루살렘에 신상을 세우게 하시오. 만약 불복하면 무력을 사용해도 좋습니다."

이렇게 지시했을 때, 재앙을 선포한다는 거짓 예언자가 나타나서 "너희의 도망하는 일이 겨울이나 안식일이 되지 않기를 기도하라" 하면서 근거 없는 유언비어를 퍼뜨렸습니다.

그러나 칼리굴라가 근위대장에게 살해당하고 제위에 오른 클라우디우스가 신상 건립을 없었던 일로 하라고 지시하면서 - 해프닝으로 끝났습니다.

그 사건을 가지고 서기65년 경 나왔을 것으로 추정되는 마태복음 작가가 서기30년 예수가 한 것처럼 왜곡했습니다.

마태복음12장에 보면, <시대의 표적>을 왜곡한 글도 있습니다. - 그 때 서기관과 바리새인 중 몇 사람이 말하되 "선생님이여, 우리에게 표적 보여 주시기를 원하나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선지자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느니라. 요나가 밤낮 사흘을 큰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것 같이 인자도 밤낮 사흘을 땅속에 있으리라."

마태복음27장에 또 다른 거짓말이 있습니다. 예수께서 다시 크게 소리 지르시고 영혼이 떠나시다.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고, 땅이 진동하며 바위가 터지고 무덤들이 열리며 자던 성도의 몸이 많이 일어나되 예수의 부활 후에 저희가 무덤에서 나와서 거룩한 성에 들어가 많은 사람에게 보이니라. 백부장과 및 함께 예수를 지키던 자들이 지진과 그 되는 일들을 보고 심히 두려워하여 가로되 "이는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하더라.

예수는 유월절 예비일 정오 무렵 십자가에 못 박히고 오후 3시 경 죽었습니다. 그 시각, 순례자들은 성전뜰에 모여 - 양이나 염소를 도살하고 유월절 시작을 알리는 나팔소리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해가 질 무렵, 아리마대 요셉과 니고데모가 예수 시신을 동굴 무덤으로 가지고 왔습니다. 이것만 봐도 예수가 숨을 거둘 때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고, 죽은 자가 무덤에서 나와 거룩한 성에 들어가 많은 사람들에게 보였다는 이야기가 거짓임이 드러났습니다.

누가복음11장과 마태복음23장에 보면, "화 있을 진 저" 하면서 예수가 종말론을 말한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도 터무니없는 역사의 날조입니다.

서기62년 장막절 - 성전 미문 앞에서 미천한 농부 아나니아스 아들 예수가 예루살렘 멸망에 대한 경고성 발언을 했습니다.

"화 있을 진저 예루살렘아! 동쪽에서 들려오는 한 목소리 서쪽에서 들려오는 한 목소리 사방에서 들려오는 한 목소리가 있으니 이는 예루살렘과 성전을 대적하는 소리요, 신랑과 신부를 대적하는 소리요, 온 백성을 대적하는 목소리이다."

이 말을 들은 사람들은 서기54년 성전뜰 매립 공사가 끝나고 - 봉헌식을 준비할 때, 폭도들 공격으로 주량 일부가 파손된 사건을 이야기하는 줄로만 알았습니다.미천한 농부의 아들 예수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똑같은 말을 되풀이하니까, 화가 난 사람들이 산헤드린에 고발했습니다. 산헤드린에서도 똑같은 말을 반복하니까 베스도 총독에게 고발했습니다. 총독은 정신 나간 사람 취급하면서 방면했습니다.

그 이야기를 서기30년 나사렛 예수가 한 것처럼 만들어 놓았기 때문에 4복음서는 십중팔구 거짓말이 되는 겁니다.

지금으로부터 2천 년 전, 사람들에게 현대 문명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그들에게 미래는 - 정체를 알 수 없는 두려움 그 자체였습니다.

<시대의 표적>을 말한 예수도 직설적으로 설명이 불가능했기 때문에 비유가 아니면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예수가 말한 <천국>은 문명세계 비유적 표현이고, 4복음서는 십중팔구 거짓말이 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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