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래 동화.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에 … " 설화는 호랑이와 담배가 격에 맞지 않지만 교훈적이고 창의성을 자극하는 난센스 퀴즈입니다.
‘눈이 내린 깊은 겨울밤, 아이들은 할머니 주위에 모여 있습니다. 초가집 지붕 위에 눈이 쌓이고, 창호지를 바른 문틈 사이로 매서운 바람이 새어 들어옵니다, 아이들은 아랫목에 펴놓은 이불에 발을 들이밀고 할머니 입을 쳐다보고 있습니다. 화롯불을 뒤척이면서 할머니가 옛날이야기를 시작합니다.
"호랑이가 담배 피던 시절에 … 잘 우는 아이가 살고 있었는데 … "
할머니는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으시고, 아이들은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굴리면서 이야기를 놓치지 않으려고 귀를 쫑긋 세우던 겨울 밤 풍경은 1960년대 대한민국 농촌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나 36년 일제강점기와 6.25전란을 겪었으면서도 "우리도 한 번 잘 살아 보세" 구호를 외치면서 한강 기적을 이루었을 뿐만 아니라 선진 문명국가로 우뚝 서게 된 대한민국에서는 1960년대 농촌 풍경을 더 이상 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호랑이가 장죽을 들고 토끼가 불을 붙여주는 그림만이 남아 있을 뿐입니다. ‘호랑이가 담배 피던 시절에’ 하면 아주 까마득한 옛날이야기 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담배가 우리나라에 전래된 시기를 알면 과거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고 현대 사회 현상을 지적하는 이야기였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인터넷으로 담배를 검색해 보세요. 담배는 16세기 말에서 17세기 초 일본이 조선을 침략하던 임진왜란 때, 일본인들이 담배를 가져왔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백과사전에 해당하는 <오주연문장전산고>에 보면 - "담배가 우리나라에 전래된 것은 1618년이라고 돼 있습니다. 인조16년 <조선왕조실록>에도 담배에 관한 기록이 있습니다.
" 이 풀(담배)은 1616년과 1617년 사이에 바다를 건너와 피우는 사람이 있었으나 성행하지는 않았다. 1621년과 1622년 이후에는 담배를 피우지 않는 사람이 없었고 … 씨를 뿌리고 수확하여 사람들끼리 서로 교역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니까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 하면 - 고려 이후, 1910년까지 5백 여 년 간 한반도와 그 부속 도서를 지배했던 조선시대 이야기에 적합하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한국과 로마 가톨릭의 첫 만남도 담배 도입 시기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임진왜란 때 일본군을 따라온 예수회 선교사 그레고리오 세스페데스에 의해 가톨릭이 전파되었다는 설,
병자호란 이후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갔었던 소현세자가 돌아오면서 독일 예수회 선교사로부터 가톨릭 서적과 지구본을 선물로 가져오면서 전래되었다는 설도 있습니다.
이와 같은 사실은 중세 유럽의 정치, 사회 혼란기와 관련이 있습니다. 가톨릭 교황의 아비뇽 유수로 14세기 후반부터 15세기 전반에 걸쳐 이탈리아를 비롯하여 유럽 전역에서는 ‘인간성 해방과 인간의 재발견 그리고 합리적인 사유와 생활태도의 길을 열어 준 근대문명의 선구’ 르네상스 시대가 열렸습니다.
그와 동시에 루터의 종교개혁이 있었고, 우후죽순 개신교가 생겨나니까 스페인의 상이군인 출신, 로욜라와 프란시스코 사비에르가 1534년, 예수회를 결성했습니다. 예수회는 가톨릭 구원투수를 자청하면서 개신교와 싸우는 동시에 1547년 세계 최초로 대학을 설립했습니다. 청소년을 대상으로, 엘리트 교육에 주력하면서 선교사를 양성하고, 바다 건너 이교도 개종교육을 전개하면서 가는 곳마다 현지화 전략으로 가톨릭을 전파했습니다. 인도의 서부 연안 ‘고아’를 근거지로, 중국 일본 베트남을 비롯하여 동아시아 선교 사업으로 현지에 뿌리를 내리고 번창했습니다.
선교사들은 원주민들의 언어와 문자를 배우면서 그곳 사상과 문화를 파악한 다음, 학교를 세우고 자신들의 교리를 전파하는 현지 적응주의 전략으로 세력을 넓혀나갔습니다. 유럽 상인들이 조총과 대포를 비롯하여 무기와 탄환을 원주민들에게 팔고 있으니까 <예수회> 선교사들도 무기 거래상들과 정보를 주고받으면서 전쟁을 부추겼다는 의혹을 샀습니다.
1549년 선교사 사비에르가 일본 가고시마에 와서 가톨릭을 전파하면서 일본인 사제단을 구성하고 1592년부터는 조총으로 무장한 왜군이 임진왜란을 일으켰을 때 일본인 사제들이 따라다니면서 무고한 조선인들을 학살하고 괴로워하는 왜군 병사들 고해성사를 받았습니다.고해성사는 양심의 가책이나 죄의식에서 오는 불안과 강박관념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가톨릭 특유의 면죄부였습니다.
이처럼 일제 만행에 동조했으면서도 "언제 그랬냐?" 식으로 시치미를 떼고 있으니까 지혜로운 할머니가 "호랑이가 담배 먹던 시절에 … " 하면서 아이들에게 창의성을 자극하는 난센스 퀴즈처럼 진실을 이야기 하려고 했다고 봐야 하는 겁니다.
문명세계를 천국에 비유하면서 난센스 퀴즈처럼 말한 이가 나사렛 예수였습니다. 인류는 원시에서 문명으로, 빈곤에서 풍요로, 지상에서 우주로 삶의 터전을 넓혀 나가는 중입니다. 문명은 열린 세상이고, 당연히 가야 할 길이고, 우주적 관점에서 볼 때, 인류는 문명의 씨앗으로 존재합니다. 문명시대 여명기 먹구름도 있었습니다. 전통적 인습에 발목이 잡혀 꼼짝달싹하지 못하던 시절도 있었습니다.지중해 절대 강국으로 부상하게 된 로마는 도시 문명을 일으키면서 문명시대 여명기에 접어들었습니다. 로마는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지 못하면 역사적 퇴행으로 빠져들게 되는 위태로운 정점에 올라 있었습니다. 이것은 시대가 요구하는 과제였습니다. ‘무언의 압박’이었습니다.
인류 공존과 번영은 그냥 주어지는 게 아닙니다. 시대적 요구가 충족되지 못하면, ‘없었던 일이 돼 버리고’ 도약의 발판은 벼랑 끝이 되면서 날개 없는 물체는 추락합니다. 바로 그 때, 혜성처럼 나타난 사람이 카이사르였습니다. 카이사르는 경쟁과 갈등, 양육강식의 논리를 종식시키려고 했습니다. 오늘날의 UN처럼 공존과 인류 번영을 모색하면서 관용과 포용 정신을 이야기 했습니다. 인류가 만든 달력 중에서 가장 지성적인 이집트 달력을 도입하고 기원전45년을 문명 원년으로 율리우스력도 공포했습니다. 그러나 시대의 흐름을 감지하지 못했던 한심한 원로원 의원들과 키케로가 작당을 하고, 카이사르 암살에만 혈안이 돼 있었습니다. 이처럼 시대적 요구가 작동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에 카이사르 암살은 개인의 생사 문제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문명시대 여명기 먹구름이었고, 재발의 여지가 있는 악성 종양이었습니다. 반문명적, 반인륜적 범죄가 급증할 것이라는 불행의 전조였습니다.
카이사르 암살 이후, 역사적 퇴행 여파가 유대 속주에까지 미치면서 서기30년 예수 사건으로 비화되었습니다. 카이사르와 마찬가지로 나사렛 예수도 실물교훈과 <시대의 표적>을 말한 문명의 선각자였습니다. 예수의 산상수훈은 자아발견과 정신력 무한 신뢰였습니다. 시대적 요구에 적합한 발상 전환으로 문명 시대 꽃을 활짝 피우자는 계몽주의 메시지였습니다.
예수가 문명 세계를 말할 때, 바리새파 랍비들은 “많은 자선이 평화를 가져온다. 가난한 자들에게 복이 있다. 부자는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이처럼 말장난에 불과한 현학적인 표현을 써가면서 잠언인 양 가르치고 있었기 때문에, 예수는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고, 예수를 볼 때마다 랍비들은 선험적 열등의식에 빠지곤 했습니다.
서기30년 유월절 예수가 예루살렘에 나타나니까 이단의 무리 베다니 사람들이 예수를 전방에 내세우고 자신들 존재감을 과시하면서 예루살렘에 시가지 거점 확보를 하려고 다락방으로 예수를 유인했습니다. 저들의 속셈을 눈치 챈 예수가 다락방에 간 것을 후해하고 급히 감람산에 가서 숨었습니다. 그곳은 까마귀 서식지라서 인적이 끊긴 곳이었습니다. 당시의 상황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베드로가 "주여! 어디로 가십니까?" 하면서 따라 가서는 까마귀 배설물이 켜켜이 쌓여 있는 곳에서 잠자던 한심한 사람이었습니다.
그 후, 찰거머리 같았던 베다니 사람들 농간으로 예수는 원로사제 안나스 법정을 비롯하여 대제사장 가야바, 총독 빌라도, 헤롯 안티바, 다시 총독 빌라도 법정으로 뺑뺑이를 돌리면서 억지 혐의 적용, 법적 절차를 무시한 재판진행, 여론에 휘둘린 재판으로 십자가 처형을 당했습니다. 무고한 사람에게 십자가 처형을 지시한 총독 빌라도가 자괴감에 시달리고 있을 때, 니고데모와 아리마대 요셉이 예수 시신을 매장할 것처럼 총독을 속이고, 동굴무덤에 방치하면서 랍비들은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으려고 했습니다. 백성의 안위를 책임져야 할 총독이 흉악범 바라바를 방면하고, 무고한 예수에게 십자가 처형을 지시한 것만으로도 황제에게 고발할 수 있었지만, 예수 시신을 동굴무덤에 방치함으로써 메시아 부활 허망지설을 유포하는 이단의 무리에게 예수를 넘겨주면서 예수가 무슨 말을 했는지 모르게 하려는 음모를 꾸몄습니다.
니고데모와 아리마대 요셉으로부터 시작된 <예수 왜곡의 역사> 바통을 이어 받은 사람이 바울이었습니다. 바울은 예수와 일면식도 없는 사람입니다. 그런데도 자기가 다락방에 있을 때, 예수가 최후의 만찬을 주재하는 광경을 목격한 것처럼 서기55년경 고린도 사람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거짓말을 했습니다.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에 떡을 축사하시고 이르시되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 식후에 또한 그와 같이 잔을 가지시고 이르시되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하셨으니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그가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
이와 같은 허위사실을 유포하니까 거짓말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면서 서기65~70년 나온 것으로 추정되는 마가복음에서는 <예수신화>에 역사적, 지리적 배경을 추가했고, 그 후 나온 마태와 누가복음에서는 예수 탄생과 부활에 대한 세부 내용을 윤문했으며, 요한복음에서 기독교 신학이 견고해졌을 뿐만 아니라 가톨릭이 가세하면서 <예수 왜곡의 역사>는 오늘날에도 캐서린과 같은 사람들에 의해서 계속 되고 있습니다.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 원저작자로 알려진 ‘캐서린 에머리히’는 1774년 독일 북부지방의 살림이 궁핍한 어느 가정에서 태어나 28세에 수도회 수녀가 되었습니다. 신비주의자였던 그녀는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힐 때 받은 상처가 사람 몸에 나타난다는 성흔을 체험했다고 합니다. 그녀는 건강 악화로 대부분의 시간을 병상에서 지내다가 1824년 사망했고, 그녀가 본 환영을 기록한 원고를 어느 작가에 의해 책으로 만들어졌습니다.
"나는 예수께서 무릎 꿇고 계신 동굴에 무서운 형상들이 가득한 것을 보았다. 인간의 모든 죄와 연약함, 사악함, 그리고 감사하지 않음으로 예수께서 고통 받으시고 땅바닥에 얼굴을 묻으시는 것을 보았다. 당신에게 닥칠 구속의 죽음을 미리 보신 주님께 죽음에 대한 인간적인 공포가 여러 환영으로 닥쳐왔다. 주님께서는 손을 움켜쥐신 채 이리저리 쓰러지셨다. 식은땀으로 뒤덮인 예수의 몸은 떨렸다. 일어나시긴 했지만 무릎이 흔들려 몸을 지탱하실 수는 없는 것 같았다. 얼굴은 창백하고, 입술에는 핏기가 없었고 머리카락은 곤두서 있었다. 꿇어 엎드리신 예수께서 일어나신 것은 10시 반 쯤이었는 데, 식은땀으로 뒤덮인 몸을 떨면서 예수께서 힘겹게 세 제자들에게로 향했다."
"대제사장들 하인 몇 명은 형 집행인들에게 돈과 함께 큰 주전자를 주었는데 그 속의 붉은 액체를 마신 다음, 형 집행인들은 열 배는 더 잔혹하게 예수를 때렸다. 그들은 15분 남짓 발광하듯 주님을 때리다가 힘이 빠지자 다른 두 사람이 채찍을 잡았다. 예수의 몸 전체가 검푸르고 붉은 자국으로 덮였고, 피가 철철 흘러내렸지만, 유대인들 무리에서 터져 나오는 성난 외침을 들으니 그 잔인함이 충족되려면 ‘한참 멀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러니까 캐서린이 환상으로 본 예수 십자가 처형에 동원되었던 사람들은 하나같이 미치광이처럼 예수를 괴롭히는 괴물이었고, 로마 군인들도 사이코패스였다는 얘기가 되는 겁니다. 심신이 허약한 캐서린이 쓴 원고가 어느 작가에 의해 소설로 만들어졌고, 2004년 영화로도 만들어졌습니다.
<패션오브크라이스트> 영화를 본 가톨릭 교황 요한 바오로2세가 극찬하면서 성경에 있는 내용 "그대로다." 말했다고 합니다. 성경 학습으로 세뇌당한 캐서린이 본 환상이니까 그대로 일 수밖에 없는 노릇이고, <사실과 허구의 경계를 모호하게 허물어트린> 거짓말 학습에서 비롯된 망상이었습니다. 누군가 망상에 사로잡히면 정신 이상자라고 합니다. 절대 다수가 망상에 사로잡혔기 때문에 가톨릭은 종교입니다.
호랑이 담배 피던 이야기로 되돌아가 보겠습니다. 임진왜란으로 유입된 담배 흡연으로, 국민 건강이 심각하게 위협 받고 있습니다. 몸에 좋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현대 사회는 흡연이 일상화 돼 버렸습니다.
금연 캠페인과 함께 맹신과 종교 없는 사회, 인간 이성을 지상의 원리로 내세운 미완의 르네상스 운동이 절실하게 요구되는 세상에서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담배 니코친이 사람 몸에 해롭다는 사실을 모르는 이가 없습니다. 가톨릭이 말하는 부활한 그리스도 허망지설도 니코친과 유사한 독소입니다. 현대 문명 발달과 동반 성장해야 하는 정신세계 족쇄입니다. 이 사실을 금연 캠페인 하듯, 세상에 알려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적 요구이고, 우리가 외면할 수 없는 당면 과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