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카롭게 대립하는 산상수훈과 4복음서.
빌라도 예수 십자가 사건은 두 마리 토끼 사냥. 해묵은 감정이 많았던 빌라도 총독에게 예수 십자가 처형을 유도한 정치적 음모는 첫 번째 노린 토끼.
겨자씨 비유로 문명의 맹아를 말한 예수 시신 동굴무덤 방치는 선험적 열등의식에 빠진 랍비들이 노린 두 번째 토끼.
엄청난 거짓말. 거짓말 퍼레이드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인터넷에서 유포되고 있는 다큐멘터리 영화 한 편의 충격적인 내용 때문에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2007년 6월 구글 비디오 사이트를 통해서 상영되기 시작한 영화 자이트 가이스트. 자이트 가이스트는 한시대의 지배적인 지적, 정치적, 사회적 동향을 나타내는 정신적 경향을 뜻하는 독일어 Zeitgeist(시대정신)는 18세기 후반부터 19세기에 걸쳐 독일을 중심으로 등장하였습니다.
종전에 공개되지 않은 놀라운 비밀이라는 부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 1부 35분 / 2부 75분 / 3부 80분 동안 사건 뒤에 숨겨진 비밀을 폭로하고 있습니다. 1부 예수신화는 조작됐다. 2부 9.11 테러 음모론. 3부 FRB 비밀 역사상 가장 과장되고 거짓된 약속의 최고의 거짓말. 영성, 숭고는 직관을 다루는 특별한 용어입니다.
일신교 전통에서는 어떤 단어가 이론으로 쏠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어떤 행위들은 신성한 원리에 거스르는 것으로 여겨지지만 어떤 일은 신성한 원리를 만족시키는 것으로도 간주됩니다. 현재는 명확하게 지금입니다. 우리는 그것으로부터 유용한 것을 즉각적으로 경험하려고 노력합니다. 그러나 비 유심론적 역사적 사례가 특별히 중요치 않다는 점에서 아주 직접적입니다. 가장 중요한 건 지금 현재입니다. 지금 가질 수 있다는 것은 과거의 존재 했었다는 생각이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지금입니다. 현재는 명확하게 지금입니다. 신비스러운 것이 없이 단지 현재는 너무나 정직하게 단순 합니다. 그러나 현실과 당신은 끊임없이 상호작용하고 있다는 것에서 항상 문제가 발생합니다. 현재가 협박당하면서 불행했던 과거와 미래를 정확하게 예견하지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항상 과거에서 미래를 가져오려고 하지만, 그것이 종교를 찾는 이유이기도 하지만, 그것이 우리로 하여금 거리에서 행진하게 합니다. 또 그것이 세상을 향해서 불평하는 이유가 되는 것이고, 대통령에게 투표하는 원인이 되기도 하지만 미래가 없는 지금이라서 역사의 아이러니가 성립되고, 우리는 요지경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종교는 세상의 쓰레기 더미의 뿌리를 받고 있습니다. 그것은 결코 구원이 아닙니다.
우리는 어디서 왔는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연구하면 할수록 우리는 기만당해왔다는 것을 실감하게 됩니다. 우리는 모든 집단에 의해 철저하게 기만당해왔습니다. 왜 종교만이 유일하게 검증과정을 거치지 않고 성역으로 남아있어야 하는지 생각해볼 일입니다. 정부는 몰락한 교육을 제공하고 국제금융 카르텔을 조직한 사람들이 우리에게 종교를 만들어주었습니다.
우리의 지배자들은 당신과 당신의 가족에 관심이 없습니다. 그들은 오로지 세상을 지배하는 데 전력투구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진실하고 신성한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신이라는 조잡하고 막연한 상상의 세계에서 살고 있습니다. 나는 신이 무엇인지 모릅니다. 그러나 신이 무엇이 아닌지는 알고 있습니다. 당신이 진실에 다가갈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진실은 도망가지 않습니다. 사건 속에 숨겨진 진실은 언젠가 드러나기 마련입니다. 탐구에 열중하면 동녘이 밝아오듯 모든 것이 명확해집니다. 빛이 없으니까 어둠 속에서 살게 되는 것이고, 진실은 빛입니다. 진실은 기필코 찾아야 합니다. 진실은 당신에게 자유를 줍니다.
여러분, 터무니없는 이야기 하나 말씀드리겠습니다. 거짓말에 관한 얘긴데요. 엄청난 거짓말이 있습니다. 역사상 가장 과장되고 허망한 약속, 최고의 거짓말. - 바로 메시아입니다.
종교는 학습을 통해서 거짓을 주입해왔습니다. 저기, 하늘 위에 보이지 않는 한 남자가 있다고 합니다. 하늘에 거주하면서 당신의 모든 행동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이 투명인간은 당신이 하지 말아야 할 열 가지의 특별한 목록을 갖고 있습니다. 당신이 열 가지 중 하나라도 저지르면 지옥불과 연기와 화염과 고통과 고뇌로 가득 찬 무서운 곳에 떨어뜨린다고 합니다. 고통과 화염과 숨 막힘과 비명과 눈물 속에서 영원히 종말의 시간까지 고통을 준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는 당신을 사랑한다고 선전합니다. 당신을 사랑하기 때문에 돈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그는 항상 돈이 필요합니다. 전지전등하고 현명하지만 돈은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지금까지 수십억 달러를 챙겼습니다. 세금도 내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자꾸만 돈, 돈, 돈 타령을 합니다. 돈을 벌기 위해서 지금도 성스러운 구라를 치고 있습니다.
시대정신 1부는 가장 위대한 동화 기독교입니다. 영화 <시대정신>은 단지 예수를 단지 신화 속 인물로만 보고 있습니다. 정치적으로 양육된 문학적 산물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을 해도 뒤끝이 찡찡한 아쉬움이 남습니다. 예수의 실존과 역사성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습니다. 문명의 예수를 모르다니 아쉽다!
문명의 씨앗에 대해서 말한 예수. - 자아발견과 정신의 무한신뢰 - 예수 천국은 문명세계의 비유적 표현. 중세의 암흑 속에서 창조의 씨앗을 심고 르네상스를 빛의 세계로 이끌어낸 문명 디자이너 <다빈치>는 작은 노트를 들고 다니면서 떠오르는 생각을 코덱스에 적거나 그렸습니다. 코덱스 글자를 뒤집어썼기 때문에 일반인은 내용을 알 수 없었습니다. 왜? 거울에 비춰봐야 알 수 있도록 가꾸로 썼을까요?가꾸로 쓸 수밖에 없는 그만한 사정이 있었습니다.
<다빈치>는 중세 암흑시대 한가운데 있었고, 세정에 밝고 처세에 능한 사람이었습니다. <다빈치>보다 40년 전 살았던 <잔 다크>. 그녀는 서구 문화의 대표적 인물이면서도 이단 혐의로 종교재판을 받고 화형을 당했습니다. <다빈치>보다 1세기 후에 살았던 <갈릴레오>도 종교재판을 받았습니다.<코페르니쿠스>의 가설, 지동설을 옹호하면서 가르치다가 단죄를 받았습니다. 이처럼 난세에 살면서도 <다빈치>가 무사할 수 있었던 것은 코덱스를 가꾸로 썼기 때문이었습니다. 가꾸로 썼기 때문에 5세기 동안 외면당했다가 관심이 쏠리기 시작한 것은 1994년부터였습니다. 경매에 붙여진 <해머 코덱스>를 마이크로소프트사 회장 <빌게이츠>가 3천8십만 달러를 주고 구매한 다음부터였습니다. 중세의 암흑 속에서 창조의 시앗을 심고, 르네상스를 빛의 세계로 이끌어낸 <레오나르도 다 빈치>.
인류의 문명사를 살펴보면 몇 가지 큰 도약의 시기가 있었고 선각자들도 있었습니다. 신약성경 산상수훈에 숨겨진 예수의 <천국>도 <코덱스>와 쌍벽을 이루는 정신문화의 위대한 유산입니다.예수는 비유를 통해서 <자아발견>과 <정신력 무한신뢰>를 사람들에게 가르쳤습니다.창조적 발상의 원천이 되는 산상수훈이야말로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로 이어지는 생각의 씨앗입니다. 그러나 현대의 <예수 천국>은 열쇠 가 있는데도 굳게 닫혀있습니다.닫혀있을 뿐만 아니라 각가지 버전으로 변질되고 있습니다. 학자들 간에 경쟁적으로 변질되는 예수 왜곡의 역사는 1,900여 년 전, 선험적 열등의식에 빠졌던 랍비 니고데모와 닮은꼴입니다.
결자해지 차원에서 서기30년 예수 사건을 되돌아 볼 필요가 있습니다. 문명의 맹아에 대해서 말한 것은 죄가 되지 않기 때문에 예수는 다섯 번 재판을 받았습니다. 원로사제 안나스, 대제사장 가야바, 총독 빌라도, 헤롯 안티바, 총독 빌라도에게 다시 가서도 죄를 입증하지 못했습니다. 마가복음 14장 13절에 보면, 예수가 어느 다락방에 가는 장면 묘사가 있습니다. 물 한 동이를 가지고 가는 사람 뒤를 따라 성내로 들어간 일행은 영락없는 첩보영화의 한 장면입니다. 예루살렘에 도착한 예수는 작은 베다니 사람들 환대를 받았습니다. 그들이 예수를 비밀 아지트로 유인했습니다.
다락방에 도착하고서야 그곳이 이단자 비밀 아지트인 것을 알고, 예수는 급히 감남 산에 가서 숨었습니다.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베드로가 따라가며, “주여 어디로 가십니까?” 하는 유명한 말을 했습니다. 훗날 폴란드 작가 <헨리크>가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구절을 가지고 <쿼바디스>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생명의 위험을 느낀 예수가 피신한 동쪽 감남 산은 노숙자들도 기피하는 매우 지저분한 곳이었습니다. 성전에서는 양이나 염소를 도살하면서 피와 내장을 키드론 골짜기로 흘려보냈기 때문에 강남 산은 까마귀 서식 지었습니다. 지표면은 까마귀들이 흘린 배설물로 켜켜이 쌓여 있었고, 발 디딜 틈도 없는 인적이 끊기 곳이었습니다. 마태복음 26장에 보면, 감람산에 숨은 예수 처지가 어떻게 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예수는 심히 고민하여 죽을 지경이었고,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살려 달라고 기도할 때, 제자들은 잠만 자던 한심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가롯유다의 고발로 체포될 때, 예수는 의미심장한 말도 했습니다.
“내가 날마다 성전에 앉아 가르쳤는데 잡지 아니하다가 왜 강도를 잡는 것 같이 검과 망치를 가지고 와서 잡으려고 하느냐?”
예수 사건 이전부터 - 부활한 그리스도 미신이 창궐했습니다. 원로사제 안나스와 성전 경비대장 요나단은 삼엄한 경기를 펴면서 수상한 자가 보이면 현행범으로 체포해서 본때를 보여주려고 벼르고 있었습니다.
원로사제 안나스 법정. - 원로사제 안나스가 예수에게 두 가지를 물었습니다.
“너의 제자들과 너의 교훈에 대하여 말하라.”
“나는 회당과 성전에서도 은밀한 것은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말하면서도 예수는 다락방에 가게 된 경위를 말하지 않았습니다. 베드로가 멀찍이 쫓아 집에 들어갔다가 하인들 의심을 샀습니다.
하인1, “당신도 갈릴리 예수와 함께 있었다.”
“나는 네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겠다.”
하인2, “이 사람은 나사렛 예수와 함께 있었다.
”맹세하고 또 부인하면서 “나는 그 사람을 알지 못한다.
”하인3, “너도 그 당이다. 네 말 소리가 너를 표명한다.”
베드로가 저주하고 맹세하면서, “나는 그 사람을 알지 못한다.”이렇게 말하고 줄행랑을 쳤습니다.
대제사장 가야바 법정. - 시온산 중턱에 살고 있던 가야바는 지난밤에 장인 안나스가 수상한 자를 체포했다는 보고를 받은 바 있었습니다. 가야바는 마음을 느긋하게 먹고, 무리 앞에 섰습니다. 죄인에 대한 신문은 이미 끝이 났을 것이고, 요식행위에 불과한 수순을 밟으면 됩니다. 이런 관행에 대해서 편하게 생각을 하면서도 간혹 기분 나쁠 때도 있었습니다. 무리 중에서 예수를 발견한 가야바 입에서 탄식이 흘러나왔습니다.
“세상에 이럴 수가!” 가야바는 며칠 전부터 성전 뜰에서 예수가 무슨 말을 하는지 눈여겨봐서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성전 뜰에서는 누구나 이야기를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성전경비대 레위인들이 수상한 자를 체포했기 때문에 아무나 나설 수 없는 분위기였습니다. 예수는 비유로 자아발견과 정신력 무한신뢰를 말했기 때문에 가야바는 자신도 모르게 탄식이 흘러나왔습니다.
무리 중에서 누군가가 큰 소리로 말했습니다. “이 자가 성전을 비방하고, 거룩한 분의 이름을 모독했습니다.”예수를 유대광예의 수도원 에세네파 패거리라고 말했습니다. 무슨 오해가 있을 거라고 판단한 가야바는 무리를 남겨두고 안나스 집으로 달려갔습니다. “그 사람에게는 죄가 없습니다. 제가 며칠 전부터 유심히 봤습니다.”
가야바 말이 끝나기 무섭게 안나스가 위압적이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불법을 행하는 자들과 함께 다락방에 갔다가 감남 산에 숨은 걸 잡아왔네. 그래도 죄가 없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속아서 갔을 겁니다. 죄가 있었으면 경비대장 요나단이 벌써 감옥에 넣었습니다.”
“나도 그 점이 이상해서 몇 가지를 물어봤네. 그런데 자기는 나쁜 말을 한 적이 없다고 말하면서도 다락방에 가게 된 경위를 말하지 않았네.”
“그것 보세요. 속아서 간 겁니다.” 가야바가 변호하니까 화를 내면서 다시 말했습니다.
“이번 기회에 경각심을 높여야 하네. 한 사람이 죽어서 온 민족이 망하지 않게 되는 것이 유익하다고 생각하게.”
안나스를 설득하려다가 되레 설득을 당한 꼴이 된 가야바가 집에 돌아오니까, 무리는 어디론가 가고 없었습니다.
빌라도 법정 2차 - 가야바가 안나스를 만나러 간 사이에, - 당신들 말고도 죄를 줄 사람은 얼마든지 있다면서 고발의 무리는 안토니요새의 빌라도 총독에게 갔습니다. 그곳에 가서는 예수가 인두세를 내지 말자고 선동했다면서 고발했고, 그 말에 속을 총독이 아니었습니다. 어느 지역 사람인가 묻고, 때마침 헤롯 궁전에 와 있던 안티바에게 가라고 했습니다. 인두세는 세금청부업자 소관이었습니다. 안티바는 갈릴리 지역 세금청부업자였고, 그곳에 가서 죄의 유물을 따지라고 보냈습니다.헤롯 안티바는 세금청부업자였고, 예수가 인두세를 내지 말자고 선동한 사실이 없기 때문에 안티바에게 가서는 죄명이 바뀌었습니다.
“이 자가 유대 왕을 사칭했습니다.” 안티바는 이미 예수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 말에 속을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허허, 존재하지도 않는 유대 왕을 사칭했다면 그것은 로마 황제를 능멸하는 것일세. 다른 데 가서 알아보게.” 이렇게 말한 다음, 더 이상 상대하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이때가 오전 10시 무렵이었습니다.
빌라도 법정 2차. - 빌라도 총독을 다시 찾아갔을 때, 예수는 유대 왕을 사칭한 자로 죄명이 바뀌었습니다. 인두세 반대에서 왕을 사칭한 자로 죄명이 바뀌었는데도 총독은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가벼운 매질을 하고 방면하려고 했습니다. 왕을 사칭한 자를 풀어주면, 당신은 카이사루의 충신이 아니라면서 누군가가 억지소리를 했습니다. 몹시 화가 난 총독이, 수감 중인 흉악범 바라바를 방면하겠다면서 엄포성 발언을 했습니다.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그렇게 하라면서 대래 큰 소리를 쳤습니다. 머리 꼭대기까지 화가 치밀어 오른 총독이 흉악범을 방면했습니다. 백성의 안일을 책임져야 할 총독으로서는 신중하지 못한 처사였습니다. 그렇게 되니까, 약점을 잡았다고 판단한 무리 중 누군가가 격앙된 어조로 소리쳤습니다.
“왕을 사칭한 저 자를 십자가에 매달아야 합니다.” 이때부터 광기와 집단 히스테리가 발동하면서 “십자가” 소리가 사방에서 들려왔습니다. 축제 기간 중에 민란이 발생하면 안 된다는 생각에서, 총독은 마지못해 십자가 처형을 지시하고, 하인이 떠온 물에 손을 씻으면서 말했습니다.
“이 사람 피에 대해서 나는 무관하니 너에게 당하라!” 기고만장해진 누군가가 또 다시 소리쳤습니다. “우리와 우리 자손이 책임집니다.” 엄포를 놓으려다가 감정싸움으로 비화된 사건에 대해서 총독은 자괴감 에 치를 떨었습니다.
자주색 외투를 벗어서 예수 어깨에 걸쳐주면서 말했습니다. “이 시간 이후, 너는 내가 인정하는 유대 왕이다. 당당한 모습으로 저들에게 가거라.”
왕의 행차에 시종이 따라야 한다면서, 두 명의 죄수도 함께 십자가에 매달게 했습니다. 그래도 화가 풀리지 않아서, ‘나사렛 사람 유대인의 왕’이라고 쓴 팻말을 십자가 형틀 위에 매달게 했습니다. 총독은 사악한 유대인들을 싸잡아 세상의 조롱거리로 만들려고 작심을 했습니다.
십자가 판결은 오전 11시경 났습니다. 골고라 언덕십자가 형틀에 매달린 예수는 고통스러워하다가오후 3시경 숨을 거두었습니다.
오후 4시경, 안토니오세에서 대민업무를 보는 아리마대 요셉과 니고대모가 총독에게 예수 시신을 달라고 했습니다. 무고한 사람에게 십자가 처형을 지시한 총독의 마음은 변치 않았기 때문에 사망을 확인하고 가져가라고 했습니다. 유대인들은 갈대로 엮은 들것에 시신을 놓고 매장하는 전통 장례법이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아리마대 요셉과 니고대모는 예수 시신을 가져가서, 동굴무덤에 넣었습니다.니고대모와 아리마대 요셉은 예수 앞에서 선험적 열등의식에 빠지곤 했던 랍비들이었습니다. 메시아 도래와 세상종말을 믿지 않는 파리세인들이었습니다.
두 사람이 예수 시신을 매장하지 않고 동굴무덤에 넣었기 때문에, 겨자씨 비유를 통해서 <자아발견>과 <정신력,무한 신뢰>를 말한 예수는 부활한 그리스도 미신 중심에 들게 되었습니다.
2000년 12월 일간지 동아일보에 - 십자가 예수 체포에서 선고까지 위법투성, 기사가 실린 적이 있습니다. 오늘날의 형법체계로 예수 재판을 평가한 내용이었습니다. 가롯유다의 고발로 예수가 겟세마네 동산에서 현행범으로 체포될 당시, 체포형장 제시도, 진술거부권 등을 알려주는 미란다 원칙도 고지하지 않았다는 내용이었습니다.
1948년 이스라엘 건국 직후, 유대 학자들이 이스라엘 대법원에 예수의 재심을 청구한 사건도 있었습니다. 유대민족은 독립국가로서 행정부와 주권적 사법기관을 가지지 못했기 때문에 건국과 동시에 예수 재판에 대한 재심을 할 때가 되었다고 주장했습니다. 억지혐의 적용,법적 절차를 무시한 재판 진행,여론에 휘둘린 빌라도 총독의 무리한 판결에 문제가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대법원은 소송 기록이 없고, 신약 성경에 단편적인 기록만 남아있을 뿐이라는 이유를 들어서 재심청구를 각하했습니다.
서기 30년 예수 재판은 명백한 위법이었습니다. 재심 청구가 각하되는 바람에 예수는 잃어버린 명예를 되찾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코덱스를 가꾸로 기록하면서 무사했던 것처럼, 예수도 자신의 메시지를 <천국>에 숨겨 놓았기 때문에 언제, 어디서든 예수의 진짜 모습을 되찾을 수 있습니다. 하루빨리 신약성경 66권에 대한 집착을 버려야 합니다. 현대인의 머릿속에 박제된 왜곡된 예수의 이미지도 말끔히 지워버려야 합니다. 천국은 지혜의 눈을 통해서만 볼 수 있는 문명세계였습니다.예수는 태생적 창조정신과 자력갱생의 사상적 토대 위에서, <자아발견>과 <정신력 무한신뢰>를 말한 문명의 선각자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