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루살렘 이야기

루터의 종교개혁과 거짓말 쓰나미2

23-07-19 김춘봉 25

동영상 - https://youtu.be/0K3kRN1Wm8w

인류 문명사를 되돌아보면, 몇 번에 걸쳐 도약의 기회가 있었고, 선각자들도 있었습니다. 지중해 절대 강국으로 부상하게 된 로마는 도시 문명을 일으키면서 문명시대 여명기에 접어들었습니다. 로마는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지 못하면 역사적 퇴행으로 빠져들게 되는 위태로운 정점에 올라 있었습니다.

이것은 시대가 요구하는 과제였습니다. ‘무언의 압박’이었습니다. 인류 공존과 번영은 그냥 주어지는 게 아닙니다. 시대적 요구가 충족되지 못하면, ‘없었던 일이 돼 버리고’ 도약의 발판은 벼랑 끝이 되면서 날개가 없는 물체는 추락합니다. 바로 그 때, 혜성처럼 나타난 사람이 카이사르였습니다.

카이사르는 경쟁과 갈등, 양육강식의 논리를 종식시키려고 했습니다. 오늘날의 UN처럼 공존과 인류 번영을 모색하면서 관용과 포용 정신을 이야기 했습니다. 그러나 시대의 흐름을 감지하지 못했던 한심한 원로원 의원들과 키케로가 작당을 하고, 카이사르 암살에만 혈안이 돼 있었습니다. 이처럼 시대적 요구가 작동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에 카이사르 암살은 개인의 생사 문제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문명시대 여명기 먹구름이었고, 재발의 여지가 있는 악성 종양이었습니다. 반문명적, 반인륜적 범죄가 급증할 것이라는 불행의 전조였습니다.

카이사르 암살 이후, 역사적 퇴행 여파가 유대 속주에까지 미치면서 서기30년 예수 사건으로 비화되었습니다. 카이사르와 마찬가지로 나사렛 예수도 실물교훈과 <시대의 표적>을 말한 문명의 선각자였습니다. 예수의 산상수훈은 자아발견과 정신력 무한 신뢰였습니다. 시대적 요구에 적합한 발상 전환으로 문명 시대 꽃을 활짝 피우자는 계몽주의 메시지였습니다.

예수가 말한 천국은 문명 세계의 비유적 표현이었습니다. 창조적 발상의 원천이 되는 산상수훈이야말로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로 이어지는 생각의 씨앗이었습니다. 산상수훈에는 천국복음, 천국비밀, 천국의 열쇠, 누룩, 달란트, 이윤을 남긴 장사, 진주, 혼인잔치, 신부와 신랑, 밭에 묻힌 보물, 슬기로운 자와 미련한 자. 이와 같은 용어는 창조적 상상력과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는 매력적인 단어들입니다. 세정에 밝고 시대감각이 뛰어났던 나사렛 예수는 자신의 메시지가 시기상조임을 알고 천국에 숨겨놓았기 때문에, 부활한 메시아 미신을 유포하는 적의 수중에 있었으면서도 손상되지 않고 고금을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었습니다.

예수의 생애 가운데 초자연적인 요소를 배제하고, 하나의 인간으로서 예수를 새롭게 탐구한 에르네스트 르낭(1823~1892)이 말했습니다.

“예수는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인간"이었다.” 르낭은 기독교에서 초자연적 설명을 배척하고, '자연이 곧 신적(神的)'이라 하였으며 인간 본래의 자연성을 도덕적이라고 보았으며, 예수는 시적인 지성을 갖춘 사람이라고 말했습니다. 산상수훈을 목가적 환상이라는 말도 했습니다. 톨스토이(1828~1910)는 산상수훈을 문자 그대로 따라야 할 그리스도의 법이라고 했습니다.

마하트마 간디(1869~1948)는 비폭력주의를 위한 영감의 원천이라고 했습니다.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1724~1804)는 윤리적 절대 명령의 결정이라고 했습니다. 계몽주의 사상가 볼테르(1694~1778)도 산상수훈에 열광적인 찬사를 보냈습니다. 이처럼 행동하는 지성인들은 하나같이 예수의 산상수훈에 무언가가 있다는 식으로 말했습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나 역시 예수 <천국>에서,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고뇌하던 예수! 자연과 생명을 연구한 예수! 사람의 몸은 치유의 능력이 있다고 말한 예수! 인간은 문명의 맹아라고 말한 예수. 인류의 미래는 희망적이라고 말한 문명의 선각자 이미지가 떠오르곤 합니다.

“왜 우리는 과거의 마른 뼈 속을 더듬어야 하는가.” 랠프 월도 에머슨(1803~1882)이 한 말입니다. 한 시대의 종교는 다음 시대의 문학적 여흥거리’이라고 말한 에머슨은 수필집 『자연』에서 의미심장한 말을 했습니다.

우리 시대는 회고적이다. 우리 시대는 조상들의 무덤을 세운다. 우리 시대는 전기, 역사, 비평을 적는다. 앞선 세대들은 신과 자연을 대면했는데, 우리는 그들의 눈을 통해서 신과 자연을 본다. 왜 우리도 우주와의 본래 관계를 즐길 수 없는 것인가? 왜 우리는 전통, 우리에게 계시된 종교, 그들의 역사가 아닌 통찰력을 주는 시를 지닐 수 없는가?

에머슨은 1838년, 자신의 모교인 하버드 신학대학교에서 행한 연설 때문에 30년 동안 모교에서조차 환영받지 못했습니다. 인간은 신성을 가진 존재이고 <자기신뢰>를 통해서 더 좋은 사회를 이룰 수 있다고 말했기 때문입니다. “힘이란 내면에서부터 샘솟는 것이다. 우리가 약한 이유는 내면이 아닌 외부에서 도움을 구하기 때문이다. 이것을 깨닫고 주저 없이 자신의 생각에 따라 몸을 곧게 펴고 손과 발을 움직이는 사람은 기적을 이룬다.” ― ‘스스로 자신의 기둥이 되어라’ 중에서 - 에머슨이 한 말, ‘자기신뢰’와 산상수훈에서 예수가 한 말, ‘하느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는 동의어입니다.

예수가 문명 세계를 말할 때, 바리새파 랍비들은 많은 자선이 평화를 가져온다. 가난한 자들에게 복이 있다. 부자는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이처럼 말장난에 불과한 현학적인 표현을 써가면서 잠언인 양 가르치고 있었기 때문에, 예수는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고, 예수를 볼 때마다 랍비들은 선험적 열등의식에 빠지곤 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기원전44년 카이사르 암살과 예수 십자가 사건, 그리고 서기70년 유대 멸망은 문명시대 여명기 먹구름이었다는 혼란스러운 시국 상황에서 논의 되어야 합니다.

예수는 협잡과 농간으로 자신들 목적을 달성하려던 사악한 베다니 사람들 때문에 십자가상에서 죽임을 당했습니다. 예수 사건은 억지 혐의적용, 법적 절차를 무시한 재판진행, 여론에 휘둘린 빌라도 총독의 무리한 판결이 분명합니다. 현실상으로는 말이 될 수 없는 상황 설정 등 매우 자극적인 장면이 드러난 막장 드라마였습니다. 여기에는 예수가 순한 양처럼 죽기를 원하는 한심한 이야기 <이사야 53장>이 있었습니다.

예수가 죽고 50일이 되는 오순절, 베다니 사람들이 다시 다락방에 모여 그들의 숙원사업이었던 예루살렘 시가지 거점 확보 자축 행사가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겨자씨 비유를 통해서 ‘자아발견’과 ‘정신력 무한신뢰’를 말한 예수에게 베다니 사람들은 찰거머리 같은 존재들이었습니다. 그런데다가 예수 시신 동굴무덤 방치는 총독과 예수를 싸잡아 음해하려는 범죄였습니다. 백성의 안위를 책임져야할 총독이 흉악범 바라바를 방면하고, 무고한 예수에게 십자가처형을 지시한 것만으로도 황제에게 고발할 수 있었지만, 예수 시신을 동굴무덤에 방치함으로써, 그리스도 부활 허망지설을 유포하는 무리가 예수를 선전하게 함으로써, 문명의 선각자 예수가 무슨 말을 했는지 모르게 하려는 비열한 음모였습니다.

비열한 음모에 부화뇌동한 자가 또 있었습니다. 바울은 예수와 일면식도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자기가 다락방에 있을 때 예수가 최후의 만찬을 주재하는 광경을 목격한 것처럼 고린도 사람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거짓말을 했습니다.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에 떡을 축사하시고 이르시되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 식후에 또한 그와 같이 잔을 가지시고 이르시되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하셨으니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그가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

이와 같은 허위사실을 서기55년경 유포하니까 거짓말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면서 서기65~70년 나온 것으로 추정되는 마가복음에서는 ‘예수신화’에 역사적, 지리적 배경을 추가했고, 그 다음에 나온 마태와 누가복음에서는 예수 탄생과 부활에 대한 세부 내용을 윤문했으며, 요한복음에서 기독교 신학이 견고해졌기 때문에 랍비 니고데모와 아리마대 요셉의 예수시신 동굴무덤 방치와 바울의 거짓말 ‘최후의 만찬’은 문명의 선각자 예수와 아무런 관련이 없는 딴 세상 이야기였습니다.

이와 같은 사실을 로마 가톨릭이 모를 리 없었습니다. 로마 가톨릭은 이 점을 심각하게 고민한 나머지 교부들만 성경을 읽고 일반인들에게는 공개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15세기 중반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 독일이 발명한 인쇄술을 훨씬 앞질러 마누치오가 설립한 ‘다국적 출판회사’에서 다양한 외국 문자의 인쇄가 가능해졌습니다. 라틴어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아랍어의 코란, 히브리어 탈무드, 그리스어와 아르메니아어로 된 책도 출간했습니다.

가톨릭 신부였던 에라스뮈스도 1516년 신약성서의 각종 그리스어 원전 사본을 합쳐서 최초로 그리스어 성서를 활자화하고, 상세한 주해와 라틴어 번역을 첨가한 『교정 그리스어 신약성서』를 펴냈습니다. 가톨릭은 그 책을 일반에게 공개하는 것을 원치 않았습니다. 그 무렵, 마르틴 루터가 종교개혁을 주장하면서 에라스뮈스 라틴어 신약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하고, 1522년 출간했습니다. 3년 후, 윌리암 틴데일(1494~1536)도 독일어 신약성경을 영어로 번역했습니다. 영문 신약성경 3,000부를 출판하여 비밀리에 영국으로 반입하는 데 성공했지만, 로마 가톨릭의 눈치를 봐야 했던 영국 국왕 헨리8세가 시중에 유통되던 성경을 모두 소각했습니다. 그런데도 계속 반입된 18,000부 중에서 2부가 오늘날 대영박물관에 있다고 합니다.

금서를 발행한 틴데일은 황제의 법령에 의해 1536년 화형으로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 당시 마르틴 루터(1483~1546)는 바르트부르크 성주 프리드리히 보호를 받고 있었기 때문에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습니다.

왜, 로마 가톨릭은 사람들을 죽이면서까지 신약성경 출판과 보급을 막으려고 했을까요? 앞에서 이미 말한 바 있거니와 신약성경은 역사적 사실이 아니기 때문이었습니다.

존재하지 않았던 하나의 생각과 믿음을 창작해 낼 때 궁여지책으로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고, 거짓말은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리기 전까지 끝나지 않습니다.

신약성경을 종교적 베일에 감싸고, 범접할 수 없게 만드는 것이 최선책이라고 생각했던 겁니다. 이것은 로마 가톨릭이 양보할 수 없는 마지노선이었습니다.

그런데 루터가 종교개혁을 하면서 신약성경을 널리 보급했기 때문에 정교하게 맞물려 돌아가는 톱니바퀴 구조인 로마 역사 관점에서 신약성경을 탐구하면 ‘사실과 거짓의 경계를 모호하게 허물어트린 구체적 사례’가 속속 드러나기 마련이고, 루터의 종교개혁으로 말미암아 ‘거짓말 쓰나미’가 발생했다는 사실을 모든 사람이 알게 되는 것이라서, 이것이야말로 역사의 아이러니가 되는 겁니다. 


  • 23-07-20 원정
    루터라는 분의 이름을 들으니 교황청의 면죄부 판매가 생각나네요.
    기존의 종교들은 사람들을 지옥에 간다고 겁박하고 그 겁박에 근거하여 유지되어 온 면이 있지요.

    한 생각도 없으면, 지옥도 천국도 없고, 삶도 죽음도 없는데 말입니다.
    우리는 생각의 노예로 살지요.
    생각이란 그저 인연따라 나오는 피조물일 뿐인데....
  • 23-07-25 김춘봉
    지당하신 말씀이십니다.
    공갈 협박으로 역사적 진실을 숨겨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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