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목 ; 서기30년 예수 십자가 사건은 - 70년 유대멸망 전초전 - 제1화
인공지능 빙(Bing)에게 서기30년 예수사건 질문을 세 번에 걸쳐 했습니다. 빙의 대답은 기대에 못 미치는 수준이었고 '맹인모상' 장님 코끼리 만지기였습니다. 사건 전모를 알 수 있는 시대 상황이나 사회적 분위기를 전혀 느낄 수 없었습니다.
첫 번째 질문,
Me ; 빌라도 예수 재판에 대해서 궁금합니다.
Bing ; 안녕하세요, 이것은 빙입니다. 빌라도 예수 재판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빌라도 예수 재판은 신약 성경에서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에 이르기까지의 과정 중 하나로, 로마 총독 빌라도가 유대인들의 압력에 굴복하여 예수님을 사형에 처한 재판을 말합니다.성경에 따르면, 예수님은 유대인들의 대제사장 가야바와 산헤드린 공회에서 신성 모독죄로 유죄를 선고받고, 로마의 정치적 권한을 가진 빌라도에게 넘겨졌습니다. 빌라도는 처음에는 예수님을 종교범으로 여겨서 자신의 재판권이 없다고 하고, 갈릴리 출신이라면서 헤롯 안티파스에게 보냈습니다. 그러나 헤롯은 예수님을 재판하지 않고 다시 빌라도에게 돌려보냈습니다.빌라도는 예수님을 심문하면서 아무 죄도 찾지 못했지만, 유대인들이 계속해서 요구하자 채찍질과 조롱으로 처벌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만족하지 않고 십자가형을 외쳤습니다. 빌라도는 유월절 특별사면으로 예수님을 석방하려고 했지만, 유대인들은 바라바를 선택하고 예수님을 버렸습니다. 빌라도는 결국 유대인들의 협박과 압력에 굴복하여 예수님을 십자가형에 처했습니다.이 재판은 인간의 정치적 욕심과 부조리, 그리고 하나님의 구원 계획이 교차하는 역사적 사건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죄를 대신하시기 위해 억울한 재판과 고통을 감내하셨습니다. 우리는 이를 통해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깨닫고 감사해야 합니다.
두 번째 질문 ;
Me ; 베다니 사람들과 다락방은 무슨 관련이 있나요?
Bing ; 안녕하세요, 이것은 빙입니다."베다니 사람들과 다락방은 무슨 관련이 있나요?"라는 질문에 답해 드리겠습니다.베다니 사람들과 다락방은 다음과 같은 관련이 있습니다. - 베다니는 예루살렘에서 동쪽으로 약 3km 떨어진 감람산 자락에 있는 작은 마을입니다.성경에 따르면 예수님께서 베다니에 자주 방문하셨고, 마르다와 마리아, 그리고 그들의 형제 나사로의 집에서 머물렀습니다. (요한복음 11:1-2) 예수님께서 나사로를 죽음에서 살리신 기적도 베다니에서 일어났습니다. (요한복음 11:38-44) 이상으로 "베다니 사람들과 다락방은 무슨 관련이 있나요?"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을 마칩니다. 감사합니다.
세 번째 질문 ;
Me ; 대제사장 가야바가 예수를 변호했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사실인가요?
Bing ; 그 이야기는 성경에는 나오지 않습니다. 하지만 일부 학자들은 요한복음11장 49-50절에서 가야바가 한 말이 예수를 변호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는 산헤드린 공의회에서 "너희가 아무 생각도 못하느냐?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어서 온 민족이 망하지 않게 되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한 줄을 생각지 아니하는 도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은 예수를 죽이는 것이 로마의 징벌을 피하고 유대인들의 안전을 보장하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말은 또한 예수가 백성을 위해 죽어서 온 민족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계획을 암시하는 예언적인 의미도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가야바는 자신도 모르게 하나님의 뜻을 전하고 있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가야파가 예수를 변호했다는 증거로 충분한지는 의문스럽습니다. 왜냐하면 가야바는 이후에도 예수를 심문하고 비난하며, 로마 총독 빌라도에게 예수를 십자가형에 처하도록 요구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예수의 부활 후에도 가야바는 예수의 제자들을 핍박하고 탄압했습니다. 따라서 가야파가 예수를 변호했다기보다는, 자신의 권력과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예수를 희생시켰다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할 수 있습니다.
나는 빙에게 네 가지 질문을 하고, 대답이 '맹인모상' 장님 코끼리 만지기 수준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던 또 다른 이유를 알고 있습니다.예수는 협잡과 농간으로 목적을 달성하려던 베다니 사람들 때문에 십자가상에서 죽임을 당했습니다.예수 사건은 억지 혐의적용, 법적 절차를 무시한 재판진행, 여론에 휘둘린 빌라도 총독의 무리한 판결이 분명합니다.현실상으로는 말이 될 수 없는 상황 설정 등 매우 자극적인 장면이 드러난 막장 드라마였습니다. 여기에는 사금파리 하나도 건질 게 없는 한심한 이야기였던 <이사야 53장>이 있고, 예수를 전면에 내세우고 자신들의 존재감을 드러내려던 베다니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베다니 사람들은 예수가 죽고 50일이 되는 칠칠절(오순절), 다시 다락방에 모여 그들의 숙원사업이었던 예루살렘 시가지 거점 확보 자축 행사를 했습니다.그러니까 겨자씨 비유를 통해서 '자아발견'과 '정신력 무한신뢰'를 말한 예수에게 베다니 사람들은 찰거머리 같은 존재였습니다.<이사야 53장>에 보면, 대속으로 누군가가 죽지 않으면, 고난의 시대는 끝나지 않는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에게 싫어 버린바 되었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가리는 것 같이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않았도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고난을 당한 다 하였노라. 그의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며 그의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얻었도다."
이사야 53장 대속사상과 예수를 최초로 연결시킨 사람이 세례 요한이었습니다. 서기27년, 요한이 예수를 메시아로 선포하고 자기 제자들을 갈릴리로 보내 예수 제자 행세를 하게 했습니다.요한이 안티바에게 죽임을 당하니까, 요한의 추종 세력들이 요단강 나루터 건너편 베다니에서 예루살렘 인근 감람산 작은 베다니로 와서, 예수가 예루살렘에 나타나기를 기다렸습니다. 이와 같은 사실을 알고 예수는 언행을 조심하다가 무심결에 저들의 비밀 아지트 다락방에 간 것이 화근이었습니다.
마가복음14장13절에 보면 예수가 다락방으로 가는 장면 묘사가 있습니다. 물 한 동이를 가지고 가는 사람 뒤를 따라 성내로 들어 간 일행은 영락없는 첩보영화의 한 장면이었습니다. 예루살렘에 도착한 예수는 베다니 사람들 환대를 받았습니다. 그들이 예수를 비밀 아지트로 유인했습니다. 다락방에 도착한 다음에야 그곳이 이단자 비밀 아지트인 것을 알고, 예수는 급히 감람산에 가서 숨었습니다. 예수가 피신한 감람산은 노숙자들도 기피하는 매우 지저분한 곳이었습니다. 성전에서는 양이나 염소를 도살하면, 피와 내장을 키드론 골짜기로 흘려보냈기 때문에 감람산은 까마귀 서식지였습니다. 지표면은 까마귀들이 흘린 배설물로 켜켜이 쌓여 있었고, 나뭇가지에 다닥다닥 붙어 있던 까마귀들은 수시로 배설물을 흘렸기 때문에 인적이 끊긴 곳이었습니다. 마태복음26장에 보면, 감람산에 숨은 예수의 처지가 어떠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예수는 심히 고민하여 죽을 지경이었고,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기도할 때, 제자들은 잠만 자던 한심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가롯유다의 고발로 체포될 때도 예수는 의미심장한 말을 했습니다.
"내가 날마다 성전에 앉아 가르쳤는데 잡지 아니하다가 왜 강도를 잡는 것 같이 검과 망치를 가지고 와서 잡으려고 하느냐?" 성전 경비대장 요나단이 현행범으로 체포하지 않았음을 상기시키는 말이었습니다. 원로사제 안나스도 예수에게 두 가지를 물었습니다.
"너의 제자들과 너의 교훈에 대하여 말하라."" 나는 회당과 성전에서도 은밀한 것은 아무 것도 말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말하면서도 예수는 다락방에 가게 된 경위를 말하지 않았습니다.시온산 중턱에 살고 있던 대제사장 가야바는 지난밤 장인 안나스가 수상한 자를 체포했다는 보고를 받은 바 있었습니다. 가야바는 마음을 느긋하게 먹고 무리 앞에 섰습니다. 죄인에 대한 심문은 이미 끝이 났을 것이고, 자기는 요식행위에 불과한 수순을 밟으면 됩니다. 이러한 관행에 대해서 편하게 생각을 하면서도 간혹 기분 나쁠 때도 있었습니다. 무리 중에서 예수를 발견한 가야바 입에서 탄식이 흘러나왔습니다.
"세상에 이럴 수가!?"가야바는 며칠 전부터 성전 뜰에서 예수가 무슨 말을 하는지 눈여겨봐서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성전 뜰에서는 누구나 이야기를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성전 경비대 레위인들이 수상한 자를 체포했기 때문에 아무나 나설 수 없는 분위기였습니다.무리 중에서 누군가가 큰소리로 말했습니다.
"이 자가 성전을 비방하고 거룩한 분의 이름을 모독했습니다."
예수를 유대광야의 수도원 엣세니파 패거리라고 말했습니다.무슨 오해가 있을 거라고 판단한 가야바는 무리를 남겨두고 안나스 집으로 달려갔습니다."그 사람에게는 죄가 없습니다. 제가 며칠 전부터 유심히 봤습니다."가야바 말이 끝나기 무섭게 안나스가 위압적이 목소리로 말했습니다."불법을 행하는 자들과 함께 다락방에 갔다가 감람산에 숨은 걸 잡아 왔네. 그래도 죄가 없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속아서 갔을 겁니다. 죄가 있었으면 경비대장 요나단이 벌써 감옥에 넣었습니다."
"나도 그 점이 이상해서 몇 가지를 물어 봤네. 그런데 자기는 나쁜 말을 한 적이 없다고 말하면서도 다락방에 가게 된 경위를 말하지 않았네." "그것 보세요. 속아서 간 겁니다. "가야바가 변호하니까, 안나스가 화를 내면서 다시 말했습니다. "이번 기회에 경각심을 높여야 하네. 한 사람이 죽어서 온 민족이 망하지 않게 되는 것이 유익하다고 생각하게. "안나스를 설득하려다가 되레 설득을 당한 꼴이 된 가야바가 집에 돌아오니까 무리는 어디론가 가고 없었습니다.
가야바가 안나스를 만나러 간 사이에, 당신들 말고도 죄를 줄 사람은 얼마든지 있다면서 고발의 무리가 예수를 앞세우고 안토니요새의 빌라도 총독에게 갔습니다. 그곳에 가서는 예수가 인두세를 내지 말자고 선동했다면서 고발했습니다. 그 말에 속을 총독이 아니었습니다. 어느 지역 사람인가 묻고, 때마침 헤롯궁전에 와 있던 안티바에게 가라고 했습니다. 인두세는 세금청부업자 소관이었습니다. 안티바는 갈릴리 지역 세금청부업자였고, 그곳에 가서 죄의 유무를 따지라고 보냈습니다. 예수가 인두세를 내지 말자고 선동한 사실이 없기 때문에 안티바에게 가서는 죄명이 바뀌었습니다.
"이 자가 유대 왕을 사칭했습니다." 안티바는 이미 예수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 말에 속을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허 - 허, 존재하지도 않는 유대 왕을 사칭했다면 그것은 로마 황제를 능멸하는 것일세. 다른데 가서 알아보게."
이렇게 말한 다음, 더 이상 상대하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이때가 오전 10시 무렵이었습니다. 빌라도 총독을 다시 찾아갔을 때 예수는 유대 왕을 사칭한 자로 죄명이 바뀌었습니다. 인두세 반대에서, 왕을 사칭한 자로 죄명이 바뀌었는데도 총독은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가벼운 매질을 하고 방면하려고 했습니다. 왕을 사칭한 자를 풀어주면 당신은 카이사르의 충신이 아니라면서 누군가가 억지소리를 했습니다. 몹시 화가 난 총독이 수감 중인 흉악범 바라바를 방면하겠다면서 엄포성 발언을 했습니다.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그렇게 하라면서 되레 큰소리를 쳤습니다. 머리꼭대기까지 화가 치밀어 오른 총독이 흉악범을 방면했습니다. 백성의 안위를 책임져야 할 총독으로써는 신중하지 못한 처사였습니다. 그렇게 되니까 약점을 잡았다고 판단한 무리 중 누군가가 격앙된 어조로 소리쳤습니다.
"왕을 사칭한 저 자를 십자가에 매달아야 합니다." 이때부터 광기와 집단 히스테리가 발동하면서 '십자가' 소리가 사방에서 들려왔습니다.축제 기간 중에 민란이 발생하면 안 된다는 생각에서, 총독은 마지못해 십자가 처형을 지시하고 하인이 떠온 물에 손을 씻으면서 말했습니다."이 사람 피에 대해서 나는 무관하니 너희기 당하라. "기고만장해진 누군가가 또 다시 소리쳤습니다. "우리와 우리 자손이 책임집니다. "엄포를 놓으려다가 감정싸움으로 비화된 사건에 대해서 총독은 자괴감에 치를 떨었습니다. 자주색 외투를 벗어서 예수 어깨에 걸쳐주면서 말했습니다.
"이 시간 이후 너는 내가 인정하는 유대 왕이다. 당당한 모습으로 저들에게 가거라." 왕의 행차에 시종이 따라야 한다면서 두 명의 죄수도 함께 십자가에 매달게 했습니다. 그래도 화가 풀리지 않아서, <나사렛 사람 유대인의 왕> 이라고 쓴 팻말을 십자가 형틀 위에 매달게 했습니다.총독은 사악한 유대인들을 싸잡아 세상의 조롱거리로 만들려고 작심을 했습니다.
십자가 판결은 오전 11시경 났습니다.골고다 언덕의 십자가 형틀에 매달린 예수는 고통스러워 하다가 오후3시경 숨을 거두었습니다. 오후4시경, 안토니요새에서 대민 업무를 보는 아리마대 요셉과 니고데모가 총독에게 예수 시신을 달라고 했습니다. 무고한 사람에게 십자가처형을 지시한 총독의 마음은 편치 않았기 때문에 사망을 확인하고 가져가라고 했습니다.
유대인들은 갈대로 엮은 들것에 시신을 놓고 매장하는 전통 장례법이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아리마대 요셉과 니고데모는 예수 시신을 동굴무덤에 넣었습니다. 여기까지가 베다니 사람들이 배후에서 조종한 막장 드라마였습니다.
나는 세 번째 질문으로, 대제사장 가야바에 대해서 물었을 때 이탈리아 메디치 가문이 생각났기 때문이었습니다. 13세기부터 17세기까지 피렌체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한 메디치 가문은 은행업과 상업을 통해 부를 쌓았고, 르네상스 예술과 인문주의의 후원자로 유명합니다.예수 생존 당시 사두개인들도 메디치 가문과 유사했습니다.
그들은 생명과 현세가 중요하다고 여기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문명의 선각자 예수와 관련이 있었다고 봐야 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가야바가 끝까지 예수를 지켜주었다면, 베다니 사람들 음모를 사전에 깨부술 수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