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루살렘 이야기

미완의 르네상스 기행(1) 런던2

23-03-07 google-김춘봉 36

우주적 관점에서 볼 때, 인류는 ‘문명의 씨앗’으로 지구상에 존재한다. 태생적 창조 정신과 자력갱생의 정신력을 발휘하면서 인류는 문명 창출을 통해서 우주시대를 활짝 열었다. 문명사회는 우연을 넘어 필연의 궤도에 올랐다. 여명기에 살았던 예수는 문명사회가 목전에 다가왔음을 알렸다.

“아침에 하늘이 붉고 흐리면 날씨가 궂겠다! 하나니, 너희가 천기는 분별할 줄 알면서 시대의 표적은 분별할 수 없느냐?”

문명 창출에 동참하라는 말도 했다.

“아이들이 장터에 앉아 제 동무를 불러 가로되 우리가 너희를 향하여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는다.”

생장 조건이 맞아야 씨앗이 결실을 맺는다는 말도 했다.

“씨를 뿌리는 자가 뿌리러 나가서 뿌릴 새, 더러는 길 가에 떨어지매 새들이 와서 먹어버렸고, 더러는 흙이 얇은 돌밭에 떨어지매 흙이 깊지 아니하므로 곧 싹이 나오나 해가 돋은 후에 타져서 뿌리가 없으므로 말랐고, 더러는 가시떨기 위에 떨어지매 가시가 자라서 기운을 막았고,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백 배, 육십 배. 삼십 배의 결실을 하였느니라. 귀 있는 자는 들으라.”

이렇게 말한 예수는 미래를 설계한 문명 디자이너였다.예수가 문명 디자이너였다는 생소한 이야기는 겨자씨 비유에서 비롯된 가설이다. 물증이 없으면 이론적 가설을 가지고 논쟁을 시작한다. 이론이 도출되고 관찰이나 실험을 통해서 타당성이 입증되면 진리가 된다.

나는 7박8일 유럽여행을 다녀왔다. 르네상스 발상지를 두루 거치는 코스였다. 예수가 문명 디자이너였다는 가설에, 논리적 근거를 마련하기 위한 여행이었다.

2015년 4월13일 : 14시, 인천공항 출발 → 런던 도착, 일박14일 : 런던 관광, → 오후8시 여객기 탑승 → 로마, 일박15일 : 로마 오전 관광, → 바티칸시국 오후 관광, → 로마 일박16일 : 로마 → 피렌체 관광, → 베네치아 일박17일 : 베네치아 오전 관광 → 밀라노 오후 관광, 일박18일 : 밀라노 → 인터라켄 오후 관광, 일박19일 : 인터라켄 → 제네바에서 열차로 환승 → 파리 오후 관광, 일박20일 : 파리 관광 → 오후7시 비행기 탑승21일 : 13시 30분, 인천공항 도착

4월 13일 오후 2시 15분, 인천공항을 출발한 아시아나 여객기가 서해와 중국 영공을 통과하고, 13시간 비행을 했는데도 서울과 런던 시차가 8시간이라서, 런던 하드로 공항에 도착하니까 그곳 시간은 오후 7시 55분이었다. 입국 심사와 세관 검사를 마치고 대합실로 나왔다.현지 가이드가 여행사 피켓을 들고 일행 21명을 반갑게 맞이하고는, 대기 중인 버스에 타라고 했다.좌석벨트를 매고 앉아 있으려니까, 현지 가이드가 자기소개를 한 다음 런던에서의 일정을 말했다.

“하드로 공항에서 런던 도심까지는 19,2km입니다. 오늘은 호텔에 투숙하시고 내일 오전 템스 강변을 버스로 둘러본 다음, ‘하이드 파크’에 갔다가 인근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오후 영국 박물관과 버킹엄 궁전 근위병 교대식을 보시고, 다시 이곳 공항에 와서 오후8시 로마행 여행기를 탑승하시게 됩니다. 버스는 어느새 런던 근교의 한 호텔에 도착하고, 런던에서 첫 날밤을 보냈다.   

* 유럽여행 첫째 날,

호텔 식당에서 아침 식사를 한 다음, 버스를 타고 템스 강에 정박 중인 군함 ‘벨파스트 호’ 앞에서 하차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과 싸웠으며, 한국전쟁에도 참전했다는 영국 군함이라고 가이드가 말하면서,

“지금은 해양박물관으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템스 강변을 거닐면서 구경하시다가 1시간 후, 이곳에 다시 모이는 걸로 하겠습니다. 멀리 가지 마세요.”

가이드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뿔뿔이 흩어졌다. 나는 집사람과 함께 템스 강변을 둘러보았다. 아이들이 마련해준 효도관광에 아내는 마냥 즐거워했다. 템스 강 건너편 국회의사당 건물이 보이고, 15분 간격으로 타종한다는 ‘빅벤’을 비롯하여, 고대 로마인들이 최초로 건설했다는 ‘런던 브리지’를 먼발치에서 봤다. 원형 회전캡슐이 135m 높이까지 올라간다는 커다란 ‘런던 아이’를 배경으로 사진도 찍었다.

버스에 탑승한 우리는 웨스트민스터 사원과 현대식 건물의 런던시청을 둘러보고 ‘하이드 파크’로 이동했다.총면적이 140만㎡라서, 하루에 다 둘러 볼 수 없다고 가이드가 말하면서 공원 중앙에 있는 ‘서펜틴 호수’까지 갔다. 도심 한가운데에 이처럼 울창한 두릅나무 숲과 넓은 잔디밭, 맑은 호수가 어우러진 휴식 공간이 있고, 사람들은 풀밭에 둘러 앉아 있거나 누워서 한가로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주차장으로 돌아와서, 다시 버스를 타고 영국 박물관으로 이동하는 동안 가이드의 설명이 있었다.

“1753년 박물학자인 한스 슬론경이 6만5천 점의 수집품과 4만5천 권의 장서를 기증하면서 박물관이 시작되었습니다. 몬태규 후작이 건축가 피에르 퓌에에게 설계를 의뢰하고, 파리의 베르사유 궁전에 참여했던 화가들이 실내 장식을 맡아서 완공했습니다."

"1759년부터 일반에게 공개했는데, 유물이 손상될까 봐 엄격한 심사를 거치면서 하루에 고작 십여 명 밖에 관람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리스의 파르테논 신전 조각상을 비롯하여 세계 각지를 정복할 때마다 전리품으로 가져 온 유물을 전시하면서 명실상부한 세계적 박물관이 되었습니다."

"이곳은 세계 최초의 국립 박물관이고 개관 당시부터 무료입장을 하고 있습니다. 박물관에는 인류의 태동기부터 현대에 이르는 각 문명권의 역사와 문화를 망라하는 유물과 민속 예술품 800만 여 점을 소장하고 있습니다. 1년에 600만 명이 관람합니다. 소장품 목록을 일일이 말씀드릴 수 없고, 파르테논 신전의 대리석 조각품 등 역사적 가치가 높은 전시품을 구경하실 수 있습니다. 나폴레옹이 이집트 원정(1801)을 했을 때 프랑스인들에게서 빼앗은 <로제타석>도 있습니다.”

1799년 프랑스 군대가 이집트 원정 중, 어느 병사가 나일강 삼각주에 위치한 로제타 마을에서 비석을 하나 발견했다는 기사를 어느 일간지에서 본 적이 있었다. 박물관 입구는 입장하려는 사람들로 북새통이었다.

단체 광관은 박물관 직원 안내를 받기로 되어 있었고, 우리는 직원을 따라 이동했다.

박물관 구조는 지하1층과 지상2층으로 되어 있었다. 이집트 전시관, 그리스와 로마 전시관, 서아시아와 동양전시관으로 구분이 되어 있다는 가이드 설명을 휴대용 단말기 이어폰으로 들으면서 우리는 이동했다. 

이집트와 수단의 거의 모든 시대를 커버할 수 있는 유물이 이곳에 있고, 고대 로마의 유물도 10만 점이 넘는다고 했다. 소크라테스의 소형상, 페리클레스의 반신상, 카이사르와 로마 황제들의 흉상을 보면서 나는 그냥 지나쳤다.

이처럼 이곳저곳을 건성으로 보았지만 <로제타석> 만큼은 유심히 보았다. 길이 1.25m, 너비 0.7m, 두께 0.25m의 비석에는 암호처럼 알 수 없는 문자들이 새겨져 있었다.유물 발견 당시에도 상당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할 수 있는 비석이었다. 인터넷 검색으로 당시 프랑스군과 영국군이 이집트 유물을 서로 차지 하려고 혈안이 되어 있었다는 내용을 나는 알고 있었다.

영국군과 터키군의 포위 공격이 시작되자, 프랑스군은 <로제타석>을 카이로에서 알렉산드리아로 옮겼다. 그러나 전투에서 패배한 프랑스 군은 알렉산드리아의 항복협정문에 따라 이집트에서 수집한 골동품을 영국군에게 양도할 수밖에 없었다.프랑스 지휘관이 <로제타석>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자신의 집에 보관 했는데, 그 사실을 알고 영국군이 강제로 빼앗으면서 <로제타석>은 프랑스의 루브르박물관에서 전시하지 못하고 이곳 영국 박물관에서 전시하게 된 것이다.

프랑스 군인들은 <로제타석>을 빼앗기기 전, 탁본을 여러 장 만들어서 학자들에게 보여주고 세 개의 텍스트가 동일한 내용을 각기 다른 언어로 쓰였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새로운 왕이시며 왕관의 주인이신, 영광이 크시고 이집트를 평탄케 하시며 신들에 대해 경건하며 적들보다 우월하며 인간의 삶을 올곧게 하시고, 헤페스투스 대왕처럼 30년을 다스리시고, 태양과 같은 왕이시 며, 위의 세상과 아래 세상의 위대한 왕이며, 헤패스투스가 인정하신 부모를 공경하는 신들의 자녀이며, 태양이 승리를 허락하시고, 제우스 의 현신이며, 태양의 아들이신, 프타에게 사랑받는 영생하실 프톨레마 이오스께서 통치하실 적에 …."

이처럼 상단 텍스트(14줄)는 사제들을 위하여 이집트 신성문자로 적은 것이고, 중간 텍스트(32줄)는 신하들을 위하여 이집트 민중문자로 적었다.나머지 하단 텍스트(51줄)는 이집트에서 살고 있는 그리스어 문화권 사람들을 위해 고대 그리스어 대문자로 새긴 비석이었다.

박물관 직원이 우리를 한국관이 있는 곳으로 안내했다. 인터넷 상에서 이미 사진으로 보았기 때문에 별다른 감흥은 느낄 수 없었다. 가이드의 설명이 이어졌다.

“1992년, 영국 박물관에 별도의 한국관을 설치하는 데 드는 비용 200 만 달러를 한국이 부담한다는 약정서를 체결했다고 합니다. 2000년 11월에 오픈한 한국관에는 구석기 유물부터 조선 후기의 미술품까지 250여 점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이곳에 전시된 유물은 한국의 국립중 앙박물관이 문화재를 대여하는 식으로 교체하고 있다고 합니다. 2008 년 12월부터는 한국어 음성·동영상 안내 서비스도 실시하고 있습니다. 이곳 말고도 스코틀랜드 국립박물관에 한국 도자기와 칠기 및 목가구 등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민간 차원에서도 대한민국이 유구한 역사를 가진 문화민족임을 알리는 사업을 개별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현대그룹에서 4억여 원을 지원하여 피즈윌리엄 박물관에도 1990년 4월 한국관을 개설했습니다. 삼성그룹에서도 6억여 원을 들여서 빅토리아 앤 앨버트 박물관에 132㎡의 한국관을 1992년 12월 문을 열었습니다.”

가이드의 설명을 듣고 있자니까, 영국과 프랑스는 약소민족의 문화재를 강탈해서 자신들의 것인 양 전시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영국 박물관의 경우, 자국의 문화재는 단 한 건도 없다는 사실을 나는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에 <속빈 강정>이라는 생각을 했다.

이처럼 자국의 유물이 없는 영국박물관 안에 우리 정부가 독립관을 만들어 문화민족임을 알리고 있다고 생각하니까,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자부심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한국관에 꼭 있어야 할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아쉬움으로 남았다. 세종대왕이 창제한 <한글>의 우수성을 알리는 문헌이 보이지 않았고, 대한민국 교육이념은 홍익인간이란 휘호도 보이지 않았다.

홍익인간하면 생각나는 사람이 루마니아 망명 작가 게오르규이다. 가 톨릭 신부이자 독일의 나치스와 볼셰비키 학정, 그리고 현대악을 적나 라하게 보여준『25시』작가로 유명한 게오르규는

“한국은 지극히 평 화적이고 근면한 국가이다. 홍익인간이라는 단군의 통치이념은 지구 상에서 가장 위대하고 완벽한 법률이다. 21세기 새로운 세계를 이끌 어갈 철학이 될 것이다”

이처럼 극찬한 <홍익인간>은 우리의 자랑거리가 분명하거니와 인간 세상을 널리 이롭게 한다는 홍익인간 정신을 한국관에서 적극 홍보해 야 한다고 나는 생각했다.그와 동시에 생각난 사람이 또 있다. 인도의 시성 타고르가 일본을 방 문했을 때(1929), 동아일보에 기고한 <동방의 등불> 시가 생각났다.

일찍이 아세아의 황금시기에 빛나던 등촉의 하나인 조선. 그 등불 한 번 다시 켜지는 날에 너는 동방의 밝은 빛이 되리라.노벨문학상을 수상하고, 일본인들의 초청을 받고 도쿄에 왔다가 동아 일보 기자를 통해서 보낸 시였다.

또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금세기 최고의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는 인류 역사를 도전과 응전의 법칙으로 설명하면서

"문명이 발전하느냐 몰락하느냐의 문제는, 창조 적 소수의 지도력에 따라 좌우 된다”고 말했다. 어느 세미나에서 신문기자가 창조적 소수와 관련하여 흥미 있는 질문 을 던졌다. ‘당신에게 창조적 소수는 누구입니까?’ 토인비는 엷은 미소를 지으면서, ‘어머니’라고 말했다.

“어머니는 제가 네 살 때부터 책을 읽어 주셨고, 사랑이 담긴 목소리로 역사 속 주인공들을 만나게 해주었습니다.” 그의 모친은 역사학자로서,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의 역사 교과서를 저술한 바 있고, 부친과 조부는 의사였으며 열렬한 사회주의자였다. 숙부는영국산업혁명사의 저자로 경제학자였다. 이처럼 유복한 가정에서 자란 토인비가 문명권을 26개로 나누고, 문 명의 성장과 소멸 과정을 설명한 <역사의 연구> 출간은 당연한 귀결 이라고 하겠다.

그러나 토인비의 ‘청어 이야기’를 읽고는 대수롭지 않 게 여기게 되었다. 북쪽 바다에서 잡은 청어를 먼 거리의 런던까지 싱싱하게 운반하기 위 하여, 수백 마리 청어가 들어 있는 통 속에 메기를 한 마리씩 집어넣는 다. 메기는 청어를 두서너 마리밖에 잡아먹지 못한다. 그러나 통 속에 들어 있는 다른 청어는 메기에게 잡혀 먹히지 않으려고 결사적으로 도 망을 치기 때문에 런던에 도착해서도 싱싱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까 적당하게 스트레스를 받으면 그것이 삶의 촉진제가 될 수 있 다는 이야기였다. 얼핏 들어서는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내용이다. 적당하게 스트레스를 받으면 삶의 촉진제가 된다는 가설이 <역사의 연구> 근간이라고 생각 하니까 토인비에 대한 신뢰도가 뚝 떨어졌다. 역사 인식에 대한 토인비의 편견은 또 있었다. 어느 날 불가리아의 한적한 시골길을 걷다가 여우가죽 모자를 쓴 농민 들이 일하는 광경을 보게 되었다. 그 순간, 그들이 쓰고 있는 모자가 고 대 그리스의 역사가 헤로도토스가 크세르크세스 병사들의 머리쓰개를묘사했던 대목과 닮았다는 생각이 들면서, 그의 뇌리에 그 무언가가 ‘ 탁’하고 와 닿더라는 것이었다.

기원전 400년에 사용하던 유물들이 20세기에도 쓰이고 있다니! 참으 로 신기하구나. 옳거니! 역사는 반복되는 거야. 큰 문명에 대한 작은 문 명의 끊임없는 도전과 응전으로 판도가 바뀌고 있을 뿐이야. 이것이 토인비의 역사 인식이고, 깨달음이었다.

토인비는 인류 역사에 있어서 새로움을 기대할 수 없다고 단정 짓고, 발생→성장→쇠퇴→해 체, 그리고 또 다른 문명으로 바뀌면서 민족 상호간의 힘의 불균형 내 지 세력 확장이라는 도식이 성립 된다고 말했다. 도전과 응전의 법칙에 따라서, 인류는 싸움질이나 하다가 종국에는 멸망한다는 말세론과 유사한 결론이었다.

토인비 말마따나 인류는 싸움질이나 하는 미련하고 바보 같은 존재 일까?

“천만에 말씀!”

나는 토인비에게 달려가서 ‘당신은 잘못 생각하고 있다. 인류는 바보 가 아니다' 이렇게 말해 주고 싶었다. 문명의 주기적인 생멸의 역사는 영국처럼 자신들의 고유한 문화유산 이 없으면서, 약소민족의 문화재와 유물을 빼앗아서 자신들의 것인 양 선전하면서 생긴 편견이다. 지구상에 존재하게 된 인류는 ‘문명의 씨앗’이고, 광명한 미래를 향해서 순조롭게 항해 중에 있다는 사실을 토인비는 모르고 있었다.

기나긴 원시사회를 보내고 인류는 문명의 여명기를 거쳤으며, 정상적 인 궤도에 올라 우주시대를 향해서 순조롭게 나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토인비는 알아야 할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가 집고 넘어가야 할 것이 또 있다. 물질문명과 동반 성장해야 하는 정신문화가 가톨릭의 절묘한 계책으로 발목이 잡혀 있기 때문에, 이것이야말로 인류가 풀어야 할 당면 과제인 것이다.

인류 문화사에 있어서 정신문화와 물질문명은 동반성장 하는 것이 정상이었다. 그런데 물질문명이 앞서는 바람에, 야만인 수준에 머물러 있는 사람들이 남의 문화재를 빼앗고는 ‘옳거니! 역사는 반복되는 거야. 큰 문명에 대한 작은 문명의 끊임없는 도전과 응전으로 판도가 바 뀌고 있을 뿐이야.’

이처럼 근거 없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토인비는 유구한 역사를 가진 대한민국을 하찮게 여기는 발언도 했다. 한국을 중국의 위성 국가, 일본의 아류 국가라고 말했다.

‘오는 말이 고와야 가는 말도 고운 법’

영국박물관을 둘러 본 소감을 묻는 다면, 나는 서슴지 않고 ‘속 빈 강 정’이라고 말할 것이다. 영국박물관을 둘러보고, 버킹검 궁전의 근위병 교대식을 보러 갔다. 버킹엄 궁전은 영국 왕실의 사무실이자 집이고, 국빈을 맞이하는 공식 적인 장소이며, 궁전 앞에는 영국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했던 빅토리아 여왕의 기념비가 황금빛을 발하며 위풍당당하게 서 있다.

“이 궁전 뒤쪽에는 48,000평에 달하는 널따란 정원이 있습니다. 방도 650개가 넘는다고 합니다. 궁전의 실내 장식도 화려하기 그지없다고 합니다.…”

궁전에 대한 가이드의 설명을 나는 한 귀로 흘려버렸다. 어디선가 북 소리와 군악대 연주가 들려왔다. 곧이어 장난감 병정 같은 복장을 한 근위대 병사들 행진을 보려고 사람들이 도로를 가득 메웠다. 근위병 교대식을 보고, 버스를 타고 하드로 공항으로 갔다.

공항에서 출국 수속을 마치고, 오후 8시 무렵 탑승한 여객기는 10시30분, 로마의 레오나르도 다 빈치 공항에 도착했다.   

  • 23-03-22 원정
    토인비의 역사의 연구를 감명 깊게 읽은 적이 있었는데, 우리나라를 그렇게 평가하다니 괘씸하군요.^^
  • 23-04-01 google-김춘봉
    저도 그 사실을 알고, 토인비 글을 읽다가 중단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