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루살렘 이야기

아나키스트를 화폭에 담은 피카소2

22-12-27 김춘봉 32




작가 조정래 대하소설 『태백산맥』은 1983년 9월부터 월간지 <현대문학>에 연재하면서, 1986년 제1부 3권, 1987년 제2부 2권, 1988년 제3부 2권, 1989년 제4부 3권이 한길사에서 출간되었습니다.

1994년 9월, 영화로도 만들어졌습니다. 조정래 작가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민족 분단의 삶을 날줄과 씨줄로 엮어 민중의 상처와 아픔을 감싸고자 하는 베짜기 작업이 어떻게 종합되고 통일을 이루어, 잘려진 태백산백의 허리를 잇는 데 얼마나 기여할지는 나도 잘 모른다. 그 짐을 나는 지고 있는 것이다. 민족의 허리 잇기 염원이 언제인가는 성취될 것을 믿으며, 앞으로도 동반자 없는 등반을 계속해 나가는 길밖에 없을 것이다. 우리의 분단된 삶을 통찰함에 있어서 일천구백사십팔년 시월 십구일에 여수, 순천을 중심으로 일어난 사건은 분단비극의 시발점으로서 그 의미를 지니고 있다. …”  

『태백산맥』 제목은 정작 나오지 않습니다. 주된 배경은 지리산이고, 작가는 후에 태백산맥은 민족의 등뼈로 - 끊겨진 등뼈를 다시 잇는다는 심정으로 제목을 지었다고 밝혔습니다. 조정래 작가는 1943년에 출생했으며, 1950년 6.25 전쟁을 겪은 세대입니다.  

1941년 출생한 나 역시, 민족 분단의 상처와 아픔을 경험했습니다. 나는 삼팔따라지이면서도 ‘아나키스트’ 작가입니다. ‘아나키스트’는 태생적입니다. 신생아가 무신론자인 것처럼, 종교적 신념이나 정치적 이념은 학습을 통해서 후천적으로 만들어집니다. 어떤 학습에도 세뇌당하지 않는, '아나키스트'는 민초(民草)입니다. 민초가 구호를 외치면, 아나키스트는 사라지고 제3세력이 생겨납니다.  

파블로 루이스 피카소는 ‘아나키스트’를 화폭에 담은 유일한 화가입니다. 피카소는 <한국전쟁> 주제의 그림을 의뢰 받았지만, 완성된 그림 어디에도 6.25 전쟁을 연상할만한 단서를 남기지 않았습니다.

알몸의 여자와 아이들에게서는 한국적인 정서를 느낄 수 없습니다. 무장한 군인들도 미군이나 UN군으로 볼 수 없습니다. 그런데다가 피카소는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게, 좌우 대칭 1;1 구도로 그림을 그렸습니다.

임신한 여자와 아이들이 무장한 군인들에게 말합니다.

“누가 이기나 한 번 겨루어봅시다.” 그들은 끈질긴 생명력, 억새풀 같은 존재들입니다.

자유를 억압하는 세력들 - 국가, 종교, 자본과 같은 집단 세력에 끊임없이 저항하면서 불복종하는 아나키스트는 용기(勇氣) 그 자체입니다. 아나키즘 사상적 기초는 이성(理性)에서 출발합니다. 그래서 나는 이성을 발밑에 두고 깔아뭉개는 세력들, 양심불량 지식인들 거짓말을 까발리면서 나름대로 고민하는 작가입니다.

한반도는 민족 분단과 예측불허 휴전 상태입니다.

북쪽은 ‘아나키스트적 사고’ 자체가 용납되지 않는 폐쇄된 사회이고,

남쪽은 <상대적 가치를 무시하거나, 왕따 당하는 분위기>입니다.

남쪽에서 ‘아나키스트’ 바람을 불러일으키면, 북쪽에서도 변화의 조짐이 보인다는 희망과 기대를 걸어봅니다.

작가 중에는 나처럼, 에로틱한 묘사에 관심을 갖는 분들도 있습니다.

태백산맥에 보면, 빨치산 ‘하대치’와 주막 여주인 ‘장터댁’의 에로틱한 서술이 있습니다.

가상 성우를 등장시켜서 동영상으로 표현해 보았습니다.   


  • 22-12-28 원정
    "신생아가 무신론자인 것처럼, 종교적 신념이나 정치적 이념은 학습을 통해서 후천적으로 만들어집니다."
    맞아요.
    더 나아가 우리가 안다고 하는 모든 생각 또한 학습을 통해서 후천적으로 만들어진 것이지요.
  • 22-12-29 김춘봉
    ‘미셸 루트번스타인’과 ‘로버트 루트번스타인’ 공저 『생각의 탄생』을 읽은 후,
    사람은 공허한 상태로 태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대충 140억 개의 뇌세포로 이루어진 사람의 두뇌는 슈퍼컴퓨터에 해당 되며,
    그렇게 많은 신경 세포가 자동적으로 신호를 주고받으면서 기억, 계획, 사고, 상상, 희망, 꿈 등으로
    나타난다는 글을 어디선가 본 적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