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루살렘 이야기

팔레비 공창제는 여죄수 재활 프로그램2

22-11-25 김춘봉 24

1978년, 아바단 정유소 증설공사에 참여했던 한국인 근로자 200여 명은 1979년 2월 귀국 당시, 항공기 좌석 부족으로, 몇 개 팀으로 나뉘어 출발했습니다.

그렇게 되니까 항공 노선과 경유지, 그리고 서울 도착 날짜가 다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우리 팀은 파키스탄 여객기로 방콕에 도착한 다음 7일 동안 호텔에 있다가 홍콩에 가서도 2일 머물렀다가 서울에 도착했습니다. 

그 바람에 방콕과 홍콩 시내 관광과 쇼핑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귀국 다음 날, 나는 K종합건설 해외인력부에 가서 귀국 신고를 했습니다.

그 때, 사우디 어느 현장으로 근로자들을 보내려고 모집 중에 있었고, 담당자가 나에게도 근로계약서를 주면서 재취업 하라고 말했습니다.

나는 서류를 제출하고, 귀가하면서 괜한 짓을 했다고 후해 했습니다.

아바단에 있을 때 K종합건설 관리직원들과 나는 사이가 좋지 않았습니다.

그들 중 어느 사람이 업무 보고를 하면서, 나를 꼭 집어 회사에 불필요한 지출을 하게 한 사람이라고 말할 수도 있었습니다.

현장 소장에게 소풍 운운하면서 근로자들에게 50불씩 주게 했을 뿐만 아니라  <여죄수 교도소>를 다녀왔기 때문에 이것이 문제가 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암달러 환전 사건>에 비하면 이것은 새 발에 피였습니다.  

이란 정부는 해외 근로자 가불을 이란 화폐,  ‘리알’로 지급하라고 지시한 바 있다고 합니다.

근로자들은 휴일마다 아바단 시내로 외출을 하곤 했습니다.

아바단 시가지는 한산했고, 상가에서 팔고 있는 카메라와 전자 제품은 터무니없이 비쌌기 때문에 구매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매달 일정 금액을 계속 가불했습니다.

귀국할 때 공항 면세점에서 물건을 사려고 제법 많은 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정세가 불안하다고 느낀 나는 동료 근로자 몇 사람 명단과 그들이 가지고 있는  ‘리알’ 금액을 적은 종이를 들고 과장을 찾아 간 적이 있었습니다.

"은행에 언제 갑니까? 이 사람들 돈을 달러로 환전 해 주세요."

우리는 공휴일에만 외출이 가능했기 때문에 은행에서의 환전은 불가능했습니다.

그 때, 저 쪽에 앉아 있던 부장이 말했습니다.

"팔레비가 호락호락 당하기만 할 것 같습니까? 괜한 근심하지 마세요."

"은행에 가는 길에, 환전을 부탁하는 겁니다. 그것도 못해준다는 말입니까?" 

나는 부장에게 한 소리 한 다음, 명단을 과장 책상에 놓고 다시 말했습니다.

"은행 환율로 우리가 환전하지 못하면 당신에게 책임을 묻겠습니다."

내가 강한 어조로 말할 때, 현장 소장도 조금 떨어진 곳에서 보고 있었습니다.  

그런 일이 있고 난 후, 팔레비가 계엄령을 선포하면서 은행 업무가 중단되는 바람에, 우리는 ‘리알’을 달러로 바꾸려고 개별 행동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아바단 택시 기사들이 그 사실을 먼저 알고, 밖에서 안을 들여다 볼 수 없게 커튼을 친 택시로 우리를 암달러 상인들이 있는 곳으로 안내를 하고, 되돌아오면서 바가지요금을 받았습니다.

그렇게 되니까 우리는 괜한 경제적 손실을 입게 되었습니다.

나는 과장에게 준 명단에 이름이 올라 있는 동료 근로자들에게, 개별적으로 환전한 달러를 가지고 출근하라고 말했습니다.

아바단 정유소 영내에 있는 식당과 관리직원 사무실은 문 - 하나 사이로, 같은 건물에 있었습니다.

식사가 끝날 무렵,  나는 명단에 이름이 올라 있는 동료들과 함께 과장에게 가서, 암달러로 환전 하면서 손해 본 금액을 배상하라고 말했습니다.

처음에는 무슨 소리냐고 언성을 높이던 과장이 - 현장소장 지시로, 손해 본 금액을 주었습니다.

그 때까지만 해도, 그 정도 선에서 끝나는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상황은 새로운 분위기로 급전 되었습니다.

내가 명단을 작성할 때 동참하지 않았던 사람들도 다음 날, 달러를 가지고 와서 손해 본 금액을 받아갔습니다.

그렇게 되니까 200여 명 근로자 전원이 보상을 받게 되고, K종합건설이 입은 금전적 손실은 결코 적은 액수가 아니었습니다.

이와 같은 사실을 K종합건설 본사 직원들이 모를 리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재취업 서류를 제출한 것을 후해 했던 것이고, 예상했던 대로 나는 출국 날짜를 통보 받지 못했습니다.  

지금에 와서 다시 생각해 보니까, <암달러 환전 사건>은 내 잘못이 아니었습니다.

관리직원과 근로자들 사이에 존재하는 <견문과 시야와 관점에서 생긴 간극> 때문이었습니다.

아바단에 도착하고, 이란의 불안한 정세 때문에 정신이 없었던 그 당시, 관리 직원과 근로자 사이에는 간극이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관리직원들은 근로자들 눈치를 보면서 올바른 판단을 해 줄 것을 기대하는 입장이었습니다.

그런데 정상적인 업무가 시작된 다음부터, 눈에 보이지 않는 간극이 커지기 시작했습니다.

근로자들은 비지땀을 흘리면서 밖에서 일을 했습니다.

관리자들은 에어컨이 돌아가는 시원한 사무실 책상에 앉아 근무를 했습니다.

그와 같은 일상이 반복되면서 관리직원들은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심리적 우월감에 사로잡히면서 내 부탁을 들어주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을 했던 겁니다.

과장이 내 부탁을 들어주었다면, 그것으로 끝날 수 있었습니다.

사전에 부탁하지 않은 사람들 손실금까지 과장이 책임질 의무는 없었던 겁니다.  

지금까지는 신뢰성을 높이려고 육하원칙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왜?’를 염두에 둔 이야기였습니다.


인류는 원시에서 문명으로, 빈곤에서 풍요로, 지상에서 우주로 삶의 터전을 넓혀 나가는 중입니다.

문명은 열린 세상이고, 당연히 가야 할 길이고, 우주적 관점에서 볼 때, 인류는 문명의 씨앗으로 존재합니다.

인류 역사상 위대한 발명과 개혁은 사회적 요구에 따라 이루어졌습니다.

‘히잡 시위’도 사회적 요구에 해당됩니다.

남성은 우월하고 여성은 열등하다는 관습이나 종교적 견해는 아주 잘못된 겁니다.

종교는 과거에서 미래를 가져오려고 합니다.

종교와 달리 정치는 미래 지향적 - 문명 세계의 동력원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내가 말하는 <견문과 시야와 관점에서 생기는 간극> 입니다.

호메이니는 정치가이면서 종교 지도자였습니다.

정치와 종교가 결탁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니까, 히잡 시위 같은 소요 사태는 예견된 것이고, 역사적 퇴행으로 빠져들 수밖에 없는 겁니다.

아바단에 있으면서 나로 하여금 팔레비 공창에 관심을 갖게 한 사람은 통근버스 이란인 기사였습니다.

"이란에는 서울이나 방콕처럼 도심 한가운데의 윤락가와 같은 퇴폐업소가 없다."

그가 한 말이었습니다.

이란에서의 성매매는 < 여죄수 교도소> 안에서만 허용 된다면서, 여자가 받은 화대 일부를 업소 주인이 가져가지만 그들은 악덕 포주가 아니라는 말도 했습니다.

나는 <여죄수 교도소>를 다녀 온 다음, 그가 한 말이 사실임을 확인했습니다.

형기를 마친 여자는 그동안 저축한 돈을 가지고 ‘과부촌’으로 간다는 사실도 그를 통해서 알 수 있었습니다.

동영상 – https://url.kr/akwfb1


  • 22-11-25 원정
    저는 종교는 실제로는 사람 수 많큼 있다고 생각합니다.
    각각 한 사람마다 하나의 종교를 가지고 있는 것이지요.
    같은 기독교 신자라지만 구체적으로 들어가 보면 하느님에 대한 생각이나 천국에 대한 생각이 다르고,
    같은 불교신자라고 해도 마찬가지 입니다.
    실제로는 자신이 받아들인 생각을 믿는 것이지요.
    일반 사람들은 그게 우상숭배라는 것을 모릅니다.

    정치 조직이 종교 조직을 많이 이용하는 면이 있고, 그 반대의 경우도 많은 것 같습니다.
    여죄수 교도소는 흥미있네요.^^
  • 22-11-25 김춘봉
    '팔레비' 공창제 허용과 <여죄수 교도소> 는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이란' 버스 기사 말에 따르면,
    외간 남자와 간통으로 죽임을 당한 이란 여자들이 의외로 많았다고 합니다.
    그 여자들을 감옥에 가두고,
    결혼 비용을 마련하지 못하고 혼자 사는 남자들도 많으니까
    공창제를 허용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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