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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가정 가꾸기는 .....11월23일(일) 오전 10시-11시 불교방송에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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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1-18
법현
1,785
*불교방송 라디오 법회를 담당하는 최윤희피디가 전화해서
법문 한 번 해 달라고 해서
주제를 이 내용으로 했지요.
40분간 녹음하는데 이 분량이 약 32분 내용이더라구요.
그래서 나머지는 에드립으로 했는데
내용이 어떨 지 모르겠어요.
피디는 원고 보고 읽는 줄 알았을 겅여요.
다음 주일요일 오전 10시 라디오법회시간에
fm 101.9 mhz
한 번 들어보세요.
느낌도 올려주시고...
행복한 가정 가꾸기는 6바라밀의 실천으로(화혼법회)
“요조숙녀는 (窈窕淑女)
군자의 좋은 짝이어서 (君子好逑)
금과 슬처럼 사귀고 (琴瑟友之)
종과 북처럼 즐기더라 (鐘鼓樂之)“
시경(詩經)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부부가 서로 사랑하는 모습을 표현하는 말에 금슬이 좋다는 말이 있지요? 사랑하는 두 분의 사는 모습이 마치 금(琴)이라는 악기와 슬(瑟)이라는 악기가 서로 하모니를 이루듯이 하고, 종과 북이 어울리듯이 한다는 뜻이 담긴 이야기 입니다.
오늘은 아주 즐겁고 행복한 날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멋진 선남자와 가장 예쁜 선여인이 서로 만나서 백년을 같이 사랑하기로 약속하고 첫 출발을 하는 날입니다. 이날을 결혼식(結婚式)이라고도 하고, 혼인식(婚姻式)이라고도 하며 우리 불교에서는 화혼식(華婚式)이라고도 합니다. 혼인은 양성지합(兩姓之合)이라고 하였으며, 혼(婚)은 여성, 인(姻)은 남성의 혼인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흔히 결혼이라고 하지만 혼인이라고 불러야 옳습니다. 불교에서는 우리 부처님의 전생이야기에서 비롯된 화혼이라는 이름을 많이 씁니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전생에 보살행(菩薩行)을 닦고 있는 수행자였을 때의 이야기 입니다. 당시의 부처님이신 연등불(燃燈佛)이 오신다는 이야기를 듣고 부처님께 연꽃을 공양하고자 했답니다. 그런데, 국왕과 대신을 비롯한 여러 사람들이 부처님을 존경하여 모두들 연꽃을 공양하려고 사버려서 구할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지나가던 궁궐의 아가씨가 품속에 연꽃 일곱 송이를 가지고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팔라고 했더니 그 아가씨는 참으로 어려운 조건을 내거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한 송이 당 은돈 100냥씩을 주어야 한다는 것과 나중에 자기랑 결혼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부처님께 공양을 올릴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뿌듯해진 수행자는 비싼 돈을 마다하지 않고, 아가씨와의 결혼도 허락하고 다섯 송이를 사서 아가씨와 함께 부처님께 가서 공양을 올렸습니다. 많은 이들이 공양을 올렸는데 유독 수행자와 아가씨가 올린 연꽃만이 부처님의 머리 위에서 마치 일산(日傘)처럼 떨어지지 않자 제자들이 의아해서 부처님께 이유를 여쭸지요. 그 때 부처님은 그들의 여러 생에 걸친 보살행을 말씀하시고 다른 생에 혼인을 해서 살다가 수행자는 출가해서 부처님이 되리라고 수기(授記) 즉 예언을 하십니다.
수행자는 석가모니 부처님의 전생이요, 아가씨는 부처님의 부인이었던 야소다라비의 전생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이 옛 이야기에 따라 남자는 다섯 송이의 연꽃을 바치고, 여자는 두 송이의 연꽃을 바치면서 혼인을 하는 것이고 그래서 꽃으로 혼인한다 하여 화혼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참으로 희한한 이야기이지만 이렇게 두 사람의 혼인이 여러 생에 걸친 보살행의 결과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흔히들 남녀가 혼인해서 같이 사는 것을 살림 차린다고 하지 않습니까? 이 말도 알고 보면 불교에서 나온 말입니다. 요즘도 우리 절에서는 법회를 산림(山林)이라고 부르는 것을 볼 수 있지요? 법화경을 주제로 법회를 볼 때는 법화경산림(法華經山林),화엄경을 주제로 법회를 볼 때는 화엄경산림(華嚴經山林) 이라고 하는 것을 보셨지요? 법회를 산림이라고 부르는데 산림이라는 말이 우리말에서 앞에 니은이 오고 뒤에 리을이 오면 서로 부딪쳐서 발음이 바뀌는 현상을 구개음화(口蓋音化)라고 하는데 그래서 ‘산림’이라고 쓰고 읽기는 ‘살림’이라고 읽지요. 산림이라는 말은 원래 ‘파인아산 양공덕림(破人我山 養功德林)’에서 왔다고 합니다. 즉 ‘인아산을 없애고 공덕림을 기른다’는 뜻인데요, 초기불교의 경전인 『아함경(阿含經)』이나 대승불교의 경전인 『금강경(金剛經)』에 많이 나오는 상(相)의 의미인 인아산은 원래는 ‘존재라고 하는 의식’이라는 뜻인데 ‘너니 나니 하는 구분의식’ 쯤으로 이해하면 됩니다. 그래서 이 말은 ‘너니 나니 하는 구분의식인 인아산을 없애버리고 하나 되는 삶을 살아서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공덕의 숲을 기른다’는 뜻이 되는 것입니다. 전혀 다른 성씨와 전혀 다른 성장 배경을 가진 두 사람이 만나서 서로 자기의 성장 배경과 관련한 자기주장만 하게 되면 그 집안은 싸움 밖에는 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서로가 하나 되는 행복한 삶을 사는 데는 너니 나니 하는 구분의식을 버리고 ‘우리’라고 하는 하나 되는 의식을 가져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렇게 중요한 의미가 담겨있는 화혼법회를 주관하게 되어 대단히 기쁘게 생각하면서 몇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우선 오늘의 화혼법회는 여러분이 보셨듯이 주례가 없습니다. 주례는 원래 서양 기독교의 의식에서 나온 것입니다. 교회에서 결혼을 할 때는 반드시 신(神)을 대신해서 목사님이 혼인을 허락해야만 그 혼인이 성립하기 때문에 꼭 주례를 필요로 하는 것이지만 우리나라의 전통 혼례식이나 불교의 화혼법회는 주례가 없는 것이 특징입니다. 우리나라의 전통 혼례식은 양가의 어른들이 다 알아서 결정을 한 것이므로 특별히 따로 연결하거나 결정을 하여야 할 주체가 따로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 주례가 없고 요즘의 사회(司會)와 같은 인례(引禮)만 필요하지요. 물론, 인례는 요즘처럼 신랑의 친구가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집안을 잘 아는 어른이 맡았지요. 그것은 인례가 하는 일이 증명이 되기도 하지만 요즘의 서양식 결혼은 주례가 있기 때문에 인례는 그저 진행이나 하는 것이 되어서 그렇습니다. 그래서 오늘의 성스러운 혼인법회의 인례를 양가를 잘 아는 스님이 맡은 것입니다. 그리고, 앞에서 말씀드린 부처님의 전생이야기에서 유래한 연꽃을 신랑은 다섯 송이, 신부는 두 송이를 부처님 전에 올렸습니다. 그것은 두 사람이 연꽃처럼 맑고 향기로운 삶을 살고 서로를 사랑해서 두 사람과 태어날 아들 딸 및 두 사람을 낳고 길러주신 부모님 등을 다 같이 기쁘게 하는 살림살이를 하라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 두 분께 따로 한마디씩의 당부를 드리겠습니다. 먼저,신랑에게 묻습니다. 신랑이 생각하기에 신부는 무엇을 먹고 살겠습니까? 그래요. 노래에도 나오지요. 사랑을 먹고 삽니다. 모든 존재와 모든 사람이 다 그렇지만 특히 여성은 사랑을 먹고 삽니다. 그리고 사랑한다는 말을 물처럼 마시고 삽니다. 이 점을 꼭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아내를 정성을 다해서 사랑해야 합니다. 그리고 사랑한다는 말을 자주 해야 합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사랑한다는 말에 인색하다고 합니다. 서양사람들은 직접 보지 않고 영화나 텔레비전 드라마를 보아도 너무 흔하다시피 사랑한다고들 하는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상하게도 그 말을 잘 하지 않고 쑥스럽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오늘의 신랑은 사랑한다는 말을 자주 해 주시기 바랍니다. 가능하겠지요? 다음으로는 신부에게 묻습니다. 신랑은 무엇을 먹고 살겠습니까? 자존심을 먹고 삽니다. 신랑도 사랑을 아니 먹고 사는 것은 아니지만 자존심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의미입니다. 어찌보면 알량한 게 자존심인데 남자들은 그 사소한 것에 목숨을 걸기도 합니다. 그래서 내가 사랑받고, 사랑한다는 말을 자주 듣기 위해서라도 남편의 자존심을 긁지 말고 한없이 자존심을 키워주어야 합니다. ‘당신이 세상에서 최고야,대통령도,사장도 당신을 따랄 갈 수는 없어...’라고 자주 말해 주어야 합니다. 그러면 신랑은 신부에게 혼신을 다해 사랑할 것입니다.
이러한 사랑 속에서 두 분이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한 기본적인 자세에 관해서 또 한마디 드리겠습니다. 다음 이야기를 들어 보십시오.
“두 사람이 한 마음이 되면
날카롭기가 능히 쇠를 벨 것이요,
한 마음에서 나오는 말은
난초처럼 향기롭나니.
(二人同心 其利斷金 同心之言 其臭如蘭)
두 분이 살아가는 동안 여태까지 전혀 다른 배경에서 살아왔기 때문에 쉽지는 않을 것이지만 한 마음이 되도록 노력하면 날카롭기로 말하자면 단단한 쇠까지도 벨 수가 있다는 말이요, 합심해서 하는 말은 그 어떤 말을 해도 다른 이들에게 향수를 뿌리듯이 맑고 향기로운 말이 될 것이라는 뜻입니다. 이렇게 살아야 사랑스럽고 행복한 부부생활을 한다 할 수 있겠지요. 그렇게 살 때 검은 머리가 파뿌리 될 때까지 백년(百年)을 해로(偕老)하는 삶이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부처님의 바른 가르침을 의지하는 것이 꼭 필요합니다. 그래서 부처님의 가르침에 의지해서 행복한 가정을 가꾸는 길을 일러드리겠습니다. 잘 듣고 마음에 새겨서 평생을 한결같이 그렇게 살아가면 가정 그대로 극락이 될 것이요, 그대로가 법당이며,두 분은 보살행을 하는 것이 될 것입니다.
첫째, 베푸는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정해진 순서나 이치 없이, 그저 내키는 대로 상대에게 주면서 사십시오. 돈이 있으면 돈을 주시고, 먹을 것이 있으면 먹을 것을 주시고, 입을 것이 있으면 입을 것을 주고....무엇이든지 주면서 살기를 바랍니다.
그것을 불교에서는 보시(布施)라고 하지요. 보시에는 물질의 보시, 진리 말씀의 보시, 편안함의 보시의 셋이 있습니다. 그 어떤 것이든지 계산 없이 있는 그대로 온전히 다 줄 때 참 사랑이 어느덧 내게 와 있을 것입니다. 그것을 춘원 이광수(春園 李光洙)는 육바라밀이라는 시에서 “님에게는 아까운 것 없이 무엇이나 바치고 싶은 이 마음 거기서 나는 보시를 배웠노라”라고 읊었지요. 둘째,지키는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두 분이 지극하게 사랑하게 되면 두 분의 사이에는 아무런 벽이 없어지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아쉽고 애틋하던 사랑의 마음이 죽음이 두 분을 갈라놓을 때까지 변하지 않으려면 서로가 지키는 것이 있어야 합니다. 아내는 남편을 배려하고, 남편은 아내를 위하며 아무리 사소한 약속이라도 지키며, 그 앞에서 겸손해지려고 노력하면서 사십시오. 춘원은 “님에게 보이고자 애써 깨끗이 단장하는 마음”을 지키는 삶 즉 지계(持戒)라고 하였지요. 지계는 무거운 것을 짊어지고 갈 수 있는 우리말의 ‘지게’처럼 사랑을 지고 가는 역할을 하는 덕목입니다. 셋째, 참는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옛말에 ‘세 번을 참으면 살인도 면한다’고 하였고,‘백번 참는 집에 큰 평화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맘으로 한 번 참고, 말로 두 번 참으며, 행동으로 세 번을 참으면 두 사람의 몸 안에 사랑이 그득하게 될 것입니다. 두 분의 마음에 기쁨의 향내가 넘칠 것입니다. 가벼운 농담을 웃으며 넘기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보다는 자존심을 팍팍 긁는 소리까지도 참을 수 이어야 그야말로 ‘욕(辱)을 참아내는 것(忍)’입니다. 특히 남편은 아내가 시댁에 관한 험담을 늘어 놓을 때 ‘오죽이나 힘이 들면....’하고 아내의 힘듦을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아내도 남편이 자신과 다른 여자를 비교하거나 다른 집을 비교할 때 참을 수 있어야 합니다. 물론,내가 상대인 아내나 남편일 경우 그러한 일을 하지 말아야겠지요. 사랑하기도 바쁘고 좋은 생각 하기도 바쁜데 나쁜 생각과 말로 사랑하는 이가 화나게 해서는 안되지요. 참는 삶을 춘원은 “임이 주시는 것이면 때림이나 꾸지람이나 기쁘게 받는 마음”이라고 하였습니다. 넷째, 노력하는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부부생활도 노력을 통해서 거듭나야 합니다. 서로가 익숙해져 갈 무렵이면 어느덧 권태라는 불청객이 찾아듭니다. 그 때 찾아든 권태를 친구로 잘못 알고 게으르게 그와 사귀다가는 사람 살지 않는 집에 거미줄이 쳐지고 쉽게 허물어지듯이 사랑의 집도 그렇게 허물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이 살면서 쓸고 닦으면서 그 안에서 부대끼면 오히려 더 오래 존재하는 집처럼 그렇게 구석구석을 쓸고 닦듯이 서로에게 다가가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권태의 시간이 오기 전에 같이 여행도 하고,서로가 서로에게 느꼈던 그 느낌을 서로 나누면서 다른 느낌을 받아들이고 같은 느낌은 소중하게 여기십시오. 그렇게 노력하는 삶 속에 얻어지는 사랑의 느낌은 퍼낼수록 솟아나는 샘물과도 같습니다. 노력하는 삶을 정진(精進)이라고 합니다. “자나깨나 쉴 새 없이 임을 그리워하고 임 곁으로만 도는 마음”이라고 춘원은 읊었지요. 다섯째는 살피는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우리말에 사랑하는 사람을 가리켜 부르는 말이 있습니다. 그것을 무엇이라고 합니까? 그렇지요. ‘자기’라고 하지요. 왜 ‘자기’가 아닌 ‘남’을 부르면서 ‘자기’라고 할까요? 그것은 아마도 ‘사랑하는 이는 남이 아니라 자기와도 같은 존재’라는 뜻으로 그렇게 부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우리나라 말이 얼마나 뜻이 깊은지를 알 수 있습니다. 세상에 자기보다도 소중한 것이 어디 있으며, 자기보다도 더 사랑스러운 존재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사랑하는 이를 자기라고 부르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며 매우 깊은 뜻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기 배가 아픈데 모르는 척 하는 이가 세상에 어디 있을 것이며, 배가 아프기 전에 몸을 살펴서 아플 일이 없도록 하는 일이 주인공이 하는 일 아니겠습니까? 그와 마찬가지로 스스로 몸과 마음을 살피듯이 사랑하는 이의 마음과 말과 행동을 스스로 그가 되어 살피는 삶이야말로 꼭 필요한 삶입니다. 그것을 불교적으로는 선정(禪定)이라고 부르지요. “하고 많은 사람 중에 오직 임만을 사모하는 마음”처럼 철저히 살피는 삶을 춘원선생은 선정이라고 하였습니다. 여섯째는 슬기로운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슬기로운 삶을 사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매우 쉬운 일입니다. 마음속으로 ‘내가 사랑하는 자기이다’라고 생각하고,자기가 하는 말은 바로 내가 하는 말이므로 내 생각과 같은 말이 나오므로 바로 긍정해서 ‘그렇구나~’하고 맞장구를 치면서 그 말이 나오기가 무섭게 행동으로 옮기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내가 사랑하는 남편과 아내는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나와 같은 말을 하며, 나와 같은 행동을 하게 되므로 아주 행복한 삶을 살게 되고 그러한 삶이야말로 슬기로운 삼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지혜(智慧)라고 합니다. “임의 품에 안길 때 기쁨도 슬픔도 임과 나와의 존재도 잊을 때”를 지혜라고 춘원은 읊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임은 이 몸에게 바라밀을 가르치려고 짐짓 애인으로 나타나신 부처”라고 읊었습니다. 정말 사랑의 마음과 부처가 되는 수행의 길을 이렇게 잘 맞도록 설명하기가 쉽지 않은데 잘 설명하였지요? 이렇게 베풀고,지키며,참고, 노력하며,살피고,슬기로운 삶을 살면 두 사람에게는 행복이 가득한 미래가 열릴 것입니다.
이제 이 자리에 오신 하객 여러분에게 한마디 당부의 말씀드리겠습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오늘의 신랑 신부는 두 사람만의 혼인이 아니라 양가의 부모님과 친지들이 모인 자리에서 이미 서로가 확인한 사랑을 보여드리고 어르신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맑고 향기로운 사랑의 삶을 살기로 하였습니다. 그러나 아시다시피 두 사람은 사랑이라는 풀밭위에 막 아장걸음을 하는 어린 아이와도 같습니다. 그래서 옆으로 걷기도 하고, 풀잎에 채여 넘어지기도 할 것입니다. 그 때 사랑으로 지켜보시다가 옆으로 걸을 때에는 바로 걸을 수 있도록 방향을 일러 주시고,넘어지거들랑 얼른 일으켜 세워주도록 하셔야합니다. 이들 두 사람이 걸어가는 사랑의 길은 여러분께서 이미 걸었던 길이기는 하지만 전혀 새로운 길이 되어 잇습니다. 사랑의 길은 결코 힘들고 어려운 길도 아니지만 쉽고 편안한 길만도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계시기에 여러분의 경험을 두 사람에게 나누어 주고 자기들만의 길을 찾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그것이 앞서 가신 여러분의 가져야 할 의무이자 권리이며 그것을 부처님께서는 보살행(菩薩行)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흖히 이런 이야기를 주례사라 하지만
제 생각에는 전통식과 불교식은
주례가 없으므로 화혼법회 법문이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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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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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로서는 부부가 살면서 제일 어려운 것이 상대방의 삶을 내 방식대로 자꾸만 간섭하려 드는 것이더군요. 내 말이 옳으니 내 말만을 따라야한다는 그런식의 주장같은 것이지요. 그러나 돌아보면서 그것을 '아내가 한 말이다'라고 보지를 않고, 그것은 곧 '내가 한 말이다'로 여기면 아무 문제가 없더군요. 나와 너로서 분리된 말이 아니고, 나와 너가 하나된 말로 들릴때 아무 문제가 없음을 알것 같습니다.
03-11-23
원정
오늘 법현스님의 목소리로 법문을 한 번 들어 보려고 하였더니 시골 집에 다녀오는 바람에 듣지를 못하였네요.
행복한 가정을 꾸밀 줄 아는 사람들은 수행을 잘 하고 있는 사람이란 생각도 드네요.
서로 모양이 다른 사람들끼리 부딪히면서 알게 모르게 많이 배우는 .....
03-11-30
법현
감사합니다. 불교방송 홈페이지로 들어가셔서 라지오 법회 지난 방송 듣기로 들을 수 있습니다. 11월23일 분..창에 불교방송 쳐서 가입하셔야합니다.
03-12-05
원정
법현스님의 목소리는 매우 젊으시더군요.
오늘 불교방송 홈페이지로 들어가서 지난 방송 듣기를 하였습니다.
글로 읽는 것과 소리로 듣는 것은 역시 다른 운치가 있더군요.
그리고 화혼과 살림에 대하여는 스님덕에 처음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잘 배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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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1-18
법현
불교¨
행복한 가정 가꾸기는 .....11월23일(일) 오전 10시-11시 불교방송에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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