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는 자 바라보기

신념(믿음)5

21-02-07 지나다가 400
뇌과학자 박문호는 그의 저서 <뇌 생각의 출현>에서 사람의 기억을 3종류로 나눈다. 절차기억, 학습기억, 신념기억이다. 인간은 기억의 존재이다. 기억한 만큼 그의 인생이 존재한다. 절차기억은 살아가면서 일상생활 유지에 기본적으로 필요한 기억으로 밥 먹는 법, 운전하는 법, 운동화 끈 매는 법 등을 말하는데 전체 기억 중 10% 정도를 차지한다. 학습기억은 새로운 정보를 받아들여 알게되는 기억이고, 신념기억은 받아들인 정보가 믿음으로 확고히 자리잡은 기억을 말한다.

젊은 사람들은 학습기억이 60%, 신념기억이 30% 정도가 되나 나이가 들면 이것이 거꾸로 학습기억이 30%, 신념기억이 60% 정도가 된다고 한다. 이는 젊을 수록 새로운 정보를 받아들이는 수용력이 크나, 나이가 들수록 이미 신념으로 굳어진 기억때문에 새로운 정보를 접해도 받아들이는 수용력이 떨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람은 살면서 자기가 접한 정보의 양과 질에 따라 세상을 판단하게 되며, 양이 많고 질이 우수할 수록 새로운 정보를 더 많이 수용할 능력이 커진다. 나이들어 신념기억이 많아지면 이미 굳어진 신념 즉 믿음에 의해, 새로운 학습정보를 접해도, 젊은 사람들처럼 쉽게 받아들일 수가 없다.

정보 중에서도 과학적인 새로운 정보는 잘 받아들여지나 애초부터 과학과는 거리가 있는 정치, 예술, 문화, 종교적 정보는 이미 신념으로 굳어지면 새로운 정보, 특히 기존의 정보와 위배되는 정보는 강력히 거부하게 된다. 박문호 박사는 나이 들수록 자신의 제한된 믿음에서 벗어나려면 책을 많이 읽으라고 하는데 그중에서도 과학적인 도서를 많이 접하라고 한다. 특히 종교나 이념 등에 관한 서적은 기존 신념을 더 강화시키기에 과학적인 서적과 비과학적인 도서의 비중을 적절히 조절할 것을, 특히 나이들수록 과학적인 내용이 담긴 도서의 비중을 높일 것을 권유한다.

신념이 강해지는 것은 사람이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기다는 의미를 두는 것과 관계가 깊다. 성황당의 돌무더기는 누군가에게 그냥 돌무더기가 아니라 소원이 이루어지는 곳이며, 십자가는 그냥 장신구가 아니라 종교적 상징물이다. 그릇이 떨어뜨렸을 때 깨지는 것은 불행이 닥칠 의미이고 온전한 것은 별일 없이 지나갈 의미로 다가올 수도 있다. 의미의 부여가 심해지면 세상은 심하게 왜곡된다. 게다가 과학적 사실도 더 과학적인 것이 발견되기 전까지만 유효할 뿐 영원히 변치않는 진리일 수 없다는 점은 아주 강한 신념에게 과학적인 사실까지도 거부할 명분을 준다. 우리가 대개 자신은 객관적으로 세상을 본다고 생각하지만 서로의 의견이 그토록 다를 수 있는 것은 각자의 신념 체계가 실로 다양하기 때문이다.

당연히 신념은 거짓된 것을 진리라고 믿게하기도 한다. 서로의 신념이 다를 때 이를 조율할 방법도 없다. 지구상에 그토록 많은 종교가 존재하고, 같은 종교 안에서도 수없이 갈래가 나뉘는 것은 신념은 타협이 안되기 때문이다. 신념은 믿음이기에 심지어 과학적인 증명도 필요없다. 신념은 자신의 믿음이 사실인지 확인할 방법도 또 그럴 의지도 거부한다. 그래서 신념이고 믿음이다.

자신을 판단없이 바라보는 행위는 이 모든 신념과 믿음을 초월한다. 이것은 우리가 모든 왜곡에서 벗어날 수 있는 가장 합리적인 태도이기도 하다.어떤 생각이 들어오더라도 판단없이 자신을 바라보면 마음에는 자신의 감정만 남는다. 그리고 이 감정은 거짓이 아니라 사실이다. 누구도 슬픈 걸 기쁘다고 착각할 수 없고 분노를 평안으로 잘못 느낄 수 없다. 그러나 이 감정은 판단이 들어오는 순간 왜곡되어 버린다. 누구때문에 내 마음이 이렇게 아프다거나 누구때문에 내가 이렇게 행복하다고 판단하는 순간에 내 감정은 그러한 판단 혹은 신념에 의해 왜곡된다. 따라서 자신의 모든 신념과 판단을 온전히 내려놓고, 있는 그대로의 감정을 바라보았을 때에야, 비로소 그곳에 솔직한, 무엇으로부터도 오염되지 않은 순수한 감정이 드러난다.

대부분 판단없이 자신을 바라볼 때 그곳은 여러가지 감정 즉 외로움, 공허함, 두려움, 막연함, 답답함, 슬픔, 분노 혹은 드믈게 편안함 같은 것들이 드러날 것이다. 꾸준히 이 감정들을 판단없이 바라보다 보면 어느 지점을 지났을 때 늘 변하지 않고 한결같이 바탕에 깔려있는 근본 마음과 만나게 된다. 그것은 언어의 표현 영역을 초월해 있는 것이지만 굳이 표현한다면 평안, 청정, 존재 자체, 자유, 순수 의식, 텅빈 충만, 축복, 완성 등의 복합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그 변치않고, 바탕을 이루고 있는 그 근본마음을 진리라고 말하고 싶다. 이 무상한 우주에서 내가 경험할 수 있는 변치않는 것은 그것이 유일하다. 그리고 그것이 전부이다. 그것은 완전성 자체로 다가온다.

왜곡되지 않은 자신의 순수한 근본마음과 만나려면 모든 판단 즉 신념과 믿음을 버려야 한다. 세상에서 말로 표현되는 어떠한 진리라 해도 내려놓고 오로지 자신의 솔직한 마음과 대면할 때 샛길로 빠지지 않고 내 안의 진리와 만날 수 있다.

언젠가 KBS 특집 다큐멘터리 '아라한의 행복'을 보니 다음과 같은 자막이 지나간다.

"우리의 판단은 무엇이 진리이고 무엇이 거짓인지 미심쩍고 의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붓다는 말한다.

소문으로 들었다고 해서 그 말을 따르지 말라. 대대로 전승되어 왔다고 해서, 많은 사람들이 믿는다고 해서, 경전에 씌어 있다고 해서, 유명한 사람이 말했다고 해서, 스승이 말했다고 해서 그 말을 따르지 말라. 스스로 깨닫고 알게 되면 그때에 그것을 받아들이라."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라고 한다. 그 무엇에 의지하는 순간 마음이 왜곡돼 버리고, 내 안의 진리는 숨어버리기 때문이다.
  • 21-02-08 원정
    참으로 공감이 많이 가는 글입니다.

    제가 나이를 먹어가면서 뇌과학과 우주의 기원(물리학)에 대하여 관심이 많아졌습니다.
    저의 주관적 착각을 많이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사물의 현상은 보고 싶은대로 보인다'는 말의 깊이와 폭을 시간이 흐를 수록 더 많이 느껴집니다.
  • 21-02-09 지나다가
    요즘 주식 셀트리온을 갖고 있다보니 셀트리온을 바라보는 정반대의 두 시각에 대해 많이 생각해보게 됩니다.

    사실을 파악하려는 태도는 많은 정보를 얻으려 노력하는 자세로 나타나지만, 관심이 적을 수록 몇마디의 정보에 확신을 갖는다는 걸 알게 됩니다. 

    저는 돈이 걸려있으니 이것저것 정보를 꼼꼼히 챙기며 신념을 뒤로 미루게되나, 주식을 투기로 바라보는 제 지인은 간단히 물트리온이라고 비꼬는 sns를 확신합니다^^
  • 21-02-09 원정
    저는 어쩌면 주식만큼 명상에 도움이 되는 도구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셀트리온은 장기 우상향할 것으로 저는 생각합니다.
    수익이 계속 매년 증가하는 것을 보면 셀트리온 주가가 모래성은 아닐 것으로 생각합니다.^^
  • 21-02-14 모모
    다시한번 생각하게 하는 글입니다.^^
    지나가다  님의 글에 푹 빠지게 되네요.^^
  • 21-02-15 지나다가
    모모님, 감사합니다!^^
  • 21-02-07 지나다가 신념(믿음)5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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