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강해

하늘의 설계도0

글수정
03-10-22 바람 869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하늘에 열린 문이 있는데 내가 들은바 처음에 내게 말하던 나팔소리 같은 그 음성이 가로되 이리로 올라오라 이후에 마땅히 될 일을 내가 네게 보이리라 하시더라 내가 곧 성령에 감동하였더니 보라 하늘에 보좌를 베풀었고 그 보좌위에 앉으신 이가 있는데 앉으신 이의 모양이 벽옥과 홍보석같고 또 무지개가 있어 보좌에 둘렀는데 그 모양이 녹보석같더라 또 보좌에 둘려 이십사보좌들이 있고 그 보좌들 위에 이십사장로들이 흰 옷을 입고 머리에 금면류관을 쓰고 앉았더라 보좌로부터 번개의 음성과 뇌성이 나고 보좌앞에 일곱 등불켠 것이 있으니 이는 하나님의 일곱 영이라 보좌앞에 수정과 같은 유리바다가 있고 조좌가운데와 보좌주위에 네 생물이 있는데 앞뒤에 눈이 가득하더라 그 첫째생물은 사자같고 그 둘째생물은 송아지같고 그 셋째생물은 얼굴이 사람 같고 그 넷째생물은 날아가는 독수리 같은데 세 생물이 각각 여섯날개가 있고 그 안과 주위에 눈이 가득하더라 그들이 밤낮 쉬지 않고 이르기를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 전에도 계셨고 이제도 계시고 장차 오실 자라 하고 그 생물들이 영광과 존귀와 감사를 보좌에 앉으사 세세토록 사시는 이에게 돌릴 때에 이십 사 장로들이 보좌에 앉으신 이 앞에 엎드려 세세토록 사시는 이에게 경배하고 자기의 면류관을 보좌앞에 던지며 가로되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능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엇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 하더라"(계4:1-11)


요한계시록에는 '이 일 후에'라는 말이 6번 나온다. 그리고 '이 일 후에'라고 하는 것은 한 사건이 끝남과 동시에 다른 한 사건이 그 속에서 다시 나타남을 말씀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장면이 6번 나온다고 함은 이러한 모든 것이 중심에서 나온다고 하는 것을 말씀하는 것이다. 5가 사라짐(공)의 중심수라고 한다면, 6은 나타나짐(색)의 중심수인 것이다. 다시 말하여 0에서 10까지의 중심수는 5이고, 1에서 11의 중심수는 6인 것이다. 따라서 요한계시록과 같은 이러한 장면(사건)들을 능히 소화해내고 가납하여 낼 수 있는 사람들은 그의 수리적상태가 수의 중심에 스스로 거하여 지게 되는 사람임을 알 수가 있는 것이다.

아무에게나, 누구에게나 이러한 장면(사건)들이 임하는 것이 아니고, 때가 차 그 수가 중심수에 도달되어진 그러한 사람들에게 이러한 것들이 임하게 되고 또한 밝히 보아 알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 모든 것에는 반드시 때와 더불어 그에 합당한 수가 일치되어야 가능한 것이다. 때와 더불어 그에 합당한 수가 일치하지 않으면 결코 하늘의 법도는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요한계시록에서는 3장까지만 교회(종교단체)에 대한 애기가 있고 그 다음부터는 교회(종교단체)에 대한 애기가 일절 없다. 그것은 결국 우리들이 신앙생활을 함에 있어, 무엇인가를 배움에 있어 어떤 특정한 종교적(사상적)단체에 몸을 담아 거기서 뭔가를 깨칠 수도 있겠으나, 그것은 다만 참고용일 뿐이고 결론은 오직 독자적으로, 일대 일로, 개인대 개인으로서 나아가야 하는 것임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즉 무리(집단)와 함께 하되, 무리(집단)적 사상에 물들지 않고 오직 홀로 걸어가는 사람들이 요한계시록 4장 이후에 전개되어지는 사람들의 모습이다.

'하늘에 열린 문'이라고 하는 것은 이미 그 모든 하늘은 다 열려 있으나, 때가 되어 비로서 사도요한의 머리속에서 그 모든 곳으로 관통이 되어지는 길이 열리어, 비로서 하늘의 섭리와 사도요한의 머리구조가 서로 일치하게 된 것임을 말씀하는 것이다.

그러면 그러한 길로 말미암아 나팔소리같은 청정한 소리가 들려오는 것이고, 그러한 음성을 따라 하늘의 것들이 사도요한에게 온전히 임하게 되고, 그의 영은 위로 상승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그로 인하여 하늘의 것들이 눈에 들어오게 되는데, 그것은 곧 하늘 보좌의 영광이요, 그 본래적 모습인 것이다. 그리고 또한 이것을 이름붙여 하늘과 땅, 인간의 설계도라고 말씀할 수도 있음인 것이다.

'하늘에 보좌를 베풀었고'
여기서 보좌는 각자들의 내면에 담겨진, 녹아져 있는, 응축되어진 고유한 비밀코드(고유번호)로서 각자가 스스로를 온전히 그 안에 거하게 하는 방위적 괘도(자장)이다. 그러다가 때가 되어 그러한 비밀코드속에 담겨져 있는 것들이 서로 나투어지고, 또한 풀어 헤쳐져 있는 모습으로서 온전히 드러난 것을 말씀함인 것이다.

'그 보좌위에 앉으신 이'는 누구인가?
그것은 천변만화하는 모습으로서 그 어떤 것으로도 변하여져 나타나짐이 되는 듯, 아닌 듯한 모습으로서 그대로 변화무쌍하게 그 모든 것들을 형용하여 내는 무형의 빛이요 무형의 음률이다. 완전히 텅 비어져 있으나, 그것에 또한 온갖 오묘한 법이 기승전결(起承轉結)의 모습으로서 날아 다니는 듯한 모습을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그 모든 찬란한 빛들이 서로 어우러져 서로 돌아가고 있으나, 그러한 빛들이 서로 섞이지 아니하고 각자들의 고유한 빛으로서, 서로 하나되게 하는 모습인 것이다.

'또 보좌에 둘려 이십사보좌들이 있고 그 보좌들 위에 이십사장로들이 흰 옷을 입고 머리에 금면류관을 쓰고 앉았더라'
그러면 그러한 보좌 주위를 둘러서 각자들의 정해진 방위(궤도)가 따라 나오는 것이며, 그 궤도가 24로 정하여 지면서 또한 각자들의 위치(각도)에서 스스로의 빛을 각자들의 고유한 그 색(빛)으로 반사(투영)시켜 그 보좌를 스스로 보존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24장로들을 사람이라고만 보기 쉬우나, 그 진의는 사람이 아니다.
하늘,땅,사람들속에 내재되여 있는 각자들의 고유한 빛의 파장(굴절)이다. 각자들의 고유한 빛의 세기와 굵기, 장단에 따라 그것을 그대로 형용하여 내는 방위적 형상이다.

그러다가 그것이 때로 물질로, 혹은 자연으로, 혹은 사람으로, 혹은 천사로도 나타날 수 있음이다.

24장로들이 보좌를 따라 그러한 방위에 있고자 함이 아니요, 자기자신의 고유한 코드가 그러한 방위를 스스로 결정하게 하며, 스스로 그것을 형용하여 '없다' '있다' 혹은 '0' '1'등으로 그 수를 놓아 우주만방에 그것을 스스로 반포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면 천변만화를 거듭하는 그러한 법도속에서 때로 보좌로부터 번개의 음성과 뇌성이 나면서 그것을 더욱 새롭게 하며, 더욱 찬란한 빛으로 그것들을 승화시키는 것이다.

'보좌앞에 수정과 같은 유리바다가 있고 보좌가운데와 보좌주위에 네 생물이 있는데 앞뒤에 눈이 가득하더라'
수정과 같은 유리바다는 명경지수로서 그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밝히 비추어 내는 고요한 빛이다. 네 생물은 동서남북이 변화무쌍하게 움직이며 돌아가고 있는 기운적모습이며, 앞뒤에 눈이 가득하다함은 끊임이 없이 변화하고 돌아가고 있는 우주만물의 이치를 한 눈으로 꿰뚫어 보고 있는 혜안을 말씀하는 것이다.


'그 첫째생물은 사자같고 그 둘째생물은 송아지같고 그 셋째생물은 얼굴이 사람 같고 그 넷째생물은 날아가는 독수리 같다'고 함은 우주만물의 변화는 때로 그것을 여러 가지 모습으로 보여지게 한다는 것이다.
용기로 보면 때로 용감한 듯, 아는 듯
충성으로 보면 때로 충성인 듯, 아는 듯
사랑으로 보면 때로 인자한 듯, 아는 듯
지혜로 보면 때로 지혜로운 듯 아닌 듯한 그러한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 그 모든 생명적 기운을 말씀함인 것이다.

그러면 각자가 처한 그러한 상황속에서 파동과 같은 움직임으로 말미암아 그 기운이 날마다 새롭게 흘러가고, 또한 혜안으로서 하늘의 그 모습 섭리를 높여 드리게 되는 것이다.

밤낮 쉬지 않고 끊임이 없이, 그 모든 것을 경외하며, 성스러워하면서, 그 모든 것을 스스로의 때와 수리로서 이루어 가시는 하느님의 그 높으심을 찬양드리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그 때는 과거,현재,미래가 함축되어진 바로 이 순간이며, 그것을 스스로 허락한 그 모든 존재들이 기꺼이 영광과 존귀와 감사를 보좌에 앉으사 세세토록 사시는 이에게 돌리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그 모든 것을 따라서 이십 사 장로들속에 있는 그 기운들도 아울러 '이 보좌에 앉으신 이 앞에 엎드려 세세토록 사시는 이에게 경배하고 자기의 면류관을 보좌앞에 던지며 가로되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능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고 하면서 그 모든 공로를 하늘아버지께로 돌리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자기 면류관을 보좌앞에 던진다'라고 함은 그것이 본래 아무것도 아니기에, 또한 받을만한 그 무엇도 없기에, 기꺼이 던져버리는 것이요, 그냥 아무것도 아닌 모습으로서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그 모든 것이 다 무(無). 공(空). 시작함이 없이, 이룬 것이 없이 나온 것이니, 그런줄 알고 그렇게 그 모든 하늘의 섭리를 찬미드리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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