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강해

라오디게아 교회에 보낸 편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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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0-21 바람 789

"라오디게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아멘이시오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오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 이가 가라사대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더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더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더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치리라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보게 하라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두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와 함께 앉게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계3:14-22)


아멘이라 함은 그 어떤 일이 발생을 한다고 할지라도 그 모든 것은 반드시 하늘의 섭리대로 온전히 이루어 진다고 하는 것을 굳게 믿는 것이요,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라 함은 이러한 섭리에 온전히 거하여 함께 동거동락하며 살아가는 사람을 말씀하는 것이다.

그러면 그 안에서 창조적 본성이 되 살아나게 되고 날마다 나로서 그 모든 것을 항상 새롭게 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되어지게끔 하는 원리는 하나됨(상생)과 나투어짐(상극)의 원리이다. 즉 영에서 하나가 나투어지고, 그 나투어짐이 여러개로 분산되였다가 도로 영으로 돌아오게 하는 방향성의 원리인 것이다. 음은 음으로서 가능하고, 양은 양으로서 가능하다. 그러나 최종적으로 음은 음을 구현시키지 못하며, 양은 양을 구현시키지 못한다. 오직 영속에 포함이 되어진 하나를 이루기 위한 과정으로서 그러한 것들이 발생되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하는 것이다.

따라서 마음이 차가와지면(미움) 차가움으로 대함이 가능하고, 마음이 따뜻하여 지면(사랑) 따뜻함으로 대함이 모두 다 가능하기에 이것을 억지로 없애고자 함이아니라 다만 그것을 가능성으로 용납하여 하나되게 할 수 있을 뿐인 것이다.

그러면 미지근하여 더웁지도 차지도 않은 것은 무엇을 말씀함인가?
그것은 생각으로서 이것도 저것도 아닌 어중쭝한 상태로 살아가는 것을 말씀하는 것이다.
미움이 일면 '아! 내가 이래서는 안되지' 하면서 미움을 없애려하고, 사랑이 일면 '아! 내가 너무 이것만 해서도 안되지'하면서 스스로를 억제시키고 하면서 생각(느낌)으로서 자기자신을 통제시키는 것을 말씀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자기자신에 대한 무지인 것이다.
그 모든 것은 이미 가능하기에 일어난 것 뿐이며, 또한 그러하기에 나로서 그것을 어떻게 할 수 없음을 모르는 것이다.

'화가 난다' 그렇다면 그것은 이미 나의 내부구조의 일부가 '화로서'의 구조로 임시변통을 하였음이다. 그러니 그러한 구조속에서 그러한 나툼이 임시적으로 발효가 된 것이다. 그러니 화가 나든, 웃음이 나든 그것은 내 안에 있는 그 모든 것들이 그 순간 그러한 꼴을 임시적으로 승낙함인 것이다.

그러니 '화가 나든' '웃음이 나든' '아! 그래, 이것은 본래 이러한 것이로구나'하면서 그것을 스스로 알아서 소통시켜내는 사람들은 상극과 같은 것들이 일어나도 그것을 언제나 상생의 모습으로 변환시키는 연금술로서 살아가니 그는 언제 어디서나 그 모든 것과 더불어 함께 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즉 상생을 이루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을 스스로 알지 못하여 화가 날 때, 혹은 미움이 일 때, 혹은 내가 원하지 않는 어떤 것들이 일 때, 그것을 마치 자기자신이 하지 않은 것 처럼 여기면서, 그것을 없애려하거나, 혹은 지속시키려 할 때에, 스스로 모순을 초래하여 결국 화를 당하게 되는 것이요, 상극을 이루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 모든 것은 내 속에 들어 있는 것들이 이미 다 허락(승낙)을 하여 그러한 것들을 하거나(안하거나), 하려(안하려)함인 것이다. 그런데 그것을 무슨 까닭으로 강제로 없애려하거나, 지속시키려 할 필요가 있는 것인가? 아무런 까닭이 없는 것이다. 아무런 이유가 없는 것이다.
다만, 있는 그대로 일어날 일이 일어나고 있을 뿐인 것이다.

그런데 그것을 모르고 내 자신이 좋아하는 방향으로만 내 안에서 일어나는 일(느낌)들을 추구하려 하면 그것은 내 안의 그 모든 것들을 스스로 용납하지 못하는 무지함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음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놓으니라"(사55:8-9)

그러니 차라리 미움이 일면 미움이 이는 대로, 사랑이 일면 사랑이 이는 대로 살면 되는 것이다. 그것에 대하여 내가 관여할 만한 게 하나도 없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을 알지 못하여 어떤 사람들은 현재적 나의 모습이 내 자신이 원하는 모습속에서, 부자요, 부족한 것이 없이 풍족한 삶을 누리고 있다고 애기할 수도 있겠으나, 그것은 필경 나의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이 되는 것이다

그러면 그것은 왜 그러한 것인가?
나는 '부자다' '부요하다' '풍족하다'고 하는 것은 이미 그 자체로서 임시적인 것이다. 결코 그것으로서만 영원할 수는 없는 것이다. 세상에 속한 것은 항상 그 반대적인 것이 언제나 찾아오기 마련인 것이다. 나는 현재 부족함이 없이 풍족하다고 함은, 반드시 지금 후에 그 반대적인 것이 따라 오기 마련인 것이다.

그것이 계절을 따라 변하는, 바람을 따라 변하는 세상의 모습이자, 법칙인 것이다. 세상에 있는 한 그것을 거스릴만한 법은 어디에도 없는 것이다. 풍족함속에는 가난이 따라나오고, 가난속에는 풍족함이 따라나오는 것이 이 세상과 온전히 함게 하는 불변의 법칙인 것이다.

그러니 스스로 나의 풍족함, 부요함에만 거하려 하는 사람들은 차라리 자기자신을 스스로 징계하여 불과 같은 용광로속에 집어 넣어, 스스로를 정켤케하고 스스로를 깨끗하게 함이 마땅한 것이다. 그래서 항상 언제 어디서나 부요함에 처할 줄도 알고, 부족함에 처할 줄도 아는 그러한 사람으로서 살아감이 마땅할 것이다.
그래서 가난해도 부끄러워 할 일이 없고, 부요해도 부끄러워 할 일이 없는 그러한 사람들의 모습이 마땅할 것이다.

그러니 가난에 처하면 그것이 또한 가난이 아닌 줄 알며, 부요에 처하면 그것이 또한 부요가 아닌줄 아는 영안이 열려져서 항상 언제 어디서나 나로서 자족해 내는 그러한 삶속에 온전히 거함이 언제어디서나 마땅한 것이다.

그러니 이러한 이치를 알고 그 모든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듣고, 마음문을 열어 함께 더불어 같이 하면 거기로부터 안식(평안)하게 하는 영이 임하여 즐거움을 함께 열어가는 복된 사람으로서 그 삶을 녹여내고 가납하고, 허락하고, 용납하고, 포용하고, 승화시키고는 하는 것이다.






  • 03-10-21 원정
    "아멘이라 함은 그 어떤 일이 발생을 한다고 할지라도 그 모든 것은 반드시 하늘의 섭리대로 온전히 이루어 진다고 하는 것을 굳게 믿는 것이요,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라 함은 이러한 섭리에 온전히 거하여 함께 동거동락하며 살아가는 사람을 말씀하는 것이다."

    다른 부분도 좋지만, 전 이 대목이 참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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