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루살렘 이야기

(소설) 유대 왕 아그립바 - 1장, 귀국(3)1

07-03-07 김춘봉 1,068
 

(부제) 서기 40년대 예루살렘 이야기





1장, 귀국 - (1), (2), (3)


2장, 왕과 총독


3장, 유피테르 신상


4장, 성전 수난사


5장, 재회


6장, 황제의 죽음


7장, 유대통일


8장, 에필로그





1장, 귀국





(3)


  예루살렘에 도착하고 나서 며칠이 지난 다음, 안나스 세력을 자극해서 좋을 것이 없다 싶어 시종 하나를 거느리고 헤롯 궁전을 나섰다.


  비탈길을 따라 한참을 내려가다가 하스몬 궁전 앞을 지나치게 되었다. 오래된 건물이라서 헤롯 궁전보다야 못하지만 성전 뜰이 환히 내려다보이고 특히 번제단 지역이 한 눈에 들어왔다. 예루살렘 시가지도 두루 살펴볼 수 있었다.


  그러니까 예루살렘 시가지는 성전산과 시온산 사이에 티로퓌온 골짜기가 남쪽으로 흘러내리면서 중심가를 형성하고 있었다.


  성전산은 웅장한 성전 본당 건물과 북쪽에 위치한 안토니요새 그리고 높은 담장으로 둘러싸인 넓디넓은 뜰이 온통 차지했으나, 시온산 일대는 윗성과 아랫성으로 구별되면서 헤롯 궁전과 하스몬 궁전 그리고 고위 사제들과 부유층 인사들이 사는 고급 주택은 윗성에, 상가를 비롯하여 여관과 일반 주택은 아랫성에 빽빽이 들어서 있었다.     


  그 골짜기 위로 아취 형태의 다리가 놓여 있어서 시가지를 내려다보면서 성전 뜰로 들어갈 수 있었다. 하스몬궁전은 제법 운치 있는 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할아버지 헤롯에게는 여려 명의 부인(10명)이 있었기 때문에 배다른 자식들이 많았다. 그러니 헤롯 궁전뿐만 아니라 하스몬 궁전에도 많은 식솔이 살고 있었다. 그들과 마주치면 번거롭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냥 지나치기로 했다.  


  하스몬 궁전은 왕의 거처로 쓰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그런데도 산 정상의 아고라 지역에 또 다른 궁전을 세워야 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그러니까 하스몬 집권 말기 왕자의 난이 발생했고, 나바티아로 가던 폼페이우스 장군이  예루살렘에 들려 난을 평정하면서 당시 이두메 지역의 통치자였던 안티파테르에게 유대 전권을 맡겼다(BC64).


  안티파테르는 장남 바사엘을 예루살렘에, 차남 헤롯을 갈릴리 지역으로 보내 3부자가 유대 전역을 통치했다. 그런데 안티파테르가 어느 유대인에게 독살을 당하고(BC43), 바사엘이 하스몬 지지 세력들과 싸우다가 죽었으며, 부친의 원수를 갚기 위해 이두메로 달려갔던 헤롯은 안티고누스에게 쫓겨 이집트로 도망을 가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그런데 오래전(BC172)에 이집트로 도망가서 자리를 잡은 레온토폴리스의 유대교 사제들이 할아버지 헤롯이 도망자의 신분인줄만 알았지 유대에 돌아가 왕이 되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하더라는 것이었다. 


  사독가문은 다윗과 솔로몬 시대에 재직했던 고위사제 사독의 이름을 따 그 후손들을 사독가문이라고 불렀는데 그들은 아론 이후 계속해서 이스라엘의 제사장직을 세습했다. 장막을 세운 뒤로부터 제1성전 솔로몬 시대에 이르기까지 수십 명의 대제사장이 사독가문 사람들이었다. 그러다가 오니아스3세가 부친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의혹을 품고 진상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생명의 위험을 느끼고 이집트로 도망을 갔으며, 그곳에서 궁색한 생활을 하다가 주인 없는 퇴락한 신전을 발견하고 이집트 왕에게 다음과 같은 내용의 글을 올렸다.


‘이곳은 각종 물질이 풍부하며 성스러운 동물이 가득한 곳입니다. 마침 주인 없는 작은 신전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이곳에 예루살렘 성전의 모양을 본떠 같은 크기의 성전을 세울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신다면 귀국의 자랑꺼리가 되기도 하려니와 저희에게는 크나큰 영광입니다. 우리의 선지자 이사야께서는 오래전에 이집트에도 야훼를 위한 단이 설 것이라고 예언하셨습니다.’


  여기에 대한 이집트 왕의 대답은 이러했다.


‘그곳은 오래 전부터 버려진 땅이요, 불결하기 이를 데 없다. 그런데도 예루살렘에 버금가는 성전을 세우려 한다면 반대할 이유가 없다. 더구나 그대들의 조상 누군가가 예언까지 했다니 성전을 세우도록 하라.’


  그 후 이집트의 프톨레미 왕조는 성전 건립에 필요한 경제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으며 나름대로의 손익계산을 해 본 결과였을 것이다. 


  헤롯이 보기에도 그럴듯한 성전이 세워져 있더라고 했다. 말하자면 사독가문의 후손들은 이집트 왕에게 엄청난 이익을 남길 수 있다는 언질을 주었을 것이고, 이런 식으로라도 명맥을 이어갈 방법을 찾으려 했던 것이다.


  이처럼 예루살렘 성전에 대립하는 또 다른 성전이 세워지게 된 내력을 알게 된 헤롯은  예루살렘에 돌아와서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그래서 집권하자마자 낡은 성전을 헐어버리고 새 성전을 세울 계획을 세웠다. 행여 이집트의 레온토폴리스 성전에 순례자를 빼앗기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사제들 생각은 달랐다.    


  헤롯의 조상은 이두메 출신이고, 로마의 도움을 받아 권력을 빼앗았다고 보기 때문에 무슨 꿍꿍이가 있는 것이 아닐까 의심하더라는 것이었다. 혹시 그 자리에 다윗처럼 궁궐이라도 들어앉히면 어쩌나 하면서 반대를 하는 바람에 성전에서 빤히 올려다 보이는 산 정상 아고라 지역에 궁전을 세울 생각을 했던 것이다.  


  막상 공사를 시작하고부터는 자금난에 허덕이며 아녀자들의 목걸이까지 벗어 공사비에 보탤 지경에 이르렀으나 공사가 어느 정도 진척이 된 모습을 보고서야 산헤드린 쪽에서 성전 공사를 겸해서 해도 좋다는 허락(BC 22)이 떨어졌다.


  단 조건이 있었다. 이방인은 성스러운 지역에 드나들 수 없기 때문에 젊은 사제들로 하여금 목수나 석공 일을 배우게 해서 그들로 하여금 전담시키자는 것이었다.


  심지여 역사학자 니콜라우스의 고증이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사제의 뜰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막는 바람에 건물이 완성 되었다고 기뻐할 즈음에 이르려 건물이 무너지는 대형사고가 발생했다. 본시 가파른 지역에 성전을 세우려면 부득이 낮은 지역에서 석축을 올려 그 공간에 흙을 매립하기 마련이고, 그곳 다짐이 시원치 않아 무너진 것이었다.


  길이가 25, 높이가 8, 너비가 12규빗이나 되는 돌들이 차곡차곡 쌓이고 보면 부실한 기초는 하중을 견디지 못하고 내려앉기 마련이었다.


  무너진 건물을 헐어내고 기초를 단단히 한 다음, 다시 벽을 쌓아 올리려다 보니 1년 6개월이 지나서야 본당 건물이 완성되었다.


  본당 건물 준공식을 치르던 해(BC 15)에 헤롯은 여인의 뜰에 무대를 설치하고 성대한 대관식을 가졌다. 무대 옆에는 로마황제를 상징하는 독수리 석상도 함께 세웠다. 여기에 대해서 그 누구도 불평하지 못했다.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경축 사절단을 보내왔기 때문이었다. 


  그 후, 성전에 대한 백성의 자부심은 대단했다. 본당 건물 공사가 진행되는 동안 낮에는 멀쩡하다가 밤에만 소나기가 와 주었을 뿐만 아니라 작업에 동참한 사제들에게는 황소 같은 힘이 솟구쳐 피곤한 줄을 몰랐으며, 다치거나 병든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야훼께서 특별히 은총을 내렸다고 믿었다.


  이처럼 성전에 대한 신뢰와 자부심이 대단했으나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었다. 다시 광야의 수도원으로 돌아간 엣세네인들은 예전처럼 성전을 비난했다. 그들은 집권 초기 사독가문의 후손을 불러들여 대제사장 지위에 앉혔을 때만 하더라도 기뻐하면서 성전 공사에 동참을 했으나, 대제사장 지위에 오른 사람이 이집트 레온토폴리스 성전을 대표하는 인물이 아니라 사독가문의 후손이긴 하나, 가난한 농사꾼을 불러왔기 때문에 대제사장이 무슨 일을 하는지조차 모르는 무식한 사람이었다.


  결국 대제사장 자질 문제가 거론되면서 다시 이집트에서 보에뚜스의 시몬을 불러들이자 엣세네인들은 광야의 수도원으로 돌아갔으며 예전처럼 성전을 비난했다. 그리고 근자에 와서는 엣세네인들의 영향을 받은 일부 젊은이들 사이에서도 성전을 향해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질 것이라고 수군댄다는 것이었다.


(계속)

  • 07-03-08 원정
    요즘 선생님이 힘을 내시는군요.

    저 번에 저녁 잘 먹었습니다.
    다음에 제가 한 번 저녁 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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