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고명장 제갈공명2

03-09-26 지구인 559
제갈공명.

두말이 필요없는 만고의 지략가이다.
뿐만 아니라 탁월한 행정가, 상식을 뛰어넘는 발명가였고 뭇사람들의 심금을 울리는 명문장가이기도 했다. 그는 참으로 난세의 르네상스인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오늘은 그에 대해서 다른 면모를 알아보고자 한다.
그의 일대기를 보고 있노라면 나는 언제나 그 배경에 흐르는 비장미를 느끼게 된다. 이런 표현을 써도 될른지는 모르겠지만 느와르적 감성이라고나 할까.

일반적으로 알려진 삼국지는 유비의 죽음을 전후하여 거의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그리고 이른바 '후삼국지'이다. 이때부터는 이야기의 중심축이 오로지 제갈공명에게로 옮겨지는 것이다.

유비는 임종 직전에 공명에게 유언을 남기는데 그 내용이 자못 파격적이다.
아들 유선의 재목이 못됨을 그 또한 익히 알고 있었던지라 공명에게 후사를 부탁하면서 여의치 않는다면 유선을 폐하고 공명 스스로 왕위에까지 올라도 좋다는 것이었다. 즉 촉한을 제갈씨의 나라로 만들어도 무방하다는 얘기인데 당시 시대상으로 볼 땐 그렇게 생소한 일만은 아니다.

하지만 이러한 역성혁명을 공식적으로 인가해줬다는데 대해서는 과연 유비구나 싶은데 공명은 어떤가. 어리고 유약한 군주를 오히려 더욱 지극히 섬긴다.
사실 공명이 유비의 뜻을 좇아 왕조를 갈아치웠다 해도 그 누구도 비난할 사람이 없었을 것이고 오히려 촉의 안위를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후사는 평가했을 것이라고 본다.
그러나 다분히 나의 추측에 불과하지만 공명은 천기를 읽는 사람이니 촉의 국운이 다했음을 이미 알았을 것이고 뭐니뭐니 해도 그러한 편법(?)은 생리에도 영 맞지 않았을 것이다.

공명은 진정 천기를 읽는 사람이었다.
어쩌면 그는 유비를 자신의 초막에서 처음 만났을 때부터 그들이 천하의 패권과는 인연이 없을 것임을 알았을지 모른다고 생각한다. 다만 당시 도탄에 빠진 천하의 난민들에게 일말이나마 의지처가 되어주고자 유비에 종군했을 것 같다는 것이다.

만약에 그가 단지 천하의 평정에만 마음이 있었다면 어찌 위의 조조를 몰랐겠는가.
하기야 조조는 주위에 인재들이 넘쳐 흘렀으니 온전히 그의 뜻을 펼치기는 역부족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뿐만 아니라 그런 경우 필히 있게 마련인 내신들 간의 헤게모니 쟁탈전 또한 그의 성정으로서는 도무지 견디기 힘들었을 것이다.
더군다나 조조부터가 은근히 자기를 견제하려 들지도 모를 인물이니 주군의 후보감으로는 아예 논외였다고 보겠다. 조조의 애민정신결여는 둘째치고 말이다.

공명은 늘 인재에 갈급증을 느낀 사람이었다.
촉의 진영은 요즘으로 보자면 1군과 2군의 전력차가 너무 심해서 주전이 빠지면 당장 전력에 차질이 생기는 지독히도 선수층 얇은 국가대표선수단 같았다. 그럼에도 촉이 그나마 전국상황에서 다크호스 역할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관우 장비를 비롯한 오호장군들의 걸출함도 있었겠지만 무엇보다도 공명의 신산과도 같은 지략덕분이었다고 하겠다.
실제로 유비가 식객노릇을 접고 천하에 어엿한 효웅으로 발돋움하기 시작한 것도 약관에 불과했던 공명의 전격적인 영입 이후이다.

하지만 촉에게 그러한 인재운은 공명이 거의 전부였다. 공명 또한 이후 자신이 발탁한 인물들이 없지 않았지만 하나같이 오래지 않아 그의 곁을 떠나 보내야 했던 것이다.

와룡봉추라 하여 둘 중에 하나만 얻어도 천하를 얻을 수 있다며 공명과 명성을 다투었던 방통은 애석하게도 낙봉파에서 유명을 달리한다. 방통이 그토록 헛되이 명을 자초한 것은 공명에게서 '살리에르 콤플렉스(영화 '아마데우스'의 그 살리에르)'를 느꼈기 때문이라는 해석도 어디서 본 듯 하다.
그리고 또 한명의 촉망받던 후임자감이었던 서서, 그도 조조의 불가항력적인 계략으로 인해 공명의 곁을 떠난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읍참마속의 주인공 마속. 그 용맹무쌍하던 오호장군들이 하나 둘 불귀의 객이 되어 가던 촉한에 그나마 한줄기 희망이었던 그도 객기어린 자만으로 가정원 전투에서 참패를 당한다. 군율의 기강을 세우기 위해서 눈물을 머금고 마속의 목을 치라고 했을 때 공명은 이미 더이상 중원에의 집착에 가까운 집념을 놓아버렸을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공명의 일생은 이처럼 철저한 고독의 연속이었던 것이다.
오吳만 해도 대도독 주유의 사후공백을 육손이라는 신진재사가 거뜬히 메꾸어 주는데 촉한은 바로 그 면이 절대적인 아킬레스건이었다.
나아가서 군주를 봐도 그렇다. 아버지 손견의 유업을 당당하게 계승해내는 손책, 손권 등에 비해서 유선은 너무 격이 떨어진다. 오죽하면 조자룡이 장판파에서 주군의 어린아들 아두를 가슴에 안고 일당천으로 천신만고 본진에 돌아왔을 때 유비는 살아 돌아온 자신의 아들을 반기기는 커녕 오히려 아까운 장수를 잃게 할 뻔 했다고 모멸차게 홀대를 했겠는가(혹시 이러한 부성애결핍이 훗날 유선의 유약한 성품을 있게 했는지도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럼에도 그 열악한 여건속에서 최선의 승수를 기획해내고 한치의 빈틈도 없이 추진해가는 공명의 모습은 참으로 경외감을 불러 일으킨다. 어쩌면 이렇게 무에서 유를 만들어나가는 것은 그의 유일한 선택이었음과 동시에 그의 승부사적 기질을 유감없이 불태우는 강력한 즐거움이었을 듯도 하다. 애초에 그가 유비를 선택했듯이.

상제님께서는 이제는 천지가 성공하는 시대라고 하셨다. 그속에서 선천의 모든 원과 한 또한 남김없이 풀어버릴 수 있는 해원세상이 열리는 것이다. 제갈공명의 그토록 심대했던 대망이 이제는 성취된다는 것이다.

더 이상의 비탄에 젖은 한숨과 가슴저미는 눈물이 없는 그 세상 말이다.


선천에도 개벽이 있고 후천에도 개벽이 있느니라
하루는 태모님께서 신정을 행하시며 말씀하시니 이러하니라.
선천에도 개벽이 있고 후천에도 개벽이 있나니
옛적 일(上古之事)을 더듬어 보면 다가올 일(來到之事)을 아느니라.
다가올 일을 알면 나의 일을 아느니라.
제가 제 일 해야 하느니라
삼제갈(三諸葛), 팔한신(八韓信), 관우, 장비, 조자룡, 진묵대사, 사명당이 때가 때인 만큼 일제히 나서나니
만고의 성인 오시는데 오방신장(五方神將) 이하로 신명 맞이 어서 하소.
나 살고 남 살리는 공부니 사람 잘되기를 바라소.
제가 제 마음을 찾아야 되고 제가 제 일을 해야만 되느니라.
- 道典 11편 96장 -
  • 03-09-26 원정
    道典 11편 96장 "제가 제 마음을 찾아야 되고 제가 제 일을 해야만 되느니라."라는 말이 가슴이 와 닿네요.
  • 03-09-27 모모


    중국의 삼국지는, 실지와는 많은 차이가 있는 작품이라 하더군요.
    실지 인물을 예로 들때,
    유비는 현재의 조폭.....그러니까 뒷골목 출신으로, 황건적을 토벌하면서 눈에 뛴 그런 인물이라 하더군요.
    배운것도 별로 없고, 의리 하나로 뭉친 현재의 마피아 두목 정도쯤.....^^

    그리고 실지 조조란 인물은, 정말 대단한 인물이더군요.
    탄탄한 벼슬아치집안에서 제대로 교육받고 자란, 문무를 겸한 그런 사람이랄까.

    중국역사에선,
    조조와 조조의 아들 조비. 또는 조식..등을 통해 내려오는 세부자의 시를 일컬어
    "건안풍골"이라 부르죠..
    이름만큼이나 그들의 시에 흐르는 기개가 멋지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단지,
    삼국지는, 중국의 인구중 가장많은 수에 속하는 한족들이 그들의 이민족에게
    통치당하는 설움을 구전으로 부르는 노래처럼 부르는 이야깃속에서
    그들과 같이 한족이었던 유비를 덕있는 자로 내세우면서 그들의 아쉬움을 달래고자
    했던 실제와 허구가 뒤섞인 그런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물론, 훗날에 정리가 되어 하나의 역사 소설로서 완성됐지만 말입니다.

    하지만, 저 또한 공명을 아주 좋아하고, 삼국지중 가장 멋진 분으로 생각하고 있답니다
    역사가 어쨋든 ,실지 인물이 어쨋든,
    삼국지속에서 공명은 살아있는 지혜의 상징으로 손색이 없는 분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