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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앞에 엎드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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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09-18
바람
466
그 앞에 엎드려
무조건 그 앞에 엎드렸네
말없이 순종하듯이 그렇게 엎드렸네
들리는 음성은 아무것도 없고
오직 고요한 정막만이 나를 감싸고 도네
나도 아무런 할 말이 없어 그냥 말없이 온 종일 그렇게 침묵하네
그런데 나는 무엇을 이미 다 말하고 있네
너무도 많은 말을 하여 도무지 말을 단 한마디도 할 수 없네
침묵의 심연은 나를 완전한 고요속에 잠들게 하고
그 속에서 억만마디의 그 모든 말이 응축되여 말없이 잠들어 있네
나는 아무런 말을 할 필요가 없어 오직 침묵으로서 응대하지만
그 속에 나는 너무도 분명하네
태고의 침묵은 나를 감싸안아 돌고
나는 그 속에 이미 없이 멈추어져 있네
시간은 멈추어 섰고
갈곳은 이미 없건만
나는 혹시 길잃어 버린 나그네가 아닌가 하고
내 속의 또한 나를 다시 한번 탐구해 보네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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